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계몽사 판 신곡 완역본을 텍스트로 한 것입니다.
00쪽으로 표현 된 부분은 원문 인용입니다.
-- 표시 뒤의 내용은 원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적은 부분입니다.
아래 내용을 인용시에는 출처를 <하리하우스 작은학교 이야기 >라고 꼭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10쪽
난파를 모면하고 가까스로 ---중략--- 바다를 바라보듯
--표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담담함.
11쪽
그럼 당신이
벅찬 강물처럼 말의 원천이 되셨던 베르길리우스이십니까?
-- 내 시가 강물처럼 말의 원천이 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15쪽
베아트리체
--베르길리우스에게 부탁하여 단테를 구하게 한 천상의 여인.
16쪽
하느님의 찬미인 베아트리체.
왜 당신을 그토록이나 사랑하던 사람을 구하지 않나요?
당신 때문에 그는 속세를 떠난 거예요.
그이의 애처로운 탄식이 귀에 들리지 않나요?
--혹시 카페이름이나 조용필의 노래 슬픈 베아트리체에서 말하는 베아트리체가 이 여인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베아트리체. 그 어원을 알지 못하며 그러려니
듣기만 했다.
23쪽
림보라고 불리는 그 곳에는 선량하지만 크리스트교의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의 영혼이 떨어져있다. 거기에는 호메로스 등 4명의 위대한 시인을 비롯하여 역사상의 저명한 인물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죄의 고통을 받지 않고 빛이 비치는 고귀한 성 안에 살고 있다.
-- ^^ 다행 ㅋ ㅋ
49쪽
무덤과 무덤사이로부터 불꽃이 내뿜고 ~~중략~~ 이단자와 그 제자들은 어느 종파에 속하는 자건 간에 모두 여기에 있다.
-- 흑흑~ 이단이라~
51쪽
무덤 앞쪽 구획에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사멸한다고 풀이한 에피쿠로스와 그 제자들이 묻혀있다.
--ㅋㅋ 에피쿠로스가 <신곡>을 읽었다면 뭐라고 할까?
61쪽
세상이 바로 그 사랑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설(엠페도클레스의 설로서, 세상이 사랑을 느끼면 원소(元素)가 결합되어 혼돈으로 돌아간다)에 의하면 그 사랑에 의해 세상은 이따금 혼돈으로 돌아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주(그리스도)가 이 제 1옥으로 내려와 (마태목음)라고 사랑의 근원을 주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사랑을 느낄 때란 유성체간의 충돌(인력)에 의한 빅뱅의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이 嘯마음과 마음이 만나듯 유성체끼리의 충돌은 만남을 의미하고 충돌후의 새로운 생성과정을 원소들의 결합이라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적 또는 종교적으로 해석 될 때 사랑에 의한 진동이라고 표현될 수 있었겠다.
지금 이런 논리를 편 죄는 어디에 해당할까?
67쪽
격한 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육체에서 떠났을 때
운명이 던지는 곳에 이르러
가가라지의 씨앗처럼 움을 터서
새순이 돋아나고 야생의 큰 나무가 된다.
그러면 괴조 하르피아가 그 잎새를 쪼아
고통을 주고 고통에다 또 고통을 준다.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도 함께 시체를 찾으러 가나
아무도 그것을 몸에 걸칠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 버린 것을 다시 갖는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제 7옥(자살한 자들의 혼)에 관한 얘기.
그분들, 그들이 불쌍하고 또 불쌍하다.
73쪽
레테의 냇물은 이 구렁 밖에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죄를 뉘우쳐 죄가 지워졌을 때
혼은 그 냇물에 몸을 씻으러 가는 것이다.
--레테의 강. 망각의 강이 아니라 부활(?)의 강이구나. 참회하면 죄가 지워지나? ! 그리스도가 아니더라도? 그건 불교적인데~~
87쪽
귀찮은 일을 끝냈다는 듯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하는 저 쪽을 향해 날아갔다.
--에 대한 주석- 단테의 묘사에는 형용사의 나열이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표현이 동사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생생한 느낌을 갖게 된다.
