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납니다. 얼음낚시 하는 곳에 구경 갔다가 예닐곱 된 사내아이가 아빠가 잡아 논 빙어를 초장 찍어 먹던 일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니 아이가 내 코에 대고 ‘하~’합니다. 아이 입김의 훈기와 풍겨오던 비릿한 빙어 냄새. 아이 엄마는 라면을 끓인다며 얼음 밖으로 나가고 아빠와 아이는 빙어를 잡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섞고 얼음낚시 이야기도 듣고 하는데 지윤이가 자꾸 빙어에 관심을 보입니다. 먹어보고 싶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는 투명한 통 안에서 헤엄치는 빙어 하나를 나무젓가락으로 잡아 초장을 찍어 지윤에게 주었습니다. 호록 입에 넣고 바작바작 씹어 먹는 지윤이를 보고 으악!~ 놀랐습니다. ‘에구궁 겁도 없이 살아있는 빙어를 먹다니!’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중에 맛이 어떠냐고 했더니 맛있다 합니다. 지윤의 입에서도 아마 비릿한 빙어 냄새가 났을 겁니다. 크면 아빠와 지윤인 살아있는 빙어를 먹고 나와 지승인 빙어 튀김을 먹을 것 같습니다. 근데 지윤이 알까요. 빙어 입에 구더기가 한 마리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걸...
그 이후로 지윤이와 지승이는 가끔 빙어낚시 이야기를 합니다. 도구도 없는 데다 빙어낚시는 인내를 갖고 시간과 추위를 견뎌야 하는데, 시간과 추위, 그 둘을 다 견디며 빙어낚시를 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빙어낚시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할만 합니다. 게다가 빙어낚시 얼음판에서 라면을 먹는 일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일입니다.
그 맛있는 라면을 생각하며 진슬이와 지윤 지승을 데리고 빙어낚시 하는 저수지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 번 지윤 지승을 데리고 마을 옛길을 따라 가 본 그 저수지에 가서 맛있는 카레국수를 끓여먹고 오기로 했습니다. 라면도 좋지만 뜨끈뜨끈한 카레국수도 좋을 것 같아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소 오줌보’라는 이름의 풀씨를 따서 날렸습니다. 아이들이 씨앗주머니를 벌리자, 주머니 안에 하얗게 들어있던 ‘소 오줌보’ 씨앗은 눈처럼, 낙하산처럼 하얗게 날아갔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씨앗주머니도 땄는데,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씨앗주머니 모습이 마치 초롱불 모양이라고 하며 들고 다녔습니다. 저수지에서 타고 놀 요량으로 들고 가던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고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수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수지에 도착해보니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서너 팀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은 중 3 되는 딸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갖고 계신 여유분 낚싯대로 아이들이 낚시를 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30센티미터 쯤는 된다는 얼음은 전 날 사용했던 자리라도 얼음이 다시 얼어 있어 다시 얼음을 깨야 했습니다. 얼음을 깨고 구멍 안에 있는 잔 얼음들은 뜰채로 떠내야 했습니다. 구더기는 장갑을 낀 손으로 끼울 수 없어서 맨손으로 끼워주셨습니다. 얼음위의 바람은 길을 걸을 때 느끼던 바람과 달랐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아이들은 얼음낚시를 할 채비를 다 갖춰주셨는데도 낚싯대를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써 마련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해서 카레국수를 끓여서 대접하려 했습니다.
