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도서관에서 ,<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 재미마주 - 권윤덕 지음> 라는 책을 아이와 읽었다. 그림도 좋고 내용도 좋았는데, 특히 옷을 물려 입는 내용에서는 내가 더 좋았다. 옷을 물려 입는 것이 우리집 아이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물려 입는 다는 것을 자연스레 말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 함께 해 볼 내용을 정했는데, 책과 생활의 자연스런 고리를 만들기 위해 내가 슬쩍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 집에 가서 우리도 우리 옷 한 번 그려 볼까? 맞아, 집에 가서 한복 꺼내 줄게 입고 놀아."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비디오 보느라고 그랬나 보다. 오늘은 꼭 한복 꺼내 줘야겠다.
지난 번엔 아이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려고 말을 꺼냈다. 실은 꼬셨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하나는 태권도 학원을 가겠다고 하고 하나는 안 가겠다고 하니,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런 저런 말로 꼬셨는데,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는 태권도 학원 안 가고 그냥 유치원만 다니다가 곧장 과학자가 되겠단다. 그랬더니 태권도 학원 가고 싶은 딸이 내 대신 아들을 설득하는데 말이 이랬다.
"지승아, 옛날에 뉴튼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나무로 만드는 걸 잘 했대. 그래도 과학자가 됐으니까 너도 태권도를 배워도 과학자가 될 수 있어. "
처음엔 뭔 얘긴가 했는데 뉴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어렸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일로 나무 공예를 했던 뉴턴의 이야기를 과학자가 될 것이므로 태권도를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 동생을 설득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이였다. 그것 말 되네. 그런 생각을 해낸 딸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잘 생각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물론 아들은 그 논리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책과 생활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한 나의 교육이 아이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아이들과 책을 매게로 더 많은 활동을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위인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 하리 하우스로 옮기기 위해 다 포장을 해 놓았다. 잔다르크를 불에 태워 죽였던 시대의 억지 논리를 아이들에게 말해 준다는 것은 이 세상은 온통 나쁜 사람들로 우글거린다는 얘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하기 싫은 얘기인 것이다. 그래도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이란 말을 기억하지 못해도 과학자 뉴턴의 이야기는 내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니 기쁘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며 범하기 쉬운 오류가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역사적 사실과 관련 있는 가를 외우게 하는 것이며, 너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은근히 부담주고 종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위인전 속의 인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위인전은 한 사람의 살아 간 <이야기> 이며, 구체적 시대와 배경이 있는 <동화>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좋다. 동화를 읽고 나선 동화 속 주인공처럼 되라는 부담을 주진 않으니까. 부담 없는 위인전 읽기. 나아가 독후감 같은 것 써야 하는 부담이 없는 책읽기가 우리 아이들 마음을 살지게 하리라 생각한다.
책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교육. 생활 속에서 책의 내용을 체험 해 보는 기회를 주는 교육. 그런 살아 있는 교육을 나의 작은 학교 이야기에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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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ㅎ
참 짧기도 한 자서전입니다.
게다가 '나'라고 일인칭으로 하지 않고 '지윤이'라고 삼인칭을 쓰고 있는 특별한 자서전입니다.
이렇게 인칭을 선택할 때 자연스레 삼인칭을 쓰게 된 건 요즘 읽고 있는 전기문의 영향때문입니다.
그리고 00년 00월에 누가 태어났다로 하지 않고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법 또한 요즘 읽고 있는 전기문의 영향입니다.
자서전과 전기문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자서전을 쓰랬더니 전기문 형식이 된 겁니다.
지금 지윤 지승이가 4학년이니 전기문을 읽기에 적당하겠다 싶어 작은학교에 있던 전기문을 서울로 갖고 왔습니다. 지윤 지승 둘 다 이번 방학 때부터 부쩍 전기문을 재미있게 읽습니다. 학교 갔다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간식 먹으며 전기문 읽는 일입니다.
많이 읽으니 저절로 전기문의 형식을 습득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웅진출판사의 웅진 위인전기 문학관은 한국위인전과 세계위인전이 한 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996년 중판 발행된 책이니 오래 된 책입니다. 이 책은 고종사촌 언니 오빠가 읽고 무려준 겁니다. 읽을 거리를 물려주시는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유치원 때 물려받았는데, 위인전 내용 중 서양의 화형에 관한 이야기나 독립운동가들에게 행해진 참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접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치워두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정의감과 의협심, 선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어느 정도 형성된 듯하여 읽게 하였습니다. 요즘 지승이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전기문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일본에 대한 울분을 가끔 토로합니다. 그런 울분을 바탕으로 대일본에 대한 역사관이 형성되겠지요. 아무리 지구촌이 하나라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게 대일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참혹한 고문을 한 일본에 대한 아들의 분개에 동감을 표해주는 겁니다.
개학을 이틀 앞두고 방학숙제라고 쓴 자서전이 너무 짧아서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개 방법이 자연스럽고 문장이 매끄러워 그 점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지윤이가 쓴 글의 전개 방법이 지금 읽고 있는 전기문의 전개 방법과 같은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많이 읽는 것이 잘 쓰는 지름길이란 것을.
'다독 다작' 중 다독이 먼저인 것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글쓰기 교육의 기본은 역시 많이 읽히는 겁니다.
지윤이의 자서전 잘 읽었습니다. 깜찍한 느낌이 드네요.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은 축구선수가 여자아이들의 꿈이 될 수 있다는게 시간의 흐름을 읽게 합니다. 열심히 해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