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RE DEL
(2012/06/14 10:10)
나의 스승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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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가 직접 체험한 대로 <어린 왕자>를 10대의 소녀 때 읽었을 때와,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

다시 읽어 볼 때의 같은 텍스트에 대한 수용 미학의 편차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겠지요.

어렸을 때는 텍스트의 글자를 따라 그 의미를 단순하게 조합하고 그에 따라 작품이 주는 의미나

감동 혹은 교훈을 읽어내기에 급급하는 '단순 수용'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겠지요.

그러나 이제 이제 원작자와는 너무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한국의 한 중년의 여성독자로서

<어린 왕자>가 주는 의미는 작자의 의도를 넘어 그 텍스트를 선택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게 되고 독자 자신의

독특한 시선과 지평으로 그 작품이 놓여 있는 지평과 새로운 융합을 얻어내어 마침내 '분석 비평적 수용'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옥이의 비평적 글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어린왕자를 '여린왕자'로 읽어내는

비평적 시각과 선택적 가치의 발견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하겠지요. 특히 거기서 '인연'과 '책임감'의 가치를

발견해낸 것은 옥이라는 탁월하고 성숙한 독자가 아니면 쉽사리 발견할 수 없는 것일테지요.

그러면서 다른 독자라면 <어린 왕자>를 통해서 그 여린 모습의 원천이 되는 미지의 세계로의 끝없는 지향성에도 얼마간의 순수한

가치가 숨어있을 거라는 해석을 생텍쥐페리의 코르시카 섬으로의 비행과 융합시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차제에 욕심을 부린다면 이제 옥이의 그 원숙한 '분석 비평적 수용'의 단계는 보았으니 수용미학의 마지막 단계인

'창의적 수용'의 단계를 보여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겠어요. <어린왕자>에 못지 않은 성인적 동화의 세계를 직접 창작해내는

그런 단계를 기대한다는 거지요.

그럼 이만 줄이고..

솔바람 RE DEL
(2012/06/14 10:12)
나에게 어린왕자를 소개해주신 스승님의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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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싱가폴에 있는 딸한테 갔다가,

마침 라이온 킹 뮤지컬을 하기에, 거금을 들여 갔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감동과 환희가 가득했지.

영어로 말하는 거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대본을 대강 읽고 갔는데도,

완전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옛날의 영화로 나온 라이온 킹을 다시 봤지.

완전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가 무대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는데 (너무 착한 역이어서 - 인사하는데, 악당 스카에세 관중들이 큰 박수를 주더라고, 그의 연기 때문에...),

그런데 혼자 음미하며 보는 영화 속에서 심바 아버지의 하는 말들 속에서 그 사상과 책임감 등이 마음에 들었어.

농담 같은 티몬과 품바의 대화에서도 마음에 콕콕 와 닿는 말들이 있고...

전에는 그렇게 못 느끼고 그냥 웃어버리고 만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어릴 때 보던 라이온 킹과 나이 들어 보는 라이온 킹, 또 늙어서 보는 라이온 킹, 전부 다른 감동을 주겠다는 생각을 했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도 지금 보면, 구석구석 더 많은 의미를 느낄 때가 있어.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드라마를 보면서 더 많이 우는 거 같아.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 이입되거든. 그래서 주인공이 울 때마다 우는 거지. 내용들이 내 경험과 비슷한 것이 있을 때는 더하고.

삶의 경험이 그 모든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이겠지.

그래서 정말 좋은 책은 나이들어서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어린 왕자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어린이나 어른을 위한 것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가족이 함께 보는 책이라 하면 어떨까?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거기서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고.

설혹 그 깊은 내용을 다 이해 못하더라도, 그 아이가 느끼고 얻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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