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


작가 로알드 달의 상상력이 던지는 물음.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없애버리고 싶지 않나요? "

뭐 애들 보는 동화 이야기에 황당한 물음이냐고요?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입니다. 물론 마법약 때문이지요.

여덟 살 난 조지와 조지의 엄마, 그리고 조지 아빠인 크랭크 씨와 조지에게 마귀할멈 같이보이는 외할머니. 이 네 사람을 통해 작가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인 한 늙은이를 마법으로 뽕 사라지게 만듭니다. 보통 할머니라는 말에서 느끼는 긍정적이고 전형적 요소는 편안함과 부드러움 자상함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조지의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악마구리처럼 자신의 약 시간을 챙기는 겁나는 할머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결국 할머니 옆에 붙어서 할머니 약 시중을 들어야 하는 조지는 ‘강력하고 지독하고 끝내주는 약효를 갖고 있어서 할머니의 병을 완전히 고치거나 아니면 할머니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마법의 약을 만들기로 한다.

그 약은 온갖 욕실용 세제와 화장품과 엔진오일과 가축들의 약을 비롯해 부엌의 온갖 양념들을 쏟아 넣어 끓인 것이다. 조지는 할머니가 약을 드시는 시간에 할머니의 입에 자신이 만든 마법의 약을 넣어 드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의 몸이 점점 커지더니 지붕을 뚫고 나갈 정도로 커진 것이다. 조지 아바 크랭크 씨는 그 마법의 약을 자신의 가축들에게 먹여 가축들이 집채만큼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똑같은 약을 만들어 팔아 부자가 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조지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만든 약은 몸을 커지게 하는 약이 아니라 줄어들게 하는 약이 되고 말았다. 크랭크 씨가 들고 있는 줄어드는 약을 할머니가 낚아채어 걸신들린 듯 한입에 먹어치우고 결국 할머니는 점점 몸이 줄어 병아리 만해졌다가 씨앗 만해 졌다가 아예 먼지처럼 작아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장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에서 크랭크씨는 ‘만세!’하고 외친다. 잠시 당황해하던 조지의 엄마도

-어머니가 집안의 골칫거리긴 했죠.-

라고 말한다.

-물론 장모님은 확실히 그랬어.-

확실히 골칫거리였던 대상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만든 로알드 달은 그 방법이 마법이었기 때문에 세속의 비난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인력이 아닌 마법이었으니까.

작가 로알드 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문제를 노골적이고 상스럽게 뻥 터뜨리고 있다. 마치 주머니를 뒤집어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듯 마법으로 노인 문제를 해소했다. 그러나 거기엔 비난이나 자책이 없다. 왜냐하면 그건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이 아니면 풀 수 없는 과제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알드 달의 또 다른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도 나이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나온다. 왜 ‘들’이냐 하면 찰리의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노인들 역시 조지의 할머니처럼 가난하고 무능하다. 한 침대에 발을 맞대고 마주 누워 있는 네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찰리 부모님의 짐인 것이 확실하다. 그런 네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 틈에서 자라는 찰리는 너무나 배가 고프다. 그런 찰리에게 초콜릿은 하나의 상징이다. 배부름과 풍요의 상징 초콜릿. 결국 찰리 가족은 풍요를 누리게 되는 데 그건 바로 가족간의 사랑에 기인한다.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서로 위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해피엔딩이다. 로알드 달은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의 인물들과 반대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인물들에게 행운을 부여함으로써 더 긍정적인 가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외손주와 사위가 합세하여 한 노인을 이 세상에서 뿅 사라지게 하는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가 ‘효이데올로기’가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초등교육에서  어째 버젓이 권장도서목록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마틸다>와 <내 친구 꼬마 거인>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을 통해 얻은 그의 명성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마법>이란 단어가 주는 면죄부 때문일 수도 있고.

