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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최명희 <혼불> 이야기

혼불 일기


1999년 12월말이었나 봅니다. 남편의 월급통장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통장에 돈이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이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거라고, 그렇게 신나서 말했습니다.

그리곤 동네 책 할인점에 가서 책을 샀습니다. 책표지의 정가에 억매이지 않고 책을 고를 수 있으니 이것저것 뒤적여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기분 얼마 만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책 한 권에 몇 만원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맘먹고 사려면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이지만,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안되었습니다. 더구나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한번 읽고 잊어버리는 책 말고 두고두고 보며 가슴 설레고 싶은 책. 장식장에 모셔두는 어떤 값나가는 물건보다 더 자랑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 욕심을 내게 하는 책이 있는데 바로 ‘혼불’이었습니다.

처음엔 책제목이 너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싶어서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붉은 색 직사각형 안에 희게 새겨진 ‘혼불’이란 글씨도 너무 강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한 글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나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 작품에는 ‘혼불’이란 제목을 붙여도 될 법하다는 느낌. 그것이 제목이 주는 샤머니즘적 인상을 휴머니즘의 느낌으로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내가 ‘혼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책을 집에 갖다 놓고도 두 달이 넘은 2월 11일부터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내가 그날부터 ‘혼불 일기’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0년 나의 일기도 2월 11일이 시작입니다. 그 전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었는데, 아마 ‘혼불’을 읽으면서 읽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대하소설은 읽을 당시에는 주인공과 사건의 흐름, 느낌이 서로 얽어져서 가슴에 들어오지만, 읽고 나면 복잡하게 얽힌 구조는 다 잊혀지고 낱낱의  단순한 감상의 조각만이 남게 됩니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혼불 일기’를 쓰고자 했습니다. 훗날도 잘 되새겨 지라고.

또 하나의 이유는 ‘혼불’이 민속사 책보다 더 정확하게 민속사를 고증하고 있다는 광고문구 때문이었습니다. 옛 풍속을 더듬어 보고 싶은 내게 중요한 정보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혼불 일기’의 첫 장에 

사주 보는 법--1권 P14

라고 메모가 돼 있는 걸 보니 ‘혼불’은 나의 기대를 첫날부터 충족시켜 준 셈입니다.

‘혼불’을 다 읽고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옛 일기를 뒤적이며 ‘혼불’이 주는 감동을 쫓아가려 합니다.


2000년 2월 11일

지금은 12일 밤 11시를 넘었습니다. 어제의 일기를 스는 셈이지요.

나에겐 지난 일기를 쓰더라도 거짓일기라 느껴지지 않게 쓰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나의 어머니지요. 내 어머니의 여름 일기는 날을 바꿔 다음날 새벽에야 쓰여집니다. 한밤중까지 일을 하고 지쳐 잠드시면, 몇 시간 지난 새벽에야 깨어나 어제 일을 더듬으며 일기를 쓰십니다.

비록 내가 일기를 밀려서 쓰는 것은 게으름의 소치이지만, 밀린 일기라도 꼭 쓰고 넘어가는 어머니를 본받기 위함입니다. 내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어머니의 몸짓이 살아나듯 ‘혼불 일기’를 통해 ‘혼불’이 살아나게 하고 싶습니다.


‘혼불’의 장면 묘사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영화의 장면 장면을 설명하듯  자세하고 회화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대로만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 영상만으로도 멋진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막내오빠 생각도 하고 ‘춘향뎐’생각도 했습니다. 우리 오빠가 ‘춘향뎐’처럼 화면이 아름다운 작품을 찍을 날이 어서 오면 좋겠습니다.


그랬습니다.

‘혼불’의 문장은 그림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초례청의 모습이나 혼례를 치르는 효원의 모습을 묘사한 문장을 보고 회화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보여준 색채와 형태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절로 일었습니다.


‘진주, 산호, 비취, 청옥, 백옥, 밀화의 구슬 등은 일룽거리는 촛불빛을 받아 오색의 빛을 찬연하게 뿜는다.

금방이라도 좌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질 것처럼 소담한 구슬무더기가 꽃밭이라도 되는가, 실날같이 가냘픈 가지 끝에서 청강석 나비가 날개를 하염없이 떨고 있다.‘

‘쏙독 쏙독 쏙독. 칼로 무를 저미는 것 같은 소똑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어지러이 칼 맞은 자리마다 언 산의 생살이 무참히 벌어지고, 어둠은 그 틈바구니 속으로 소금같이 저며들었다.’

