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 아들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8건

  1. 2011/03/29 호기심 천국 (2)
  2. 2011/03/23 폭포가 보고 싶어요.
  3. 2011/03/11 열이틀 째 이야기 -지혜와 지식 (1)
 

호기심 천국!

우리 아들을 보면 그 말이 떠오릅니다. 호기심 천국.


아침에 아들을 깨우는 데 난데없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사람들은 눈이 두 개 잖아요. 그런데 왜 보이는 건 하나로 보여요?”

자리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다가  생각이 났나봅니다. 자기 눈이 두 개 라는 사실이. 답은 간단합니다. 뇌의 작용이겠지요. 양쪽에서 들어온 시각정보를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뇌가 하리라 당연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거라 의문을 제기 한 적이 없는데, 아들의 나이에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아니므로 궁금한 겁니다. 궁금한 게 있는 것, 그게 바로 학문의 첫걸음이지요.


공부를 하면 잘 할 듯 한 아들이 공부에는 아직 뜻이 없나 봅니다. 도무지 수학 문제집 푸는 시간엔 집중을 안 하는 겁니다.

며칠 전엔

-태어난 달의 수와 태어날 날의 수를 합하면 15보다 크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문제를 풀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이해했냐고 했더니 했다기에 풀어보라고 두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젠데 얼른 안 풀고 있기에 빨리 하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태어난 달의 수가 뭘 뜻하는 지 날의 수가 뭘 뜻하는 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 뜻을 모르니 당연 문제를 못 풀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태어난 달은 1월부터 12월 중 한 달을 뜻하고 태어난 날은 1일부터 30일가지 중 하루인 데 그걸 이해를 못해서 문제를 못 푸는 겁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 지  달 과 날을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걸 잊어버리는 게 말이 되냐고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핑 돌며 하는 말,

“엄마, 저는요, 더 좋은 게 있을 때는요, 다른 생각은 밖으로 나가버려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그래서 달이 뭔지 날이 뭔지 이야기 해 주고 같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1+1 = 2 라는 건 어른이 되어도 안 까먹어야 하는 것처럼 달과 날은 절대로 안 까먹어야 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지승이 뭔 생각을 하느라 ‘달’과 ‘날’을 기억에서 못 불러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님 진짜 까먹었던 것일까요!


건블루베리가 들은 베이글을 먹다가 말합니다.

“엄마, 내가 건포도 만드는 법 알아요.”

말해보라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권총을 놔요, 그담에 포도를 놔요. 그럼 건포도지요.”

에구구~~ 일종의 말놀이를 생각해 낸 겁니다. 그래서 장하다고 칭찬해 주었지요.


딸의 담임선생님께서 학부모 총회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화를 내는 순간 교육은 끝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큰소리로 화를 잘 내는 것을 반성하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지승아, 엄마가 화내고 큰 소리치고 그래서  많이 속상했지? 미안해!”

이미 저지른 일이 씻어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을까봐 전전긍긍 후회하는 맘으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는 속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하루만 지나면 잊어버려요.”

하는 겁니다.

결국 엄마가 자식을 두고 하는 교육은 실수가 있어도 다음 날엔 수정 가능함을 믿기에 오늘도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립니다.


4월이 과학의 달이라 학교에서 과학관련 행사가 많습니다. 어제는 아들이 숯과 팬을 이용해 공기 청정기 만드는 법을 이야기 했습니다. 수조에 물을 넣고 거기에 숯을 넣습니다. 그리고 수조 옆에 모터로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설치를 한답니다. 그러면 숯을 통해서 나오는 좋은 공기를 프로펠러의 바람으로 날려서 공기를 좋게 한다는 겁니다. 너무나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쉽게도 그 비슷하게 숯을 이용해서 만든 공기청정기가 이미 나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실망하는 기색이 아닙니다. 아들의 목적은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버는 것에 있지 않고 자신이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것 차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방안에 숯 바구니를 놓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숯을 씻을 때 나는 개울물소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숯 덩어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는 정말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한동안 아이들은 숯을 키워보겠다며 대나무숯 조각들을 컵에 답아 물에 담가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보라고 했던 건 그냥 숯을 갖고 노는 게 좋아서였습니다. 바싹 마른 숯덩이가 졸졸졸 소리를 내며 물을 빨아들이는 걸 듣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무엇이 되든 어떤 위치에 있든 행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겁니다.  행복, 가장 좋은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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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3/2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승이 생각이 귀엽습니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뭔가를 바라보고 표현한다는 것, 특히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참 중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아들에게 화를 잘 내는 편입니다. 특히 공부할때요.ㅎ.선생님 말씀이 맞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를 내는 순간 교육은 끝이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분은 화를 내야할때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교육이라도 하더군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와는 좀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인격적 관계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죠. 화를 내야 할때 화를 낼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 저는 이게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제 사견입니다.

  2. 솔바람 2011/04/05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이기 때문에 화를 내도 된다는 말씀 너무 위로가 됩니다. 오늘 아침엔 아들이 엄마를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 물어보았습니다. 지승아, 엄마가 화내면 많이 무섭니? 그랬더니 하는 말, 아니요 짜증이 나요. 결국 제가 화 내는 방법이 틀린 겁니다. 짜증나지 않고 반성하게 하는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해야할지... 화내는 횟수를 줄이면서 화를 낼때는 더 교육적으로 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터인데 그게 잘 조절이 안되네요 ㅎ ㅎ

엄마, 폭포가 진짜 있어요?
그럼 당연히 있지.
엄마, 폭포가 보고 싶어요.
너 폭포 본 적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 어떤 폭포를 보았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폭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작은 인공폭포 한 두 번 보았나 싶긴 한데, 그것도 물이 떨어지는 장면이 아니고 폭고 자리만 마련된 인공폭포를 본 것 같습니다. 인공 폭포에 물이 흐르지 않아도 나는 저젓이 인공폭포거니 아는데, 지승이에겐 물이 흐르지 않는 인공폭포는 폭포인지 아니지 생각할 대상조차 아닌 겁니다.
지승이 왜 갑자기 폭포가 보고싶어졌는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폭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웅장함을 보여 줘야겠다 싶을 때 폭포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아들이 폭포를 보고싶다 합니다.

