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천국!

우리 아들을 보면 그 말이 떠오릅니다. 호기심 천국.


아침에 아들을 깨우는 데 난데없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사람들은 눈이 두 개 잖아요. 그런데 왜 보이는 건 하나로 보여요?”

자리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다가  생각이 났나봅니다. 자기 눈이 두 개 라는 사실이. 답은 간단합니다. 뇌의 작용이겠지요. 양쪽에서 들어온 시각정보를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뇌가 하리라 당연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거라 의문을 제기 한 적이 없는데, 아들의 나이에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아니므로 궁금한 겁니다. 궁금한 게 있는 것, 그게 바로 학문의 첫걸음이지요.


공부를 하면 잘 할 듯 한 아들이 공부에는 아직 뜻이 없나 봅니다. 도무지 수학 문제집 푸는 시간엔 집중을 안 하는 겁니다.

며칠 전엔

-태어난 달의 수와 태어날 날의 수를 합하면 15보다 크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문제를 풀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이해했냐고 했더니 했다기에 풀어보라고 두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젠데 얼른 안 풀고 있기에 빨리 하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태어난 달의 수가 뭘 뜻하는 지 날의 수가 뭘 뜻하는 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 뜻을 모르니 당연 문제를 못 풀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태어난 달은 1월부터 12월 중 한 달을 뜻하고 태어난 날은 1일부터 30일가지 중 하루인 데 그걸 이해를 못해서 문제를 못 푸는 겁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 지  달 과 날을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걸 잊어버리는 게 말이 되냐고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핑 돌며 하는 말,

“엄마, 저는요, 더 좋은 게 있을 때는요, 다른 생각은 밖으로 나가버려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그래서 달이 뭔지 날이 뭔지 이야기 해 주고 같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1+1 = 2 라는 건 어른이 되어도 안 까먹어야 하는 것처럼 달과 날은 절대로 안 까먹어야 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지승이 뭔 생각을 하느라 ‘달’과 ‘날’을 기억에서 못 불러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님 진짜 까먹었던 것일까요!


건블루베리가 들은 베이글을 먹다가 말합니다.

“엄마, 내가 건포도 만드는 법 알아요.”

말해보라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권총을 놔요, 그담에 포도를 놔요. 그럼 건포도지요.”

에구구~~ 일종의 말놀이를 생각해 낸 겁니다. 그래서 장하다고 칭찬해 주었지요.


딸의 담임선생님께서 학부모 총회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화를 내는 순간 교육은 끝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큰소리로 화를 잘 내는 것을 반성하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지승아, 엄마가 화내고 큰 소리치고 그래서  많이 속상했지? 미안해!”

이미 저지른 일이 씻어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을까봐 전전긍긍 후회하는 맘으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는 속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하루만 지나면 잊어버려요.”

하는 겁니다.

결국 엄마가 자식을 두고 하는 교육은 실수가 있어도 다음 날엔 수정 가능함을 믿기에 오늘도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립니다.


4월이 과학의 달이라 학교에서 과학관련 행사가 많습니다. 어제는 아들이 숯과 팬을 이용해 공기 청정기 만드는 법을 이야기 했습니다. 수조에 물을 넣고 거기에 숯을 넣습니다. 그리고 수조 옆에 모터로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설치를 한답니다. 그러면 숯을 통해서 나오는 좋은 공기를 프로펠러의 바람으로 날려서 공기를 좋게 한다는 겁니다. 너무나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쉽게도 그 비슷하게 숯을 이용해서 만든 공기청정기가 이미 나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실망하는 기색이 아닙니다. 아들의 목적은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버는 것에 있지 않고 자신이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것 차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방안에 숯 바구니를 놓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숯을 씻을 때 나는 개울물소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숯 덩어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는 정말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한동안 아이들은 숯을 키워보겠다며 대나무숯 조각들을 컵에 답아 물에 담가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보라고 했던 건 그냥 숯을 갖고 노는 게 좋아서였습니다. 바싹 마른 숯덩이가 졸졸졸 소리를 내며 물을 빨아들이는 걸 듣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무엇이 되든 어떤 위치에 있든 행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겁니다.  행복, 가장 좋은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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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3/2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승이 생각이 귀엽습니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뭔가를 바라보고 표현한다는 것, 특히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참 중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아들에게 화를 잘 내는 편입니다. 특히 공부할때요.ㅎ.선생님 말씀이 맞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를 내는 순간 교육은 끝이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분은 화를 내야할때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교육이라도 하더군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와는 좀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인격적 관계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죠. 화를 내야 할때 화를 낼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 저는 이게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제 사견입니다.

