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과 집착, 그러나 유연한 뇌의 힘


확실히 우리 아들은 지식의 조합을 잘 합니다. 그리고 관찰력이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느립니다.

한 가지를 갖고 여러 곳에 대입해보고 변환시켜보고 매일 보는 물건이라도 조금 차이가 나게 해 놓으면 금방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늦습니다.

그리고 집중력도 좋습니다. 그 비슷한 집착력 또한 좋습니다. 특히 갖고 싶은 장난감에 대한 집착력이 대단합니다. 집에 비슷한 것이 있으면 안사는 거라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한 번 사고 싶으면 못 견뎌 합니다. 핸드폰 사진 인화하러 대형마트 갔다가 거기서 레고 로봇을 하나 봤는데 사달라고 얼마나 애원을 하는지 모릅니다. 조르는 게 얄미운 게 아니라 애처로워 보이게 조르는 게 또 하나의 기술입니다. 사고 싶은 욕구를 너무 억제해도 역효과가 있을 것 같아 가끔은 구실을 대어 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번엔 생일을 구실로 들어줄까 생각중입니다.

그랬더니 딸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사겠다는 겁니다. 뭐냐고 물으니 콩순이 인형이나 바비 인형을 갖고 싶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큰고모가 사주신 콩순이 인형도 있고 언니들한테서 물려 받은 바비 인형도 많이 있지 않냐고 했더니 그건 자기가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딱 원하는 것하고는 다르답니다. 결국 딸은 인형을 갖고 싶은 것보다 인형을 사보고 싶은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그 나이에도 선물을 고르라면 인형코너를 맴도는 걸 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로 한 번은 사 주고 넘어가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원하는 인형을 진열대에서 탁 꺼내 갖고 계산대로 가는 유아기의 통과의례를 못 거치면 그것이 딸의 인생에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들 생일 선물은 로봇과 바비 인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에궁, 그돈이면 ... ...

아들이 학교에서 기온에 대한 걸 배웁니다. 섭씨 21도를 21도C라고 읽는다고 했더니 갑자기 이러는 겁니다.

“엄마, 21도C는 21도도나 마찬가지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왜냐하면요 피아노에서 C는 도 거든요. 그러니까 21도C는 21도도예요.”

빨리 과학 풀고 다른 과목도 풀어야 하는데, 과학 하다가 피아노 건반까지 떠올리고 있으니 ‘빨리빨리’가 안 되는 겁니다. 대신 과학과 음악을 넘나드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판단과는 참 다른 면을 학교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이 그것입니다. 같은 학급 학부모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일인데,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맹랑하고 귀엽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해서 웃음만 나옵니다.

사건인 즉, 지승이가 여자 짝꿍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같은 반 친구 ***에게 너를 좋아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달라고. 그래서 짝이 편지를 써서 ***에게 주는 과정에서 시끌벅적 한 소동이 좀 일어나서 지승과 짝꿍 둘 다 벌을 섰답니다. 짝꿍은 짝꿍대로 연애편지 대필해주다 벌 섰으니 속상하고, 지승이는 지승이대로 원망이 많았습니다. 지승이 말로는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서 편지 보내지 말라고 말라고 수백 번 했는데 짝이 보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젠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이랑 다 절교를 하겠다는 겁니다. 말씀해 주시는 분 없었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은 참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였습니다.

처음엔 지승이가 자기가 써 달라고 했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순간에건 솔직한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말하는데, 자기가 처음엔 써달라고 한 것이 맞고,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쓰지 말라고 말라고 했는데 결국은 짝이 ***에게 보낸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말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거 봐. 평소에 글씨 연습을 많이 하면 짝한테 안 써 달라 하고 니가 직접 쓸 수 있잖아. 그래서 글씨 연습을 해야 되는 거야. 알겠어? 그리고 ***는 너 편지 보고 그냥 너를 쳐다고고 한 번 웃었다면서, 그러니까 너를 싫다고 한 게 아닌 데 왜 절교를 해. 담에 우리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또 짝이 너 때문에 혼났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해. 중간에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보낸 건 잘못했지만, 그래도 니 부탁을 들어 준 거니까 사이좋게 잘 지내.”

이렇게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은 끝났습니다. 녀석, 엄마한테 써 달랬으면 잘 써 줬을 텐데 하는 농담까지 넣어서 여기 저기 막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선생님께선 ‘녀석이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허 허 ...’ 하시더라구요. 근데 그 말씀도 참 달게 들리지 뭡니까. 그게 다 부모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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