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자가 왔습니다. 서울서 보낸 택배가 오늘 도착예정이란 문자였습니다. 방학 때 마다 하리로 물품을 보내 주는 고마운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아이들 이모입니다 나와의 인연으로 아이들의 이모가 된 가짜 이모(?)들이 아니고 혈연으로 맺어진 아이들의 진짜이모. 기다렸던 택배가 도착하자 지윤이가 먼저 달려들어 포장을 뜯습니다. 분유, 김치통에 넣어 보낸 싱싱한 느타리버섯. 알이 굵은 사과 그리고 옷 봉지. 지윤이가 기대한 건 그 옷 봉지입니다. 싸고 예쁜 옷을 보고 지윤이가 생각나면 사고 지승이가 생각나면 사고, 체구 작은 동생이 생각나면 사고 가끔은 애들 아빠 옷도 사서 보냅니다. 애들 키우느라 바쁜 나를 배려해 동네 전철역까지 들어다 주고 돌아서기도 하고 가끔은 이렇게 택배로 보내줍니다. 특히 하리에 있을 때는 장보러 가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여 단호박이나 양파 사과처럼 저장성 있는 농산물이나 자장 소스 같은 공산품도 택배로 보내줍니다. 이번에는 분유를 보내주었습니다. 추울 때 따뜻하게 한잔씩 타 마시라고 보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특히 반가운 건 거실용 슬리퍼였습니다. 슬리퍼가 다 닳아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어떻게 알고 딱 네 켤레를 보내온 겁니다. 이런 게 이심전심이겠거니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턴 거의 언니가 사주는 옷을 입으며 성장했습니다. 아이 두을 둔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언니는 내 옷을ㄹ 사 줍니다. 많이 받아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대상. 엄마 같은 ‘언니’입니다.  잘 먹고 잘 입겠다는 고맙다는 감사의인사면 되는 친정 언니로 보터 받는 혜택.

잘 받았다는 전화를 하는 동안 잔기침을 많이 하던 언니를 위해 은행을 보내주어야겠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마음은 기쁜데, 날은 춥기만 해서 은행 밭에 나갈 엄두를 못 내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밤에 난로에 불을 피워보라고 아이들을 먼전 내려보냈습니다. 불을 저희끼리 피워보는 기회를 주려는 겁니다. 성냥은 없고 라이터는 몇 번 켜다보면 쇠 부분이 달구어져 오히려 위험하겠다 싶어 야외용 버너를 이용해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버너의 불꽃을 난로 안의 불쏘시개로 옮기기 위해 종이 막대를 사용합니다.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쓰고 나면 그 종이를 세로로 서너 번 정도 접어 양 끝을 잡고 빨래 짜듯이 비틉니다. 그러면 꽈배기처럼 꼬인 종이 막대가 되는데 불꽃을 옮기기에 좋습니다. 고구마 중에서 성한 것을 골라 호일에  싸서 들고 내려갔습니다. 둘이 난로 안에 나무를 잔뜩 넣어놓고 연신 종이에 불을 붙여 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 밑에서부터 불이 타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쌓인 나뭇단 위에 불붙은 종이를 던지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러니 종이만 호로록 타 버리고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불은 아래서 위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난로 속의 나무들을 들추어 움집모양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불붙은 종이를 넣었습니다. 이론대로 했지만 불이 나무로 잘 옮겨 붙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번갈아가며 종이 불쏘시개를 한참 태운 후 불이 나무에 옮겨 붙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서 연기가 심하게 났습니다. 난로 문을 닫으면 난로 안이 궁금해서 문을 열게 되고 문을 열면 불꽃과 연기가 확 번져나왔습니다 . 눈이 맵고 코도 맵지만 빨간 불이 널름거리는 걸 보면 ‘와!’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불이 완전히 살아난 다음엔 굻은 토막을 몇 개 넣었습니다. 난로는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린 고구마를 먹고 올라와 먼지 묻은 바지와 매운 내 밴 잠바를 현관에 벗어놓고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난로의 불꽃에 대한 기억이 절정에 대한 이미지로 살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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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나서기엔 좀 늦은 시간이긴 했습니다. 겨울 오후 4시는 곧 해가 질 거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하루를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리하우스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게 하려면 내가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얼른 나서야 한다고 채근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옛길을 통해 저수지에 올랐다가 상리 바람개비 마을 마당에 가서 그네를 타고 놀다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네를 타면서 정면으로 일몰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날 해가 지는 걸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지윤이는 자신이 한국화 시간에 그림을 그린 헝겊가방을 챙겨들고 나섭니다. 전날부터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를 그네에 앉아서 계속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먼 길에 무겁고 또 겨울이라 그네 타며 책을 보는 게  추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할 수 없이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들고 간다는 약속을 받고서 허락했습니다. 결국 한권도 아니고 네 권이나 되는 책을 넣고 출발합니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후 집과 집을 연결했을 것이고 그 길이 단단해져서 마을길이 되었을 겁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마을길도 집과 집을 징검다리삼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옛길을 이용해 상리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아닌 들러 가는 길입니다. 대문과 대문을 이어주는 길.

