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과 우리 전통음악을 하루 종일 방송하는 클래식 전문방송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민심에 따라 골고루 적당하게 선곡된 음악을 광고방송 없이 24시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 그런데 테이프나 시디로 듣는 것과는 다르게 전파를 타고 흐르는 방송이다 보니 늘 같은 음질로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안테나 부러지고 없는 아날로그 라디오는 주파수 맞추는 게 정말 일이다.
원래 있던 자바라식 안테나는 아들이나 딸 둘 중 누군가가 살짝 부러뜨린 걸 (부러뜨림 자체를 원망하진 않는다. 아이들 손에 남아날 만큼 무쇠팔뚝 같진 않았으니까) 테이프로 붙여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뭔 맘으로 아주 똑 꺾어버렸다. 그런데 그 어설프게 건들건들 붙어있던 안테나를 아예 떼서 없애버리자 소리가 찌직거려 도저히 방송을 들을 수가 없게 됐다. 두 조각 난 안테나를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똑 꺾인 안테나가 제 기능을 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사를 해서 라디오 놓는 자리가 바뀌자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찌직거렸다. 아쉬운 대로 손에 잡히는 열쇠를 안테나 자리에 얹어놓고 주파수를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늘 아쉽고 불만스러웠다.
라디오 안테나 자리에 열쇠 하나를 끼워놓고 주파수를 맞춰보려고 애쓰던 어느 날, 아들에게 하소연 하듯 안테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쇠를 이리 저리 끼워보던 아들이 공구서랍에서 긴 줄을 하나 갖고 오더니 이걸 안테나로 써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 선이 무엇에 쓰던 선인지 모르지만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라디오를 사는 돈 보단 싸게 들 테니 말이다. 아들이 가위며 니퍼를 들고 선을 과감히 자르고 쭉쭉 껍질을 벗기고 하더니 알록달록하고 가는 선들이 서로 배배 꼬여있는 긴 줄을 들고 왔다. 그리곤 그 줄을 부러진 안테나 끝에 감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짧은 안테나에 얌전히 붙어있을 만큼 노긋노긋한 선이 아니었다. 색색의 여덟 갈래로 갈라진 그 선은 뻗대는 머슴아이 심술자락마냥 사방으로 뻗치며 풀어져버렸다. 아들이 안되겠는지 공구서랍에서 뭔가를 또 가져왔다. 그것은 마치 빨래집게처럼 생겼고 손으로 누르는 부분에 둥그렇게 구멍이 나 있는데, 아들이 그 구멍에 줄을 끼워 홀쳐 묶었다. 그리고 긴 줄이 매인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을 안테나 끝에 대는 순간.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거의 완벽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아! 아들의 안테나다.
엄마를 위해 만든 아들의 안테나!
자세히 보니 그 빨래집게 같은 것은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때 쓰는 집게다. 자전거 바퀴에 있는 바람 들어가는 구멍과 펌프에 있는 바람 나오는 가는 관을 연결시킬 때 쓰는 집게. 그러나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는 여덟 가닥의 전선은 아직도 무엇에 쓰던 물건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아들의 눈썰미와 재치와 끈기를 느끼게 해주는 용솟음치는 사랑의 안테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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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라디오가 얼마나 한다고 저런 궁상을... 그러나 시디를 들을 수 있었고, 테이프를 들을 수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그 스테레오 라디오는 보통 라디오가 아니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친구가 미국여행에서 사와서 친구의 아들을 키우는 동안 시디로 음악을 들려줬던 라디오다. 친구의 아들이 다 커서 더 이상 식탁에 올려놓고 음악를 틀어 줄 일이 없게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온 라디오다. 친구네 집에서 올 때는 110볼트용이라 나도 한동안은 변압기를 놓고 썼던 라디오. 시디 넣는 문이 고장나서 자동으로 열리지만, 그래도 아직 쓸만하다고 물려 준 친구의 진심을 알기에 동네 수리점에서 시디 넣는 문을 수리했고, 더불어 변압기 사용이 번거로워 비용을 들여 220볼트로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테이프가 안되서 수리를 했는데, 작은 레고 조각이 기계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볼륨 조절도 안되서 한밤중엔 들을 수도 없을 만큼 큰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지만, 친구집에서 산 세월과 내 집에서 산 세월을 합하면 족히 20년은 되었을 라디오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라디오를 수리하라고 맡기고 수리가 끝나면 찾으러 가고 했던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엔 추억이고 아이들 삶엔 교육이 되었을 것이니, 내 집에 그 라디오가 있는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아들의 안테나가 달린 그 라디오를 듣고 있다. 불행히도 시디플레이어가 아주 고장이 나서 고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해서 안고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테이프는 들을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들의 손놀림이 더 정교해지는 어느날엔 어쩌면 조절되지 않는 볼륨을 고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래를 꿈꾸는 엄마는 행복하다.
ㅎㅎ 지승이는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을 듯!
지승아 잘했어! 엄마한테 수리비로 후라이드치킨 사달라고 그래봐 ㅎㅎ 안사주면 그만 다시말해 밑져야 본전 정신으로 사는 것도 때론 필요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