94쪽
간계에 능한 살인자는 붙잡혀 저주로 묻히고서도
여전히 죽음을 늦추고자 신부를 부르는 데
나는 그 참회를 듣는 신부 같은 입장이 되었다.
--차분한, 군더더기 없는, 뜻이 못 전해질까 불안해하지 않는 표현. 그건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리라.
98쪽
주님의 심판에 대해 연민의 정을 품는 자는
가장 발칙한 놈이다.
보라, 그는 등을 가슴으로 바꾸고 있다.
너무 앞일을 알려 했기 때문에
뒤로 보게 되어 뒷걸음질 치며
길을 가는 것이다.
--예언가, 점쟁이, 마법사의 죄. 그리고 호기심으로 알고자 하는 자도 저리 될까?!
112쪽
그 무리들은 외투무게 때문에 지쳐 느릿느릿 걸었으므로
우리는 허리를 움직일 때 마다
곧 다른 사람과 동행이 되고 말았다.
113
우리들의 오렌지 빛 외투는
납이라 굉장히 무겁다.
저울에 달면 바늘이 튀어버릴 정도다.
--위의 표현 둘 다 재치 있고 사실적이며 적확하고 자신 있는 표현이다. 글쟁이로서 단테가 가진 힘이 바로 이런 표현력인 것 같다. 그리고 신곡을 쓴 상상력이 있었고, 표현력과 상상력의 총체인 식곡을 쓸 수 있었던 건 신념의 세계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115쪽
주4)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하략--
118
O 자도 I 자도 쓸 겨를이 없이
사나이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재미있는 표현이다.
주7)O, I 는 간단하게 단번에 쓸 수 있는 알파벳으로 시간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 25곡의 형식적 특징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다음에 펼쳐질 내용을 소개한다.
-1인칭 시점의 시(곡)으로 개성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119쪽
주4) 중세 철학자의 권위자인 에더엔 질송이
“돌로 이룩된 성당은 프랑스의 것이며 사상으로 이룩된 성당은 이탈리아의 것이다.” 고 하며 <신학대전>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신곡>의 단테를 찬양한 말이 있다.
--신곡을 한편의 서사시로 붙들고 시작했지만, 가끔 복음서를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까닭을 에더엔 질송이 설명해주고 있다.
120쪽
두 주먹을 무화과 모양으로 쥐고
124쪽
주1)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장지 사이에 내민 것은 무화과 모양을 흉내 낸 것으로서 모멸의 뜻을 나타낸다.
121쪽
이 무서운 짐승은
담쟁이덩굴이 나무에 달라붙듯 그 몸뚱이로 사람을 친친 감아버렸다.
그들은 뜨거워진 초처럼 바싹 달라붙어
빛깔마저 뒤엉겨
어느 게 어는 놈인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맞는 이런 표현을 단테가 다 해버렸다면 훗날의 시인들은 ‘<신곡> 중에서’라고 덧붙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새로운 지유를 찾고 표현을 하는 걸 보면 언어의 변화모습은 끝이 없는가 보다.
123쪽
--뱀과 사람이 서로 육체를 바꾸는 과정.
첨단 영상의 합성 과정을 보는듯한 생생한 표현이다.
124쪽
주6) 선창- 천한 짐을 실은 배 밑 선창
127쪽
아내인 페넬로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남편으로서의 정도
--오디세우스의 아내가 페넬로페구나. 옛날 한 25년 쯤 전에 ‘페네로페’! 란 카페가 있어 자주 갔었다. 그 땐 페네로페를 몰랐다. 그래도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고 그냥 ‘페네로페’란 하나의 세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궁금해 하는 것. 사람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137쪽
인과응보다. 그 이치가 나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인과응보의 고리를 끊는 것이 참회와 귀의가 아닐까. 귀의라 표현함은 기독교적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주께로 귀의 하는 것.
