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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007년 2월 4일 소구리 문화지도 국가별 방문자 도표


2007년 2월 4일 소구리 문화지도 국가별 방문자 지도중첩 표시이다. 소구리 문화지도가 아직은 한국어 서비스에 머무르다 보니 지도에서 보는 방문자들은 거의 재외동포일 가능성이 많다. 재외 동포가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교포들이 많이 방문한다. 특히 미국에서 방문하는 지역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LA한인타운이 있는 미국이나 뉴욕지역에서는 꾸준한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서부와 동부에서는 방문자 수가 지도에서 표시하는 대로 꽤 많이 있지만, 미국의 중부에서는 거의 전멸이다. 그 것은 미국 중부지역에 사는 교포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만치 않아서 일 것 이다. 미국도 동부와 서부에 비해 중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 동양인으로 정착하기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소구리 문화지도를 방문하는 미국의 중부지역에 사는 교포들이 만치 않은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맞아 떨어 진다.

소구리 문화지도를 방문하는 국내 네트즌들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기타 부산이나 광주 같은 광역시는 인구 비율만큼은 방문하지만 경기도를 제외한 도와 시에서는 방문자가 수도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좁은 국토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이럴 진데 미국이야 오죽 하겠는가 생각이 든다. 일본은 지리적 위치가 가까워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유럽이나 아프리카 서아시아에 비하여 꾸준한 방문자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대학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방문자들이 많이 있다. 미국의 하바드를 비롯하여 동부의 아이비리그라는 대학 소속의 도메인을 가진 방문자가 많고, 영국이나 독일에 서도 일반 기업의 도메인 보다는 대학 도메인이 많은 편이다. 그 것은 소구리 문화지도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학술적인 용도에 많이 쓰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지 프로젝터로 소구리 홈페이지 해당 콘텐츠를 강의실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그 것은 그렇게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지만 소구리 문화지도에 들어오는 네트즌들이 사용하는 화면 해상도를 분석해서 알 수 있다. 프로젝트용 해상도를 가진 PC들이 소구리 문화지도에는 상대적으로 많이 보인다. 그 것은 소구리의 영상자료의 품질이 확대해도 괜찮은 정도의 크기로 제공하고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세밀하고 다양한 영상자료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아쉽다. 소구리는 애초부터 국내 시장에서 돈벌이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서정을 대표적인 외국어로 보여 주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부가가치가 소구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는데 아직 국내에서 한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그래도 애초에 목표한 소구리 문화지도의 비전은 변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문화의 힘! 을 지구촌 여러 나라 친구들과 공유하고, 그 속에서 인류문명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지구촌의 소구리가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아니 소원해 본다. 자동차 만들어서 수출하고 핸드폰 만들어서 돈벌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 천년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공유해서 벌어 들이는 돈벌이는 21세기 문화강국을 표방하는 모든 나라들의 꿈이자 목표이다. 그래서 일찍이 백범 김구선생님은 문화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었다. 김구 선생님은 단순히 독립운동가 이전에 그 시대에 미래의 문화비전을 제시하며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의 소중함을 바라보며 인류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위대한 사상가 이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요 정치가 이전에 순수한 인품과 학식을 가진 사상가로 존경 받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 근대 인물로 존재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구리 문화지도를 방문하는 지구촌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추억의 영상들이 모니터에 오버랩 되었다. 힘들었던 추억… 따 뜻 했던 시절… 소구리 맨들… 콜라 병들… 양재천 둑방 길… 그리고 소구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수 많은 친구들… 댕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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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것에 관한 이야기> - 도깨비 팬티이즘

도깨비 팬티는 튼튼하고 질겨서 4천년 동안 쓸 수 있다. 3천년 동안은 팬티로 나머지 천년 동안은 걸레로 쓰는 거다. 우리 아이들 옷도 도깨비 팬티만큼 질기게 입고 있다. 물려 입고 입다가 흰색이 누렇게 되면 천연염색해서 다시 입고 그래도 작아지면 친척 동생 물려주고, 물려주기 어려운 옷은 잘라서 형겊으로 재사용한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나오게 하는 도깨비들도 팬티 하나를 4천년 입는데, 도깨비 방망이도 없이 자꾸 소모하기만 하는 인간임에랴. 얼마나 아껴야 할지 알 노릇이다.


