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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4 로봇 박물관, 추억 박물관


지윤이 로보트태권브이 그림

                   [사진]솔고개 외할머니 집에서 그린 지윤이 로보트태권브이^^

로봇 박물관, 추억 박물관

초등학생이 된 지승이가 한글 공부를 하느라 마음이 슬프다 합니다. 공부 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봐서 하기 싫다고 하면 공부를 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 해 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도 공부(한글 떼기)가  하기 싫다고 하면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쓰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따라 잡으려니 한꺼번에 많은 양이 숙제로 주어졌습니다. 학교 선생님 말씀은 권위가 있지요. 그래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줄 알고 책임량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 지승이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휴일에 로봇 박물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로봇 박물관은 지승이가 애타게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위안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진작 데려가지 않았던 이유는 명륜동에 서울 국립 과학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 까지는 입장료가 무료이고 어른도 1000원이면 관람이 가능하다는 경제성의 우위를 과학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차도 좋고 대중교통편도 좋아서 평일에도 아이들과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로봇 박물관이 있는 걸 안 이후 지승이는  계속 로봇 박물관 타령을 했습니다.

 로봇 박물관에 다녀오길 참 잘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한 두어 시간 관람할 것을 지윤이와 지승이는 네 시간 정도 머무르며 즐거워 했습니다.

 지윤이는 지윤이 대로 얻은 게 있습니다. 지윤이가 커서 되고 싶은 꿈에 한 가지 직업이 추가된 것입니다. 바로 ‘박물관에서 안내 해 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로봇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로봇의 작동법을 설명해 주신 안내 선생님의 모습이 멋져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한교에서 자신의 꿈을 소개하는 숙제에 ‘로봇 박물관에서 안내 하는 사람’이라고 적어 갔습니다.

지윤이와 지승이가 얻은 또 하나의 성과라면 ‘박물관 만들기’에 대한 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로봇 박물관에 있던 대부분의 로봇 전시물이 장난감 로봇이었습니다. 지윤이와 지승이가 여덟 살이지만 우리 집에 있는 장난감들의 나이는 대부분 열 살이 넘었습니다. 사촌형들이 손때가 묻은 장난감이지요. 장난감도 유행을 타는 데 10년 넘은 장난감들이니 그리 상태가 좋을 리는 없지요. 그래서 타박을 하던 장난감들과 비슷한 로봇들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형들의 손때 묻은 장난감들을 갖고 할 일을 찾았지요.

 아이들이 말하길
 “엄마, 우리 하리 하우스에 박물관을 만들어요.!”
 하는 겁니다.

 박물관에 대한 개념과 계획이 생긴 것이지요. 동화 <박물관은 지겨워> - 비룡소, 수지 모건스턴 -를 통해 가르쳐주고 싶었던 박물관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로봇 박물관을 다녀오고 나서 스스로 알아챘습니다. 이렇게 박물관에 대한 생각이 싹텄을 때 <박물관은 지겨워>를 읽어 주면 더  좋을 텐데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기 때문에 필요 할 때 즉각 읽어 줄 수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지윤이 로보트태권브이 그림

 지윤이와 지승이는 말하는 로봇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는 음성인식기능이 있는 로봇인데, 지윤이와 지승이의 억양과 발음을 잘 인식하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보통 성인 남자의 정확한 발음을 가장 잘 인식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로봇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른들은  주로 추억의 학용품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로봇이 그려져 있는 합판, 태권 소년이 그려진 신주머니, 로봇 그림이 있는 양은 도시락 등 낡은 학용품들이 자아내는 향수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향수는 곧 초등학교 때 내가 쓰던 가방과 까만 헝겊 신주머니와 내가 입었던 촌스런 옷가지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끄집어내 주었습니다. 그 추억 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월곡 초등학교와 선곡 초등학교와 그 시절의 스승님을 만나고, 월계시영아파트와 그 안에서 와글와글 지냈던 형제자매를 만났습니다.  로봇 박물관은 우리 아이들에겐 학습장이 되었고 어른들에겐 추억이 되어 살아났습니다.

 혹시 우리가 메머드 화석을 보고 지구의 역사를 가늠하고 있을 때 메머드 화석의 주인은 자신이 대평원을 누비던 때를 추억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는 영화 포스터가 기억나는 데 혹시 위의 상상력과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적추적 봄비 내리던 3월 휴일 나들이. 참 좋았습니다.
 2008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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