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 아흐레 째 이야기


건담 조립--시간이 아까워!


한이네가 떠나고 다시 셋만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남은 자로서의 약간의 울렁증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건담’이 왔습니다. 주문을 해 놓고 입고가 지연되니 주문 취소를 해 달라는 업체의 부탁을 거절하며 애타게 기다려 온 건담. 그 건담은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하던 순간에는 일본 땅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땅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넌 내거야.’ 라고 ‘찜’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총알배송, 당일배송, 특급배송, 이런 시대에 한 달을 넘게 기다려 받은 건담. 이별 뒤의 우울함을 말끔하게 잊고 지승이 건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느려. 하지만 기다려주면 천천히 잘 할 거야,’ 라고 맘먹어도 때때로 안타깝게 하고 때때로 화도 나게 하고 때때로 속도 상하게 하는 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건담을 조립하는 동안만큼은 ‘그래, 우리 아들은 맘만 먹으면 뭐든 해 낼 놈이야.’라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아이들의 능력은 집중력이란 말로 대신해도 좋을 정도로 얼마만큼 집중하느냐에 좌우됩니다. 그런데 건담을 조립하는 동안 지승의 집중력은 높이 살만 합니다. 오후 서너 시 쯤 받은 건담을 받자마자 뜯어서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저녁 먹기 전까지 한 네 시간을 매달려 했습니다. 해 있을 때 조립하기 시작한 것이 해가 깜빡 넘어가고 불 켜고 해야 하는 시간도 넘어 저녁 먹을 시간도 지나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만하라고 했더니 지승이 하는 말

“시간이 아까워!‘

시간이 아까운 걸 절로 깨닫는구나 싶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자식을 보는 엄마로서 참 흐뭇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건담을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세 시간을 한자리에 앉아서 만들더니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끝낸 터라 여유 있는 오전을 보냈습니다. 지윤이도 지승이가 완성한 걸 보더니 지승이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자신의 건담을 다 조립했습니다. 손끝이 야문 지윤인 지라 방법을 알자 속도는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지윤에게도 건담을 해 보라고 권해보길 잘 했단 생각을 했습니다.


오후엔 사랑방에서 난타 연주회를 했습니다. 지윤, 지승이는 여섯 살 때 다닌 유아체능단에서부터 장구를 배웠습니다. 유치원에서도 우리 가락에 배우기 시간에 장구를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지승이는 사물놀이를 꾸준히 배웠고, 지윤인 3학년 일년동안 난타를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작은학교 난타교실인 사랑방에는  북 징 장구 꽹과리  의 사물을 모두 갖추어 놓았습니다. 거기에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탬버린, 소고, 트라이앵글에 손바닥만한 심벌즈, 캐스터네츠까지 타악기는 넘치도록 넉넉합니다. 때로 좀 웅장한 (?)심벌즈 소리가 필요하다 싶을 땐 스테인레스 냄비 뚜껑을 쌍으로 내다 쓰기도 하는데, 울림이 꽤 좋습니다.

타악기는 리듬을 즐길 수 있고 가격이 관악기나 건반악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에서 자유로이 연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학교 사랑방에서는 연주가 가능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드넓은 데크 쪽이고 창문은 뒷밭 쪽이라 환한 낮에 연주하는 데는 이웃에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없습니다. 또 시골 어른 대부분은 풍물 소리를 친숙하게 여기셔서 듣기 좋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마침 3학년 2학기에 ‘후이야 훠이 훠이’ 하는 국악가락의 노래를 배웠다기에 그 곡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나는 북을, 지윤인 장구를, 지승이는 징과 꽹과리를 맡았습니다.

-앞 논 에는 찰벼를 심고,

후이야 훠이 훠이

뒷 논 에는 메벼를 심고

후이야 훠이 훠이 ...

아이들은 저희들  배운 것을 엄마에게 가르치며 노는 것에 신이 나고 , 엄마는 아이들 노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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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나그네 2011/03/10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리하우스 북치는 지윤공주^^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http://youtu.be/Ik1-LRj3uD4

    위에 주소를 클릭하면 됩니다.