빈티즘 우리 아이들

세련되면서 좀 색다르고 약간 촌스런기운을 살짝 풍기면서 예스럽기도 한 인테리어 경항을 빈티즘이라 한다나?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웬 빈티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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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빈티즘이란 ‘빈(가난한) 티가 줄줄 나는’의 빈티즘이다. 하긴 앞의 것과 예스럽다는 공통점은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 옷에도 유행이 있는 데 늘 물려 입는 옷이다 보니 유행에 뒤쳐지고 예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입는 옷이 가장 좋은 옷이라고 누누이 강조 해온 바 아직까진 우리 아이들이 물려 입는 옷 싫다는 투정을 부릴 줄 모르니 에미 마음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정말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딸아이에겐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어쩌다 새 옷을 한 벌 사서 입혀 볼라치면  우리 딸 질문이 이랬다.

“엄마, 이건 누가 물려준 거예요?”

어떨 땐 누가 빌려준 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빌려준 게 아니고 언니가 커져서 너한테 아주 준 거야라고 설명해 준다.
살다보면 가끔 헛돈이 나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애들 쫄바지도 새 걸로 팍팍 못 사주는데...’

하지만 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물려받고 물려주는 미덕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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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 아이들 옷을 입히는 기준은 ‘편안한 옷’이다. 밖에서 화장실 가기 편하고, 놀이터에서 그네뛰기 편하고, 세탁기에 막 빨기 편하고, 너무 화려해 보이지 않는 옷. 다행히 내게 옷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내 취향과 비슷한지 편안하게 잘 입히고 있다.

그런데 옷을 물려 입으면 좋은 진짜 멋은 아이들과 나에게 생기는 추억에 있다. 우리 아이들 사진을 보면 이 옷은 누가 준 것. 이 옷은 누가 준 것 하고 그 ‘누구’에 해당하는 이름이 마음에 떠오른다. 그래서 생각 난 김에 안부 전화 한 통하고 정 한치 쌓고 한번 웃을 수 있다.

배냇저고리 물려 준 현진이, 새 옷 같은 옷 물려주는 소영이, 몇 년 후에 입을 수 있는 옷도 챙겨주는 나은이와 지승이 옷 물려주는 진슬이와 동용이, 아기적 공주 같은 옷 물려주던 민이. 내 아이들 사진 속에서 함께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모두 고맙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사준 옷 중에서 가장 명품은 바로 17개월에 사서 7살이 된 지금까지 입고 있는 오리털 파카이다.

처음 사선 롱코트로, 그 다음엔 하프코트로, 이제 와서야 딱 맞는 잠바로, 아마 내년엔 조금 작은 잠바로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겨울에도 장갑 끼우고 파카 입히고 파카에 딸린 모자 씌우면 추울까 하는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으니 내 기준에선 제일이다. 올 꽃샘추위까지 다 지나가면 잘 빨았다가 늦둥이 낳은 친구에게 보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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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사회분위기다 보니 혹 내 아이들이 빈티나는 옷차림새 때문에 제 대접을 못 받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 옷의 본질적 기능은 신체 보호와 편안한 활동성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아이들이라 기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긴 공주님인 우리 딸을 위한 하늘하늘하고 바닥에 질질 끌리는 드레스를 위해 동대문에서 분홍 레이스 천 사다가 치마에 덧대주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으니 딸도 크게 섭섭하지 않으리라 믿어본다.

내 나이 한 예닐곱 되어서였을 때 친척 동생이 입다 보내온 빨간 잠바를 엄마가 버리셨단다. 그랬더니 내가 울며 불며 부엌 아궁이에서 다시 꺼내오더란다. 왜 그랬는지, 내가 정말 그랬었는지 어렴풋하지만 아마 짐작컨대 그때도 아까워서 그랬을 성 싶다. 뭐든지 멀쩡한 걸 그냥 버리는 걸 너무 아까워하는 건 나의 천성인 듯하다.
지금은 물자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아끼는 마음이 더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함부로 버리지 않고 겉으로 꾸미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들로 크면 좋겠다.

