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우리 아들'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4/04/10 아들의 안테나 (2)
  2. 2013/08/27 아들의 그늘막
  3. 2013/04/17 아들과의 책읽기

언제부턴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과 우리 전통음악을 하루 종일 방송하는 클래식 전문방송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민심에 따라 골고루 적당하게 선곡된 음악을 광고방송 없이 24시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 그런데 테이프나 시디로 듣는 것과는 다르게 전파를 타고 흐르는 방송이다 보니 늘 같은 음질로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안테나 부러지고 없는 아날로그 라디오는 주파수 맞추는 게 정말 일이다.

원래 있던 자바라식 안테나는 아들이나 딸 둘 중 누군가가 살짝 부러뜨린 걸 (부러뜨림 자체를 원망하진 않는다. 아이들 손에 남아날 만큼 무쇠팔뚝 같진 않았으니까) 테이프로 붙여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뭔 맘으로 아주 똑 꺾어버렸다. 그런데 그 어설프게 건들건들 붙어있던 안테나를 아예 떼서 없애버리자 소리가 찌직거려 도저히 방송을 들을 수가 없게 됐다. 두 조각 난 안테나를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똑 꺾인 안테나가 제 기능을 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사를 해서 라디오 놓는 자리가 바뀌자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찌직거렸다. 아쉬운 대로 손에 잡히는 열쇠를 안테나 자리에 얹어놓고 주파수를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늘 아쉽고 불만스러웠다.

라디오 안테나 자리에 열쇠 하나를 끼워놓고 주파수를 맞춰보려고 애쓰던 어느 날, 아들에게 하소연 하듯 안테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쇠를 이리 저리 끼워보던 아들이 공구서랍에서 긴 줄을 하나 갖고 오더니 이걸 안테나로 써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 선이 무엇에 쓰던 선인지 모르지만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라디오를 사는 돈 보단 싸게 들 테니 말이다. 아들이 가위며 니퍼를 들고 선을 과감히 자르고 쭉쭉 껍질을 벗기고 하더니 알록달록하고 가는 선들이 서로 배배 꼬여있는 긴 줄을 들고 왔다. 그리곤 그 줄을 부러진 안테나 끝에 감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짧은 안테나에 얌전히 붙어있을 만큼 노긋노긋한 선이 아니었다. 색색의 여덟 갈래로 갈라진 그 선은 뻗대는 머슴아이 심술자락마냥 사방으로 뻗치며 풀어져버렸다. 아들이 안되겠는지 공구서랍에서 뭔가를 또 가져왔다. 그것은 마치 빨래집게처럼 생겼고 손으로 누르는 부분에 둥그렇게 구멍이 나 있는데, 아들이 그 구멍에 줄을 끼워 홀쳐 묶었다. 그리고 긴 줄이 매인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을 안테나 끝에 대는 순간.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거의 완벽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 아들의 안테나다.

엄마를 위해 만든 아들의 안테나!

자세히 보니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은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때 쓰는 집게다. 자전거 바퀴에 있는 바람 들어가는 구멍과 펌프에 있는 바람 나오는 가는 관을 연결시킬 때 쓰는 집게. 그러나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는 여덟 가닥의 전선은 아직도 무엇에 쓰던 물건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아들의 눈썰미와 재치와 끈기를 느끼게 해주는 용솟음치는 사랑의 안테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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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4/04/10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라디오가 얼마나 한다고 저런 궁상을... 그러나 시디를 들을 수 있었고, 테이프를 들을 수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그 스테레오 라디오는 보통 라디오가 아니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친구가 미국여행에서 사와서 친구의 아들을 키우는 동안 시디로 음악을 들려줬던 라디오다. 친구의 아들이 다 커서 더 이상 식탁에 올려놓고 음악를 틀어 줄 일이 없게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온 라디오다. 친구네 집에서 올 때는 110볼트용이라 나도 한동안은 변압기를 놓고 썼던 라디오. 시디 넣는 문이 고장나서 자동으로 열리지만, 그래도 아직 쓸만하다고 물려 준 친구의 진심을 알기에 동네 수리점에서 시디 넣는 문을 수리했고, 더불어 변압기 사용이 번거로워 비용을 들여 220볼트로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테이프가 안되서 수리를 했는데, 작은 레고 조각이 기계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볼륨 조절도 안되서 한밤중엔 들을 수도 없을 만큼 큰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지만, 친구집에서 산 세월과 내 집에서 산 세월을 합하면 족히 20년은 되었을 라디오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라디오를 수리하라고 맡기고 수리가 끝나면 찾으러 가고 했던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엔 추억이고 아이들 삶엔 교육이 되었을 것이니, 내 집에 그 라디오가 있는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아들의 안테나가 달린 그 라디오를 듣고 있다. 불행히도 시디플레이어가 아주 고장이 나서 고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해서 안고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테이프는 들을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들의 손놀림이 더 정교해지는 어느날엔 어쩌면 조절되지 않는 볼륨을 고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래를 꿈꾸는 엄마는 행복하다.

