작은학교 선생님 RE DEL
(2010/05/14 11:52)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해맑은 웃음을 위해

엄마로서는 사회적 정의보다 사회적 위치를 척도로 하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객관적 형평성보다 주관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쓰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아이를 위해 옳은 것 보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모든 엄마가 그렇지는 않지만 제가 엄마일 땐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아 굳이 스스로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생각했습니다.
'야, 큰일이다. 계속 이렇게 못하면 어떡하지!'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생각합니다.
'집중력이 부족했구나. 어떻게 집중력을 키워줄까?'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다음엔 잘 봐서 놀린 친구 코를 납작하게 해줘.'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말하는 건 옳지 않아, 사과 하라고 할게.'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더 좋아해.'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니가 뭘 몰랐는지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해.'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게 공부란다.'

지윤이와 지승이는 들꽃 같은 아이들입니다. 들꽃처럼 자생력 있고 들꽃처럼 흐드러지며 들꽃처럼 주변에 어울리며 살아가라고 들꽃처럼 키우려 했습니다. 수천 수만년을 피고 지는 역사를 가진 들꽃처럼 키우려는 꿈을 꾸었건만,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를 두고 고민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과학 9개 틀렸다고 우리 아이를 놀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에 정의는 하나일 터인데, 그 정의라는 것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을 통하여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지윤 지승이 들고 있는 꽃은 냉이꽃입니다. 지윤 지승이 여섯 살 때 외갓집 텃밭에 난만한 냉이꽃을 뿌리째 캐서 꽃다발을 만들고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냉이가 꽃이 필 만큼 자라면 줄기가 질겨서 꺽이지 않으니 뿌리째 캔 것입니다. 물론 손엔 흙 묻고 저 꽃다발을 갖고 탔으니 차안에도 흙이 떨어졌겠지요. 아마 그 손 씻지 않고 간식도 먹었을 거고 차에 오는 동안 졸리다고 눈도 비볐겠지요.
다음에 외갓집 갔을 때는 그 냉이 밭을 갈아 엎고 다른 씨았을 뿌려놓았을 겁니다. 지윤 지승은 자기네 꽃밭이 없어졌다고 속상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맘 속에 있는 아름다운 냉이 꽃밭은 살아가면서 외갓집이 그리울 때마다 하얗게 피어나겠지요.

내 아이들이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겨울 눈 속에서 싹을 준비하는 꿋꿋한 들꽃 씨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엄마로서 때론 선생님 마음을 스스로 일깨우면서 아이들을 돌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백 명의 스승과 같고
어머니는 백 명의 아버지와 같다-

지윤 지승아 엄마로서 나의 짐이 무거우나 그 짐을 지고 가는 길은 행복하단다. 사랑해~~~ 그리고 마음 맑은 너희가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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