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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11 작은학교 겨울방학 넷 째 날
  2. 2011/02/10 겨울 방학 셋째 날
  3. 2011/02/08 작은학교 겨울방학 이야기
 

아침에 문자가 왔습니다. 서울서 보낸 택배가 오늘 도착예정이란 문자였습니다. 방학 때 마다 하리로 물품을 보내 주는 고마운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아이들 이모입니다 나와의 인연으로 아이들의 이모가 된 가짜 이모(?)들이 아니고 혈연으로 맺어진 아이들의 진짜이모. 기다렸던 택배가 도착하자 지윤이가 먼저 달려들어 포장을 뜯습니다. 분유, 김치통에 넣어 보낸 싱싱한 느타리버섯. 알이 굵은 사과 그리고 옷 봉지. 지윤이가 기대한 건 그 옷 봉지입니다. 싸고 예쁜 옷을 보고 지윤이가 생각나면 사고 지승이가 생각나면 사고, 체구 작은 동생이 생각나면 사고 가끔은 애들 아빠 옷도 사서 보냅니다. 애들 키우느라 바쁜 나를 배려해 동네 전철역까지 들어다 주고 돌아서기도 하고 가끔은 이렇게 택배로 보내줍니다. 특히 하리에 있을 때는 장보러 가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여 단호박이나 양파 사과처럼 저장성 있는 농산물이나 자장 소스 같은 공산품도 택배로 보내줍니다. 이번에는 분유를 보내주었습니다. 추울 때 따뜻하게 한잔씩 타 마시라고 보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특히 반가운 건 거실용 슬리퍼였습니다. 슬리퍼가 다 닳아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어떻게 알고 딱 네 켤레를 보내온 겁니다. 이런 게 이심전심이겠거니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턴 거의 언니가 사주는 옷을 입으며 성장했습니다. 아이 두을 둔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언니는 내 옷을ㄹ 사 줍니다. 많이 받아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대상. 엄마 같은 ‘언니’입니다.  잘 먹고 잘 입겠다는 고맙다는 감사의인사면 되는 친정 언니로 보터 받는 혜택.

잘 받았다는 전화를 하는 동안 잔기침을 많이 하던 언니를 위해 은행을 보내주어야겠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마음은 기쁜데, 날은 춥기만 해서 은행 밭에 나갈 엄두를 못 내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밤에 난로에 불을 피워보라고 아이들을 먼전 내려보냈습니다. 불을 저희끼리 피워보는 기회를 주려는 겁니다. 성냥은 없고 라이터는 몇 번 켜다보면 쇠 부분이 달구어져 오히려 위험하겠다 싶어 야외용 버너를 이용해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버너의 불꽃을 난로 안의 불쏘시개로 옮기기 위해 종이 막대를 사용합니다.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쓰고 나면 그 종이를 세로로 서너 번 정도 접어 양 끝을 잡고 빨래 짜듯이 비틉니다. 그러면 꽈배기처럼 꼬인 종이 막대가 되는데 불꽃을 옮기기에 좋습니다. 고구마 중에서 성한 것을 골라 호일에  싸서 들고 내려갔습니다. 둘이 난로 안에 나무를 잔뜩 넣어놓고 연신 종이에 불을 붙여 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 밑에서부터 불이 타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쌓인 나뭇단 위에 불붙은 종이를 던지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러니 종이만 호로록 타 버리고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불은 아래서 위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난로 속의 나무들을 들추어 움집모양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불붙은 종이를 넣었습니다. 이론대로 했지만 불이 나무로 잘 옮겨 붙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번갈아가며 종이 불쏘시개를 한참 태운 후 불이 나무에 옮겨 붙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서 연기가 심하게 났습니다. 난로 문을 닫으면 난로 안이 궁금해서 문을 열게 되고 문을 열면 불꽃과 연기가 확 번져나왔습니다 . 눈이 맵고 코도 맵지만 빨간 불이 널름거리는 걸 보면 ‘와!’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불이 완전히 살아난 다음엔 굻은 토막을 몇 개 넣었습니다. 난로는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린 고구마를 먹고 올라와 먼지 묻은 바지와 매운 내 밴 잠바를 현관에 벗어놓고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난로의 불꽃에 대한 기억이 절정에 대한 이미지로 살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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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나서기엔 좀 늦은 시간이긴 했습니다. 겨울 오후 4시는 곧 해가 질 거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하루를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리하우스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게 하려면 내가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얼른 나서야 한다고 채근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옛길을 통해 저수지에 올랐다가 상리 바람개비 마을 마당에 가서 그네를 타고 놀다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네를 타면서 정면으로 일몰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날 해가 지는 걸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지윤이는 자신이 한국화 시간에 그림을 그린 헝겊가방을 챙겨들고 나섭니다. 전날부터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를 그네에 앉아서 계속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먼 길에 무겁고 또 겨울이라 그네 타며 책을 보는 게  추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할 수 없이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들고 간다는 약속을 받고서 허락했습니다. 결국 한권도 아니고 네 권이나 되는 책을 넣고 출발합니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후 집과 집을 연결했을 것이고 그 길이 단단해져서 마을길이 되었을 겁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마을길도 집과 집을 징검다리삼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옛길을 이용해 상리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아닌 들러 가는 길입니다. 대문과 대문을 이어주는 길.

