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9일 지윤이 지승이가 터밭에서 잡초인지 들꽃인지를 한 옴 큼 뽑아 들고 좋아한다. 이 사진은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가면서 소 마구간 앞에서 우리 식구랑 외할머니랑 잠시 기념 사진을 찍고 떠나기 직전에 찍은 지윤이 지승이다.
지윤이와 지승이가 들고 있는 들꽃이 없다면 시골은 더 이상 시골이 아닌 시골 같은 풍경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밭에 풀을 호미로 메는 풍경도 보기 힘든 시대가 요즘 농촌풍경이다. 하기는 요즘에도 호미 들고 농사 짓다가는 인건비도 안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제초제가 나와서 농부들은 수고를 많이 덜었다. 또 적당한 제초제의 사용은 우리 건강에 별 영향이 없다. 제초제뿐만 아니라 적당한 비료와 살충제는 인간이 영양제 먹고 해충구제 한다고 집안 구석구석에 돈 주고 벌레 잡는 위치와 별다를 게 없다. 요즘 툭하면 유기 농이다 어쩐다 그러면서 양심적으로 사용하는 농산물 영양제와 치료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뭐라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 농사꾼들이 생산하는 농산품들은 믿을 만 하다. 오직 비료 주고 살충제 치고 제초제 쳤다고 뭐라고 그러지만 상식으로 사용되는 농법이라면 우리 농산물 막 먹어도 괜찮다. 식품을 가공 처리하는 2차 생산업자들의 비 양심이 가끔씩 텔레비전에 나와서 억울하게 우리 농산물이나 농민들이 피해를 입는다. 농약 콩나물, 석회두부, 색소 고춧가루 등등 그 것과 농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솔직히 비싼 돈들이고 사서 폼 잡고 다니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라는 명품이라는 핸드백과 옷에도 유해한 물질이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 농산물은 그 가방과 옷들에서 나오는 화학적 유해성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안 될 것 이다. 내 말에 과학적인 데이타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댓 글로 이야기 해라. 얼마든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우리 농산물의 안정성과 명품의 유해성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
솔농원에 있다가 서울 올라가 봐라. 그 매캐하고 탁한 공기...... 거대한 빌딩 숲에서 뿜어내는 각종 건축 화학약품들과 순환되지 않고 도시공간을 떠도는 도시의 화학유령들을 생각해 보면 단지 비료라는 영양제 주고 벌레잡는 약쳤다고 뭐라고 그러면서 안 먹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치이거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 겠는가? 도시에 살면서 유기농산물 만 찾으면서 나 홀로 차를 아무 생각없이 마구 운전하면서 뿜어대는 자동차 매연이 도시건강을 해치는 주범이자 농산물에서 발생하는 유해성의 1000배 이상의 해악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역시 똘이 엄마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혼자 편하고자 자가용만 탄다. 다수를 위한 생활속에 절제는 단 한번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신 만을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을 먹는 다고 어디 좋은 세상속에 건강하게 살 수 있나? 유기농 식품 만으로 건강을 지키고 행복해 지겠다는 발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치와 별반 다르리 않을 것 이다.
소구리 하우스에서 지윤&지승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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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해맑은 웃음을 위해
엄마로서는 사회적 정의보다 사회적 위치를 척도로 하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객관적 형평성보다 주관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쓰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아이를 위해 옳은 것 보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모든 엄마가 그렇지는 않지만 제가 엄마일 땐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아 굳이 스스로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생각했습니다.
'야, 큰일이다. 계속 이렇게 못하면 어떡하지!'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생각합니다.
'집중력이 부족했구나. 어떻게 집중력을 키워줄까?'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다음엔 잘 봐서 놀린 친구 코를 납작하게 해줘.'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말하는 건 옳지 않아, 사과 하라고 할게.'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더 좋아해.'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니가 뭘 몰랐는지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해.'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게 공부란다.'
지윤이와 지승이는 들꽃 같은 아이들입니다. 들꽃처럼 자생력 있고 들꽃처럼 흐드러지며 들꽃처럼 주변에 어울리며 살아가라고 들꽃처럼 키우려 했습니다. 수천 수만년을 피고 지는 역사를 가진 들꽃처럼 키우려는 꿈을 꾸었건만,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를 두고 고민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과학 9개 틀렸다고 우리 아이를 놀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에 정의는 하나일 터인데, 그 정의라는 것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을 통하여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지윤 지승이 들고 있는 꽃은 냉이꽃입니다. 지윤 지승이 여섯 살 때 외갓집 텃밭에 난만한 냉이꽃을 뿌리째 캐서 꽃다발을 만들고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냉이가 꽃이 필 만큼 자라면 줄기가 질겨서 꺽이지 않으니 뿌리째 캔 것입니다. 물론 손엔 흙 묻고 저 꽃다발을 갖고 탔으니 차안에도 흙이 떨어졌겠지요. 아마 그 손 씻지 않고 간식도 먹었을 거고 차에 오는 동안 졸리다고 눈도 비볐겠지요.
다음에 외갓집 갔을 때는 그 냉이 밭을 갈아 엎고 다른 씨았을 뿌려놓았을 겁니다. 지윤 지승은 자기네 꽃밭이 없어졌다고 속상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맘 속에 있는 아름다운 냉이 꽃밭은 살아가면서 외갓집이 그리울 때마다 하얗게 피어나겠지요.
내 아이들이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겨울 눈 속에서 싹을 준비하는 꿋꿋한 들꽃 씨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엄마로서 때론 선생님 마음을 스스로 일깨우면서 아이들을 돌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백 명의 스승과 같고
어머니는 백 명의 아버지와 같다-
지윤 지승아 엄마로서 나의 짐이 무거우나 그 짐을 지고 가는 길은 행복하단다. 사랑해~~~ 그리고 마음 맑은 너희가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