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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1 딸과의 대화-잭클린 윌슨

잭클린 윌슨의 동화들

곱디고운 우리 딸은 동화책을 아주 좋아 합니다. 학교에서 권장도서목록을 주어 그 중 최소 50권에 대한 독후활동을 해야 하는데, 주로 문학 관련 서적만 보려하고 과학 사회 방면의 책을 읽지 않으려 해서 걱정이긴 하지만, 틈만 나면 책을 읽으니 그 점은 참 다행입니다.

어른인 내가 틈틈이 어린이 동화를 읽은 이유 중 하나가 재미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와 공통의 대화거리를 갖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커서 어른들의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토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뿐더러, 이미 엄마와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 너무 시시하고 어색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면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잭클린 윌슨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랜과 에리히 케스트너와 로알드 달의 작품들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기록하려 합니다.

딸이 잭클린 윌슨의 책밖에 안 읽었는데, 그 이유가 딸의 취향에 맞는 내용인데다 나머지 네 작가들의 책에 비해 분량이 적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딸과 제가 공통으로 읽은 책입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

<미라가 된 고양이>

<잠옷 파티>

<천사가 된 비키>

<고민의 방>

<난 작가가 될 거야>

<고민의 방>과 <난 작가가 될 거야>는 딸이 안 읽었다고 하지만, 같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우선 딸에게 제목을 하나하나 말해주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딸이 너무 좋아하며 재잘재잘 말하는 것을 제가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간추려 올립니다. 그런데 직접 쓰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한글타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딸의 속도로 글을 올리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메모를 했다가 제가 올리는 형식으로 딸과의 독서토론을 진행하려 합니다. 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이 오랫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시력이 0.7과 0.8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시력 보호에 관심을 더 많이 관심을 쏟아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천사가 된 비키>처럼 잭클린 윌슨 작품들의 공통점은 문체가 간결하고 분위기가 밝다는 것입니다. 그 간결하고 발랄한 분위기 때문에 쉽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시공주니어 베스트 문고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에리히 케스트너나 로알드 달의 작품들만큼 되는 데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내용처럼 삽화도 간결하고 재미있습니다. <천사가 된 비키>는 교통사고로 어이 없이 목숨을 잃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무거운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 표지에는 천사날개를 단 비키가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에 대해 지윤이는 비키가 좋아하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감동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친구를 잃고 힘들어하는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내용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위로 받는 걸 되게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앞으로 지윤이에게 위로를 많이 해 주어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위로란 곧 관심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지윤이 학교 친구가 양쪽 손목을 다쳐서 양팔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학교에 다녔는데, 깁스한 친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의 대상인 것이 은근 부러운 눈치기도 했습니다. 위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니 그러니 아이들이지요.

<리지 입은 지퍼 입>을 보고 딸과 제가 공통적으로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 바로 ‘인형수집’을 해보고 싶다는 지윤이의 생각과, 무엇이든 수집가가 되어 보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저의 생각이 공통된 것입니다. 물론 지윤이는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인형을 수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대신 저는 돌멩이나 풀,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을 수집해 보면 좋겠다고 한 것이 각각 달랐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이가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나오는 데 지윤이와 제가 공통으로 그 부분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윤이는 리지가 할머니를 좋아하게 된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또 엄마가 피자와 스파게티 둘 다 사줄 때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했던 메모를 보니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 P.81~86 (노인과 어린이 간에) 서로를 돌보는 것의 자연스러움--강요나 의무 아닌 이해와 사랑--

아마 지윤이가 할머니와 친해진 게 신기하다고 한 부분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책이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 있어서 글을 올리는 지금 정확한 내용을 확인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의 토론은 작은학교 도서방이나 도서실에서 책을 찾아 들고 해야겠습니다.

평소에 지윤이가 워낙 책을 빨리 읽어서 책을 항상 대충 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수준 낮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 이 책 내용 다 알아? 말해 봐!”

너무 후딱 읽어치우는 것 같아 책 줄거리만 아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이었는데, 이야기 해 보니 핵심도 느끼면서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론 내용이 뭔지 말해보라는 유치한 질문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

