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하리하우스 여름방학 맏형 진슬이

                         [사진]2010 하리하우스 여름방학 맏형 진슬이 - 1200x803

진슬이는 참 의젓하고 듬직한 어린이 입니다. 3학년 동생들 챙겨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어른스러웠습니다. 진슬이 이야기는 이곳 쥔장님이 시간나는 대로 글고치기로 들려 줄 것 같습니다^^.

진슬이 이야기

친구,

그 시절 친구는 꽤나 말이 많은 편이었지. 말로서 다가가길 좋아했단 뜻이었을 거야. 아님 침묵하고 쌓아두기보다 풀어내길 좋아하는 탓도 있었겠지. 덕분에 친구 곁엔 그렇게 자신의 힘겨움을 말로 나누려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

친구.

지금의 친구도 꽤나 말이 많은 편이지. ㅎ ㅎ ‘근데 이모 있잖아요. 이모 그거 아세요?’ 하며 잠시도 쉼 없이 이야기를 하던 진슬이를 보며 친구 부부의 모습을 떠올렸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키워주고 다듬어주며 이야기로써 소통하는 부부의 모습을.

친구,

친구가 키워온 아들과 내가 키워가는 아들 딸이 함께 소통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며 참 기뻤다네. 더구나 그 형으로서 오빠로서 동생들을 대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어찌나 보기에 좋던지... 친구가 아들을 참 잘 키웠구나 싶었지. 우리 아이들도 저만큼만 붙임성 있고 저만큼만 배려심 있고 저만큼 심지 있는 모습으로 크면 좋겠다 싶었다네.

친구.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네. 이만하면 뭐 적당한 양일 것 같은데 생각하며 차린 소박한 밥상. 금방 따온 깻잎과 싱싱한 풋고추에 찬밥에 찬 물을 붓고 쌈장과 신김치로 마무리가 다 된 밥상. 둥그런 쟁반을 바닥에 놓고 부엌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었지. 진슬인 엄마 이야기를 하며 깻잎에 쌈장을 찍어 먹었지. ‘우리 엄마는요, 식당에 가서 상추가 나오면요 이렇게 먼저 먹어요.’하며 젓가락으로 깻잎을 집어 쌈장을 찍어 먹었지. ‘진슬아, 진짜 맛있지, 음~~ 이모도 이런 거 너무 좋아해. 근데 진슬아, 깻잎을 쌈장에 찍어도 맛있는데 젓가락으로 쌈장을 떠서 깻잎에 찍어먹어도 맛있다!’ 하며 시범을 보였지. 보통은 내 의견에 거의 동의해 주던 진슬이가 이번엔 뜻을 굽히지 않는 거야. ‘그래두요, 이모. 이렇게 먹는게 더 좋아요.’하며 서툰 젓가락질로 깻잎을 집어 쌈장그릇으로 가져가는 거야. 그래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지. ‘그래, 너 알고 보니 뚝심도 있구나, 녀석 ~~~’ 그런데 그 다음이 정말 잊혀지지 않아.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진슬이랑 풋고추가 맵네 맛있네 하며 먹는데 진슬이 밥그릇이 어느새 다 빈 거야. 그런데 좀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해, ‘이모 밥 더 없어요?’ 하는데 미안하게도 밥이 딱 다였거든. 그래서 정말 미안한데 밥이 더 없다고 했지. 배 고프냐고, 그럼 이모 밥을 덜어줄까 물었지. 근데 괜찮다면서 밥그릇을 들고 일어서는 거야. 그러면서 그냥 물을 담아 뭐라구 뭐라구 하기에 난 대충 듣고 그러라고 했지. 밥그릇에 물을 부어 개수대에 놓겠다는 뜻으로 이해했거든. 근데 얘가 빈 그릇에 생수를 가득 부어서 도로 쟁반에 놓는 거야. 그리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깻잎을 쌈장에 찍어 먹고 물을 먹고 하는 거야. 진슬이가 한 말을 얼른 다시 생각해 보니 ‘ 이모 그럼 그냥 물만 부어서 먹을게요.’ 하는 뜻이었던 거야. 지금까지도 그 순간의 미안함과 그 순간의 감동이 마음을 찡하게 하는 구나. 짜증내지도 않고, 속상해 하지도 않고, 너무도 천연스럽게 밥그릇에 물을 담아 먹던 아이. 진슬이.