143쪽
그 망자는 목이 탔으므로 입을 벌리고
폐병쟁이처럼
아랫입술은 턱 쪽으로 윗입술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신재용의 <인형꽃>이란 책에선 ‘개미취’를 폐병쟁이 같다 했다. 그 개미취는 내가 들국화라 부르는 가을꽃인 듯한데, 내 속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해설이 섬뜩하여 기억이 난다. 그 들국화를 보면 ‘와, !’ 하는 감탄사 전에 폐병쟁이라는 말이 먼저 생각날까 걱정이다.
--읽는 순서
새로운 장에 들어서면 먼저 주)를 죽 읽어야 중간 중간 주)를 찾아 넘기지 않아서 좋다. 또 주)에서 미리 사전 지식을 얻는 것이 이야기 이해에 도움! 도 되고, 어떤 내용에 연결된 주일까 추측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150쪽
뮤즈들이여, 나의 시구를 도와다오.
묘사와 사실 사이에 거리가 없도록 해 다오.
--단테의 기도는... 그것이구나... “묘사와 사실 사이에 거리가 없도록 해 다오.”
155쪽
대 주교 루지에리가 우골리 백작과 그 아들 넷을 가두어 굶어 죽게 한 곳.
--무섭고 무서운 곳이고 무섭고 무서운 방법이다.
그러니 사도세자를 가두어 죽인 영조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간이 인간성 이외의 다른 것들 앞에서, 정치논리나 경제논리, 종교논리 앞에서 인간성을 잃는 순간 무섭고 무서운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 비인간의 역사가 너무나 무섭다.
159쪽
주2) 구알란디의 탑
171쪽
준엄하고 가열한.
171쪽
아, 허무한 그림자여, 모습은 보이는데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는 세 번이나 팔을 그의 등으로 돌렸으나
세 번 다 팔은 이 가슴으로 되돌아 왔다.
--영화 ‘고스트’ (사랑과 영혼)의 상상력은 여기서 비롯되었나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묘사에 차이가 없도록 해 달라는 단테의 기도가 들어졌구나!
178쪽
주7) 단테는 <향연> 속에서도 “우리들의 모든 분쟁은 그 시초를 잘 살펴보면 거의 모두가 시간을 쓸 줄 모르는 데에서 유래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시간을 소중히 아라는 뜻의 격언.
주8) 단테의 비유는 자연의 관찰에 기본을 두고 있어 진실미가 시의 맛이 되고 있다.
주15)연옥에 있는 사람들은 현세의 선량한 사람들의 기도로써 빨리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다.
174-175쪽
태양은 내 등 뒤에서 붉게 타고 있는데
내 모습에 가려서
내 앞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땅은 내 앞에서 밖에 그늘을 짓고 있지 않았으므로 --중략-- 그것은 잇달아 하늘을 지나가는 빛이 도중에서 가로막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참으로 즉물적이며 과학적인 표현이고 그러므로 적확하다.
176쪽
시간은 그 값어치를 알면 알수록 보내는 것이 괴롭다.
201쪽
주9) 아라크네는 리디아의 베 짜는 여인으로, 교만하게도 기술이 뛰어나다고 여신 아테네에게 도전했으나 지자 화가 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자 여신은 그 목숨만은 살려 주어 거미로 변신시켰다.
241쪽
친구를 탓하지 말라
선악을 아는 빛이나 자유의지가 너희들에게는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의지는 첫 싸움에 서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고투하지만
의지의 힘이 충분히 양성되어 있다면 모든 것에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자발적으로 보다 더 큰 힘, 보다 좋은 성질에 자유로이 복종할 수가 있다. 그 성질이 너희들 속에다가
이제는 친구가 좌우할 수도 없는 지력 (智力)을 만들어 낸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딸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연옥편 17장-18장
--사랑에 대한 설명부분 ???
249쪽
너희들의 인식력은 실물에서 인상(印象) 을 끌어내어 너희들 속에서 그것을 드러내어
영혼의 주의력을 그 인상 쪽으로 쏠리게 한다. 만일 영혼이 그 쪽을 향해 기울어진다면
그 기울어짐이 사랑이다. 그것이 즐거움에 의해
너희들 속에 새로이 맺어진 자연인 것이다.
268쪽
<아이네이스>가 그 불길이다. 그것이 내게는 시작(詩作)을 낳은 어머니요, 기른 어머니였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읽고 싶다.
