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2/06/13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들 (3)
  2. 2012/03/23 초콜릿에 관한 이야기 셋
  3. 2011/05/03 해성한의원 신재용 선생님께 (1)

자녀교육에 관한 책들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으면 소통이 잘 됩니다. 엄마가 키우는 아이건 할머니가 돌보시는 아이건 아이를 사이에 둔 어른들은 나이를 떠나 친구처럼 지내게 됩니다. 말을 붙이기 어색한 사이도 아이가 끼이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렇게 아이를 통해 더 자연스런 친구가 된 조카가 있습니다. 조카의 아이가 아홉 살, 우리 아이들이 12살. 촌수로 따진다면 저희들끼리는 5촌 아저씨 아주머니뻘 되는 사이인데, 그냥 형 누나 동생하며 친구처럼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도 동생과 놀고 싶다 졸라서 조카네 집에 갔습니다. 조카네 집 마루에 책이 한 스무 권 쯤 쌓여있는데, 모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몇 권을 빌려와 읽었습니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으레 느끼는 것이지만, 알고는 있는데 실천이 안 되는 ‘좋은 말’이 많았습니다. 그 좋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모아봅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 꽉 잡는 법>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한 건 교과서의 중요성입니다. 수학책과 수학 익힘책을 꽉 잡는 게 수학을 꽉 잡는 길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엄마 학교>

이 책에서는 내가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이야기’ 캠프에서 하는 놀이들이 소개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저절로 생각해 내는 놀이가 같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놀이로 크는 우리 아이들도 아름답게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맞기 놀이’는 올 여름에 많이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이 비 맞으며 노래하는 부분이라 나 또한 아이들 핑계를 대고 빗속에서 놀아보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엄마학교>에서 ‘자녀를 기르며 자녀로 인해 부모가 울 수는 있어도, 자녀가 부모 때문에 눈물짓게 해서는 안된다.’는 글쓴이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는 참고 인내하여 가정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유태인 엄마의 영재 교육법>

아이교육에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런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늘 바쁘시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나 계실 수는 없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드셨다.’

아이 옆에 왜 엄마가 있어야 하는 지를 일깨우는 더 좋은 경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가 지나치다 싶을 때 ‘끼고 돈다.’는 표현을 씁니다. 더 심하면 ‘마마보이’라는 표현이로 과잉보호를 문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과잉보호된 아이들의 예로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프루스트’를 들고 있습니다. 과학과 철학분야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과잉보호’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를 갖고 독립하려고 할 때 까지 아이들을 ‘과잉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r광잉보호를 해서 천재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과잉보호' 그 자체를 문제삼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에 동감해서 입니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듣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것도 비판적으로 보면 일종의 ‘과잉’에 해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 문호 괴테도 11살까지 어머니가 동화책 읽어 주는 걸 들으며 컸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읽는 걸 더 좋아할 때 까지 읽어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괴테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학습지 광고에서 ‘과학자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을 직접 가르쳤고, 대문호 000의 어머니는 11살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학습지를 시키는 어머니가 되라’는 광고 문구에서 얼핏 본거라 괴테였는지 셰익스피어였는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확실한 건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어도 엄마가 읽어 주는 걸 좋아한다면 읽어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유태인 엄마의 영재 교육법>에서 또 하나 인상 깊은 내용은 ‘보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의 작가가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니께 선물을 사서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며 드렸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선물을 사양하시며 ‘네가 나한테 고마운 게 있다면 그만큼 네 자식에게 베풀어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머니께서 베풀어주시고 가르쳐주신 대로 자식에게 베풀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세대 간의 진정한 보은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며 나도 내 자식을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부모들의 7가지 습관>

성공한 자녀를 둔 부모들의 습관을 적은 책입니다. 7가지만 하면 자녀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는 데 누군들 하고 싶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습관에 관한 내용이 너무나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만큼 평범한 습관 하나하나가 자녀교육에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기억하려고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학문의 목적은 성장, 성공, 공헌에 있다. 보통 부모들은 학문을 통해 ‘성공’을 이루라 합니다. 그러나 ‘공헌’할 수 있는 학문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저는 아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개인적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은 많지만, 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적 성공 후에 사회에 기여하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자녀 성공의 key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

이 책은 아빠를 위해 빌려온 책인데, 아마 제목만 봤어도 아버지 역할의 무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책에선 한자 공부를 시키기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추구>라는 책과 <명심보감>이란 책을 사서 아이들에게 맡겼습니다. 겨울방학 며칠동안 <추구>는 외우고 <명심보감>은 읽으라고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놀 시간도 부족한데 한문까지 하면 자칫 한문을 미워하는 아이들이 될까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한문이 사랑스러워지면 <추구>도 읽고<명심보감>도 읽겠지 싶은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작은 소리로 아들을 똑똑하게 키우는 법>

책을 천천히 큰 소리로 읽게 하라는 것과 사내아이는 몸으로 배운다는 것을 메모했습니다.

<딸을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

여성의 감수성이 여성을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게 하는 는 힘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엄하게 키우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교육법이 딸들에겐 더 적합하다는 내용도 수긍이 되었습니다.

