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책만끽학교'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7/09/08 <반지의 제왕>을 덮으며 <오래된 정원>을 거닐다 (1)
  2. 2007/09/05 <아빠 보내기>와 <똥 싼 할머니> -
  3. 2007/07/13 책을 읽는 것은 --독서의 의미

<반지의 제왕>-J.R.R.돌킨 -씨앗을 뿌리는 사람

<오래된 정원>-황석영- 창비

‘반지의 제왕’을 처음 들어 본 것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입니다. 결혼기념일 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반지의 제왕’을 보러가자 하였습니다. 1편도 못 봤는데 2편을? 게다가 반지가 무엇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반지’가 도대체 영화 속 도시 이름인지 아니면 한자로 뭔가 뜻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냥 손에 끼는 반지(ring)라는 겁니다.

 어쨌든 그즘 제일 잘 나가는 영화라 해서 반신반의 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속으론 결혼기념으로 보는 영환데, 그것도 2주년도 아니고 12주년 기념인데 좀 낭만적인 것으로 하지, 제왕은 무슨 제왕하며 갔습니다. 그래도  아주 기대되는 표정으로 갔습니다. 살다보면 가끔 쇼도 필요하잖아요.

 들어갈 때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는데, 나올 때도 반신반의 하며 나왔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구분이 안 되는 겁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다가, 반지의 제왕 1편을 안 본 상태라 이야기 흐름도 전혀 감이 안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엔트들의 머리에 앉아있던 메리와 피핀을 샘과 프로도와 구분하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섰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반지의 제왕은 어딘가 미심쩍은 좀 야릇한 뭔가로 늘 마음에 있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 후,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친구들과의 수다에 반지의 제왕이 다시 등장했는데, 장대한 시 같은 문장이 좋아 야금야금 읽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야금야금 읽으며 내가 봤던 영화가 실은 어떤 원작에서 나왔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반지의 제왕 1,2권을 구입했습니다.

 책 표지에 어떤 남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년이라 하기엔 눈빛이 너무 차분하고, 그래서 어른인가 하고 보면 속눈썹이 너무 가냘프고, 그래 동화 속 왕자님일까 하고 보면 콧날과 입술이 너무 굳건하고.  어쨌든 책을 잡을 때마다 한 번씩 보아 왔으니 수십, 아니 작년부터 거의 1년을 곁에 두고 보는 책이니 수백 번 일별하였을 터인데 그 때마다 새롭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니, 배우는 배우인가보다 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영화 속 호빗 프로도였습니다.

 무슨 소설책 여섯 권 읽는 데 1년씩이나 걸리냐구요? 원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립니다. 아주 느린 편이죠. 한 글자 한 글자를 빼먹지 않고 읽다가 머릿속으로 딴청도 좀 피우고요. 아마 책에서 오자 찾아내는 일을 한다면 잘 할 겁니다. 하긴 내 글도 쓰다가 오자를 퍽퍽 내는 판국에 어찌 다른 이의 글 교정을 하겠습니까마는.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중간에 4권을 구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보내고, 결국 출판사에서 전시용으로 쓰던 것을 직접 구하기까지 한 달은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4권을 막 읽으려는 찰나에 초등 베스트문고 50에 도전장을 내는 바람에 또 서너 달을 지체하였습니다. 4권까지 두개의 탑을 끝내니 내가 영화에서 보았던 조각들이 정리되었습니다.

 빈지의 제왕 전체로 보면 왕의 귀환이 절정에 해당하겠죠. 그래서인지 너무 재미가 읽고 긴장이 고조되어 책 놓기가 싫었습니다. 특히 아라고른의 변화는 섬뜩하고도 찬란힜고, 에오른 공주에게서 흐르는 비장미는 절망을 뚫고 나오는 꽃봉오리 같았습니다. 전장에서 장대한 죽음을  맞은 로한의 세오덴왕과, 욕심없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굳고도 부드럽다는 믿음을 남긴 곤도르 마지막 섭정 파라미르. 예언과 축복의 여왕 갈라드리엘, 신념의 화신 간달프. 경쾌한 메리와 피핀. 그리고 반지의 사자 프로도와 프로도의 사자 샘. 이 모든 인물들이 갖는 개성과 진심은 반지의 제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들입니다.