270쪽
사랑이 덕에 의해 불을 일으키면, 불길이 밖으로 보이는 한
항상 다른 사랑에도 불을 붙인다.
--사랑이라 함은 여러 가지 일 텐데, 어느 경우의 사랑이든 사랑하면 전해진다는 뜻이리라.
275쪽
주5) 요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데, 뒤에 그의 아내가 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78쪽
내가 그지없이 사랑한 아내는
오직 혼자서 선행을 베풀고 있다.
--죽어서도 내가 그지없이 사랑한 아내라고 말 할 수 있었다면 살아서의 보살핌은 얼마나 자상했을까! 가슴이 저린다.
282쪽
나는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을 때
붓을 든다. 마음속에서 사랑이 내게 속삭여 주는 대로
글을 써 간다.
--단테의 말하는 단테의 시다.
주8) “여인들이여, 사랑을 알게 된 그대들은~~” <신생> 의 19장
286쪽
“활촉까지 당겨진 활이니 쏘도록 해라.”
--망설임의 순간에 판단해 보라.
활촉까지 당겨진 활인가 그만 내려놓아도 좋은 활인가. 결국 판단의 기준은 나의 상태가 어떤 지로 삼는 것이다. 내가 활촉까지 당겨진 활일 때는 쏘는 것이다. 어디에 맞든...
289쪽
혼인과 덕이 시키는 대로
정조를 지킨 여인과 남편의 이름을 하나하나 들었다.
--무슨 권리로 상대의 정조를 요구하랴.
단 혼인의 예와 덕이 시키는 대로 스스로 다스릴 뿐인 것을.
<신곡2>
--앞의 내용을 살펴보니 결국 신곡은 ‘부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선 · 악의 구분과 그 대가에 대한 경우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부류와 그 부류에 대한 특징을 다양한 시각에서 노래하고 있다.
13쪽
주6) 지상낙원에서 마틸다와 베아트리체가 차지하는 위치를 예고하고 있다.
15쪽
꽃을 따며 노래 부르는 천상의 여인 -마틸다
--동화 <마틸다>와 지상낙원의 마틸다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7쪽
죄의 기억을 사람에게서 지우는 힘 -레테 강
선행의 기억을 새로이 하는 힘 - 에우노에 강
28쪽
그리핀은 사자이면서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짐승으로 신성과 인성을 함께 소유하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와 해리포터의 그린핀도르 기숙사가 생각난다. 문학과 신화와 종교가 주고받으며 추구 하는 것. 가치, 진실. 이런 것들이 아닐까.
36쪽
암 여우는 뼈와 가죽이 허락하는 한 재빨리 도망쳤다.
42쪽
나는 신록의 새 잎새를 단
어린 나무와 같은 청순한 모습이 되어...
48쪽
“오, 너희들 작은 배 안에 있는 자여
너희들은 노래 부르며 가는 나의 배 뒤에서 듣고 싶은 나머지 따라왔지만
너희들의 기슭을 향해 되돌아가도록 하라
깊은 곳으로 들어서지 마라.
너희들은 결국 나를 잃어버리고 쩔쩔맨 것이다.
주52)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는 섣불리 자기를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
-- <반지의 제왕> 작가 J.R.R.돌킨도 비슷한 말을 독자에게 했다.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못마땅한 작가는 그렇게 말한다. “너희들의 기슭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라.”
55쪽
우리들의 의지는 사랑의 힘으로 진정되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가질 것밖에 바라지 않고 다른 것에는 갈망을 느끼지 않습니다.
--중략--
지고선에서 내리는 은총이 한결같진 않지만 천국이란 어디라 할 것 없이 모두 낙원이라는 것을
그 때 나는 분명히 알았다.
55쪽
그분의 법칙(성녀 클라라)에 따라 수녀복이나 베일을 쓰는 분이 계시는데 죽을 때까지 그 사랑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신랑(그리스도)은 사랑에서 우러났기 때문에 자기의 기쁨이 될
서원은 모두 받아주신답니다.