앞으로 살면서 너를 볼 것이니 진슬이 또한 보며 살겠지. 그리고 진슬이를 볼 때마다 맹물그릇을 들고 마주앉던 진슬이의 태연자약한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리고 웃으며 회상하겠지. 내 속으로 생각한단다. 나이 들어 청년 진슬이가 우리 집에 오면 고봉밥을 차려 줘야지. 그리고 네가 4학년 여름방학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 해 줘야지.

친구,

친구가 잘 살아 왔음을 그 아들을 보고 알았네. 그래 더 없이 기쁜 날들이었네. 보고만 있으면 안 먹어도 배부른 아들이 되길 빌어보네. 여름의 끝자락에 웃으며 쓰네. ‘진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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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겨울 2007

10월의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 승민, 제민, 인경에게


햇살은 따듯하고 물빛은 곱게도 반짝였지. 그래서 우리 세 가족의 가을 나들이는 더 행복했는지 몰라.

지금은 자동차 길이 되었지만 옛날엔 중앙선 열차가 다녔던 동굴 같은 터널과 연초록 이끼가 카펫처럼 촘촘하게 자란 콘크리트 벽 사이를 지날 땐 색다른 정취를 느꼈단다. 아마 너희는 신호등이 있는 터널이 더 기억에 남았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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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야외 재래식 화장실 겨울 2007

단성면 인라인 트랙에서 있었던 지윤, 지승의 인라인 경기는 어른인 선생님이 보기엔 좀 시시한 감이 있었지만, 저희들은 서로 자기가 1등이라며 즐거워한단다. 선생님은 지윤, 지승에게 1등을 강조한 일이 없는데도, 1 이라는 숫자는 아이들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 있는 것 같구나. 너희도 그러니? 만약 그렇더라도 그 일등 이라는 단어가 너희에게 희망의 의미로만 쓰이면 좋겠구나.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꽃다발 같은 것으로 여기려무나. 선생님은 작은학교에서 늘 희망의 꽃다발 한 아름 안고 있을 게. 너희 마음에 희망이 필요할 때 하리하우스에 놀러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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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터밭과 호도나무 - 겨울 2007

애들아, 너희들 ‘인라인 스키’라고 혹시 들어봤니? 지윤이와 지승이가 고안해 낸 운동이란다인라인 신발을 신고는 뭔가 잡아야 균형을 잡는 제민이에게 적합한 운동일 것도 같구나. 다음에 같이 인라인 스키 타고 놀자구나.

참, 우리 바비큐 파티하면서 볼링놀이 했었잖니. 평소 볼링을 즐겨하시는 승민 어머님께서 우리들에게 농구공볼링을 가르쳐 주셨었지. 나무 볼링 핀을 열심히 세워주시던 승민 아버님의 모습도 떠올라 선생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구나.

저마다 노래 한 자락씩 불렀던 시간도 모닥불과 불놀이도 그리고 너무도 빨갛게 타올라 감자든 고구마든 갖다 묻어야 할 것 같던 숯덩이들도 추억 속에서 따뜻하게 살아나는구나.

인경아빠가 털어 준 들깨는 그 향긋함을 아직 그대로 지니고 들‘깨죽이 되길 기다리고 있단다. 인경 엄마가 거두어준 옥수수는 하리 하우스 데크에서 늦가을 햇볕을 쏘이며 아직 누워있단다.

참, 승민이가 들깨 몇 알을 주머니에 넣어 갖고 갔었는데 그 들깨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것이 한 가지씩 있단다. 하리하우스에 오면 누구나 그 한 가지 면에서 선생님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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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겨울 2007

선생님은 다른 사람보다 책 읽는 일과 글 쓰는 일을 조금 더 좋아한다단다. 그래서 너희의 책읽기와 글쓰기 선생님이 될 거란다. 승민 어머님은 볼링 선생님만 하실 줄 알았는데, 노래를 너무 잘 하셔서 노래 선생님도 하셔야 할 것 같더구나. 승민 아버님은 볼링 핀돌이도 잘 하시지만, (볼링 핀을 잘 세우는 건 힘의 균형을 읽을 줄 아는 물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란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살려 농사 선생님을 하시면 어울리실 것 같더구나.  인경 아빠는 승민과 제민이가 척 보고 재미있는 분인 줄 알아냈으니 오락부장님 하셔야 하겠고, 인경 엄마는 춤(?), 점잖게는 율동 선생님이 좋을 듯 하고...

