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직접 만드신 부뚜막과 가마솥에서 고사리 삶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 파격의 미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나온 수필 한 편에 대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동양화의 난 (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린 선이지만 꼿꼿하게 위로 뻗은 난초 잎들 사이에서 휘영청 구부러진 튀는 난 잎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래로 휘어진 잎이 풍기는 미학을 수필의 작가는 ‘파격 (破格)’ 이라 하였다.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해야 하는 나의 일상에서 가끔 화두처럼 떠오르는 말 ‘파격의 미’.
그저 가방 들고 학교나 잘 다니면 단 줄 알았던 시절에 느꼈던 파격 -격식을 깬다- 의 미학이 오늘 인생 고개를 몇 번 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의 모습인 현재의 내가 느끼는 미학과 어찌 같으랴. 여고시절 생각했던 파격은 어쩌면 반항의 결정이었다면 지금 생각하는 파격은 연륜의 담대함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어찌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지금도 나의 실상은 파격의 담대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내 안에 어리석음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정 어머니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뗘올리며 난 인생의 절도를 제대로 아는 분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 바로 그 ‘파격의 미’를 이야기 하려 한다.
셋째 오라보니 내외와 오라버니 지기 몇분이 친정집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오라버니가 구상중인 ‘학운산방’ 터도 둘러볼 겸 한 마을에 네 가구만 사는 동네 구경도 할 겸 봄바람도 쏘일 겸 짜인 일정이었으리라.
손님치레가 어머니차지인 걸 아는 까닭에 오빠 내외는 번차례로 전화를 걸어 삼계탕 준비를 해 갈 것이니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마시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런데도 어머닌 막무가내로 준비를 하셨다. 장을 보시고 순두부 해 주신다고 두부콩을 담그고 들에서 봄나물을 캐 오셨다.
나도 어머니 힘드실 걸 염려하여
“ 엄마, 엄마가 힘들게 준비해 주시면 젊은 사람들이 마음이 안 편해요. 그냥 와서 직접 해 먹게 놔두세요.”
했다.
내가 잔소리 삼아 핀잔 삼아 -나이 드니 자식들이 부모 핀잔 할 일이 많아지는 데 그런 사이를 나는 사랑한다. -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으신다. 이유는 ‘그래도 그건 게 아니여.‘ 였다.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이 시커먼 손으로 해 주는 거 먹고 가는 게 다 추억에 남을 일이여.' 하셨다. 자식들은 현재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여 쉬시라 하건만 어머니는 먼 훗날의 자식들 가슴에 남을 추억을 생각하며 뭐든 해 주시려 하신 거였다. 지금의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해 주실 수 있는 건 ‘추억 만들기’ 다.
굳이 고집대로 하시는 게 못 마땅해서 퉁퉁거리다가 안되겠어서 나물 데치는 일을 거들었다. 그런데 냉이와 나물치 사이에 씀바귀가 하나 섞여 있었다
“엄마! 엄마, 이건 씀바귄데? 쓰잖아요!”
“ 아까워서 그냥 뒀어. 누가 먹으믄 뭔 나물이 쓰네 하겠지 뭐.”
어머닌 아무렇지도 않게 슬몃 웃으시기까지 했다. 아들의 손님이라고 정성으로 준비하시더니 정작 도시사람은 싫어할 쓴 나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놓고도 태연하신 것.
순간 내 마음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 바로 이거다. 내 어머님의 파격 (破格) !
냉이 사이에 묻어온 씀바귀 한 뿌리를 어여쁘게 여기고 쓴 나물 한 뿌리를 향기로운 나물 사이에 거리낌 없이 섞을 수 있는 여유. 어머니의 그런 여유는 맵시있게 쪽쪽 뻗은 난초잎들 사이에 휘영청 떨구어 논 난초의 파격이었다. 주름진 얼굴에 언뜻 개구지게 슬몃 웃는 웃음마저도 세월의 덮개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여유로운 파격인 것이다.
난 오라버니나 형님 누구에게서도 쓴 나물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자연산 씀바귀의 그 쌉싸래한 맛을 누가 맛보았을지 생각하면 나도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누구든 그 씀바귀 한 뿌리에 담겨 있는 우리 어머니의 풍류를 알까 싶어 걱정도 된다.
어머니의 “ ‘나물이 쓰구나.’ 하겠지 뭐.” 하시던 말씀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나도 저런 여유로움을 부릴 수 있을까? 하는 떨림.
내가 삶의 어려움을 겪으며 - 그래서 나를 국화 옆에서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누이라 표현했다. 이제야 그 시행의 의미가 절절히 와 닿건만. 여고생들에게 그 시를 줄줄 외우라고 하는 건 그 시를 느끼라기보다는 먼 훗날 그 시를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시를 떠올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손바닥 때려가며 외우라고 할만한 시이긴 하다. - 생각하는 건 바로 내 어머니다.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되었어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부지런하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지혜롭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사람을 부릴 줄 알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향학열이 있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
내가 귀감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내 어머님이 계셔서 인생의 처연함을 아는 분의 ‘달관의 미소’ 그 개구진 미소에서 파격의 미를 온 마음으로 느꼈다.
내가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애써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머니가 주신 사랑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리라.
그래서 나는 잘 살 것이다. ‘작은 학교 이야기’의 좋은 선생님으로, 작은 학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한 모습으로 그리고 작은 학교의 첫 학생들인 나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파격의 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어미의 모습으로 잘 살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의 ‘작은 학교 이야기’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리모델링 현장에서 애쓰는 나의 막내 오라버니와 나의 물질적 후원자인 나의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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