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2/01 홍합에 대한 푸짐한 추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
작은학교에서 만드는 먹을거리의 원칙은 간단히 조리 할 것,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을 것, 한국적인 맛을 찾아 갈 것, 그리고 낭만적인 것입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 음식에 관한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면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특히 식객이 불러 일으킨 감정은 음식에 대한 낭만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70년대의 낭만을 찾아 갑니다.


홍합에 대한 푸짐한 추억

“홍합이요, 홍합. 싱싱한 여수 홍합이 한 바구니 한 바구니 2천원. 홍합이요 홍하압.”

그래 홍합 한 바구니 2천원으로 푸집한 저녁을 만들 요량을 했다가 결국 6천원을 쓰게 되었다. 원인은 ‘자연산’의 망에 걸린 것.
‘싱싱한가’ 생각하며 리어카로 다가가서 홍합을 살폈다. 그런데 먼저 사신 아주머니가 자리를 안 떠나며 내게

“저쪽 거 사요. 저쪽 거. 그게 자연산이라 좋대. 비싸도 저거 사요.”

하고 말을 건네셨다.

“자연산이요?”

하고 관심을 보이자 홍합 파는 아저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건 양식이고 이건 자연산인데, 맛이 틀려요. 이건 속이 꽉 찼다니까. 봐요. 떨이로 싸게 줄 테니 이거 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를 묻자 자연산은 해녀들이 직접 딴 거란다. 내가 보기에도 자연산은 양식 홍합과 달랐다. 양식은 껍질이 얇고 홍합에 불순물이 거의 붙어있지 않고 표면의 색이 거의 일정하게 검은색에 가까웠다. 반면 자연산 홍합엔 작은 소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도 있었고 껍질의 색도 흰 색을 띄는 부분부터 짙은 고동색까지 다양하였다. 투박하고 거친 외모, 육중한 무게. 지금까지 먹던 홍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서 결국 자연산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자연산을 꼭 사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왜 마음이 자연산 홍합으로 기울었는지 모르겠다. 온통 인공투성이의 세상에 살다보니 ‘자연’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혹 넘어간 것 같다.
저녁 밥상 차리는 시간에 딸이 와서 막 담아놓은 홍합그릇을 보더니

“야, 홍합이다. 홍합!”

하고 아들을 불러냈다.
보통때 같으면 한 그릇을 홀랑 까먹고 한 그릇 더 달래서 먹는 아이들이 통 속도가 붙지 않는다. 야들야들 부드러운 양식 홍합에 입맛이 들은 아이들에겐 쫄깃쫄깃을 넘어 질긴 느낌까지 주는 자연산 홍합이 맞지 않는가 보다.

그래도 딸은 양식 홍합에선 볼 수 없었던 어린 게를 먹는 재미에 좋아라 한다. 홍합이 잡아먹었던 게가 소화되지 않고 있다가 홍합이 익어서 입을 벌리자 통째로 나온 거다. 딸이 홍합 속  에 있는 게를 먹는 것은 맛 보단 일종의 이벤트였던 것 같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홍합을 요리할 때에 오늘의 추억이 떠오르리라 생각하니 나도 흐뭇해졌다.

그런데 아들은 게를 잡아먹고 있는 홍합이 비위에 맞지 않았나 보다. 홍합도 평소보다 덜 먹고 게는 먹으면 게가 죽을 때 아플테니까 그냥 상자에 넣어 두잔다.  (혹시 사과를 입에 물은 백설공주가 누워있던 관을 생각했을까?) 아무튼 약육강식의 먹이사슬구조가 딸에겐 특별한 맛의 경험이 되고 아들에겐 죽음과 아픔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게를 먹지 말고 상자에 넣어두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결국 저희들 새끼손톱만한 게 두 마리를, 그것도 삶아진 게 두 마리를 대접에 물을 담고 동동 띄워놓았다. 이미 죽은 새끼 게이지만 죽는 것과 아픈 것을 면해주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홍합은 뜨끈 뜨끈한 국물 속에서 입을 쫙 벌리고 있는 홍합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속의 홍합은 죽어서 아프다거나 슬픈 홍합이 아니라 맛있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홍합니다. 살은 감칠맛 나고 국물은 따끈하고 껍질로는 국물을 떠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홍합탕인 것이다.

사면이 다 육지인 첩첩산골 단양에서 살던 아이가 홍합을 먹어 본 것은 70년대 서울 풍경이 준 선물이었다. 그 당시엔 등하교 길에 사먹는 군것질 거리로 홍합이 있었다. 홍합만이 아니라 멍게가 제철일 때는 멍게를 까서 팔기도 했었다. 옷핀으로 찔러 먹던 멍게의 맛은 홍합의 맛과 함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이야 포장마차 서비스 안주쯤으로 인식되지만, 70년대 서울엔 길거리 리어카에서 홍합탕이 아이들 군것질거리로 팔리던 시절이니 지금보다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아이들의 군것질 거리에 들어있는 수 많은 향료와 색소를 비롯한 첨가제가 홍합탕엔 없었다. 그저 파 한 두 쪽이 떠 다녔을 뿐이니 건강한 먹거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내가 먹은 홍합그릇이 어떤 세척과정을 거쳐 다음 사람에게 건네졌을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나는 많이 사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홍합에 대한 추억이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이젠 나의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만큼 맘껏 먹으라고 할 수 있으니 기쁘고, 즐겁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내 아이들도 오늘의 이 저녁으로 홍합에 대한 행복한 추억하나 더 생겼으면 좋겠다.

-핵심-
1. 국물을 뜰 때 파를 송송 썰어 띄우면 파 향이 더해져서 좋다. 마치 보글 보글 끓는 곰탕에 파를 띄우듯이.

2. 홍합에서 간이 나오므로 소금을 따로 넣지 않는다.

3. 그릇에 각각 뜨지 말고 상 한가운데 냄비째  놓고 팔 걷어 붙이고 하나씩 까먹는 홍합잔치도 좋은데, 우아하고 깔끔한 사람들은 싫다더라. 취향대로 맛있게 드시길.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