괴력의 소유자며 인격 파탄자인, 알고 보니 살인자이기도 한 중년의 여성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학습에 천재적인 소녀 마틸다가 다닌다.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아본 담임 선생님과 마틸다가 초능력의 힘으로 폭력 교장을 몰아내는 이야기가 <마틸다>이다. 반전의 미와 함께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자존심은  초능력까지 불러낼 수 있다는 이야기설정으로 읽는 내내 흥미와 환희를 느끼게 한다. 특히 교장선생님이 먹을 케잌 한조각을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케잌 한 개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벌을 받은 아이가 전교생의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으며 케익 하나를 다 먹어내는 장면은 억눌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감정을 한방에 날려 보낼 만큼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틸다>를 손에 잡으면 한번에 다 읽어 치우고 만다. 제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틸다>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레 학교에서 처벌받았던 일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아간다. 그러면 제각각 할말이 많아진다. 간혹 억울하다는 표현을 쓰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땐 다시 한 번 잘 말씀드리지 그랬니.’ 라고 말해주는데, 아이 대답은 ‘그러면 더 혼나요.’ 한다. 바로 말대답하는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을 해명할 기회를 얼마나 갖게 될까. 때론 용기가 없어서, 때론 미리 포기 해서 때론 말하기 치사해서 자신을 정당하게 해명할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른’이라는 명찰만 달면 자신보다 나어린 사람의 해명을  ‘말대꾸’라고 묵살해 버리는 권위적 분위기가 많은 우리사회에서, 그 사회안에 있는 학교에서 자신을 위한 해명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집단이 느끼는 감정은 단절감이 아닐까. 소통의 문이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단절감은 무력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를 무서워하게 되고, 때론 관계를 부정하게 된다.

그림책 <지각대장 존>-비룡소- 은 선생님과 학생사이의 소통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낸 존 버닝햄의 작품이다. 학교생활이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지각대장 존>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꺼리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건 ‘멋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틸다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담임 선생님과 <하늘을 나는 교실>에 나오는 선생님 이야기도 함께 나눈다면 아이들 마음 속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떠오르고 사제간의 아름다운 추억도 들추어 낼 수 있으리라.

다시 로알드 달로 돌아오자. 그의 상상력엔 도덕의 잣대가 소용 없다. 초콜릿 공장을 돌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사고로 사라지지만 로알드 달의 그저 신명나는 풍자시 한 가락으로 마무리 하고 만다. 그의 작품의 특징인 풍자는 가락-운율-을 얻어 더 신명나는 데 <내 친구 꼬마 거인>에서도 말은 가락을 얻는다.  그의 작품 속 풍자시들에 가락을 붙여 보는 놀이도 아이들과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

문득 상상력이 거침 없던 로알드 달의 삶이 실제로도 거침없었는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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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데크에서 (왼)나은이 지윤이 진슬이 지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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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데크에서 진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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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데크에서 지윤이와 나은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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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데크에서 나은이네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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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데크에서  앞 쪽 세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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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나은이와 지윤이 그리고 세준이네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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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J.R.R.돌킨 -씨앗을 뿌리는 사람

<오래된 정원>-황석영- 창비

‘반지의 제왕’을 처음 들어 본 것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입니다. 결혼기념일 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반지의 제왕’을 보러가자 하였습니다. 1편도 못 봤는데 2편을? 게다가 반지가 무엇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반지’가 도대체 영화 속 도시 이름인지 아니면 한자로 뭔가 뜻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냥 손에 끼는 반지(ring)라는 겁니다.

 어쨌든 그즘 제일 잘 나가는 영화라 해서 반신반의 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속으론 결혼기념으로 보는 영환데, 그것도 2주년도 아니고 12주년 기념인데 좀 낭만적인 것으로 하지, 제왕은 무슨 제왕하며 갔습니다. 그래도  아주 기대되는 표정으로 갔습니다. 살다보면 가끔 쇼도 필요하잖아요.