58쪽
플라톤의 설에 있는
혼은 죽은 뒤 별로 돌아간다는 견해도
--죽어서 별이 된다는 생각이 철학자의 설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과학과 철학이 서로 의존하며 한 계단씩 올라가는 이유를 알겠다.
59쪽
의지란, 의지가 바라지 않는 한은 멸망할 리가 없으며
--중략--
폭력은 의지가 박약해져 갈수록 강해집니다.
63쪽
내가 그대에게 표시한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머릿속에 새겨 두세요.
이해는 하더라도 머릿속에 남겨 두지 않으면
학문이 되지 않습니다.
--ㅋ ㅋ 학문의 바탕은 기억력이다? 게으른 천재에게 하는 충고다.
63쪽
사람은 경솔하게 서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맹세는 지켜야 하는데 --하략
--잘못된 맹세를 지켜야 해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 입다나 그리스 대장은 바로 ‘잘못했다’고 하지 못해 딸을 죽게 했다. 사람은 가끔 미칠 수 있나 보다. 자신의 딸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걸 보면.
64쪽
그러자 시위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벌써 과녁을 꿰뚫은 화살처럼 우리는 둘째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 하늘의 광명 속에 들어가니
베아트리체는 무척 행복스럽게 보였다.
별의 반짝임도 또한 그로 인해 한결 더 밝아 보였다.
별조차 웃고, 별조차 빛을 바꾼다면
어찌 나 같은, 모든 점에서
변하기 쉬운 성 (性)을 가진 자가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변하는 거라는, 아니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견해는 性을 가진 자로서 내린 부끄럽지 않은 견해라는 생각이 든다.
67쪽~ 제 6곡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혼이 설명한 내용은 결국 단테세대의 당파싸움에 대한 비판이다. 신곡도 하늘의 이야기도 결국 역사를, 역사적 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 결국 사람의 상상력도 역사와 사실에 기초할 때 더 위엄을 갖게 된다. 드라마든(모래시계) 소설이든( 오래된 정원) 시든(8·90년대의 참여시들) 그 역사적 배경이 단단해야 공감대가 깊게 형성됨을 알겠다.
--<신곡>의 줄거리가 궁금하다면 각 곡의 프롤로그만 읽으면 된다. 그 부분은 ‘서사’에 의해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읽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73쪽
마치 조는 아이처럼 고개만 숙어지는 것이었다.
76쪽
주2) 외경심에 기가 눌려 베아트리체의 --하략
이 비유는 적당하지 못한 것 같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
76쪽
그대들 인간의 혼은 지고선(至高善)이 직접 숨결을 불어넣어 지고선을 사모하게 만든 것입니다.
주12) 지고선은 하나님이다.
--물 불 공기 흙 -이것들의 혼합물 생명- 생명의 썩음- 생명의 순환 . 인간은 이런 순환 고리의 한 부분인 한낱 자연이다. 그러나 그 자연은 끝없이 순환하는 위대한 자연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건 허무이며 동시에 충만이다.
93쪽
주2) 주3) 주 13)
태초의 힘은 아버지인 하느님이다.
자식은 말, 언어다, 사랑은 성신이다.
하느님이 자식을 낳고 그 양자로부터 성신이 생기는 삼위일체의 모양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성모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삼위일체가 여기서 온 것이라면.
99쪽 제 12곡
신곡은 철학의 세계가 아니라 신학의 세계다. <천국편>에서 읊는 하늘의 세계, 빛과 하느님의 세계는 형이상학보다 모호한 세계를 노래하느라 더욱 더 관념적이다. 모든 기준이 하느님이며 예수 그리스도다. 인간적 판단이 아니라 하늘 (신)의 판단에 의해 구획된 세계를 노래한다. 그러므로 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자는 흥겨움을 모르고 노랫말을 읽게 된다. 그러면서 곡(曲)이 무의하다고 느낄 것을 두려워 한 단테는 장치를 만들었다. 노를 저을 기운이 없는 자는 돌아가라고. 설들 시킬 수 없는 논객을 쫒아 버리면 논쟁은 시시할지언정 입을 다물 ! 일은 없어지므로...
