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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5 나무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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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크위의 뽀얀 자투리 나무


나무 이야기

프롤로그

 ‘삶도 죽음도 나무와 함께’ 라는 글귀와 아름다운 사진을 보고 행복했다.

 ‘작은 학교에 저렇게 천진한 목련잎과 저렇게 단정한 처마가 있다니... .’

 나무와 함께 피어나는 섬세한 목수의 손길 덕택에 작은 학교 이야기의 하리하우스가 더욱 행복한 공간이 되리라 믿는다.
 
이야기 하나. --직선과 곡선

 살면서 이 꼴 저 꼴 다 본 사람이 인생을 관조 할 수 있듯, 수학의 이모 저모를 훑은 사람이 수학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재미있는 수학 여행> - 도서출판 김영사-을 샀다. 수의 세계, 논리의 세계, 기하의 세계, 공간의 세계. 총 4권으로 되어 있는데 4권 공간의 세계가 가장 만만해 보여서 먼저 펴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간의 개념을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더 호감이 갔다.

 책의 첫 부분에 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은 한 일년 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선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언젠가는 마저 읽을 것이므로 진행형으로 표현했다.)

 우리 주변의 인공물- 집, 전봇대, 다리, 냉장고 등은 직선이다. 그러나 사람 때가 묻지 않은 천연의 자연은 거의 곡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직선을 선물하노라’ 라는 글귀와 함께 직선 막대기를 받고 놀라워하는 벌거벗은 인간이 그려진 삽화가 나온다.

 직선이란 인공물의 대표적 특징과 곡선이란 자연의 특징을 대비하여 볼 수 있는 대표적 예가 바로 나무가 아닐까 한다. 주택자재로 쓰이는  가공의 나무와 푹 끓여 국물을 요리에 쓰는 천연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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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데크 공사 현장에서 나무쌓기 하는  지윤이와 지승이 2007년 여름


이야기 둘. -- 촉감과 정서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산에 들에 서 있는 나무도 아름답지만 사람의 손을 한 번 거친 가공된 나무도 참 아름답다. 그리고 표면 마감이 잘 된 나무가 주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은 손뿐만 아니라 마음도 즐겁게 한다.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장롱의 빛깔과 자연스런 나무 무늬는 안정되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블록도 나무로 만든 것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보다 정서발달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놀이방에는 원색의 플라스틱 블록과 함께 은은한 나무 블록을 준비해 놓고 있다.

 친정이나 시댁 쪽 친척들 중에 우리 아이들이 터울이 많이 지는 편이라 좋은 점이 참 많다. 책이며 장난감이며 거의 사 준 것이 없이 물려 쓰는 데도 넘칠 만큼 풍부하게 갖고 있다. 그 중 시댁 형님 댁에서 물려 받은 원목 블록 ‘은물’은 고마움을 넘어 황송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워낙 고가의 학습교구라 사 줄 꿈도  못 꾸었을 터인데 물려받으니  너무 기뻤다. 더구나 둘째 조카가 아직 쓸 나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선뜻 내 주신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은물’은 쇠나 플라스틱으로 된 내용물도 있지만 주로 나무로 된 다각형의 입체 나무조각들로 구성돼 있다. 손으로 만졌을 때 까칠하게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거리는 것이 마치 뽀송뽀송한 아기 피부를 만지는 느낌을 준다. 우리 아이들이 이걸 갖고 놀면서 삼각 기둥 두 개가 모이면 사각기둥 하나가 된다는 걸 자연스레 체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아직 삼각기둥 두개로 사각기둥 하나를 만들거나 정사면체 두개를 모아 정육면체 하나를 만드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정 사면체는 성 쌓기 할 때 뾰족한 지붕을 표현하는 용도로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딸이 성과 궁궐의 차이를 물어온 적이 있었다. 오늘은 맘먹고 성 쌓기 놀이 말고 궁궐 만들기 놀이를 해 봐야겠다. 그게 삼각기둥 어쩌고 사각기둥 저쩌고 하는 것 보다 열린 교육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근데 궁궐의 특징을 성의 특징과 비교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야기 셋 -- 아까움의 미학

 지금까지는 인공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직선을 간직한 인공의 나무. 그러나 지금부터는 자연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불규칙한 곡선과 거친 감촉이 고스란히 상아 있는 천연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 속에는 역시 내 영감의 원천인 나의 어머님이 등장한다. 자랑스럽고 애틋한 나의 어머니.