 들어갈 때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는데, 나올 때도 반신반의 하며 나왔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구분이 안 되는 겁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다가, 반지의 제왕 1편을 안 본 상태라 이야기 흐름도 전혀 감이 안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엔트들의 머리에 앉아있던 메리와 피핀을 샘과 프로도와 구분하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섰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반지의 제왕은 어딘가 미심쩍은 좀 야릇한 뭔가로 늘 마음에 있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 후,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친구들과의 수다에 반지의 제왕이 다시 등장했는데, 장대한 시 같은 문장이 좋아 야금야금 읽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야금야금 읽으며 내가 봤던 영화가 실은 어떤 원작에서 나왔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반지의 제왕 1,2권을 구입했습니다.

 책 표지에 어떤 남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년이라 하기엔 눈빛이 너무 차분하고, 그래서 어른인가 하고 보면 속눈썹이 너무 가냘프고, 그래 동화 속 왕자님일까 하고 보면 콧날과 입술이 너무 굳건하고.  어쨌든 책을 잡을 때마다 한 번씩 보아 왔으니 수십, 아니 작년부터 거의 1년을 곁에 두고 보는 책이니 수백 번 일별하였을 터인데 그 때마다 새롭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니, 배우는 배우인가보다 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영화 속 호빗 프로도였습니다.

 무슨 소설책 여섯 권 읽는 데 1년씩이나 걸리냐구요? 원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립니다. 아주 느린 편이죠. 한 글자 한 글자를 빼먹지 않고 읽다가 머릿속으로 딴청도 좀 피우고요. 아마 책에서 오자 찾아내는 일을 한다면 잘 할 겁니다. 하긴 내 글도 쓰다가 오자를 퍽퍽 내는 판국에 어찌 다른 이의 글 교정을 하겠습니까마는.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중간에 4권을 구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보내고, 결국 출판사에서 전시용으로 쓰던 것을 직접 구하기까지 한 달은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4권을 막 읽으려는 찰나에 초등 베스트문고 50에 도전장을 내는 바람에 또 서너 달을 지체하였습니다. 4권까지 두개의 탑을 끝내니 내가 영화에서 보았던 조각들이 정리되었습니다.

 빈지의 제왕 전체로 보면 왕의 귀환이 절정에 해당하겠죠. 그래서인지 너무 재미가 읽고 긴장이 고조되어 책 놓기가 싫었습니다. 특히 아라고른의 변화는 섬뜩하고도 찬란힜고, 에오른 공주에게서 흐르는 비장미는 절망을 뚫고 나오는 꽃봉오리 같았습니다. 전장에서 장대한 죽음을  맞은 로한의 세오덴왕과, 욕심없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굳고도 부드럽다는 믿음을 남긴 곤도르 마지막 섭정 파라미르. 예언과 축복의 여왕 갈라드리엘, 신념의 화신 간달프. 경쾌한 메리와 피핀. 그리고 반지의 사자 프로도와 프로도의 사자 샘. 이 모든 인물들이 갖는 개성과 진심은 반지의 제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들입니다.

 결국 프로도에게 가운데 땅의 모든 운명이 걸려 있었지만, 프로도는 물리적으로 너무나 약한 존재이지요. 그러나 그가  절대반지를 화산의 화염에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돌킨은 가운데 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놓고 도 이 땅에도 존재하는 ‘마음’ 에 대한 얘길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힘은 역시 지금 이 세계 우리들 살아 있는 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누어진 ‘마음’이지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약하게만 보이던 프로도가 악의 제왕 사루만을 대하는 장면에서 간달프가 프로도를 반지의 사자로 지목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프로도의 마음에 있는 관용의 힘!