<리지 입은 지퍼 입>은 새 가족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엄마 새아빠처럼 새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지퍼를 잠그듯 입을 닫았던 리지가 입을 열고 마음도 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도 새가정을 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는 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잭클린 윌슨의 책들의 장점은 밝고 간결한 문체와 소재의 기발함에 있습니다. 또 하나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이유는 그림이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다는 걸 꼽을 수 있습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의 표지그림엔 여자아이 얼굴에 입 대신 잠긴 지퍼가 달려 있습니다. 다가가서 지퍼 손잡이를 잡고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짓궂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광고용 벽보나 잡지 표지모델의 예쁜 얼굴에 드라큘라 이빨을 그려 넣거나 눈알을 빨갛게 칠해놓고 피를 칠칠 흘리는 처녀귀신으로 만들어 놓은 낙서를 볼 때면 그런 장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참 궁금했습니다. 주로 예쁜 여자 모델들 얼굴에 장난을 치는 것 보면 낙서를 하는 감정이 질투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낙서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과 낙서하기를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초상권을 유린하는 낙서 말고 기품 있는(?) 낙서를 해 보는 것은 아이들 창의력에도 좋습니다. 이야기 나온 김에 기품 있는 낙서가 가능한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천둥치는 밤>입니다. 채색 없이 간결한 선으로만 표현 된 고차원 그림책인데 그냥 보라고 할 때보다 그리고 싶은 대로 책에 덧그려도 좋다고 했더니 우리 딸은 훨씬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덧그림들이 실제 그림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천둥치는 밤>이 미셀 르미유의 책이 아니라 우지윤만의 책으로 거듭난 겁니다. 지금 작가 이름을 보려고 책을 찾았는데 책이 책장에 있지 않고 딸의 서랍에 있습니다. 자신의 공주그림 수첩들 사이에 같이 놔둔 걸 보니 <천둥치는 밤>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나 봅니다.

<미라가 된 고양이>는 아이들 세계에서만 상상 가능한 일을 썼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칭찬 해 줄 만 합니다. 그렇다고 미라가 된 고양이가 걸어 다니며 밤마다 쥐 대신 염소를 잡아먹으며 다닌다는 투의 기괴한 공포를 유발하는 동화로 치닫지 않은 것도 참 다행한 일입니다.

지윤이는 <미라가 된 고양이>에 대해 세 가지 느낌을 이야기 했습니다.

- 미라를 만들려고 향수비누를 함부로 쓴 것이 잘못했다.

- 궁금증은 왜 늙은 고양이가 좋을까 하는 거다.

- 고양이를 미라로 만든 점이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다.

향수비누 운운은 물건을 함부로 쓰는 건 잘못이라는 평소 가르침의 투영일 터이고, 늙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신기한 건 늙어죽도록 정을 주며 키워본 동물이 없으니 그럴 터이고,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라 함은 죽었다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애틋해 함을 칭찬하는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저의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P 18 -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 원초적 그리움

P 49 - 지난 후에 후회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P 119 - 메이블을 무척 사랑한다고 해서 영영 다른 고양이를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란다. - 다시 사랑하고 다시 결혼하는 사라들의 마음?

<고민의 방>은 학교에서 운영되는 고민 들어주기 방인데, 지윤이는 읽지 않았답니다. <난 작가가 될 거야>도 읽지 않았답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다른 제목들에 비해 고루하기 때문에 읽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사가 되었다는 둥 입이 지퍼라는 둥 미라가 됐다는 둥 지윤공주가 좋아하는 ‘파티’ 라는 둥의 톡톡 튀는 제목에 손이 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고민의 방>에 대한 메모 중 지윤이가 지윤이 반에서 ‘홀리’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로 크면 좋겠다는 것과, 맞춤법 시험에 대한 얘기 부분에서는 지승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는 것과, 아이들 속의 에너지나 미움은 분출시켜야 하는 데 그 방법으로 ‘한 길 땅파기’를 시켜봐야겠다고 쓴 것이 눈에 띱니다.

<난 작가가 될 거야>는 고아원에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데, <라스무스와 방랑자>에 나오는 고아원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고, 실제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윤이가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잠옷 파티>입니다. 에이미, 벨라, 클로에, 데이지, 에밀리 이렇게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각자의 생일에 나머지 네 친구를 초대해서 잠옷파티를 여는 내용입니다. 옮긴이 주석으로 잠옷파티란 친구 집에 모여 하룻밤을 지내는 파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 또한 재미있습니다. 커다란 이불 하나를 다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덮고 있습니다. 모두 얼굴만 내놓고 있는데 순하게 아래로 쳐진 눈썹에 웃는 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노오란 뽀글 머리를 한 아이만 위로 올라간 눈썹에 베개도 혼자서만 베고 있습니다. 그린이가 닉 샤렛인데 꽤나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그림입니다.

우리 딸 표현에 ‘클로에 읽는 데 짜증이 나!’ 했는데 바로 그 짜증나는 클로에입니다. 글의 화자가 데이지이고 친구들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축에 속합니다. 그러니 클로에가 여러모로 데이지를 힘들게 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이 데이지 편을 들어주어 다행입니다. 데이지에겐 ‘그저 남달리 특수한 교육을 받아야하는 특별한 사람일 뿐’인 릴리 언니가 있습니다. 데이지생일 잠옷파티는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게 되었습니다. 텐트에서 뜨거운 코코아에 팝콘을 먹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텐트에서 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창피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가수나 좋아하는 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옷이나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유령이야기도 했다면 참 재미있을 겁니다. 도전게임이라는 밝힐 수 없는 놀이도 했다고 하는 데 언젠가는 우리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잠옷파티를 열어주어고 싶습니다. 하리 꿈의 데크에 텐트를 쳐 주고 평소에 안 주는 뜨거운 코코아에 팝콘을 준다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지윤아, 지승아. 마음이 넓고 생각이 아름다운 친구들을 데리고 오렴. 멋진 잠옷파티를 열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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