  2. 나그네 2011/04/12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담 조립은 저와 아들의 공통 취미입니다.ㅎㅎ.다 커서 무슨 장난감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라모델은 고도의 집중력과 도면을 볼 수 있는 공간능력을 필요로 하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들과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이죠.함께 대화해 가며 도면을 보면서 부품을 자르고 서로 맞추고 있노라면 25년이상의 세월을 뛰어 넘어 어린 아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어릴적 건담을 보면서 느낀 그 느낌을 아들도 느끼고 있겠죠.ㅎㅎ.제가 다음에 스트라이크를 선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작년에 전기와 관련된 실험을 두 가지 했습니다. 전기 전자 분야의 전문가이신 나그네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전동기 만들기와 전기 만들기 수업을 해 주셨습니다. 그 두 수업에 전기의 양을 재는 기계를 사용하였는데, 호기심 많은 지승이가 그 기계를 너무 좋아해서 나그네님께서 선물로 주셨었습니다.  기계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승이가 이것 저것에 흐르는 전기량을 측정해 보려 하면 고장 나지 않게 다루란 잔소리를 늘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일어난 지승이가 생수병에 두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실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물에 있는 전기량을 측정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생수병을 흔들었다가 놓기도 하고 두 개의 생수병에 각각 구멍을 뚫어서 그 두 병에 있는 물 사이에도 전기가 흐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물이 가만히 있을 때와 흔들어서 소용돌이 치게 했을 때 측정되는 전기량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슬그머니 딴청을 하고 있기에 생수병을 치워주고 기계는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 했습니다. 구멍 뜷린 생수병을 버릴까 하다가 다음에 또 한다면 줘야지 하고 놓아두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지승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좋은 실험도구를 갖고 자유롭게 전기량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추억은 느닷없는 순간에 뛰쳐나와 가만 미소 짓게 하곤 합니다. 그 날 지승이가 실험용으로 쓴 생수병이 다른 생수병과 섞여버린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외갓집에서 물을 받다가 양 옆에서 분수처럼 솟아나는 물줄기를 보고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오후엔 1층에 있는 도서실을 꾸몄습니다. 이모가 보내주신 조화바구니들을 책 사이에 옮겨놓으니 도서실이 훨신 밝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방으로 만들어 주었던 방에서 바닥에 깔았던 스티로폼을 걷어내고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만들어야 하는 블록 장난감들을 2층 사랑방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장난감을 정리하다가 토머스와 기차들에 나오는 토머스 장난감을 보더니 지윤이가 말합니다.

“우리 영어 선생님 아들이 한참 토머스를 좋아할 때라고 하셨는데, 이 토머스 선생님 아들 주라고 선물로 드릴까?”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고 그 토머스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지윤이가 그 토머스 장난감을 갖다 드리지 않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스티커도 붙여져 있고 그런데 좋아 하실지 걱정이 되서 그런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명 좋아하실 거다, 그리고 스티커가 붙여져 있어서 더 예쁜데 맘에 걸리면 떼어서 드려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수업이 종료된 뒤라 선생님 뵙기가 쉽지 않고 막상 드리려니 용기가 없는지 아직까지 책상위에 두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랑 우리 영어선생님이랑 생각이 같나 봐요. 영어 시험 보는 데 가림판이 필요 없다고 가리지 말고 보라고 하셨어요.”

“영어 선생님도 엄마랑 생각이 같나 봐요. 영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하게 되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사과하면 apple이라고 안 생각해도 사과를 보면 그냥 저절로 apple이 생각나게 해야 된데요. 집에서 영어 비디오 많이 보고 그러면 좋다고 하셨어요.”