 결국 프로도에게 가운데 땅의 모든 운명이 걸려 있었지만, 프로도는 물리적으로 너무나 약한 존재이지요. 그러나 그가  절대반지를 화산의 화염에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돌킨은 가운데 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놓고 도 이 땅에도 존재하는 ‘마음’ 에 대한 얘길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힘은 역시 지금 이 세계 우리들 살아 있는 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누어진 ‘마음’이지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약하게만 보이던 프로도가 악의 제왕 사루만을 대하는 장면에서 간달프가 프로도를 반지의 사자로 지목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프로도의 마음에 있는 관용의 힘!

 “안 돼, 샘! 그를 죽여선 안 돼. 날 해치진 못 했잖아. 난 어떤 경우라도 그가 이렇게 죽는 건 바라지 않아. 그는 한때 위대한 자였고 우리가 감히 손을 들어 내리칠 수 없는 고귀한 혈통을 가졌었어. 이제  타락한 그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야. 하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으니 그를 그냥 보내주는 게 좋겠어.”

 사루만은 일어서서 프로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이와 존경, 그리고 증오가 뒤섞인 이상스런 빛이 떠올랐다. 그는 입을 열었다.

 “호빗, 많이 성장했구나. 그래. 대단히 많이 자랐어. 이제 현명해지고 또 잔인해졌군. 너는 내 복수의 달콤함을 빼앗아 갔고 거기에 자비의 빚을 더해 주니 말이야. 나는 쓰라린 기억만 가지고 가는 수밖에 없겠군. 자 이제 떠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
 

 프로도는 가운데 땅 전체를 뒤흔들었던 악의 제왕 사루만에게 기회를 주었지요. 또한 고향 샤이어에서 악행을 저지른 동족 호빗들을 용서하자고 하였습니다. ‘갚음은 갚음을 부르나니...’

 오르크와, 묵은숲의 톰 봄바딜과, 나무사이 바람처럼 사는 간부리간이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에선 프로도의 용서가 승리했는데, 서울이 나오고 광주가 나오고 80년이 나오는 <오래된 정원>에선 무엇이 승리할지, 용서가 합당할지 정원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사루만의 악의 세계는 제왕이 있을지언정 ‘체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루만이 무너지는 것이 곧 악의 무너짐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무너져도  ‘체제’가 무너지지는 것이 아니기에 <오래된 정원>을 넘기면서는 거미줄 쳐진 폐가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스산한지 모르겠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가운데 땅을 떠나 <오래된 정원>의 디딤돌을 밟고 서서 떨림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앞으로 얼마간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솔바람 2013/04/17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윤이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2년 가까이 해리 포터하고만 지냈습니다. 그래도 글을 후딱후딱 읽어 치우는 스타일이기에 중간중간 다른 책도 좀 읽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초원의 집>의 매력에 빠져서 요즘은 로라 이야기만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지냅니다.
    그런데 이제 지승이 그렇습니다. 한 2년 째 오로지 해리 포터만 보고 지냅니다. 디비디도 해리 포터만 책도 해리 포터만. 그래, 뭐든 빠져보면 좋은 거야. 그래서 해리 포터 영화 한편의 대사를 다 외거나, 아님 우리글 해리 포터 책 한 편을 다 외우면 진짜 로봇을 하나 사주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따라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다 외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외워보겠다는 도전은 안한답니다. 부담이 싫은 거겠지요. 나도 거의 반은 아들을 놀려주는 기분으로 한 제안이긴 했습니다. 놀리느라 하는 말인 것도 모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들은 정말 보기에 귀엽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들이 드뎌 해리 포터를 졸업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을 보고 책을 다 읽어야 영화 디비디를 사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딸은 어느새 후딱후딱 읽어치웠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과 줄거리 정도를 파악한 셈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후딱후딱을 잘 못하는 데다 워낙 <반지의 제왕>이 초등 6학년이 읽기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굳이 읽으라고 권하지 않았건만, 디비디를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읽는 것입니다.