때로 누구나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고 때로 누구나 학생이 되어 배우는 일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학교가 바로 작은 학교가 바라는 모습이란다. 승민, 제민, 인경은 지윤과 지승의 놀이선생님이 되는 거야. 좋겠지? 어떻게 하면 동생을 데리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평소에 연구해 놓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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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겨울 2007

너희를 보내고 한 가지 미안함은 너희에게 ‘화려한 밥상’을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이란다. 그러나 늘 ‘추억의 밥상’은 마련해 주고 싶단다. 선생님이 제인구달의 <희망의 밥상>이란 책을 읽으려 계획하고 있단다. 다 읽으면 너희에게 추억의 밥상 뿐 아니라 <희망의 밥상>까지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참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란 책도 있는데 <희망의 밥상>이나 <소박한 밥상>이나 선생님의 <추억의 밥상>이 추구하는 이념은 같지 않을까 싶구나. 다시 말해 세 밥상이 다 우리를 살리는 밥상이란 얘기지.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은 <놀기과외>-로리 뮈라이유  비룡소-를 끝까지 읽지 못 한 거야.  모범생 라디슬라스가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받고 있던 미켈란젤로 수업이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궁금하지?  선생님은 끝까지 읽었는데 말이야, 결국, 라디슬라스를 진심으로 행복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준 그 미켈란젤로 수업시간이 정식 <놀기 과외>란 과외시간으로 되었단다. 최고의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최고의 고액과외가 자신의 아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또래와 같이 얘기하고 놀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보는 일이 아들에게 진정 행복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는 라디슬라스의 아빠 모습이 참 좋아보였단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 <놀기과외>를 시켜주는 아빠. 이젠 라디슬라스가 운동화 끈도 스스로 못 매는 모범생이 아니라 운동화 끈을 매고 달리기를 하는 개구쟁이로 자랄 기회를 漬된 것 같아 마음을 놓으며 책을 덮었단다. 다행히 우린 놀기 과외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될 만큼은 놀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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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겨울 2007

선생님은 하리에서 어떻게 하면 너희들과 더 재미있게 놀고 더 많이 흙을 만져보고 더 좋은 걸 먹을까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을게. 봄에는 같이 씨앗을 뿌리고 여름엔 밭에서 풀도 뽑고 가을엔 은행이랑 호두도 줍고 겨울엔 눈길을 걸으며 어디 비료 포대 눈썰매 탈 데 없나 찾으러 다니자꾸나. 물론 부모님과 함께 말이야.

참, 승민아, 하리에도 단감나무가 자란다는 구나. 예전엔 단양이  단감 북방한계선을 지난 곳이라 홍시 감만 있었는데, 새로 나온 품종은 단양의 하리에서도 자랄 수 있나봐. 내년 식목일 때 쯤 단감도 심을까 생각 중이니 그때 쯤 놀러 오시라 전해드려라.

승민, 제민, 그리고 인경아. 그리고 지윤 지승아. 너희의 이름을 부르며 기원하노니, 작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데 바탕이 되면 좋겠구나.

11월인데도 하리의 밤은 아주 춥구나. 내복 단단히 입고 놀러오렴. 그럼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며

하리 하우스 작은학교 선생님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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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민 2007/12/20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일이 겨울 방학이라서 신이나요 그래서 이참에 엄마에게 쫄라서 하리하우스에가서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려고해요
    선생님! 추운겨울이니 몸 따뜻히 건강히 지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2. 이대한 2007/12/25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이군요.
    자주 들르지못해서 죄송합니다.
    저에게 추억이 서린 하리하우스입니다.
    최 선생님 항상 생생한 소식 부탁 드립니다.

    • 솔바람 2007/12/27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팀장님! 하리하우스 방명록에는 첫 걸음 하셨네요? 반갑습니다. 하리하우스 주인장은 인터넷과 접촉빈도가 낮아서 오늘도 제가 대신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팀장님의 정성이 깃든 망치질로 만들어진 하리하우스에서 지윤이네 가족이 행복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이팀장님 팀들 시간내서 지윤이네 하리하우스 놀러가시면 주인장 내외가 반갑게 맞이해 주시겠지요. 추운 겨울날에 작업시에 안전에 주의 하시고 언제나 건강하고 즐거운 이팀장님 가정이 되시길 응원드립니다. 화이팅! 이대한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