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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30 방정환과 어린이 날 - 3월에 준 어린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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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농원에서 지윤이와 지승이 소마구간 가는 길...


방정환과 어린이 날
     -3월에 준 어린이날 선물

내 기억에 - 나는 70년대에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날이 좋았던 것은 시내버스가 무료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도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노래를 불렀고 어린이 날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아마 어린이 날 선물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아웅다웅 -이러면 맨날 싸우기만 하는 남매들 같지만 싫은 옹기종기 노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모여살던 상황이라 선물 같은 것을 주고 받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습니다. 아마 그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린이 날 선물이란 생소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구네 집 누구는 선물을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았다는 것 때문에 기가 죽거나 슬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기가 죽은 기억이 없는 걸로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어린이날 선물에 아이들을 휘둘리게 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기념일이든 명목을 만들어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팽배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면 지나치다는 말도 되겠지요. 오죽하면 스승의 날 선물이 말썽이 되어 휴교하는 학교가 생겼겠습니까. 선물이 아니라 뇌물 때문이겠지만요.

우리 집 행사의 선물은 꽃입니다. 아이들 그림책 <엄마의 생일 선물-교원>을 읽으며 앞으로 우리 집 선물을 꽃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께 선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 손을 잡고 꽃가게로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그리며 꽃을 고르는 기쁨을 아이들이 체화하게 하려고요.  어른들 생일날이면 아이들은 꽃집에 가서 꽃을 한 송이씩 사서 들고 오는 일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꽃으로 한정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크면서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무조건 막을 수가 없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면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사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날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만든 분위기가 아이들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어린이날을 선물 받는 날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성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1년 365일 내내 어린이 날이예요.’하는 나의 주장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올 3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트 안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아이들이 장난감 진열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그렇게 장난감에 집착하거나 떼를 쓴 적이 없는 아들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겁니다. 가면과 레이저 총이 함께 들어있는 장난감을 잡고 놓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총과 같은 장난감은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절대로 사람에게는 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모양이 총이라기 보단 손잡이가 열십자 모양으로 된 길쭉한 막대기라는 느낌이 총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누그러지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한다는 말에 나의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할 수도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지요. 그런데 하나 걸림돌이 ‘너희가 원한다고 다 사줄 수 없다’는 평소의 원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린이날 선물로 사 준다고 해라.’였습니다. 어린이 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고 알게 하려는 교육적 견지에서 불 때 그리 바람직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꺾으면 의욕상실이 오거나 성격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아이가 뭔가를 사 달라고 그렇게 떼를 쓰는 일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뭔가 적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법을 가르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을 가르치자’ 라는 생각에 가면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우선, 가면을 언제 사느냐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기다렸다가 어린이날 살 것인지 아니면 오늘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지요. 아이들이 당연히 오늘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날이 와도 선물을 사 달라고 조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마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그만 종이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린이날 선물로 가면을 사고 어린이날엔 아무것도 사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

그리고 그 밑에다 자필 서명을 하게 했습니다. 삐뚤삐뚤 쓰면서 이런 게 계약이구나 알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공표하였습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어린이날 선물은 없습니다.‘ 라고.

어린이날 선물로 진짜 바이올린을 갖고 싶다던 딸마저 -갖고 놀며 친숙해 지라고 중고 바이올린을 하나 구해주려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가면을 사고 말았지만 어쨌든 가면을 갖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맘도 좋긴 하더군요. 한동안 집에서 유치원 버스 타러 가는 길까지 쓰고 가기도 할 정도로 좋아하더니 정작 어린이날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자필 서명이 들어있는 종이 쪽지는 어린이날이 한참 지난 후까지 안방 거울에 딱 붙여놓았었지요.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문방구 진열대에 꼭 한번씩 들러서 눈요기 하는 아이들이 묻는 거예요.

“엄마, 우리 생일날은 얼만큼 남았어요?”
어떨 땐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엄마, 어린이날 얼만큼 남았어요?”
그래서 어린이날은 이미 지났다고 했더니
“아니, 이번 말고 그 다음 어린이날!”

하는 겁니다. 얼마나 크면 어린이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는 걸 납득 시킬 수 있을까요. 그때 쓰려고 <한국사 편지 5 - 웅진주니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어린이날의 참 의미에 대해 엄마와 함께 이야기 할 날을 준비하며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에게 주는 글을 적어 봅니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 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을 바로 가지기로 합시다.

아이가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위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의 속뜻은 무엇일까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활동이지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른들에게 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어린이 날의 약속

오늘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여기지도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아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항상 칭찬하며 기르십시오.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잣대로 위의 두 글을 새기면 좋겠다.

참, 어린이 날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적은 종이를 넣은 지갑을 분실했었는데, 다행히 어떤 할아버지께서  파출소에 맡기셔서 찾게 되었다. 파출소에 계시던 경찰 아저씨가 좀 황당해하며 그 쪽지에 대해 묻기에  사연을 이야기 해 드렸다. 지독한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서약서 덕에 이번 어린이날은 조용히 넘어갔다.

참, 어린이날 하리하우스를 방문했었는데 오가는 길에 아빠가 차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태워주셨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좋아했다. 딸아이 하는 말, ‘아빠가 준 선물이 제일 좋아요.’하는 거다. 뭔지 궁금하신 분은 따로 문의하시길. 왜냐하면 내공이 쌓인 사람만 줄 수 있는 선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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