 지금은 자가용으로 서울과 솔고개를 오가지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엔 기차를 타고 도담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다녔다. 그렇게 걸어 다녔던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서울에 오신 어머님이 시골서  감자를 깎으셨다. 그 감자로 고추장 감자찌개를 끓였었는지 체를 쳐서 볶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감자 껍질을 방바닥에 널어 말리시던 모습만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여서 버리믄 쓰레긴데 집에 갖고 가면 소가 먹잖애.”
하시던 모습.

 어머닌 역에서 내려 시간 반을 족히 걸었을 그 길을 감자 껍질을 들고 가셨다. 그때의 그 기억으로 난 뭐든 버리기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옥이는 너무 알뜰해.’ 하시는데 좀 걱정투의 어조로 말씀하시는 걸 보면 내가 너무 짠순이로 사는 게 좀 안타깝기도 하신 것 같다.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도 교훈적 의미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아깝잖아’였던 것 같다.

   어쨌든 쌀뜨물 받아 소 여물통에 갖다 붇던 기억 때문인지 뽀얀 쌀뜨물을 그냥 흘려보낼 때면 지금도 아까운 생각이 든다. ‘소가 먹으면 좋을 텐데...’ 어쩌다 짚으로 엮은 채 시래기  나물을 들고 왔을 땐 짚을 보며 생각한다. ‘시골 거름더미에 버리면 거름이 될 텐데, 여기선 쓰레기구나.’ 특히 아까운 건 우리 아이들이 목이 붓고 열이 날 때 먹는 콩나물 약을 만들고 남은 콩나물을 버릴 때다. 약으로 쓰는 거라고 국산콩에 무농약 콩나물을 사는데, 그걸 국물만 빼고 건더기를 버려야 하니 정말 아깝다. ‘소를 주면 종말 좋을 텐데...’  요즘은 작은 학교 꾸미느라고 친정을 자주 방문하지만, 그 전엔 아깝다고 모아도 상하기 전에 가져갈 수 없는 처지여서 더 아까웠다. 이제 하리하우스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서 작은 학교를 운영하게 되면 식물성 쓰레기는 모았다가  소를 갖다 주거나 상해서 소가 못 먹으면 거름더미에라도 묻어야겠다. 그래야 덜 아까우니까.

이야기 넷. -- 가시오가피와 가막가래 나무

작년에 어머니께서 가시오가피 나무와 가막가래 나무를 한 단씩 해 주셨다. 닭백숙에 넣고 끓이라고 손질해 주셨다. 보통은 나무와 닭을 같이 넣고 삶는데 나는 삶은 나무를 재사용할 요량으로 따로 끓였다. 압력솥에 가시오가피와 가막가래를 넣고 푹 끓인 후 나뭇가지를 건져 내고 닭을 넣어 오래 고아 닭죽을 해서 먹었다. 당근, 양파, 버섯, 부추를 넣은 야채 닭죽.