    왠지 영화로 본 것은 원작을 읽게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보다 더 멋진 원작의 감동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리 포터 디비디를 사 줄 때도 책을 다 읽으면 사준다고 한 것이고, 반지의 제왕도 같은 차원에서 책을 먼저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화를 보려고 읽고, 재밌으면 나중엔 책 자체의 재미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아들은 가방에 반지의 제왕을 들고 갔습니다. 해리 포터를 외워보라는 미션을 수행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해리 포터를 넘어서 한 발 나아가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한 책읽기입니다.

    그나저나 아들은 중학교는 꼭 호그와트에 가겠다고 했는데, 학교를 포기하고 가운데 땅으로 원정을 나서겠다 하는 건 아닐지...

<아빠 보내기>와 <똥 싼 할머니>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문제는 난해하고도 반면 가벼운 주제다. 죽음은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 주던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 본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통해 겪어본 죽음은 실제의 상황과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부모나 부모의 죽음처럼 현실로 닥친 죽음의 상황에서 담담하게 아니 냉담하게까지 보이는 행동을 한다.

 죽음에 관한 인식이 그 정도인 아이들이 아빠를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박미라의 <아빠 보내기>다. 더 정확히는 아빠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를 도와주는 과정을 통해 슬픔을 이겨내고 현실 생활로 복귀하는 방법을 익히는 이야기다.

 엄마와 딸 사이에 등장하는 아래층 할머니는 인생과 자연과 인륜을 조화롭게 엮어주는 도우미로서 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할머니 또한 노년의 외로움을 이 이웃과 동행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서투른 표정을 짓는 자신에 대한 힐책의 내용이 주인공 민서의 일기와 독백을 통해 드러난다.

 ‘야, 장민서. 너 진짜 나빠. 어떻게 아빠를 잊을 수 있니.’
 ‘아빠가 돌아가신 지 두 달도 안 되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들이랑 낄낄거리며 놀다니...’

 아이가 이렇게 아빠의 떠남을 훌쩍 스쳐가려 하는 것을 엄마가 붙든다. 남편을 떠나보낸 엄마가 느낀 상실의 고통. 죽은 자에 대한 연민과 남은 자의 고독으로 괴로워하는 엄마를 현실로 이끄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아빠를 떠나는 일이 무엇인지 겪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실의에 빠진 엄마를 혼자 생기 있는 현실로 끌어내긴 벅차다. 그래서 아래층 할머니가 등장하고, 그 할머니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텃밭을 일구는 일을 통해 극복하게 도와준다. 텃밭을 일구는 것, 즉 자연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깨친 연장자로서 할머니는 이웃을 기꺼이 돕는 역할을 한다. 또 이 시대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을 연륜과 이해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도 처음엔 아들이 세상에서 단 줄 알고 하루하루 들어올 날만 기다렸는데 지금은 안 그렇단다. 내가 자꾸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친 할머니이기에 교수가 되어 한국에 돌아오는 아들네로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살지 않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우리와 함께 여기서 살 거라고 했다. 사는 건 다 각자의 몫이 있는 거고 그걸 인정해 주는 게 더 큰 사랑이라고 ...’
 
인생의 어떤 면이든 사물의 어떤 부분이든  대부분 양면성을 갖고있다. 손바닥도 앞뒤가 있고 동전도 앞뒤가 있고. 또 노년의 삶의 모습에도 양면이 있다.