그러나 거의 모든 집에 자가용이 있는 요즘에는 걸어 볼 기회가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리와 하리를 잇는 자동찻길이 옛길보다 높아서 하리를 갈 땐 항상 옛길을  내려다보며 다녔습니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 마을길을 걸어서 저수지까지가 보리라 마음먹곤 했습니다. 드디어 오는 그 계획을 실천해 보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하리 옛길을 통해 저수지를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한이가 왔을 때 옛길을 따라 저수지까지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제법 되었지만 길 양 옆으로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을 보면 그 위에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드러나 마음 뿐 나는 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걷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승이가 뒤쳐져있다 묻습니다. 인터넷 검색 할 때 ‘색’ 자가 ‘섹“인지 ’색‘인지를. ’아이 색‘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혼자 뒤쳐져오며 내내 눈에 뭐라고 적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하리하우스 검색‘이라고 쓰고 하리하우스 가는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는 겁니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한참 뒤쳐진 아들을 보고 빨리 오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쓰고 옵니다. 그런 지승이를 바라봅니다. 지승이는 눈 위에 글자를 쓰고 있지만, 내 눈에는 가슴에 하리하우스를 새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행복한 추억하나 새기면 살면서 부닥칠 시련을 이겨 낼 힘도 그만큼 많이 축적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아들을 기다리다 걷다 하였습니다.

시골집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집집마다 있는 ‘개’였습니다. 어떤 집이든 우리가 가까이 간다 싶어지면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줄에 매여 있어 그 길이가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개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개’ 였기 때문입니다. 때론 아이들이 개보다 더 요란하게 개를 놀려대며 짖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이 목청껏 뽑아내는 ‘멍멍’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한 50분을 걸어서 저수지 방죽에 올랐습니다. 저수지가 마을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아래서 방죽을 올려다보면 가파른 언덕 윗부분을 뚝 잘라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방죽의 가지런한 선 위로 겨울 하늘이 보입니다.

방죽 언덕을 오르는데 지윤이가 발이 시리다고 했습니다. 지윤이 털 부츠를 내가 신고 있어서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신었던 부츠를 한 짝 벗어주고 지윤이 벗어주는 운동화를 한 짝 신었습니다. 또 부츠 한 짝을 벗어주고 운동화로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렇게 신발을 바꿔 신으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여 감회가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지윤이 털 부츠는 내 발에 불편하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꼭 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이는 비슷해도 아이발과  어른발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지윤이가 불편하지 않냐고 몇 번 묻는 걸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바꿔 신을 때 지윤이 들고 있던 가방을 잠깐 들었는데 묵직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데 진작 엄마를 주기 그랬냐고 했더니 끝까지 들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윤이 기특하고  또 미안하고 안됐어서 가방을 내가 들었습니다. 속으로 딸이 평생을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길 빌었습니다.

방죽에 올라 바라본 저수지는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두세 군데 빙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빙어 낚시 하는 사람들 곁에 가서 눈인사도하고 빙어구경도 했을 텐데 해질녘이라 곧장 상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네에 앉아 빨리 해리포터를 읽고 싶어 하는 지윤이와 그네를 타고 싶은 지승이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설 때 보다 날이 추웠습니다. 춥거나 말거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마당을 떠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6시쯤 되었습니다. 오후 두 시간의 산책으로 하루가 뿌듯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우리 없는 사이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쌀국수입니다. 소정이네가 보내준 것입니다. 쌀국수 다 떨어지기 전에 놀러 와서 잔치국수 말아 먹자는 문자를 보내고 기쁘게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부지런함이 주는 개운함으로 작은 학교의 세 번째 날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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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우스 2010 여름방학 현곡리 냇가 물놀이 중인  진현이

             [사진]작은 학교  2010 여름방학 현곡리 냇가 물놀이 중인  진현이  - 1200x803


진현이의 에너지 - 적응력과 친화력, 그리고 호연지기

처음 진현이가 부모님과 떨어져서 하리하우스에 한 일주일 쯤 갈 수 있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그 결정이 기뻤습니다. 그 결정엔 친구에 대한 사랑과 나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더 좋았습니다.