 “안 돼, 샘! 그를 죽여선 안 돼. 날 해치진 못 했잖아. 난 어떤 경우라도 그가 이렇게 죽는 건 바라지 않아. 그는 한때 위대한 자였고 우리가 감히 손을 들어 내리칠 수 없는 고귀한 혈통을 가졌었어. 이제  타락한 그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야. 하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으니 그를 그냥 보내주는 게 좋겠어.”

 사루만은 일어서서 프로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이와 존경, 그리고 증오가 뒤섞인 이상스런 빛이 떠올랐다. 그는 입을 열었다.

 “호빗, 많이 성장했구나. 그래. 대단히 많이 자랐어. 이제 현명해지고 또 잔인해졌군. 너는 내 복수의 달콤함을 빼앗아 갔고 거기에 자비의 빚을 더해 주니 말이야. 나는 쓰라린 기억만 가지고 가는 수밖에 없겠군. 자 이제 떠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
 

 프로도는 가운데 땅 전체를 뒤흔들었던 악의 제왕 사루만에게 기회를 주었지요. 또한 고향 샤이어에서 악행을 저지른 동족 호빗들을 용서하자고 하였습니다. ‘갚음은 갚음을 부르나니...’

 오르크와, 묵은숲의 톰 봄바딜과, 나무사이 바람처럼 사는 간부리간이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에선 프로도의 용서가 승리했는데, 서울이 나오고 광주가 나오고 80년이 나오는 <오래된 정원>에선 무엇이 승리할지, 용서가 합당할지 정원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사루만의 악의 세계는 제왕이 있을지언정 ‘체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루만이 무너지는 것이 곧 악의 무너짐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무너져도  ‘체제’가 무너지지는 것이 아니기에 <오래된 정원>을 넘기면서는 거미줄 쳐진 폐가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스산한지 모르겠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가운데 땅을 떠나 <오래된 정원>의 디딤돌을 밟고 서서 떨림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앞으로 얼마간은 정원을 산책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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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3/04/17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윤이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2년 가까이 해리 포터하고만 지냈습니다. 그래도 글을 후딱후딱 읽어 치우는 스타일이기에 중간중간 다른 책도 좀 읽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초원의 집>의 매력에 빠져서 요즘은 로라 이야기만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지냅니다.
    그런데 이제 지승이 그렇습니다. 한 2년 째 오로지 해리 포터만 보고 지냅니다. 디비디도 해리 포터만 책도 해리 포터만. 그래, 뭐든 빠져보면 좋은 거야. 그래서 해리 포터 영화 한편의 대사를 다 외거나, 아님 우리글 해리 포터 책 한 편을 다 외우면 진짜 로봇을 하나 사주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따라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다 외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외워보겠다는 도전은 안한답니다. 부담이 싫은 거겠지요. 나도 거의 반은 아들을 놀려주는 기분으로 한 제안이긴 했습니다. 놀리느라 하는 말인 것도 모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들은 정말 보기에 귀엽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들이 드뎌 해리 포터를 졸업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을 보고 책을 다 읽어야 영화 디비디를 사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딸은 어느새 후딱후딱 읽어치웠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과 줄거리 정도를 파악한 셈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후딱후딱을 잘 못하는 데다 워낙 <반지의 제왕>이 초등 6학년이 읽기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굳이 읽으라고 권하지 않았건만, 디비디를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읽는 것입니다.

    왠지 영화로 본 것은 원작을 읽게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보다 더 멋진 원작의 감동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리 포터 디비디를 사 줄 때도 책을 다 읽으면 사준다고 한 것이고, 반지의 제왕도 같은 차원에서 책을 먼저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화를 보려고 읽고, 재밌으면 나중엔 책 자체의 재미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아들은 가방에 반지의 제왕을 들고 갔습니다. 해리 포터를 외워보라는 미션을 수행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해리 포터를 넘어서 한 발 나아가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한 책읽기입니다.

    그나저나 아들은 중학교는 꼭 호그와트에 가겠다고 했는데, 학교를 포기하고 가운데 땅으로 원정을 나서겠다 하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