‘생김새 자그마하나 다부져 보여 물에 잘 씻긴 돌멩이 같았다.’


이런 구절들은 읽을수록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특히 4권과 5권에 나와있는 어둠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땐 ‘참 끈질긴 작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이 저무는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 어둠에 푹 잠겨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들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4권의 ‘박모’에서는 날이 저무는 풍경을 차분히 설명하는데, 직유와 은유의 힘을 적절히 빌어온다면 우리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3월 23일

최명희의 문장을 생각함에

가슴이 뛴다.

그의 글은 서사시 같다.

그는 서사시인 같다.


‘토지’가 알밤까먹듯 참으로 재미졌다고 한다면

‘혼불’은 알밤나무가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특히 ‘박모’와 ‘자시의 하늘’에서 보여주는 묘사는

가슴 넓은 사람만이 차분히 풀어 낼 수 있는 서사시의 압도를 갖고 있다.


‘혼불 일기’의 여기 저기에서 문장에 대한 찬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불을 읽을수록 놀랍게 다가온 것은 회화적인 묘사의 화려함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또는 사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 밑바닥까지 함께 가라앉아 보고서야 알아낼 수 있는 진실한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혼불’이 서정(抒情)이 없고  서경(敍景)만 나타난 문장이라면 건조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건조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심리묘사가 곳곳의 배경묘사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역시 ‘박모’의 끝 부분에 나타난 강실의 심리 묘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담백한 토로였습니다. 슬픔의 원인을 과장하지 않은 담백함. 솔직함. 그래서 강실의 슬픔에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 하는 시리게 푸른 빙천(氷天)으로 상여가 덩실 떠오를 때, 강실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복받쳐, 떨리는 소리로 곡을 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청암 할머님이 저 상여를 타고 떠나신다는 슬픔이 가슴을 저미어, 살에 묻은 체온이 저만큼 떠나가는 것 같은 애절함에 목이 메이면서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밀려 올라와 강실이를 흥건하게 적신 심정은,

참으로 고운 색깔들이 떠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 휘황하고 아름다운 색색 가지 색깔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저렇게 가는구나.

이승을 떠난 저승의 언덕 어느 먼 곳으로 가고 가면서, 서럽게 서럽게 소리도 없이 나부낄 그 색깔들이 그렇게 애잔하고 목메이게 가슴을 후비어, 강실이는 사립문간에 서서 오래 울었다.


지금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왜 강실이에 대한 심리묘사 부분이 내 눈에 띄었는가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이 ‘혼불’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정적인 인물이면서도 심리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 인물이 강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내 ‘혼불 일기’는 자꾸만 ‘토지’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토지’를 읽었을 때의 감동과 비교되는 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에 대한 비교였습니다.


2000년 2월 14일

낮에 몇 자 읽다 잠들었다.

지금은 자정을 한 이십 분쯤 넘긴 시간이다. 이제부터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

토지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속도 있게 진행 되어서 빨리 읽혀졌는데, 혼불은 그에 비해 좀 느리게 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대상을 설명하는데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니 좀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혼불을 통해 문학이 한 시대의 풍속을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면에서 그 가치를 높일 들 수 있다.

어떤 자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은 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2000년 2월 27일

토지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막힘 없이 흐르는 도도한 강물같은 것이었다면

혼불의 흐름은 끼여드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토지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죽죽 흘러가는 형식이라면, 혼불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물로 유입되는 작은 지류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에 과거의 모습을 자꾸 끼워넣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한참을 읽다가

‘이 이야기의 서두는 무엇으로 시작되었던가?’

하고 책장을 앞으로 넘겨야 한다. 문득 그렇게 책장을 역으로 넘겨가며 훝어야 하는 것이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내 기억력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혼불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우리 풍속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효원의 혼례나 청암부인의 장례절차를 통해서 우리 조상들이 지켰던 의례의 저변에 깔린 의식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2000년 3월 3일


‘돌아오라 혼백이여’부터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을 읽는 동안 내내 할머니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청암부인의 장례절차에 자꾸만 할머니 장례절차가 겹쳐서 떠올랐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 금방 가슴에 슬픔이 고여 눈으로  흘렀다. 연세  많으신 외할머니나 할아버지, 그분들의 미래에 닥칠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렇게 눈물이 날 때마다 이상하게 ‘대부분 사람들은 죽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설움으로 운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서 내 마음을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

강실이도 청암부인의 상여 앞에서 흐느껴 울지 않았던가. 자기 설움 때문에...