하리로 가는 길. 진현이는 진슬이를 처음 보았는데도 “형, 형”하며 잘 따랐습니다. 지윤이와 지승이와 진슬이는 오래 본 사이니 괜찮은데 진현이는 진슬이를 처음 만나는 거라 어색해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정 반대의 결과였습니다. 오히려 진현이와 진슬이가 오래 알던 사이처럼 친근해 보이고 지승이는 겉도는 느낌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 저것이 진현이의 힘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거리낌 없이 적응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내가 몰랐던 진현이의 힘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학업성적이 골고루 우수하고 학교생활에서 뒤지지 않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게하고, 그 선택한 일의 결과를 같이 책임져 주신다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진현이는 언제나 당당하고 그 당당함이 어떤 환경에서든 주도적으로 적응하게 하는 힘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할 때 내가 지윤 지승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고 가르쳐온 것이 아이들을 위축되게 만들지나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택한 결과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지윤 지승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줄곧 해왔으니 교육적으로 책임감을 갖게 한 점도 있겠지만, 아이를 위축되게 하기도 했겠단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하였습니다. 앞으론 한 마디를 더 붙여야 겠습니다. ‘너희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 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엄마 아빠도 같이 책임져 줄게.’ 라고.

진현이가 보여준 모습 중에 가장 친근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준 것입니다. 사실 지윤 학교에서 만나 이미 ‘아주머니’로 익숙해진 관계인지라 진현이에게 자칭 뭐라고 해야할까가 고민이었습니다. 보통 여성공동체의 통칭인 ‘이모’라는 말도 약간 어색하고,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이처럼 ‘선생님’이라 하기에도 참 생뚱맞고. 그런데 ‘엄마!’ ‘이모!’ ‘아줌마!’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 사이로 어느 순간 ‘어머니!’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아마도 진현이 아버님께서 ‘지윤이 어머니’의 준말이라 교육해서 보내셨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예상치 못했던 ‘어머니’란 호칭이 참 듣기 좋은 겁니다. 자식이 장성하여 집에 친구를 데려 왔을 때 보통 ‘어머니!’라 부릅니다. 그리고 자식의 친구가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더불어 어리게만 보이던 내 자식이 저렇게 의젓하게 컸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불러주는 ‘어머니!’란 호칭에 그 뿌듯함을 미리 맛보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라 부르기 좀 쑥스러울 것도 같았는데, 하리에 있는 내내 ‘어머니, 어머니!’하던 진현이의 친화력. 그것이 진현이의 또 하나의 에너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슬이 했던 말 때문에 어머니란 호칭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진현이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자 진슬이 왈, ‘어머니는 보통 결혼해서 그렇게 부르는 건데...’ ㅋ ㅋ

한 일주일가량 떨어져 있다가 진현이를 만난 진현 부모님이 가장 놀란 일이 진현이 목소리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진현이 목소리가 아니라 완전 딴 아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용조용하고 얌전한 진현이 속에 누각에 올라 군을 지휘하는 장군의 기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겐 버럭버럭 소리도 잘 지르고, 징을 쳐가며 서바이벌 게임에서 진두지휘도 잘 하고, 시골길 걷기에서 지윤이가 가파른 길에서 쩔쩔 매자 ‘지윤아! 거기 있어. 내가 구하러 갈게~~~’ 하고 두 번 세 번 미끄러지면서도 결국 지윤이 있는 데로 가기도 하고.... 외갓집 마을 수로에서 미끄러져 허벅지 뒤쪽에 제법 많이 긁힌 상처가 났습니다. 아플 것 같았는데 본인은 괜찮다는 겁니다. 여리디 여러 보이는 진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버티는 장군의 기상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체력 보강만 한다면 진현인 정말 장군감입니다.^^

낮에 한참 더워 바깥 활동이 어려운 시간에 수학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진현이가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보고 지윤이와 지승이가 신기해하고, 한편으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승인 진현이와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문제 푸는 시간에 어깃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진현이는 수학문제를 마치 국어 문제 풀듯이 줄줄이 읽고 끄적끄적 하고 풀어내는데, 지윤 지승에겐 한 문제 한 문제가 난관이었으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어려워 할 거라고 예상했던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친구를 본 건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경쟁상대의 눈높이가 올라간 것입니다. 지윤에게 지승이가 지승에게 지윤이가 경쟁 상대였는데, 눈높이를 확 높게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 여름 방학을 함께 보낸 3학년 사총사 진현 지승 지윤 성희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서로를 독려하고 키우는 아름다운 관계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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