<영어, 낭독 훈련에 답이 있다>

외국어 습득에 ‘큰 소리로 읽기’가 중요함을 강조한 책입니다. 리듬을 살려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했는데, 그 중 ‘잠언’(proverbs)을 소개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수준별 영어책 목록이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은 읽는다고 다 실천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로서 잘못하는 건 없나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참 교육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책을 돌려주며,

“아는 얘기고 쉬운 일인데 책대로 실천하긴 참 어렵지?”

하고 서로 보고 웃었습니다.

조카의 아이들도 나의 아이들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빌어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12/06/28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정도와 정답은 사실 의미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아이들의 교육은 그 아이에 맞춰서 이뤄질때 가장 좋은 것이죠. 눈 높이에 맞는 교육이죠. 그런데 솔바람님 얘기를 들으며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부분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내가 아들의 눈높이로 맞춰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아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기 보다 내 눈높이에 아들의 수준을 맞추려는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책을 읽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를 않죠. 부모의 행동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감이 됩니다. 식사를 할때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잡곡밥은 소화하기 힘든 모래와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화하기 힘든 잡곡밥을 강요하는 그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솔바람 2012/06/28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저런 이유로 한참을 들여다 보지 못했었는데, 나그네님 방문 하신 걸 보니 반갑습니다.
    나그네님 댓글 아래에 있는 열 몇개의 장난꾸러기 댓글을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그 날 우리 딸은 시험공부를 하느라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는데, '감히' 누가 우리 딸 이름을 도용하여 장난댓글을 올린 겁니다.

    요즘 우리 딸이 '감히' 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처음엔 아이가 그 단어를 쓰는 게 재미있어 그냥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들으니 아이가 '감히' 엄두를 못내는 일들이 많아질까 하는 염려가 드는 겁니다.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너에게 '감히'란 없어. 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우리 딸이 지극히 높은 자존감을 갖고 '무엄하도다.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야 상대의 인격도 높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고수들 끼리의 예도 자존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하리하우스에 나그네님과 같은 고수가 계셔서 기쁩니다.

    • 나그네 2012/06/29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고수라니요?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는 사람인걸요.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솔바람님께서 진정한 고수이시지요~

초콜릿 소동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란다. 잘 들어보렴.

매터씨가 그의 주위에 앉아 있는 두 딸과 세 아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먼 옛날... 그니깐 한 1989년도쯤 이야기란다. 그땐... 그땐 창 밖에 갈색 나무위론 새가 날고 푸른 하늘위엔 토끼구름 나비구름 각종 동물들이 떠다녔지. 그때 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래, 아주 순진한 나이였지. 그땐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30분 공부하면 초콜릿을 하나 주셨단다. 하지만 초콜릿이 우리 집에 오래 있진 못했지.

-왜요?

지금까지 궁금한 걸 참고 있었던 첫딸 수지가 물었다.

-수지야, 기다리렴. 아빠가 말하려 하잖니?

매터씨는 화를 간신히 참고 (매터씨는 이야기에 끼어드는 걸 무지 싫어한다.) 마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느 때처럼 공부를 30분하고 있었지. 갑자기 부엌에서 바스락 하고 소리가 나는 거야. 이상하다 싶었지. 내 부모님께서는 그때 시장에 가 계셨지. 너무 궁금했던 나는 부엌문을 살짝 열어보았지.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지. 도둑이 초콜릿을 훔치려는 거야.

-그런데 아빠 죄송한데, 도둑 땜에 놀라셨어요, 아님 훔쳐가는 초콜릿을 보고 놀라셨어요?

수지보다 한 살 위인 맏아들 피터가 조심스럽게 말을 끊고 말했다. 그러자 매터씨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어험, 너희라면 무엇 땜에 놀랐겠니. 아냐?

둘째 딸 아냐는

-저는 초콜릿 땜에요.

아냐도 약간 부끄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모두들 아냐를 이해해 주었다. 그 외의 나머지 4명도 같은 대답을 했지만 아무도 놀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냐가 다시 매터씨에게 물었다. 매터씨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 자, 내가 그땐 너희와 생각이 같았나보다.

그러자 1분도 안돼서 폭소가 터졌다. 하지만 5분 뒤에는 모두 진정하고 매터씨는 이야기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그 도둑이 초콜릿을 갖고 뛰기 시작했지. 나도 따라 나갔단다. 그런데 그 도둑이 자원봉사협회라고 써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더라고. 어리둥절해서 따라가 보았는데 ...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도둑이 아닌 우리 삼촌인거야. 나도 우리 삼촌이 자원봉사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 알고 보니 삼촌은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다하는 아이들이 불쌍했던 거야. 그래서 우리 집 걸 쓰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난 끝까지 우리 집 거라고 우겨서 손상 없이 초콜릿을 잘 가지고 올 수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후회스럽단다. 너희도 후회하는 일 없이 잘 생각해서 하렴...

네! 하고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매터씨는 70번째 연설을 마쳤다. 그런 뒤 모두 잠이 들었다. 단지 매터씨만이 내일 할 이야기를 짜느라 잠을 설쳤다.

