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주름치마
나 어릴 때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한번은 엄마가 어딜 가셨었고 나는 엄마가 오길 기다리며 대추나무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있을 때 엄마가 오셔서 나를 찾아 뒤안으로 오셨는데, 그 때 엄마가 입으셨던 파란색 주름치마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윗도리 모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흰 블라우스를 입으셨던 것 같다. 늘 논밭에서, 부엌 아궁이 앞에서 만났던 엄마의 모습과 달라 그 깊은 인상이 선명히 남았으리라. 어쩌면 어머니의 주름치마와 흰 블라우스를 기억하는 건 그날 한 번의 깊은 인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각인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그 옷이 다 낡을 때까지 외출할 때마다 파란 주름치마와 흰 블라우스를 입으셨을 테니까.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허리는 점점 굽어지고 얼굴은 검고 주름지셨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 위로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단아하게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파란 주름치마와 흰 저고리가 내 마음에 떠오를 때면 난 나를 돌이켜 본다. 내 딸은 나중에 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 아마 내 딸은 내 의복 중 특별 한 것 하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많은 옷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 젊은 시절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절이 다르고 사회 환경이 다르니 어찌 내가 외출복 한 벌로 아이들 마음에 각인 될 수 있으랴. 다만 내게 바램이 있다면 내 아이들에게, 특히 내 딸에게 단아한 어머니로 기억되는 것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고 그저 ‘단아함’에 대한 인상을 남겨주고 싶다. 내 마음속의 어머니처럼.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옷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면 되는 옷이 아니라 날개로서의 옷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평소 의복의 의미를 제대로 정립해 놓지 않으면 사치해지기 쉽다. 내면에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치를 꿈꾸게 된다. 결국 의복에 대한 관점 하나에도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내 아이들을 내면이 당당한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옷은 대부분 물려 받은 옷들이다. 하지만 작아서 못 입게 된 옷들 중에 차마 버리기 아까운 것도 많다. 누굴 물려줄까 하고 싸 놓았지만 마땅히 물려 줄 데가 없다. 오리털 잠바 같은 것은 차마 버리기 아까워서 (물론 소매 끝이 조금 낡긴 했지만, 오리털 잠바의 참 기능은 소매에 있지 않고 보온성에 있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를 못했다.) 놔 두었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줄까 하고 경로를 알아 보았지만 적당한 방법을 못 찾았다. 인터넷에 북한에 옷 보내기 사이트가 있었지만 새 옷을 보내는 것 같았다. 참, 내가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한 건 북한의 경제를 고려하여 생각한 건 아니다. 단지 북쪽이 남쪽보다 더 추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주최하는 한강 뚝섬 토요 장터에 나가 팔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물물 교환의 현장도 체험할 겸 또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도 구입 할 겸.
실은 나는 중고 상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처가 분명한 물건들은 기쁘게 물려받고 잘 쓴다. 특히 아이들 물건은. 한 계절이 다르게 크는 아이들을 키울 땐 물물교환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돈을 아끼는 차원에서라기보다는 지구의 자원을 아낀다는 차원에서 어린이 용품을 물려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하리 하우스의 넓은 방 하나는 어린이 용품 물물교환의 장으로 쓸 계획을 세워야 겠다. 차마 버리기 아까운 내 아이들 물건을 갖다 놓고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가고.
작은 학교 1층에 마련할 도서관, 음악실, 놀이방, 자유체험 학습실 외에 물물교환실도 마련해야 겠다. 헌 옷을 놓고 헌 옷을 가져가는 중고 시장이 아닌 추억을 놓고 새로운 추억 하나를 가져가는 아름다운 방 하나를 꼭 마련해야겠다. 그 방을 찾는 좋은 사람들과 파란 주름치마에 흰 저고리 입으신 내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