새롭게 알게된 여러 풍속들 중 나를 가장 선뜩하게 했던 것은 혼서지의 쓰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00년 2월 29일

거실의 3단 서랍장 위에 함이 놓여있다. 그 함에는 혼서지라 불리는 종이가 청홍의 갑사로 만든 주머니에 들어 있다. 내용은 남편의 사주를 적은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과거의 한 기념물로 생각하며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그 함에 든 혼서지는 나중에 내가 죽어 저 세상으로 갈 때 내 발에 신겨지는 종이 신발이 된다 한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이상한 섬뜩함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여인을 한 가문에 철저히 묶어 죽을 때까지도 그 징표를  남기려 했다는 생각을 하자 옛 여인들의 운명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가 떠오른다. 끝없는 예속이며, 한편으로는 권리의 부여인 듯도 하다. 본처만이 누릴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또한 혼불은 아랫몰과 거멍굴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중 ‘백단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전통 무속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2000년 3월 4일


요즘은 점쟁이와 무당을 거의 동일시하는데, 그 시절엔 명백한 구분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무당의 굿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것이되, 점쟁이의 일은 타고난 신기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 그랬는가. 어쨌든 그 구분되어짐이 이채롭다.

무당이 하는 굿이 반복되는 연습으로 습득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은 굿이 그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  그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야 할 수 있는 절차의 까다로움 때문에 타고난 신기가 없이도 신성성이 담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구도자가 끊임없는 수행으로 도를 얻을 수 있듯이, 세습 무당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귀신을  감동시키는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도 ‘혼불’의 여기저기에서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부인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2권에 나오는 ‘돌상차림’에 대한 것과 6권에 나오는 ‘장 담그기’에 대한 것, 그리고 9권에 나오는 ‘무쇠 솥 길들이기’  10권에 나오는 ‘잿물 받아 빨래하기’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돌상을 차릴 일이 있거나 장을 담그는 일이 있을 때는 한 번 더 읽어보려고 따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신접살림을 나서 무쇠 솥을 길들이는 오류골댁의 모습에서는 살림살이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여겼던  여인들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몇 년 전 삼겹살을 구워먹겠다고 솥뚜껑을 샀는데, 자꾸 녹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집 부뚜막에서 보았던 가마솥의 윤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녹스는 것을 막기 위해 내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식용유를 살짝 발라서 보관했었는데, 원래는 아궁이의 그을음을 자꾸 덧발라 문질러서 검은  빛과 광택을 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아아. 그런 거구나.’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매안의 빨래담당 소례가 잿물을 받아서 빨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잿물은 마시면 죽는 거니까 독성이 있을 텐데 장갑도 없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첫째였고, 둘째는 요즘 가정에서 많이 쓰는 염소계 표백제와 양잿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물을 오염시킬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부 순물까지 빨래에 이용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의 신기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혼불’이 지닌 정말 큰 힘은 작가의 역사관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한번 ‘토지’와 비교가 되는데, 먼저 두 소설 모두 남자 보다 강한 여인들에 의해 가문이 지탱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의 배경에서부터 ‘혼불’과 ‘토지’는 많이 다릅니다.

‘토지’의 주요 무대가 경상도 하동 땅에서 출발하여 중국대륙 쪽으로 펼쳐지는 반면, ‘혼불’은 전라도 남원에서 출발하여  중국대륙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의 경우 경상도 사투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면 ‘혼불’은 전라도 사투리를 너무나 찰지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과 언어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백제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경순왕신 이야기를 통해 참으로 백성의 지지를 받았던 나라는 백제였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참 역사의 뿌리를 백제로 이동시켜 봄으로써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인식에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백제의 멸망과 삼천궁녀’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나도 그렇게 배운 듯 합니다. 백제의 의자왕은 국정은 뒤로하고 여색에만 빠져서 결국은 백제를 잃고, 의자왕이 거느리던 삼천궁녀는 낙화암에서 모두 떨어져 죽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인식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한 마당에 삼천궁녀는 무엇 때문에 자결을 했겠습니까? 열녀비를 세워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등을 떼밀어 떨어뜨리지도 않았을 텐데 왜 삼천궁녀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을까요? ’

작가는 그 대답으로 백제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져버린 나라일지라도 그 나라의 임금을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게끔 하는 힘이 백제에 있지 않았겠냐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꽃심을 지닌 땅’에서 백제와 후백제의 견훤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후손으로서 백제를 바로 알게 하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6월 26일


꽃심을 지닌 땅은

백제를 노래하는 부분이다.