<지옥편>의 기준은 인간이고, 역사고, 정의감이되, <천국편>의 기준은 신의 판단 (계파로서의 신학)이므로 신의 세계에 근접하지 않은 독자로서 점점 무의미한 독서임을 느낀다. 다만 ‘<신곡> 꼼짝마!’ 라고 하고 싶은 욕구로 노를 젓고 있다. <단테호>의 노를.
100쪽
마치 두 눈이 그 소유자의 뜻대로 움직이며 함께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줄기 원은 한순간에 한뜻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바늘이 별을 가리키듯 그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표면에 대한 관찰을 의미의 적중도를 높이는 데 썼다. 차분하고도 호기심 많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얻을 수 있는 표현이다.
101쪽
그리스도의 군대는 다시 무기를 들기 위해 -하략
--그리스도의 군대라, 십자군....
사교의 영혼을 무기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려 했던 군대.
왕의 영토 확장을 위해 치러진 전쟁이
신의 영역 확장을 위해 치러졌고
이념을 입증하는 도구로 치워졌고
재화의 소유를 가르는 분배의 법칙에 적용되어
온 생애를 전쟁터에서 보내게 하고 있다.
나는 무엇에 매혹되어 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103쪽
프란체스코의 가족은 처음엔 스승의 뒤를 따라
곧장 걸어 나갔으나, 나중엔 발뒤축이 밟은 자국을
발끝으로 밟을 만큼 방향이 바뀌고 말았다.
--단테의 유머
108쪽
납득이 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성급히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친 사람의 걸음을 더디게 하듯 서서히 하는 것이 좋으리라.
좋고 나쁨을 말하든 시비를 논하든 간에
세밀한 판단도 하지 않고 긍정, 부정을 결정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지는 자다.
그러므로 성급한 의견은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향하기 쉽다.
게다가 정(情)이 지(知).
진리를 찾고도 그걸 지닐 재주를 갖지 못한 자는
올 때처럼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여
덮어놓고 바닷가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게 위험한 짓이다.
110쪽
둥근 물그릇은 안에서 치느냐 밖에서 치느냐에 따라 가운데서 가장자리로, 혹은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물의 파동이 일어나는 법인데
--진짜 그런지 실험해 봤는데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없었다.
111쪽
현세에서 죽고, 천상에서 삶을 한탄하는 이가 있다면, 영원한 비의 상쾌함을 이 위에서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이 상쾌함을 믿기에 기독교의 장례엔 곡이 없는 걸까
118쪽
피렌체는 옛 성벽 속에서
평화롭고 소박하고 정결했었다.
-중략-
딸이 태어났다고 해서 아비가 당황하는 일도 없었고
혼기나 지참금의 액수도
절도를 넘는 일은 없었다.
한 가족이 살 수 없을 만큼 텅 빈
그런 집은 아직 없었고
규방에서 하는 짓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호색의 풍조도 없었다.
123쪽
너희들의 사물(事物)은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다 죽는 것이다. 단지 너희들의 목숨이 짧기 때문에
오래 가는 것도 결국 죽는다는 걸 너희들이 모를 뿐이다.
137쪽
주14)
--목성천, 화성천 등의 천국 이름은 목성, 화성을 뜻한다. 결국 우주과학이 상상과 관찰력에만 의존하던 시대의 천국이란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다. 과학이 신앙을 규정짓는 대목이다. 단테의 상상력은 과학의 한계를 초월해서 신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에 실패했다. 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거나 단테를 선택한 신이 없거나 아님 단테의 선택이 잘못 된 것이다. 신곡이 신앙의 간증이라면 더 신비로웠어야 한다. 21세기의 독자로서 하는 말이다.
135쪽
불타는 장작을 치면
무수한 불꽃이 사방으로 튄다.
143쪽
그리스도를 신망할 기회를 얻었을 것 같지도 않은 트로이 사람 리페우스 등의 영혼이 어덯게 해서 이 목성천에 왔는지에 대해 독수리가 설명해 준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의 깊이를 탐지 하려는 인간의 불손한 태도를 경고한다.