 <아빠 보내기>에 등장하는 할머니처럼 아들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차분히 관조하는 사람과 <똥 싼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아들과 자신에 맹목적인 사람. 아들의 삶을 놓아주는 사람과 아들을 붙들고 집착하는 사람. 전자는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후자는 문제의 원인제공자 역할을 한다.

 그런데 동화 속에서만 후자의 경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후자와 같은 경우를 만났을 때 더 큰 문제가 된다. 현실은 가공의 세계보다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 싼 할머니를 관심 있게 보고 다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사물의 양면성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 주변 인물이 또는 바로 자신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 뒤집힐지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똥 싼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노인 복지과 실버 주간 보호소’

 결국 새샘이네 할머니의 치매 문제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방’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 해결책을 찾기까지 가족들 가슴에 든 멍 자욱이 빨리 없어지기를 책장을 덮으며 기원했다.

 어느 누구에게든 죽음의 문턱에 닿기 전까지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어느 누구든 자신의 자유를 다른 사람에 의해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양쪽 모두의 참다운 권리와 존엄성을 이야기 하는 <똥 싼 할머니>의 진지한 고민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에 노령화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토론 대상이 고학년인 경우 함께 읽고 토론해도 좋겠다. 전래동화 <노인을 버리는 지게>도 비교 토론 할 수 있겠고 세계 각 나라에 ‘고려장’과 같은 풍습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상력은 현실을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동화(소설)이 됨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리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삶과 독서의 관계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자간다. 한참 재미있다 싶으면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고, 어쩌다 혼자 있을 땐  점심을 건너뛰고 책을 잡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된다.

 내 책을 읽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에게 DVD 보라하고 책을 붙들어 보지만 효율적으로 읽을 수는 없다. 애들이 계속 귀찮게 (?) 굴기 때문이다.

 어떨 땐 애들 재워놓고 책 봐야지 하고 자리에 눕는데, 그만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다 내가 먼저 잠들어 눈을 떠보면 새벽이 다 돼 있어 황당하기가 그지없는 날이 더 많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보니 ‘도전 , 초등 베스트 문고 50’을 달성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하루 한 권 씩 뚝딱 뚝딱 읽으면 두 달이면 넉넉하리라 계획했는데  계획보다 한 달이 더 걸린 셈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읽은 시공주니어 베스트 문고 덕분에 아이들과 나눌 대화의 폭이 넓어진 것을 생각하니 반지의 제왕을 뒤로 미루고 동화책만 붙들고 지낸 석달이 결코 아깝지 않다. 함께 공부한 아이들 중 가장 많이 읽은 아이가 40권 가까이 읽었고 적게 읽은 아이가 10권 가까이 읽었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이들 기질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40권을 읽은 아이는 신명이 나서 후루룩 읽었고 10권을 읽은 아이는

 “선생님. ‘방과후’도 한자예요? 그거 어떻게 써요?”

 하며 국어사전까지 찾아보며 읽은 아이니 읽은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양을 읽은 아이는 성취감을 맛보니 좋고 깊게 읽은 아이는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음 속에 익혔으니 좋다. 나의 취향에 따라 후루룩과 한 줄 한 줄을 병행하여 50권을 다 끝내고 나니 개운하고 좋다. 실은 읽기 싫은 몇 권을 그만 둘까 하다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아이들에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 읽었다.  동화건 무엇이건 어른들도 늘 책을 읽는 것이라는 생각을 아이들이 갖게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교육적 성과는 충분하리라 본다.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도전! 초등 베스트 문고 50’이 아니더라도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가끔 책을 잡고 뒹굴뒹굴 하다보면 내 팔자가 정자 그늘에 앉아 노니는 한량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생업을 위해 책 읽을 시간은커녕  눈코 뜰 새도 없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일상을 부채나 접었다 폈다 하는 한량에 비유 할 수 있는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책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에게 밝혀 두어야 함을 느낀다.

 왜 책을 읽는가?