그러나 거의 모든 집에 자가용이 있는 요즘에는 걸어 볼 기회가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리와 하리를 잇는 자동찻길이 옛길보다 높아서 하리를 갈 땐 항상 옛길을  내려다보며 다녔습니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 마을길을 걸어서 저수지까지가 보리라 마음먹곤 했습니다. 드디어 오는 그 계획을 실천해 보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하리 옛길을 통해 저수지를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한이가 왔을 때 옛길을 따라 저수지까지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제법 되었지만 길 양 옆으로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을 보면 그 위에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드러나 마음 뿐 나는 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걷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승이가 뒤쳐져있다 묻습니다. 인터넷 검색 할 때 ‘색’ 자가 ‘섹“인지 ’색‘인지를. ’아이 색‘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혼자 뒤쳐져오며 내내 눈에 뭐라고 적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하리하우스 검색‘이라고 쓰고 하리하우스 가는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는 겁니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한참 뒤쳐진 아들을 보고 빨리 오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쓰고 옵니다. 그런 지승이를 바라봅니다. 지승이는 눈 위에 글자를 쓰고 있지만, 내 눈에는 가슴에 하리하우스를 새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행복한 추억하나 새기면 살면서 부닥칠 시련을 이겨 낼 힘도 그만큼 많이 축적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아들을 기다리다 걷다 하였습니다.

시골집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집집마다 있는 ‘개’였습니다. 어떤 집이든 우리가 가까이 간다 싶어지면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줄에 매여 있어 그 길이가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개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개’ 였기 때문입니다. 때론 아이들이 개보다 더 요란하게 개를 놀려대며 짖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이 목청껏 뽑아내는 ‘멍멍’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한 50분을 걸어서 저수지 방죽에 올랐습니다. 저수지가 마을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아래서 방죽을 올려다보면 가파른 언덕 윗부분을 뚝 잘라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방죽의 가지런한 선 위로 겨울 하늘이 보입니다.

방죽 언덕을 오르는데 지윤이가 발이 시리다고 했습니다. 지윤이 털 부츠를 내가 신고 있어서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신었던 부츠를 한 짝 벗어주고 지윤이 벗어주는 운동화를 한 짝 신었습니다. 또 부츠 한 짝을 벗어주고 운동화로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렇게 신발을 바꿔 신으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여 감회가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지윤이 털 부츠는 내 발에 불편하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꼭 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이는 비슷해도 아이발과  어른발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지윤이가 불편하지 않냐고 몇 번 묻는 걸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바꿔 신을 때 지윤이 들고 있던 가방을 잠깐 들었는데 묵직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데 진작 엄마를 주기 그랬냐고 했더니 끝까지 들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윤이 기특하고  또 미안하고 안됐어서 가방을 내가 들었습니다. 속으로 딸이 평생을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길 빌었습니다.

방죽에 올라 바라본 저수지는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두세 군데 빙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빙어 낚시 하는 사람들 곁에 가서 눈인사도하고 빙어구경도 했을 텐데 해질녘이라 곧장 상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네에 앉아 빨리 해리포터를 읽고 싶어 하는 지윤이와 그네를 타고 싶은 지승이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설 때 보다 날이 추웠습니다. 춥거나 말거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마당을 떠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6시쯤 되었습니다. 오후 두 시간의 산책으로 하루가 뿌듯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우리 없는 사이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쌀국수입니다. 소정이네가 보내준 것입니다. 쌀국수 다 떨어지기 전에 놀러 와서 잔치국수 말아 먹자는 문자를 보내고 기쁘게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부지런함이 주는 개운함으로 작은 학교의 세 번째 날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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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은학교 이야기 겨울방학 보고서


15박 16일의 이야기


2011. 1. 8 


좀 허전하고 쓸쓸한 하루였습니다.

