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이것이 우리 집 가훈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인격의 체 없이 드러나는 것이고 지혜는 지식이 인격의 거름망을 통과하여 나오는 정화입니다. 지혜는 고품격 지식입니다.
우리 아들이 참 지혜롭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들이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어리니 인격이 완성됐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마도 가능성 때문일 겁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이끌 씨앗을 아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오랜만에 약수터를 갔습니다. 보통 물을 떠오는 것은 아이들 몫인데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는 때고 눈이 아직 많이 쌓인 길이라 같이 나섰습니다.
눈길을 걸어 약수터에 도착해서 준비해 간 코코아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아 내려가려는데 지승이는 물이 나오는 관 앞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엄마 먼저 간다고 소리쳐도, 너 혼자 있으라고 을러도 쭈그리고 앉아 뭘 열심히 합니다. 가서 보니 코코아 마셨던 컵에 물을 담아 약수터에 길게 자란 고드름을 녹이고 있는 겁니다. 같은 물인데 관에서 졸졸 나오는 물은 얼지 않았는데 주위는 온통 얼음입니다. 그게 신기했나 봅니다. 물을 받아 끼얹으면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손이 시릴 텐데 연신 물을 떠서 얼음 위에 뿌리고 있습니다. 얼음은 0도 이하고 물은 0도 이상일 터이니 가능한 발상이긴 합니다. 하지만 얼음 위에 덧뿌려지는 물이 얼음 위에 다시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 물로 얼음을 녹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혼자 남겨 놓고 한 참을 내려와 기다린 후에야 아들은 따라 내려왔습니다. 어쨌든 궁금한 건 한 번 해 보는 실천력. 그런 실천력이 있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하리는 시골인지라 서울보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 안되는 편입니다. 재활용 할 수 있는 물건들도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다른 집 밭에 있던 비료포대 같은 것들이 날려 와 굴러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울에 있는 쓰레기를 한 번 치워야지 하면서 엄두가 나질 않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수터에 갔다 온 아들이 자신이 쓰레기를 줍겠답니다. 그래서 큰 봉투를 하나 주고 주우라고 했습니다. 숯불구이 할 때 숯을 뒤집는 용도로 쓰던 집게도 하나 들려 주었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때 휴지를 줍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배운 뒤 길에 있는 깡통을 주워 온 일이 있습니다. 재활용 하면 된다면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이 얼마나 더러울까를 생각하면 칭찬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맨손으로 더러운 쓰레기를 주우면 손이 얼마나 더러워지겠냐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몇 번 그러고 나서 더 이상 아이들은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진 않습니다. 대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길에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철저히 심어주고 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쓰레기 봉투를 어쨌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분리 하려고 쓰레기는 박스에 부어놓고 봉투는 박스 옆에 두었답니다 나는 그냥 봉투 째 폐기물 표를 사서 붙여 버리려고 했는데 아들은 주운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하려 한 것입니다. ‘아이 디러워라!’ 속으로 하면서 아들에겐 잘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는 것을 올곧게 실천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지혜라 하니 우리 아들은 분명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리에서의 열이틀 째는 쓰레기 주우며 지혜를 다시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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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아들이 어렸을때부터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왔지만 그 의미를 명쾌하게 답변을 해준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혜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부모의 한순간 말과 행동은 자식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승이가 지금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지승이,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