“얘들아, 호랑이는 무늬가 겉에 있지만 사람의 무늬는 속에 있다는 라다크 속담이 있단다. 우린 옷으로 무늬를 나타내는 사람 말고 마음 속에 멋진 무늬를 새기고 사는 사람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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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농원에서 지승,태헌,태완,지윤
 

장서가 삼대가 지나야 진정한 독서가가 나온다.
사람은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가을에만 읽는 게 아니라 늘 읽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일곱 살인 아들이 나에게 와서 꾸짖듯 하는 말

“ 엄마 책쟁이야? ”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해리포터를 읽으면 나도 다시 읽을 거다.
그래야 말이 통할 테니까.
하리 하우스를 계획하게 된 시발점에 우리 가족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 가족의 도서관을 만들어서 여럿이 쓰리라.


책, 백일 때부터 읽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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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눈에 힘이 생겨 색과 형태를 구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책을 읽어 주었다. 그 전에 형님 댁에서 책을 물려받아 갖다 놓은 것이 있었는데,  ‘아직 뭘 ~ .’ 하고 놓아두었던 것을 꺼내 읽어 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 한 곳을 응시 할 수 있게 된 손녀딸을 TV 앞에 앉혀놓고 TV를 보여주신 일이 계기가 되어 책을 꺼내게 되었다

. 백일 정도 된  딸을 향해

“지윤아, 여기 책 있어. 이제 부턴 책 봐. 알았지?”

라고 말했다. 그 얘긴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 주시라고 부탁드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책을 잘 읽어 주셨다. 함께 살던 고모와 아빠도 책을 잘 읽어 주셨다. 그 덕에 우리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딸은 책 읽어달라고 하는 정도가 심해서 졸릴 때 읽어달라고 할 때는 아무리 예쁜 딸일지라도 화가 나는 정도이다. 덕분에 딸은 언어 구사 능력이 좋고 자기 입장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얘기를 잘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아들은 딸 만큼 책에 매달리진 않지만 아직까지 책을 안 봐서 걱정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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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처음 본 책은 주로 의성어 의태어와 사물의 이름이 나온 책들이었다. 두껍고 코팅이 되어있는 책이라 입에 물고 빨아도 찢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모두 물려받은 책이라 발행된 지 10년이 넘은 것들이었는데 내용은 어떤 책보다 좋았다.

그 후 아빠가 처음으로 사 준 책이 <달님 안녕> 과 <사과가 쿵!>이다. 그 두 책은 표지는 단단하지만 속지는 앏아서 여러 번 투명테이르로 붙이고는 하였다. 그래도 책을 찢었다고 야단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땐 일부러 찢은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으로 분유와 함께 미피와 보리스가 주인공인 책 4권이 왔다. 책의 크기가 손바닥 크기고 테두리가 곡선으로 되어 있어서 잘 갖고 놀았다. 오늘 그 네 권을 늦둥이 낳은 집에 갖다 주었다. 매번 받기만 하다 동생 준다고 챙겨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즐거웠다.
책 읽기는 습관이다. 그냥 책이 삶의 일부인 것이다. 생명유지를 위해 밥을 먹듯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책읽는 습관을 몸에 베게 만들어 준 가족들깨 감사드린다.

오늘도 잠자기 전에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을 읽었다. 읽으면서 밖에 나갔가가 서로 잊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꼭 손을 붙들고 다녀야 한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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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워서 <꼬마 철학자 우후> 중 아이스크림 100개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었다. 우후가 아이스크림 100개를 상상만 해도 기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우후의 아이스크림 100개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아이스크림에 대한 갈증을 달래는 것 같다. 결국 우후가 아이스크림보다 더 중요한 떨어지지 않는 무엇의 소중함을 알았듯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요즘 사주고 싶은 책이 있어 값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조카들이 보던 책을 전집 통째로 들고 올 땐 몰랐는데, 막상 내가 사주려고 하니 책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우리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것으로 우리 아이들 정신세계가 구축되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인류발전에 공헌하는 인물들이 되어 그 고마움에 답하기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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