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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7 로알드 달의 작품들 -- 해학과 풍자로 진실을 말하다



로알드 달 -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


작가 로알드 달의 상상력이 던지는 물음.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없애버리고 싶지 않나요? "

뭐 애들 보는 동화 이야기에 황당한 물음이냐고요?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입니다. 물론 마법약 때문이지요.

여덟 살 난 조지와 조지의 엄마, 그리고 조지 아빠인 크랭크 씨와 조지에게 마귀할멈 같이보이는 외할머니. 이 네 사람을 통해 작가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인 한 늙은이를 마법으로 뽕 사라지게 만듭니다. 보통 할머니라는 말에서 느끼는 긍정적이고 전형적 요소는 편안함과 부드러움 자상함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조지의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악마구리처럼 자신의 약 시간을 챙기는 겁나는 할머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결국 할머니 옆에 붙어서 할머니 약 시중을 들어야 하는 조지는 ‘강력하고 지독하고 끝내주는 약효를 갖고 있어서 할머니의 병을 완전히 고치거나 아니면 할머니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마법의 약을 만들기로 한다.

그 약은 온갖 욕실용 세제와 화장품과 엔진오일과 가축들의 약을 비롯해 부엌의 온갖 양념들을 쏟아 넣어 끓인 것이다. 조지는 할머니가 약을 드시는 시간에 할머니의 입에 자신이 만든 마법의 약을 넣어 드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의 몸이 점점 커지더니 지붕을 뚫고 나갈 정도로 커진 것이다. 조지 아바 크랭크 씨는 그 마법의 약을 자신의 가축들에게 먹여 가축들이 집채만큼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똑같은 약을 만들어 팔아 부자가 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조지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만든 약은 몸을 커지게 하는 약이 아니라 줄어들게 하는 약이 되고 말았다. 크랭크 씨가 들고 있는 줄어드는 약을 할머니가 낚아채어 걸신들린 듯 한입에 먹어치우고 결국 할머니는 점점 몸이 줄어 병아리 만해졌다가 씨앗 만해 졌다가 아예 먼지처럼 작아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장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에서 크랭크씨는 ‘만세!’하고 외친다. 잠시 당황해하던 조지의 엄마도

-어머니가 집안의 골칫거리긴 했죠.-

라고 말한다.

-물론 장모님은 확실히 그랬어.-

확실히 골칫거리였던 대상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만든 로알드 달은 그 방법이 마법이었기 때문에 세속의 비난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인력이 아닌 마법이었으니까.

작가 로알드 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문제를 노골적이고 상스럽게 뻥 터뜨리고 있다. 마치 주머니를 뒤집어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듯 마법으로 노인 문제를 해소했다. 그러나 거기엔 비난이나 자책이 없다. 왜냐하면 그건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이 아니면 풀 수 없는 과제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알드 달의 또 다른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도 나이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나온다. 왜 ‘들’이냐 하면 찰리의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노인들 역시 조지의 할머니처럼 가난하고 무능하다. 한 침대에 발을 맞대고 마주 누워 있는 네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찰리 부모님의 짐인 것이 확실하다. 그런 네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 틈에서 자라는 찰리는 너무나 배가 고프다. 그런 찰리에게 초콜릿은 하나의 상징이다. 배부름과 풍요의 상징 초콜릿. 결국 찰리 가족은 풍요를 누리게 되는 데 그건 바로 가족간의 사랑에 기인한다.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서로 위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해피엔딩이다. 로알드 달은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의 인물들과 반대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인물들에게 행운을 부여함으로써 더 긍정적인 가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외손주와 사위가 합세하여 한 노인을 이 세상에서 뿅 사라지게 하는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가 ‘효이데올로기’가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초등교육에서  어째 버젓이 권장도서목록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마틸다>와 <내 친구 꼬마 거인>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을 통해 얻은 그의 명성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마법>이란 단어가 주는 면죄부 때문일 수도 있고.

괴력의 소유자며 인격 파탄자인, 알고 보니 살인자이기도 한 중년의 여성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학습에 천재적인 소녀 마틸다가 다닌다.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아본 담임 선생님과 마틸다가 초능력의 힘으로 폭력 교장을 몰아내는 이야기가 <마틸다>이다. 반전의 미와 함께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자존심은  초능력까지 불러낼 수 있다는 이야기설정으로 읽는 내내 흥미와 환희를 느끼게 한다. 특히 교장선생님이 먹을 케잌 한조각을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케잌 한 개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벌을 받은 아이가 전교생의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으며 케익 하나를 다 먹어내는 장면은 억눌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감정을 한방에 날려 보낼 만큼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틸다>를 손에 잡으면 한번에 다 읽어 치우고 만다. 제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틸다>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레 학교에서 처벌받았던 일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아간다. 그러면 제각각 할말이 많아진다. 간혹 억울하다는 표현을 쓰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땐 다시 한 번 잘 말씀드리지 그랬니.’ 라고 말해주는데, 아이 대답은 ‘그러면 더 혼나요.’ 한다. 바로 말대답하는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을 해명할 기회를 얼마나 갖게 될까. 때론 용기가 없어서, 때론 미리 포기 해서 때론 말하기 치사해서 자신을 정당하게 해명할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른’이라는 명찰만 달면 자신보다 나어린 사람의 해명을  ‘말대꾸’라고 묵살해 버리는 권위적 분위기가 많은 우리사회에서, 그 사회안에 있는 학교에서 자신을 위한 해명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집단이 느끼는 감정은 단절감이 아닐까. 소통의 문이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단절감은 무력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를 무서워하게 되고, 때론 관계를 부정하게 된다.

그림책 <지각대장 존>-비룡소- 은 선생님과 학생사이의 소통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낸 존 버닝햄의 작품이다. 학교생활이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지각대장 존>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꺼리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건 ‘멋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틸다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담임 선생님과 <하늘을 나는 교실>에 나오는 선생님 이야기도 함께 나눈다면 아이들 마음 속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떠오르고 사제간의 아름다운 추억도 들추어 낼 수 있으리라.

다시 로알드 달로 돌아오자. 그의 상상력엔 도덕의 잣대가 소용 없다. 초콜릿 공장을 돌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사고로 사라지지만 로알드 달의 그저 신명나는 풍자시 한 가락으로 마무리 하고 만다. 그의 작품의 특징인 풍자는 가락-운율-을 얻어 더 신명나는 데 <내 친구 꼬마 거인>에서도 말은 가락을 얻는다.  그의 작품 속 풍자시들에 가락을 붙여 보는 놀이도 아이들과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

문득 상상력이 거침 없던 로알드 달의 삶이 실제로도 거침없었는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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