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그늘막


지승이는 5학년 1년 동안은 해리포터와 함께 살았습니다. 디브이디도 해리포터만 보고 책도 해리포터만 읽고 놀이도 해리포터 마법놀이만 하고 놀았습니다. 그건 지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서 늘어놓는 마법지팡이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하리하우스 방범을 위해 방어마법을 걸어놓던 지윤이의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며 짜증을 넘겨버리곤 합니다. 한번은 평동 도담철물점엘 갔는데, 마법사가 타고 다닐 만한 멋진 대나무 빗자루가 있어서 사주었습니다. 퀴디치 게임을 할 때 쓰라고요. 다른 데 돈 쓰는 건 아까운데, 마법빗자루를 사 줄 때는 아깝지가 않은 게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해리포터 마법세계의 힘이 나에게도 미치나 봅니다.

현진이 누나네 집에 갔다가 해리포터 스티커북을 선물 받고 한참을 잘 놀았습니다. 스티커북에 있는 편지지로 호그와트에서 자신들의 입학을 허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지승이가 어찌나 마법세계에 가길 원하던지, 엄마인 나도 마법세계가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승이가 말합니다. 만약 호그와트 전투에 내가 나간다면 엄만 허락할거야? 아이의 진지함을 알기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지승이가 모기를 손으로 휙 잡더니 하는 말, ‘햐아, 나는 수색꾼 해도 되겠지?’

내가 해리포터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언제 커서 해리포터를 읽을까 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해리포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아이들이 커서 반지의 제왕을 읽을까 했는데, 이젠 나보다 더 중간계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나를 넘어서 <끝없는 이야기>와 <비밀의 도서관>과 <모모>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들은 학교에 가방 앞주머니에 너덜너덜해진 반지의 제왕 한 권을 넣고 갔습니다. 쉬는 시간 틈틈이 꺼내보는 반지의 제왕이 분수의 혼합계산을 하느라 복잡해진 머리를 잠시 식히는 시원한 그늘막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방정식과 근의 공식을 들고 씨름 할 땐 어떤 책이 그늘막이 되어줄지 궁금합니다.

아들과 딸의 가슴속에 정의와 지혜와 사랑을 심어 줄 좋은 책을 장만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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