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에
가을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된다. 개학을 하는 날엔 선생님과 친구들이 왠지 새로워 보이고, 새로움이 지나쳐 좀 머쓱한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여름 방학식날 받았던 성적표에 부모님의 확인 도장을 받아 내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2학기 때는 좀 더 잘 해야지 하는 야심 찬 각오도 개학 첫날의 새로운 느낌을 부추겼던 것 같다. 그래서 야무진 자세로 앉아 개학 첫날을 맞곤 했었다. 새로운 각오를 다져주었던 것으로 새 학기가 되면 마련해주는 새 연필과 새 공책도 한 몫을 했었다.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새 연필 한 자루에도 ‘이제부턴 진짜로 글씨를 예쁘게 써야지.’ 하는 각오를 걸기에 충분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내 아이들을 위해 12색 색연필과 12색 사인펜, 24색 크레파스를 장만하여 낱개 하나하나에 이름을 쓰는 일로 가을 학기를 맞고 있다. 지난 학기엔 그렇게 낱개 하나하나 이름을 다 적어 놓았는데도 한 학기가 지나기 전에 사인펜은 두 자루만 남고 색연필은 대여섯 자루만 남았으니 보충해서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내가 우리 아이들 교육을 잘 못 시켰구나 하고 있는 와중에 담임선생님 말씀이 다른 아이들도 다 비슷하게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내 아이만 그렇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니 부모 심정으로 좀 다행이다 싶다가,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잃어버린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많아진다.
자기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잘 챙기지 않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멀쩡하게 긴 연필이 교실 바닥에 굴러 다녀도 아무도 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지우개가 발에 채여도 누구도 주우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새 보온 물통이 습득물 함에 있어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혼내지 않겠다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주인이 나오지 않더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어렸을 적엔 그 반대였다. 남아도는 물건을 주인 찾아주기 위한 색출 작전이 아니라, 새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훔쳐간 범인을 찾기 위한 작전이 일년에 한 두 번 쯤 벌어졌었다. 특히 ‘아빠가 다른 나라에 출장 갔다 오시면서 사 오신 거란 말예요.’ 하면서 아이가 울고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럴 때 선생님들이 주로 쓰셨던 방법은 철저한 비밀보장이 전제되는 ‘자수’를 권장하는 것이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진 ‘자수하여 광명 찾자.’ 라는 표어를 생활 여기저기서 보고 자랐으니 만치 우린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반 아이들 모두 눈을 감고 선생님의 권고 말씀을 들은 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럴 땐 가슴이 콩닥거리는 흥분과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추측으로 머릿속이 휙휙 바람소리가 날 만큼 바쁘게 돌아갔었다. 그리고 혹시 어디선가 손을 드는 미동이 느껴지지나 않을까 해서 온 피부의 감각마저 살아났던 것 같다. 그러나 눈만은 더 질끈 감게 되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잘못해서 눈을 깜박거렸다간 ‘내가 가져갔어요.’ 하는 표시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떨 땐 다행히 진짜로 손을 드는 사람이 있는지, ‘자 다 같이 눈 떠라. 정직하게 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라고 하기도 하셨다. 그럴 땐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과연 누구일까를 두고 입방아를 찧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친구를 의심하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교육적으로 참 잘못 된 일이었다.
또 어떨 땐 눈 감고 손들기 작전으로 되지 않아 ‘가방검사’를 당하기도 했는데, 지금 같으면 어린이 인권침해 논란이 될 법도 한 일이지만, 어쨌든 없어진 학용품 하나를 찾기 위해 ‘수사반장’처럼 진행되던 일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 아름답거나 행복했던 기억이 아님에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벌였던 일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 당시 아이들의 ‘자기 물건 챙기기’에 대한 마음이 그리워서 인듯하다. 작은 물건에 대한 애착은 무엇이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처럼 굴러다니는 물건이 있어도 누가 주인인 지 알 수 없는 세태와는 달랐으리라.
‘내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자라 ‘남의 것’ 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될 것이고, 그런 마음은 ‘우리 것’ 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될 것이다.
연필과 천연 고무로 만든 지우개는 지구의 나무에서 왔고 크레파스는 지구의 석유에서 왔다. 색종이 한 장도 ‘우리의 지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나의 지구’ ‘너의 지구’ ‘ 우리의 지구’를 소중히 하는 마음도 절로 생겨나지 않겠는가.
우리의 지구를 걱정하는 의미에서 새 학기를 맞아 학용품을 정비 해 줄 때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좀 해주면 좋겠다. 볼펜 껍질에 끼워 쓰던 몽당연필과 쓰고 남은 공책을 모아 묶어서 연습장으로 쓰던 일과, 신문지를 갖고 가서 붓글씨 연습용 종이로 썼던 일과, 새 공책을 받으면 각 장마다 번호를 써서 중간에 찢어 버리는 일이 없게 했고, 공책 표지의 뒷면에도 글씨를 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그러면 잃어버린 학용품에 대한 불감증이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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