아빠는 서울로 가시고 지윤, 지승과 셋이 남았습니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의 허전함이 컸습니다. 속담에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표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남은 사람들의 허전함을 표현한 말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허전함을 달래주려고 저녁엔 인스턴트 고기 만두국을 쏘았습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나온 만두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L-글루타민산나트륨의 그 자극적인 감칠맛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의 입맛이 언제가 되어야 화학조미료의 맛을 감칠맛이 아닌 느끼함이라고 깨닫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집에서 신나게 만두를 빚게 되겠지요. 얼큰하고 개운한 김치 만두를.

오후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으니 집 안에서 아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책읽기입니다. 눈가리고 잡기나 공기내기 같은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책을 읽습니다. 지윤인 <로테와 루이제>을 읽고 지승인 우리 몸의 기능에 대한 과학책을 읽었습니다. 지승이가 읽은 내용에 인체면역력에 대한 설명이 나왔습니다. 마이크로 파지와 T세포, 항체 등의 용어에 대해 나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어야 면역력을 높이는 세포들이 힘이 세지고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침 나의 만성중이염이 심하게 도져서 고생하던 참이라 몇 가지 약재를 넣고 끓여  마시고 있었는데, 그 맛을 보여주고 거기에 들어간 식물들이 면역력을 높이고 항체 형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약차 재료는 관동화, 대추, 진피, 삼백초입니다. 처음엔 압력밥솥에 넣고 끓였고 그것을 전기밥솥에 넣고 보온상태에서 우려내었습니다. 중이염이 단번에 가라앉으리라는 기대는 아니라도 도움은 되겠지 하는 맘으로 먹었습니다.

관동화는 머위꽃이 피기 전 꽃대를 캐서 말린 것입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귀한 약재라하여 아이들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안 먹어서 결국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관동화 달인 물은 보리차처럼 갈색이 나는데, 맛은 쓴맛과 아린 듯 한 느낌이 동시에 나서 아이들은 안 먹습니다. 집에 프로폴리스를 비상약으로 두고 있어서 굳이 먹기 힘들어하는 관동화 달인 물을 안 먹여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 봄에도 또 캐서 말리려 합니다. 관동화 말린 것을 두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올해는 신이도 만들어 보려합니다. 하리 마당에 백목련이 한그루 있는데, 꽃이 피기 전의 복슬복슬한 꽃봉오리를 말리면 그것을 신이라 하여 그 또한 비염과 면역력 강화에 좋은 약재가 된다합니다. 관동화나 신이 둘 다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동화든 신이든 아픈 이의 몸속에서 꽃보다 귀하게 피어나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않겠나 하는 맘으로 꽃대를 꺾는 미안함을 달랩니다.

지루해진 지윤이가 공기를 해 달래서 한 판 붙었습니다. 말하자면 공기대련입니다. 그런데 지윤이 공기가 말썽을 부립니다. 그러니까 그 공기알을 잡고 지윤이가 ‘너 서울 가서 혼난다.’ 하고 말합니다. 왜 서울 가서 혼나냐고 했더니 말 안 듣는 공기를 혼내주는 장소가 서울에 있다는 겁니다. 가만 생각하니 서울 안방에 있는 삼단 서랍장 꼭대기가 말 안 듣는 공기알을 혼내주는 장소인 겁니다. 서랍장 꼭대기에 말 안 듣는 공기알을 올려놓고 손으로 밀어서 떨어뜨리는 게 공기를 벌주는 방법입니다. 공기알이야 허구한 날 허공으로 올라갔다 땅바닥으로 내려갔다 하는 게 일인데 그깟 삼단 서랍장 꼭대기에서 밀려 떨어지는 게 뭐 그리 큰 벌일까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응징’이란 단어가 떠올라 놀랐습니다.  어쨌거나 ‘한 번 더 봐준다’는 관용의 말보다 ‘혼난다’는 응징의 말을 더 많이 한 엄마의 불찰이거니 생각했습니다. 앞으론 ‘한번 더 봐준다. 더 잘 해’ 라는 말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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