이야기 다섯. -- 나무로 하는 논술 수업

 그런데 정작 야채닭죽보다 나를 즐겁게 한 것은 재사용한 오가피나무와 가막가래 나무였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말린 후 나무를 갖고 놀이수업을 한 것이다. 방과후 학교 수업시간에 교구로 사용해서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첫째, 가시오가피나무와 가막가래나무의 공통점 찾기

둘째, 가시오가피나무와 가막가래나무의 차이점 찾기

셋째, 가시오가피와 가막가래나무로 할 수 있는 놀이 - 탑 쌓기, 허물기, 모닥불 만들기

넷째, Y자 나무를 이용해서 만드는 물건 알아보기 -지게 작대기, 부지깽이, 새총

 아이들은 나무 표면을 만져보고(촉각), 단면과 측면의 모양을 비교하고(시각) 또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후각)  이렇게 관찰한 내용을 비교와 대조의 방법으로 설명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오감을 사용하고 비교 분석 하는 과정을 통해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용하는 학습이었다.  그 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나뭇가지를 쌓고 노는 놀이었다. 탑 쌓기와 탑에서 나뭇가지 하나씩 덜어내기를 했는데 매끈매끈한 젠가를 이용해서 할 때랑은 다른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이 탑을 쌓아놓고 하는 말이 ‘선생님, 캠프파이어 하고 싶어요.’ 였다. 아마 여건이 허락되었다면 모닥불을 피웠을 것이다. 교실이 아니고 하리 하우스 뒷마당이었다면...

이야기 여섯. -- 나만의 나무

서울에도 나무는 많다. 그러나 내가 맘대로 꺾어서 모닥불 피울 수 있는 나무는 없다. 왜냐하면 ‘내 것’인 나무보다 ‘우리 것’인 나무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화단의 나무도 공원의 조경수도 뒷산의 나무도 북한산 국립공원의 나무도 ‘내 것’이 아니고 ‘우리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꺾을 수 없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하긴 살아 있는 나무는 ‘내 것’이라고 함부로 꺾어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닭백숙을 위해 제 몸을 한 번 주고 온 가시오가피와 가막가래 말린 것은 무엇을 해도 아깝거나 미안하지 않으니 좋다. 그런데 가시오가피나무엔 진짜 가시가 있으니 놀 때 조심해야 한다. 가시를 피해가며 나무를 다루는 일을 우리 아이들이 언제 경험하겠나. 팍팍 끓여 말린 것이니 가시에 찔려도 파상풍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에필로그

나만의 가시오가피와 가막가래 나무를 마련해 주신 어머님이 계셔 이런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 오래 계속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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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0/06/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무는 세월을 먹으며 변합니다.
    뽀얀 아기 살결 같던 원목 자투리는 비 맞고 햇볕에 그을리고 하며 사랑채 툇마루처럼 색이 바랬습니다. 꿈의 데크도 노을 진 뒤의 침침한 하늘처럼 약간씩 어두워 졌습니다. 아무리 인공적으로 결을 다듬은 나무라 하나 나무는 나무인지라 세월을 먹으며 변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번에 작은학교 데크와 난간에 오일스테인을 칠하려고 오일스테인 색을 고르는 데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투명으로 하면 세월의 흔적이 보일 것이고 흔히 보는 공원 데크처럼 도토리색으로 하면 새로 만든 데크처럼 산뜻할 것이고. 고민하다가 결국 투명한 오일스테인을 주문했습니다.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의 주름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빗물, 햇살 먹고 산 데크의 퇴색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꿈의 데크를 만든 지 3년째 됩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꿈의 데크에서 줄넘기를 했고 술래잡기를 했고 자투리를 세워놓고 볼링을 했고 비 오는 날 우산 살 끝에 매달린 물방울에 비치는 거꾸로 된 세상도 봤고, 데크에 서서 흰 연기 안개처럼 내뿜는 소독차도 봤고 오래 서서 흐르는 구름도 봤습니다.
    꿈의 데크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노래도 한 자락 씩 해 봤고 난간에 기대 커피도 마셔봤고 별을 본다고 드러누워도 봤고 텐트를 치고 잠도 잤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하고 싶었던 꿈의 데크에서 그 모든 것을 현실로 체험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놀이를 품어주고 나의 작은 학교를 향한 꿈을 품어주느라 삭아가는 데크의 육신을 인정해주고 감싸주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투명 오일스테인. 이번 주말에 가서 듬뿍 발라 주어야겠습니다, 투명한 오일스테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