‘시험 볼 때 친구가 내 것을 보지 못하게 가림판으로 가리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 같다. 내가 친구 시험지를 보지 않는 것처럼 친구도 내 시험지를 보지 않는다고 서로 믿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가림판 사용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 영어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고 가림판 없이 시험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준비물에 가림판이라는 게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림판을 거의 모든 선생님들께서 당연하게 사용하게 하고 계시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내 시험지를 보고 썼느니 어쨌느니 하는 시비 요인를 없앤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누가 내 것을 볼 지도 모른다는 ‘의심’하는 마음을 전제한 가림판이라 마음에 꺼려지던 참에 가림판 없이 시험 보라고 한 선생님이 계시다니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장난감 정리를 하다가 토머스를 좋아한다는 아기가 생각나서 드린다는 선물을 괄시할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윤이가 선물은 진심이 통하면 되는 거라는 가르침도 얻을 기회가 될 것 같아 꼭 보내드리려 합니다.

하리하우스 1층에 도서실을 꾸며놨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습기’입니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으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지만, 땅이 갖고 있는 습기 자체를 막을 방법이 뚜렷하지 않아 우선은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여름에 사람이 없이 비워 둘 때 창문을 닫아두면 더 습해서 천연 재료로 된 것들엔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기 힘듭니다. 그래서 자바라식 방범용 문을 설치하고 사철 문을 열어둘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힘 중에 막기 어려운 것이 ‘습’ 인 것 같습니다. 물이 솟아오르는 정도는 아니지만, 강 가 마을에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바닥에서 피어나는 습한 기운. 아이들이 더 쾌적하게 놀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할 하리하우스의 과제입니다.

지윤 지승은 하리하우스 1층을 꾸미는 일에 잘 협조를 해 줍니다. 책상을 같이 들자고 하면 들고, 조화 바구니를 옮기자하면 옮기고 장난감을 정리하자면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임을 알기에 더 잘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함께 꾸미는 재미가 있는 곳. 하리하우스가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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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4/12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발견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의 상당수는 다른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재미나고 엉뚱한 생각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지승이가 가진 작은 호기심이 지승이에게 훌륭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원천이 될것이라 믿습니다.이번 여름엔 지난 겨울에 못했던 방음벽을 만들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측정기구도 이미 확보했구요. 아이들에게 소리에 대한 좋은 실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지난번 하리에서 만들었던 방식대로 집에서 친환경 전지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이번엔 콜라를 사용했는데 시계가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다음엔 마그네슘(산과의 반응상태가 좋아서 전압을 크게 만들 수 있답니다)을 이용한 콜라전지를 만들어서 시계도 움직여 보고 전구에 불도 켜 봐야 겠습니다.

겨울방학 두 번째 날


당연히 만날 줄 알았던 성희와 완이와 수현이 모두 학원을 다니느라 하리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지윤이와 지승이가 여간 실망하는 게 아닙니다. 심심하다는 아이들 투정을 듣다가 생각했습니다. ‘작은학교에 가장 중요한 학생 둘이 있는데 내가 게으르면 안 되지. 지윤 지승이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알찬 방학이 되게 해야겠다.’

하리하우스라는 환경에서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자연 속에서 지구력을 키우고 육체 노동을 통한 성취감 느끼기’로 정했습니다. 하루를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되, 오전엔 수학과 영어 관련 학습을 하고 점심식사 후의 시간엔 야외활동을 주로 하기로 했습니다. 정오를 지나야 공기도 데워지고 햇볕도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기 때문에 야외활동은 점심 후에가 좋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뒷밭에 있는 나무를 1층 난롯가로 옮기기입니다. 나무를 다 나를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천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윤이가 ‘카자니아’인지 어딘지를 가서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한 것이 기억나서 ‘돈 내고 돈 벌기 경험’ 말고 일하고 진짜로 돈벌 기회를 주겠다 한 것입니다. 가끔 은행 한 바구니 주우면 오백 원 하는 식으로 일감을 주긴 했었는데 이번처럼 천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가며 나무를 나르게 하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맘 놓고 난롯불 피워보기를 시키기 위한 작전입니다. 맘껏 난롯불을 피우려면 땔감을 많이 장만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년 전 호두나무 벤 것이 뒷밭에 있는데 늘 필요한 만큼만 갖다 쓰다보니 넉넉히 피울 수 없었습니다. 또 눈에 젖으면 연기가 많이 나서 1층이 온통 너구리 잡는 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아이들이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나무를 몽땅 옮겨놓고 겨울을 나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없고 해가 좋아 점심 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바퀴가 하나인 구루마를 이용해 나무를 날랐고 지윤이와 지승이는 나무토막을 들고 1층 문으로 가서 끈이 달린 장난감 자동차에 나무를 옮겨 담고 장작더미까지 가서 나무를 내려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호두나무를 벤 지 한참 지난 터라 좀 굵은 가지엔 못 먹는 버섯이 많이 피어있습니다. 지윤이는 그게 독버섯이라며 더럽다고 버섯이 핀 나무는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의 경험이란 노동을 통한 놀이일 때 더 흥겹고 의욕도 생기는 지라 재미있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나를 때 보다 속도도 빠르고 일맛도 났습니다.