<파워 어브 원>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인데, 그 영화 속에 나온 폭포가 잊혀지지 않고 늘 가슴 한곳에 살아있었습니다. 그 폭포에 대한 꿈을 지승이가 일깨워줍니다.

엄마, 폭포가 보고 싶어요.

폭포가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프리카의 '빅토리아폭포'를 생각하는 것은 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룡폭포나 천지연폭포처럼 내가 본 폭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빅토리아 폭포에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엄함.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의 폭포가 빅토리아 폭포가 맞을 거라고 믿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북아메리카의 나이아가라, 남아메리카의 이과수, 그리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파워 어브 원>의 사회적 배경이 인종갈등이었던 걸 상기한다면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가 맞을 것  같습니다.

장대한 빅토리아 폭포를 보며 물방울 하나 하나의 힘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물방울 하나 하나가 모인 폭포의 힘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 그 깨달음은 주인공에게  힘이 됩니다. 폭포와 같은 장엄한 힘.

아이들이 크면 CD로 사주고 싶었던 영화 중에 하나가 <파워 어브 원>입니다. 그 폭포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안 되었는데 폭포를 보고싶다 합니다.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물론 인터넷에 세계 3대 폭포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장엄한 감동은 <파워 어브 원>이란  영화 속의 폭포이지 관광객의 눈으로 볼 폭포는 아닙니다. 자연의 장엄함을 가슴으로 느끼기 전에 폭포에 대한 판박이를 머릿 속에 저장시켜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럼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합니다.

 꿈 꾸게 하는 것. 가슴 속에 울렁이는 희망을 갖고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아들을  안고  엄마의 기억 속에 있는 <파워 어브 원> 폭포를 이야기 해 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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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

이것이 우리 집 가훈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인격의 체 없이 드러나는 것이고 지혜는 지식이 인격의 거름망을 통과하여 나오는 정화입니다. 지혜는 고품격 지식입니다.

우리 아들이 참 지혜롭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들이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어리니 인격이 완성됐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마도 가능성 때문일 겁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이끌 씨앗을 아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오랜만에 약수터를 갔습니다. 보통 물을 떠오는 것은 아이들 몫인데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는 때고 눈이 아직 많이 쌓인 길이라 같이 나섰습니다.

눈길을 걸어 약수터에 도착해서 준비해 간 코코아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아  내려가려는데 지승이는 물이 나오는 관 앞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엄마 먼저 간다고 소리쳐도, 너 혼자 있으라고 을러도 쭈그리고 앉아 뭘 열심히 합니다. 가서 보니 코코아 마셨던 컵에 물을 담아 약수터에 길게 자란 고드름을 녹이고 있는 겁니다. 같은 물인데 관에서 졸졸 나오는 물은 얼지 않았는데 주위는 온통 얼음입니다. 그게 신기했나 봅니다. 물을 받아 끼얹으면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손이 시릴 텐데 연신 물을 떠서 얼음 위에 뿌리고 있습니다. 얼음은 0도 이하고 물은 0도 이상일 터이니 가능한 발상이긴 합니다. 하지만 얼음 위에 덧뿌려지는 물이 얼음 위에 다시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 물로 얼음을 녹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혼자 남겨 놓고 한 참을 내려와 기다린 후에야 아들은 따라 내려왔습니다. 어쨌든 궁금한 건 한 번 해 보는 실천력. 그런 실천력이 있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하리는 시골인지라 서울보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 안되는 편입니다. 재활용 할 수 있는 물건들도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다른 집 밭에 있던 비료포대 같은 것들이 날려 와 굴러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울에 있는 쓰레기를 한 번 치워야지 하면서 엄두가 나질 않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수터에 갔다 온 아들이 자신이 쓰레기를 줍겠답니다. 그래서 큰 봉투를 하나 주고 주우라고 했습니다. 숯불구이 할 때 숯을 뒤집는 용도로 쓰던 집게도 하나 들려 주었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때 휴지를 줍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배운 뒤 길에 있는 깡통을 주워 온 일이 있습니다. 재활용 하면 된다면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이 얼마나 더러울까를 생각하면 칭찬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맨손으로 더러운 쓰레기를 주우면 손이 얼마나 더러워지겠냐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몇 번 그러고 나서 더 이상 아이들은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진 않습니다. 대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길에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철저히 심어주고 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쓰레기 봉투를 어쨌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분리 하려고 쓰레기는 박스에 부어놓고 봉투는 박스 옆에 두었답니다 나는 그냥 봉투 째 폐기물 표를 사서 붙여 버리려고 했는데 아들은 주운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하려 한 것입니다. ‘아이 디러워라!’ 속으로 하면서 아들에겐 잘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는 것을 올곧게 실천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지혜라 하니 우리 아들은 분명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리에서의 열이틀 째는 쓰레기 주우며 지혜를 다시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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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3/30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아들이 어렸을때부터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왔지만 그 의미를 명쾌하게 답변을 해준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혜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부모의 한순간 말과 행동은 자식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승이가 지금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지승이,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