그 침착성과

  자부심과

  애잔한( 아니고)

  애끓는 ( 맞고)

  마음에

  내 가슴이

  저린다.


그래서 나는 백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백제에서 찾아내고 그 가지를 조선으로 닿게 하는 작가의 역사인식에 감탄했습니다. 

나는 몇 년 전 우연히 전주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이 있어서 전주 박물관엘 갔었는데 느낌이 참 독특했습니다. 전주역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전주역의 느낌 또한 독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건 백제 고도로서의 전주가 가진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 해 봅니다.

특히 북방으로 떠나는 강모의 눈을 빌어 전주역을 설명하는 부분은 ‘나도 전주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이상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단청 물린 주칠 기둥에 아롱아롱 휘황한 천장 무늬가 흡사 어느 궁궐이나 사찰 같은 느낌을 주는 전주역의 고풍창연한 역사(驛舍)는 장엄하리만큼 육중한 골기와 지붕 때문에 더더욱 웅장해 보였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어디선가 돌아오는 보따리와 가방을 이고 지고 든 나그네들의 바람 섞인 경박성을, 지그시 재워 누르는 품성이 전주역 정거장에는 깊이 배어 있었다.

떠나거든 돌아오너라.

골기와 정거장은 소리 없이,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뭇 아들의 뒷등에 묻어, 낮은 소리로 스며들며 말했던 것일까.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발길이 머뭇머뭇 남루하게 고향의 문간에서 주춤거릴 때나, 분망한 원로(遠路)에 보란 듯이 일하고 올 때나, 정거장은 이만큼 마중 나온 어머니처럼 낡아서 깊은 품을 벌리어

어서 오라.

안으며 맞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주역이 유독 이처럼 사람을 품어 들이는 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철도와 기차라는 신식 개화물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조선식 건축물, 전주역.

마한에서부터 백제 넘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연한 빛을 자랑해 오던 고래(古來)의 고도(古都)여서 그러했을까.‘


그런데 나는 9권과 10권을 읽는 동안은 거의 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일이 바쁘기도 했을 뿐더러 제5부 ‘거기 서는 사람들이’의 전반부를 이루는 9권의 내용은 모두다 메모를 하고 싶을 만큼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권엔 여기 저기 책 모퉁이를 조금씩 접어놓은 자국이 많습니다.

일본 유학생이며 진취적 역사관을 가진 강호와 호성암 스님 도환은 대화를 통해 불교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불교는 민족종교임과 동시에 구국정신을 담은 역사철학이기도 했습니다.

사천왕 주위를 날아다니는 오후의 ‘나나니벌’ 한 마리에 대한 서술도 잊지 않는 작가의 세심함이, 글 속에 나타난 불교를 종교로서가 아닌 문학 안에서의 철학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간단한 서술 방법임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 역시 글을 살아있게 하는 묘사 문장의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방위를 말할 때 ‘동서남북’이 아닌 ‘동남서북’이라고 한답니다. 그런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는 인연과 순환의 관계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불교를, 사찰을, 그리고 사천왕과 삼십 삼천을 이렇듯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재주가 놀라웠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문학과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혼불’ 안에서 하나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피어난 꽃을 보는 기쁨으로 가슴 설레며 9권을 읽었습니다. 그 느낌이 새롭게 다가와 입가에 웃음 한 번 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혼불’을 읽고 가장 마음에 새긴 것은 청암 부인의 말씀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든 새롭게 알게된 풍속이든 그런 것은 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그러한 내용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내 가슴속에 새기고자 하는 것은 청암 부인의 한 마디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신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

오직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숨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자신을 건사하고, 이   재를 하듯이 정신을 관리해야만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질 것이다.“


일기장을 넘기다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읽어보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지만 내 정신의 토양은 아직 척박하여 때때로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되새기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갈 거름으로 삼고자 합니다.

나는 일기장 한 구석에 물음표를 붙여놓고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

매안, 득량 역이 있나?

대실도 있나?

범련사도 있나?

직지사, 보림사, 범련사 - 사천왕 있는 곳 ?

봉천역, 서탑거리도 진짜 있나?

가보고 싶다!


?에 대한 답을 알아나가는 동안 나의 ‘혼불 일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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