이 이야기는 또 그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또 그의 아이로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도 아이가 태어나면 꼭 이 이야기를 전해주게 될 거다.

2011년 12월 30일 우지윤



초콜릿

요즈음엔 초콜릿은 도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식품이다. 어린이들이 그 단맛에 홀려 매일 먹는 아이들까지 나타났다.

이 초콜릿은 사람 몸에 좋은 걸까?

수학 등 공부할 때 뇌를 활발히 해 도움을 준다는 설이 있지만, 그 외에는 초콜릿이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또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는 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거냐면, 카카오 농장에 쓰는 인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카카오 나무에 올라가서 카카오를 따오는 인부가 우리 또래의 어린이 일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농장이 어린 인부를 값이 싸다는 이유로 쓰고 있다. 아마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80-70%는 어린 아프리카의 눈물과 땀이 섞여있다.

과연 우리가 초콜릿을 먹어야 할까?

2011년 12월 30일 박진슬



색깔 삼형제

옛날 옛적 색깔 삼형제가 살았어.

남자고 둘이고 여자가 하나였어.

남자는 12살인 블루와 11살인 레드가 있었어. 여자인 핑크는 11살로 레드와 동갑이지.

남자가 많다고 핑크는 기죽지 않았어. 핑크의 꿈은 작가였어. 매일 멋있는 글을 썼지. 레드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어. 블루는 꿈을 밝히지 않아.

그들은 매일 공부하는 시간을 정해 공부를 했어. 그리고 공부를 다 하면 초콜릿을 두개씩 먹었지.

단순한 레드와 핑크는 블루말대로 초콜릿에 목숨을 걸 판이었어.

하루는 엄마가 말했어. 초콜릿에 대해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하나 더 주겠다고 말이야. 핑크는 글이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지었지. 결국 초콜릿도 받고.

그런데 점심 시간이 되자 핑크는 레드와 블루에게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레드는 열심히 들었지만 블루는 하나하나 트집을 잡느라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지. 핑크는 화가 나서 나보다 잘 쓸 수 있냐고 소리쳤어. 이때는 귀가 하나의 반만 있어도 들릴 정도였지. 블루도 블루대로 글을 써서 시합해 보자고 했지.

한 30분 뒤 블루가 이야기를 완성했어. 이야기는 커녕 온통 자기주장 뿐이었지. 국어시간에 밥을 먹었나 싶었어. 분명히 국어에선 남의 이야기도 존중하고 내 이야기만 주장하지 않는다고 나왔거든. 하지만 뭐 상관 없어. 블루가 못 쓸수록 나만 이득이니깐.

그건 그렇고, 그래서 핑크도 다시 이야기를 썼어. 색깔 삼형제가 나오는 이야기를 말이야. 들어볼래?

어쩌고 저쩌고 ....

어때? 재미있지?

초콜릿은 내꺼야.

2011년 12월 30일 우지윤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rive for peace with everyone, and for that holiness."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2장 14절

그런데 성구 해설에 따르면, ‘평화’란 하느님과의 화평을 통해서 타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 책음을 갖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이란 하느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화’화 ‘거룩함’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드러내야 할 하느님의 속성이라고 합니다.

2010년을 보내며 2011년을 맞으며 신재용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말씀입니다. 2011년의 날들이 촘촘히 박힌 어여쁜 달력과 함께 보내주신 말씀을 읽는 순간 제 삶이 아름답게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껏 제가 들어온 가르침 중에 ‘거룩함’이란 말씀은 없었습니다. 물론 정직, 인내, 정의, 지혜, 사랑, 순수, 진실 등의 가르침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라는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함’이란 말씀은 없었습니다. 역사상의 위인이나 성인에게나 붙는 수식어인 ‘거룩함’이란 단어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내 생의 목표에 두고 살라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살라고.

선생님께서

‘한 해를 돌아보면, 아니 한뉘를 헤아려 보아도 어느 한때나마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냈다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없게 살아왔습니다. 거룩하게 살았느냐 하면 그건 더욱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까지의 삶이 그야말로 헛된 삶에 불과했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반성은 저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주시는 겸양과 교훈의 말씀임을 압니다.

되짚어봄에 하루라도 평화로움으로만 가득 찬 날이 없었고, 돌아봄에 초췌하고 남루한 인격의 옷을 입고 지낸 날이 많은 것 같아 자식 보기도 참 부끄럽구나 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던 차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의 고뇌를 어찌 알고 나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시는 걸까. 이렇게 좋은 말씀을 주시는 스승님이 계시니 나는 참 행복하구나!

벌써 5월입니다.
여전히 허둥대고, 화내고, 실망하고, 실수하며 지내는 나날이지만, 때때로 생각합니다. 여럿 속에서 평화롭고 거룩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

아름다운 5월에 ‘평화와 거룩함’이란 말씀을 새겨주신 신재용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평화와 거룩함이 있는’ 작은학교 이야기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11/05/13 0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때 그 형상은 하나님을 통해 왔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랍니다. 신의 여러 속성중 하나는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가르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룩함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죠. 내 자신이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거룩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솔바람님께서는 좋은 스승을 두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