-선택설인가?
145쪽
그 다음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법전을 가지고
고황에게 로마를 양도하기 위해 그리스인이 된 사람이다.
선의에서 나온 행위였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러나 선행이 원인이 되어 나쁜 결과가 생기고 그 때문에
세계가 파멸의 위기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본인에겐 상처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았다.
-선행의 원인이 하나님 뜻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두려움 없이 전진하라. 그것이 신의 뜻이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기독교인이 많은 것 같다.
146쪽
열렬한 소망이 주께 구하는 기도에
힘을 깃들인다. 그래서 영혼이 소생하고
의지가 선의를 향해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조상이 하늘에 오르길 기도하는 까닭이겠다.
147쪽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그 태초의 물결을 볼 수 없는 깊고 깊은 샘 속에서
솟아오르는 은혜의 도움을 받아
하계에 있을 때 그의 사랑 모두를 정의를 위해 쏟았다.
-정의를 위해 정진하는 모든 영혼이여,
하늘에 오르시라!
선택되어진 것이니...
148쪽
주5) 자기 발상의 가치에 대해서는 연옥편 제 18곡 52행 이하 참조.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연옥편 제 16곡 56행 이하 참조. 공덕과 보상에 대해서는 천국편 제 6곡 69행 이하 참조.
-自기발상, 自유의지. 自, 즉 스스로에 의한 것은 연옥과 어울리나보다.
148쪽
주19) 그리스도 이전 사람으로서 구원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단테를 괴롭힌 문제였으므로 (지옥편 제 4곡 37행 이하, 연옥편 제 7곡 6행 이하. 천국편 제 19곡 58행 이하) 단테는 하나의 가능성을 안출해 낸 셈이다.
-신앙 간증서 <신곡>?!
인생 간증서 소설 ?!
151쪽
하느님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대가 현세로 돌아가거든
이것을 알리고 이런 목표를 향해
감히 발을 내딛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경고하도록 하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152쪽
이탈리아의 남부해안
-중략-
거기서 나는 오로지 하느님께 종사하며 묵상의 생활에 만족했고
오직 올리브의 즙만을 마시면서
추위도 더위도 아랑곳없이 경쾌하게 세월을 보냈다.
-올리브 즙- 올리브유! - 오직 올리브유.
160쪽
벼락이 힘이 구름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을 만큼
팽창하면, 구름을 뚫고 본성에 거슬러 지상에 떨어져 내려오는 데 내 정신도 이 향연 안에서
점점 더 커져서 두뇌 밖으로 넘쳐 나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경지를 <뇌>에서 노래했다.
165쪽
신앙이란 소망의 실체요
아직 보지 못한 것의 논증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체인가 합니다.
166쪽
이 천상에서 그 모습이 내 눈에 보이는 온갖 심오한 사물은 하계에서는 자취를 감추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계에선 그러한 사물의 존재는 오로지 신앙에서 유래되며 그 신앙의 기반 위에 커다란 소망이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실체의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것은 보지 말고 이 신앙을 기초로 삼단 논법! 을 추진해야 합니다.
172쪽
그 때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하여 여기 있지도 않은 것을 보려고 눈을 부시게 하느냐? 나의 육신은 지상에서 흙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수가 영원한 주님 뜻의 예정과 같은 수가 될 때 까지 (주31), 거기에 다른 육신과 마찬가지로 누워있으리라. ”
174쪽
주30) 요한은 육신을 지닌 채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단테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요한의 빛을 보려고 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 신학대전>에는 요한이 육신을 지니고 승천했을 가능성이 인정되고 있다.
주31)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성도의 수 (우리들 선택된 사람들의 수)는 하느님께 배반한 악천사의 수와 같다고 한다. (향연 2제권)
여호와 증인들이 신도의 수를 물으면 ‘~ 만 명'이라 한다더니 여기에 근거한 해석인가 보다.
주31)의 표현은 의미전달을 위해 원문과 다르게 내가 바꾸어 썼다.
179쪽
삼단논법-
첫째, 선이 선으로 이해되는 한 선에 대한 사랑에 불을 켠다. 그리고 사랑은 완전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크다.