호두나무를 옮기다보니 아이들 2학년 여름에 털두꺼비 하늘소 잡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른 봄에 베어둔 호두나무 덕분이었습니다. 더듬이가 길고 몸이 방패모양처럼 생겼는데 보는 순간 이상하게 하늘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소 하면 장수하늘소가 생각나고 보호종이란 말까지 같이 떠올랐습니다. 보호종일 만큼 희귀한 것을 잡았다면 대단한 일이긴 한데, 보호종이면  다시 돌려보내줘야 하는 의무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앞서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바로 놓아주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는 중에 그 진귀한 곤충이 또 눈에 띄는 겁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아이들도 한두 마리씩 잡았습니다. 넓적한 머위 잎 사이를 들추어 호두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곤충을 찾아 살살 가서 탁 잡는 손맛이 좋았습니다. 찾으면 더 있을 듯하여 지승에게 물었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여러 마리가 있는 걸 보니 천연기념물은 아닌 것 같아 잡는 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지승아, 더 잡을까?”

그랬더니 지승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이거면 충분해요.”


내가 참 욕심쟁이구나 생각하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 할 줄 아는 아이. 욕심쟁이 엄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더 잡을까 물어보는 엄마에게 만족하는 자세를 가르쳐 준 아들의 ‘충분해요,’가 지금도 엄마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맴돕니다. 만족을 아는 지승이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나중에 곤충도감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잡았던 곤충이 하늘소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보호종인 장수하늘소는 아니고 털두꺼비하늘소였습니다. 주로 갓 베어낸 호두나무에 알을 낳는다는 설명을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어미하늘소는 어떻게 우리가 호두나무 벤 것을  알고 와서 알을 낳았을까요. 아마도 털두꺼비하늘소는 느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은 모르는 호두나무 수액의 향기를. 그 해 여름에만 머위 밭에 뒹구는 호두나무도막에서 털두꺼비하늘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엔 호두나무 등걸에서 자라는 버섯이 보였습니다. 짙은 밤색 줄기에 자주색에 가까운 색을 띤 갓을 쓴 버섯을. 그리고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껍질이 삭아 훌렁 벗겨지는 뼈가 하얀 호두나무 등걸을 나르고 있습니다. 바짝 말려 땔감으로 쓰려고.

호두나무 등걸이 타는 겨울 난로 앞에서 나는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충분조건을 생각하며 겸허한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점심 전에 시작한 나무 옮기기가 점심때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 끝에 먹는 간소한 반찬의 밥. 얼른 누룽지를 끓여서 집에서 먹을까 마당 평상에서 먹을까를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평상에서 먹겠다하여 둥근 쟁반에 누룽지 냄비와 반찬을 담아 내갔습니다. 아이들은 고추장에 박은 머위장아찌로 맛있게 먹었고 나는 삭혀서 된장에 무친 고추장아찌로 뚝딱 한그릇 먹었습니다.

그날 나른 넉넉한 땔감으로 밤마다 난로를 피우고 놀았습니다. 난로에 콩이며 땅콩을 구워가며 행복한 추억을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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