  2. 지승이 외삼촌^^ 2014/04/10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지승이는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을 듯!
    지승아 잘했어! 엄마한테 수리비로 후라이드치킨 사달라고 그래봐 ㅎㅎ 안사주면 그만 다시말해 밑져야 본전 정신으로 사는 것도 때론 필요하단다^^

 

지승이는 5학년 1년 동안은 해리포터와 함께 살았습니다. 디브이디도 해리포터만 보고 책도 해리포터만 읽고 놀이도 해리포터 마법놀이만 하고 놀았습니다. 그건 지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서 늘어놓는 마법지팡이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하리하우스 방범을 위해 방어마법을 걸어놓던 지윤이의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며 짜증을 넘겨버리곤 합니다. 한번은 평동 도담철물점엘 갔는데, 마법사가 타고 다닐 만한 멋진 대나무 빗자루가 있어서 사주었습니다. 퀴디치 게임을 할 때 쓰라고요. 다른 데 돈 쓰는 건 아까운데, 마법빗자루를 사 줄 때는 아깝지가 않은 게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해리포터 마법세계의 힘이 나에게도 미치나 봅니다.

현진이 누나네 집에 갔다가 해리포터 스티커북을 선물 받고 한참을 잘 놀았습니다. 스티커북에 있는 편지지로 호그와트에서 자신들의 입학을 허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지승이가 어찌나 마법세계에 가길 원하던지, 엄마인 나도 마법세계가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승이가 말합니다. 만약 호그와트 전투에 내가 나간다면 엄만 허락할거야?  아이의 진지함을 알기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지승이가 모기를 손으로 휙 잡더니 하는 말, ‘햐아,  나는 수색꾼 해도 되겠지?’

내가 해리포터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언제 커서 해리포터를 읽을까 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해리포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아이들이 커서 반지의 제왕을 읽을까 했는데, 이젠 나보다 더 중간계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나를 넘어서 <끝없는 이야기>와 <비밀의 도서관>과 <모모>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들은 학교에 가방  앞주머니에 너덜너덜해진 반지의 제왕 한 권을 넣고 갔습니다. 쉬는 시간 틈틈이 꺼내보는 반지의 제왕이 분수의 혼합계산을 하느라  복잡해진 머리를 잠시 식히는 시원한 그늘막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방정식과 근의 공식을 들고 씨름 할 땐 어떤 책이 그늘막이 되어줄지 궁금합니다.

아들과 딸의 가슴속에 정의와 지혜와 사랑을 심어 줄 좋은 책을 장만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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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침 잠자리에서 뒹굴고 있을 때 책을 읽어 줍니다. 예전엔 잠자기 전에 읽어 주었는데, 요즘엔 늘 내가 먼저 잠들고 마는지라 책 읽어주는 시간이 아침 잠자리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아들은 더 듣고 싶어 하고 나도 더 읽어주고 싶은 데 등교 시간 맞춰 학교에 가야하니 말입니다. 오늘은 <백제 이야기> -창비 아동문고-를 읽었습니다. 미륵사지에 얽힌 이야기와 황룡사 9층탑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학교엔 뛰어가야 했습니다. 열심히 뛰어갔도 한 2, 3분은 늦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주 가서 보았던 분황사 석탑과, 분황사 옆에 있던 광활한 황룡사지 터에 대한 추억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운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바쁜 시간에 읽다보니 진도는 참 천천히 나갑니다. <백제 이야기>는 백제 시조 온조부터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시대 순으로 서술함을 기본으로 하되, 도미이야기와 곰나루 설화와 같은 이야기가 중간 중간 나오고, 일본으로 건너 간 백제 문화와 일본 속의 백제 마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빨리 백제를 해치우고 <고구려 이야기>와 <신라 이야기>를 읽어주고 싶은 마음에 하루 한 장 두 장 읽는 백제의 속도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참 재밌게 듣습니다. 아마도 빨리 다음 것을 읽고 싶은 다급함이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또 백제를 백제로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고구려 역사의 웅대함과 진취성, 광활함에 대한 동경으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백제를 <백제>로서 받아들이는 아들이기에 다급함이 없는 지도 모릅니다.

<백제 이야기>의 저자 김유진씨가 머리말에서 당부하는 말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방탕했던 의자왕과 3천이나 되는 궁녀의 끔찍한 투신으로 새겨진 백제역사에 대한 편견 없이 새롭게 백제 역사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백제는 강력한 해상국가였으며, 일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백제관음상과 법륭사를 백제인의 기술로 만들었음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 백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긍지를 갖게 한 <백제 이야기>를 아들과 같이 한 장 한 장 읽는 행복한 아침이 얼마간 계속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일본엘 가면 법륭사엘 들러보자 하는 내 마음에 동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로 된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의 이야기까지 읽고 나서, <이야기 동학 농민 전쟁>을 읽어주려 합니다. 어떨 땐 이런 책들을 혼자서 후딱후딱 읽어치우고 <한국사 편지>와 <엄마의 역사편지> <다시 쓰는 이야기 한국사>와 <다시 쓰는 이야기 세계사> 까지 후딱후딱 읽어 치우는 아들이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이면 아침마다 두 세장 씩 읽어주는 책읽기를 감질 난다고 마다할 수도 있는 일. 혼자 눈으로 읽는 책 보다 읽어주는 책을 더 좋아하는 아들임을 기쁘게 생각해야 것도 같습니다.

오늘 아들의 맘 속에 미륵사와 황룡사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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