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두 번째 날
당연히 만날 줄 알았던 성희와 완이와 수현이 모두 학원을 다니느라 하리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지윤이와 지승이가 여간 실망하는 게 아닙니다. 심심하다는 아이들 투정을 듣다가 생각했습니다. ‘작은학교에 가장 중요한 학생 둘이 있는데 내가 게으르면 안 되지. 지윤 지승이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알찬 방학이 되게 해야겠다.’
하리하우스라는 환경에서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자연 속에서 지구력을 키우고 육체 노동을 통한 성취감 느끼기’로 정했습니다. 하루를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되, 오전엔 수학과 영어 관련 학습을 하고 점심식사 후의 시간엔 야외활동을 주로 하기로 했습니다. 정오를 지나야 공기도 데워지고 햇볕도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기 때문에 야외활동은 점심 후에가 좋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뒷밭에 있는 나무를 1층 난롯가로 옮기기입니다. 나무를 다 나를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천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윤이가 ‘카자니아’인지 어딘지를 가서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한 것이 기억나서 ‘돈 내고 돈 벌기 경험’ 말고 일하고 진짜로 돈벌 기회를 주겠다 한 것입니다. 가끔 은행 한 바구니 주우면 오백 원 하는 식으로 일감을 주긴 했었는데 이번처럼 천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가며 나무를 나르게 하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맘 놓고 난롯불 피워보기를 시키기 위한 작전입니다. 맘껏 난롯불을 피우려면 땔감을 많이 장만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년 전 호두나무 벤 것이 뒷밭에 있는데 늘 필요한 만큼만 갖다 쓰다보니 넉넉히 피울 수 없었습니다. 또 눈에 젖으면 연기가 많이 나서 1층이 온통 너구리 잡는 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아이들이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나무를 몽땅 옮겨놓고 겨울을 나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없고 해가 좋아 점심 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바퀴가 하나인 구루마를 이용해 나무를 날랐고 지윤이와 지승이는 나무토막을 들고 1층 문으로 가서 끈이 달린 장난감 자동차에 나무를 옮겨 담고 장작더미까지 가서 나무를 내려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호두나무를 벤 지 한참 지난 터라 좀 굵은 가지엔 못 먹는 버섯이 많이 피어있습니다. 지윤이는 그게 독버섯이라며 더럽다고 버섯이 핀 나무는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의 경험이란 노동을 통한 놀이일 때 더 흥겹고 의욕도 생기는 지라 재미있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나를 때 보다 속도도 빠르고 일맛도 났습니다.
호두나무를 옮기다보니 아이들 2학년 여름에 털두꺼비 하늘소 잡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른 봄에 베어둔 호두나무 덕분이었습니다. 더듬이가 길고 몸이 방패모양처럼 생겼는데 보는 순간 이상하게 하늘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소 하면 장수하늘소가 생각나고 보호종이란 말까지 같이 떠올랐습니다. 보호종일 만큼 희귀한 것을 잡았다면 대단한 일이긴 한데, 보호종이면 다시 돌려보내줘야 하는 의무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앞서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바로 놓아주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는 중에 그 진귀한 곤충이 또 눈에 띄는 겁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아이들도 한두 마리씩 잡았습니다. 넓적한 머위 잎 사이를 들추어 호두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곤충을 찾아 살살 가서 탁 잡는 손맛이 좋았습니다. 찾으면 더 있을 듯하여 지승에게 물었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여러 마리가 있는 걸 보니 천연기념물은 아닌 것 같아 잡는 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지승아, 더 잡을까?”
그랬더니 지승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이거면 충분해요.”
내가 참 욕심쟁이구나 생각하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 할 줄 아는 아이. 욕심쟁이 엄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더 잡을까 물어보는 엄마에게 만족하는 자세를 가르쳐 준 아들의 ‘충분해요,’가 지금도 엄마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맴돕니다. 만족을 아는 지승이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나중에 곤충도감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잡았던 곤충이 하늘소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보호종인 장수하늘소는 아니고 털두꺼비하늘소였습니다. 주로 갓 베어낸 호두나무에 알을 낳는다는 설명을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어미하늘소는 어떻게 우리가 호두나무 벤 것을 알고 와서 알을 낳았을까요. 아마도 털두꺼비하늘소는 느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은 모르는 호두나무 수액의 향기를. 그 해 여름에만 머위 밭에 뒹구는 호두나무도막에서 털두꺼비하늘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엔 호두나무 등걸에서 자라는 버섯이 보였습니다. 짙은 밤색 줄기에 자주색에 가까운 색을 띤 갓을 쓴 버섯을. 그리고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껍질이 삭아 훌렁 벗겨지는 뼈가 하얀 호두나무 등걸을 나르고 있습니다. 바짝 말려 땔감으로 쓰려고.
호두나무 등걸이 타는 겨울 난로 앞에서 나는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충분조건을 생각하며 겸허한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점심 전에 시작한 나무 옮기기가 점심때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 끝에 먹는 간소한 반찬의 밥. 얼른 누룽지를 끓여서 집에서 먹을까 마당 평상에서 먹을까를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평상에서 먹겠다하여 둥근 쟁반에 누룽지 냄비와 반찬을 담아 내갔습니다. 아이들은 고추장에 박은 머위장아찌로 맛있게 먹었고 나는 삭혀서 된장에 무친 고추장아찌로 뚝딱 한그릇 먹었습니다.
그날 나른 넉넉한 땔감으로 밤마다 난로를 피우고 놀았습니다. 난로에 콩이며 땅콩을 구워가며 행복한 추억을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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