둘째, 하느님은 지고선이며, 그 외의 선은 모두 하느님의 광휘가 발하는 빛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그러므로 하느님이 가장 사랑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180쪽
주) 아담은 지상에서 930년, 림보에서 4302년을 보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까지는 5232년 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단테의 환상까지는 1266년이 경과되어 있으므로 모두 계산하면 6498년이 지난 것이 된다. -하략
-결국 단테는 자신이 태어나기 6498년 전에 있었던 천지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납득시키기 위해, 신앙으로 고양시키기 위해 애써 <신곡>을 쓴 것이다. 하나의 이념이 6498년 이상 숙제로 던져져 왔다면, 그 숙제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져 지금까지도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로 신비한 岵있는 건 인정해야겠다. 단 그 때의 창조와 신념은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인간의 신념과 다를 뿐이다. 결국 자신이 자신을 어느 쪽에 놓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내일은 아무도 보장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이, 아무 이념 없는 화산폭발이, 지진이 오늘 과는 천지차이인 내일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를 창조된 인간으로 놓든 진화한 인간으로 놓든 지구의 자연환경 아래서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자연 숭배교가 나온 것이리라.
나?
나는 너무 먼 과거까지 기억하지 못하고
너무 먼 미래까지 계획하지 못하는
그냥 지금의 나일뿐이다.
순간순간 노력하는 인간일 뿐이다.
184쪽
주4) 그리스도의 대리자 = 교황의 지위. 베드로= 초대 교황
185쪽
주23) 단테의 세계관에는 지구가 고정 되어 있고 그 둘레를 하늘이 도는 것이다.
195쪽
주9) 순수행위가 그 내부에서 행해진 실체란 다름 아닌 지적 실체, 즉 천사를 가리킨다. 형상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에 따라 실체 속에서 계산된다. 그 실체는 우주의 정점, 즉 다른 천구보다 위에 자리가 주어졌다.
196쪽
주20) 토마스 아퀴나스는 달이 뒷걸음질 쳤다는 설을 취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토마스 아퀴나스도 그들의 철학 안에 신학을 품고 있었나보다. 어쩜 신학 안에서 과학적 철학을 해결하려 했을 수도 있겠다. 어느 측면이 큰가는 알아보아야 알겠다. 서양철학사는 문사철(文史哲)이 뒤섞여 있다 하더니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된다. 거기에 예(藝)까지 함께 녹아있으니, 그리고 과(科)에까지 섭렵한 사람들이니 그 사상체계가 정말 복잡했겠다.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알아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193쪽
은총은 하느님에 대한 애정의 크기에 따라 그 공덕으로서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198쪽
여느 때보다 훨씬 늦게 잠을 깬 젖먹이라도 그 때가 내가 돌아보고 마셨던 만큼 급히 젖을 찾으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7쪽
마리아의 발 아래 있는 저 아름다운 여자니라.
-아담도 이브도 모두 천국에 있다.
209쪽
세계가 갓 만들어 졌을 때에는
단지 양친에게 신앙이 있기만 하면
순진한 아이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구원될 수가 있었다.
그 처음 시대가 지난 후에는
죄 없는 사내아이는 할례를 받음으로 해서
하늘에 오를 힘을 그 날개에 얻었다.
그러나 은총의 시대가 다가온 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이러한 티 없는 아이들도 저 하계에 넘겨졌다.
-할례의 의미?
하계-림보
217쪽
주23) 천국편은 ‘만물을 움직이는 자의 영광’에서 시작되어 ‘태양과 뭇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으로 끝나고 있다. 천상의 하느님은 사랑이며, 사랑으로써 천구의 움직임을 규제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주의 운행 원리다?
결국 하나님은 과학적 원리다?
-드디어 다 읽었다.
한 1년도 넘게 걸렸다.
단테는 인내와 끈기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한 걸림돌을 넘었다.
그 돌을 넘고 내가 얻은 건
단테가 참 열심히 썼을 거라는 거다.
작가의 미덕은 끈기다.
20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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