 그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식도락가가 음식이 맛이 있어 먹듯이 책이 재미있어 읽는다. 산악인이 ‘거기에 산이 있어 오른다.’는 것처럼 책이 읽어 읽는다. 여행가가 세상을  주유(周游)하듯 책 속의 세상을 유람한다.  그 유람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하진 않지만 나의 뇌를 즐겁게 한다. 특히 감각과 상상을 주관하는 우뇌를 즐겁게 한다.

 가끔은 재미있지 않은 책을 오기로 읽기도 한다. 미식가가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하며(식객의 글쓴이 허영만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복어 알을 먹듯 책을 붙들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으로 읽는다. 세계 최고봉보다 더 높이서 휘날리는 깃발을 보기 위해 히말라야를 오르듯 가끔 머리에 , 특히 좌뇌에 쥐가 날 것 같은 책을 오기로 읽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여 읽는 책이다. 그렇게 오기로 읽는 책과도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엔 화기애애해 진다. 그 화기애애한 순간엔 나무가 아닌 숲의 모습으로 책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론 현실적 필요에 의해 책을 읽기도 한다. 읽은 대로 바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책들. 가슴에 묻어 둘 필요는 없고 메모지에 적으면 되는 내용인 책들.

 감동을 얻기 위해서든,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든, 저녁 식단을 짜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든 결국 모든 책읽기는 ‘인생을 풍요롭게’ 라는 의미 앞에 모인다. 책을 통해 인생을 비추어 보고 책을 통해 현자들의 가르침도 배우고, 책을 통해 생활의 지혜도 얻고.

 낱낱의 책이 모두 의미 있었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기사슴 플랙>이다. 이 작품으로 1939년에 마저리 키난 롤링즈 가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작품의  무게를 누구나 인정 하는 것임을 알겠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을 거의 섭렵 한 것과 그의 독특한 머리말을 통해 현실과 허구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일도 즐거웠다. 역시 에리히 케스트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을 삐삐 시리즈가 아닌 <산적의 딸 로냐>를 통해 다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책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주로 쓴 잭클린 윌슨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중에는 <금이와 메눈취 할머니> - 우봉규 저- 가 눈에 튀었다. 이 작품 역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다룬 내용인데, 자연친화적인 나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어서 더 좋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아기사슴 플랙>은 서부의 사나이와 황야의 무법자가 권총을 들고 말 달리며 먼지 바람을 일으킬 때, 그 뒤에는 작은 체구로 땅을 일구고  옥수수를 심고 소를 길러 소젖을 짜서 식탁에 올리던 평범한 개척지 사람들이 있었음을 사실적인 묘사와 서사로 보여주고 있다. 그 개척지 생활에서 한 소년이 느끼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씻어준 아기 사슴 한 마리와의 교감. 그 교감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광활하고도 소박한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화 몇 점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조디는 극단의 굶주림을 경험하고 난 뒤 한층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먹을 것에 연연하던 부모님을 굶주리는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면서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인데, ‘경험’이 얼마나 위대한 스승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체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자연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말도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체험과 자연.

 서울 보다는 좀 더 자연과 가까운 하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싶은 나의 꿈을 신념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아기 사슴 플랙>에서 얻는다.

 또 하나 <내 친구 윈딕시>에 작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의 희망을 아름답게 일깨워 주었다.  <내 친구 윈딕시 >는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든 떠돌이 개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거기에 자신의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신 작은 도서관을 지키며 소박하게 늙어가는 한 부인의 이야기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책 속의 그 도서관을 지은 사람처럼 나는 갑부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 도서관을 생일 선물로 받고 싶어요.’ 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한 (실은 나의 꿈이니 나를 위한) 도서관을 마련하고자 하리 하우스를 마련한 것이니 생각만으로도 기쁨이 들떠 오른다. 너무 멋지지도 않고 너무 책이 많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하리 하우스의 작은 학교 도서관에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정독하고 싶다. 가끔 아이들을 위해 책장을 멈추기도 하면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