휴대용 가스를 아무리 흔들어도 버너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가스를 옷 속에 품었다 꺼내라고 가르쳐 주셔서 그리 했더니 겨우 불이 붙었습니다. 사방서 겨울바람 불어오는 저수지 위에서 라면을 끓이려면 휴대용 가스렌지를 넣을 만한 박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아이들 셋과 내가 웅크리고 앉아 바람을 막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워낙 추우니까 열이 냄비로 전달되지 못하고 흩어져서 한 참을 기다렸는데도 냄비 안의 물은 미지근해 지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갖고 간 냄비가 삼중바닥 냄비라 열이 금방 전해지지 않아서 물을 데우는 데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엔 넉넉한 크기의 양은냄비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은 안 끓고 발은 시리고, 배는 고프고. 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습니다. 두시가 넘은 시간이라 배가 고픈데다 추위를 이기느라 열량을 다 소비했는지 지승이는 입술을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순간 빨리 판단하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카레국수를 끓여서 먹이면 추위를 이길까 아님 빨리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게 현명한걸까. 막 냄비 바닥에 거품 생기기 시작한 걸 과감히 버리고 짐을 챙겼습니다. 진슬이와 지윤이에게 지승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빨리 집에 가는 게 더 낫겠다고 했더니 따랐습니다. 카레국수 대접은커녕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얼음판위를 떠났습니다. 아저씨께서 내년에 쓰라며 낚싯대 하나를 돌돌 말아주셨습니다. 저수지 얼음판에서 나와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걸어서 열이 좀 나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지승이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내 긴 잠바를 벗어주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지승이가 사양도 하지 않고 벗어주는 잠바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잠바 길이가 발끝까지 닿는지라 빨리 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승이에게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을 위로 하면 길이를 짧게 할 수 있어서 걷기에 편할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잠바를 벗은 터라 나도 추웠으므로 빨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놀며 놀며 한 50분 걸려 갔던 길을 25분 정도에 되돌아 왔습니다. 내리막이라 속도가 붙는데다 빨리 움직여야 열이 나서 안 춥다는 말에 모두 뛰듯이 걸은 결과입니다. 지승이도 빨리 걸어서 체온을 회복하자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떡집에서 막 만든 따끈한 가래떡을 한 상자 들고 오셨습니다. 아이들 주라고 맞추신 겁니다. 아이들은 카레국수가 끓기 전 길죽한 가래떡 한 줄 씩을 조청 찍어 먹어치웠습니다. 그래도 카레국수 먹을 자리가 있다 해서 끓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몸이 얼었었기 때문에 오후엔 집안에서 따뜻하게 있어야 감기에 안 걸린다고 했더니 모두 잘 따랐습니다. 대신 황토방에서 진슬인 지윤이와 지승이에게 드럼 리듬을 가르치고, 지윤지승은 진슬에게 사물 리듬을 가르치며 놀았습니다. 서로 배운 것을 연주해주면 저녁에 맛있는 소시지구이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드럼과 북의 리듬을 교환하며 오후 해를 보냈습니다.
밤에 1층에 난로를 피우고 소시지와 어묵을 꼬치에 꿰어 구워먹었습니다. 땅콩도 구워서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놀았습니다. 여름엔 이렇게 노래 부르고 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졸리고 치칠 때 까지 뛰어다니다 잠자리에 들어서야 한가하니까요. 상대적으로 겨울엔 모여앉아 얘기하고 노래 부르고 놀 일이 많습니다. 해도 일찍 지는데다 야외 활동량도 줄어서 말하고 책 읽는 데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생기는 까닭입니다. 겨울방학에 공기를 배워가는 게 진슬이 목표인데 하는 말,
“이모, 저 1탄 깼어요!”
게임에 익숙하다 보니 ‘공기 한 알 성공했어요.’ 하는 게 아니라 ‘깼다’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자연스런 겁니다. 진슬이나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익숙하다기 보단 아이들 사회에서 깼다는 표현이 더 실감나게 된 사회가 됐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음치라던 진슬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겁니다. 음정 박자 맞춰가며 자신 있게 큰소리로. 그런데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하는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더 시켜도 안 부르는 겁니다. 자기는 이 노래만 배웠다면서.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는 곡은 부르는 데 다른 곡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연습을 많이 하면 연습 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죽어라 공부연습을 시키나봅니다. 자신감 생기라고. 책상머리에 앉혀놓고 죽어라 공부연습 시키는 마음을 이해 할 만 합니다. 지승이도 성악을 배우기 전에는 통 노래를 안했습니다. 성악을 배우고 ‘난 성악을 배웠다. 그래서 노래를 잘 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지 지금은 노래를 시키면 잘 합니다. 연습해 놓은 것에 대한 자신감이 지승이를 노래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진슬이와 지승이 지윤이가 얼음판 위에서 춥고 배고픈 걸 견뎌냈던 기억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자신감으로 살아나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진슬이와 함께한 둘째 날도 진슬이가 읽어주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들으며 평온한 잠을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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