  2. 솔바람 2011/04/05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이기 때문에 화를 내도 된다는 말씀 너무 위로가 됩니다. 오늘 아침엔 아들이 엄마를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 물어보았습니다. 지승아, 엄마가 화내면 많이 무섭니? 그랬더니 하는 말, 아니요 짜증이 나요. 결국 제가 화 내는 방법이 틀린 겁니다. 짜증나지 않고 반성하게 하는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해야할지... 화내는 횟수를 줄이면서 화를 낼때는 더 교육적으로 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터인데 그게 잘 조절이 안되네요 ㅎ ㅎ

엄마, 폭포가 진짜 있어요?
그럼 당연히 있지.
엄마, 폭포가 보고 싶어요.
너 폭포 본 적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 어떤 폭포를 보았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폭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작은 인공폭포 한 두 번 보았나 싶긴 한데, 그것도 물이 떨어지는 장면이 아니고 폭고 자리만 마련된 인공폭포를 본 것 같습니다. 인공 폭포에 물이 흐르지 않아도 나는 저젓이 인공폭포거니 아는데, 지승이에겐 물이 흐르지 않는 인공폭포는 폭포인지 아니지 생각할 대상조차 아닌 겁니다.
지승이 왜 갑자기 폭포가 보고싶어졌는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폭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웅장함을 보여 줘야겠다 싶을 때 폭포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아들이 폭포를 보고싶다 합니다.

<파워 어브 원>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인데, 그 영화 속에 나온 폭포가 잊혀지지 않고 늘 가슴 한곳에 살아있었습니다. 그 폭포에 대한 꿈을 지승이가 일깨워줍니다.

엄마, 폭포가 보고 싶어요.

폭포가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프리카의 '빅토리아폭포'를 생각하는 것은 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룡폭포나 천지연폭포처럼 내가 본 폭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빅토리아 폭포에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엄함.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의 폭포가 빅토리아 폭포가 맞을 거라고 믿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북아메리카의 나이아가라, 남아메리카의 이과수, 그리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파워 어브 원>의 사회적 배경이 인종갈등이었던 걸 상기한다면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가 맞을 것  같습니다.

장대한 빅토리아 폭포를 보며 물방울 하나 하나의 힘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물방울 하나 하나가 모인 폭포의 힘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 그 깨달음은 주인공에게  힘이 됩니다. 폭포와 같은 장엄한 힘.

아이들이 크면 CD로 사주고 싶었던 영화 중에 하나가 <파워 어브 원>입니다. 그 폭포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안 되었는데 폭포를 보고싶다 합니다.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물론 인터넷에 세계 3대 폭포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장엄한 감동은 <파워 어브 원>이란  영화 속의 폭포이지 관광객의 눈으로 볼 폭포는 아닙니다. 자연의 장엄함을 가슴으로 느끼기 전에 폭포에 대한 판박이를 머릿 속에 저장시켜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럼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합니다.

 꿈 꾸게 하는 것. 가슴 속에 울렁이는 희망을 갖고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아들을  안고  엄마의 기억 속에 있는 <파워 어브 원> 폭포를 이야기 해 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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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엿새 째 이야기 - 성장의 시간


며칠 전 지윤이 학교 일기 주제가 '엄마 아빠가 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썼나 궁금하여 지윤에게 말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아빠는 운동과 운전을 잘 하신다고 썼습니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신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해 쓴 내용 중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엄마는 농사를 잘 지으시고 또 풀을 잘 뽑으신다는 내용입니다, 표현하기를 ‘엄마가 풀을 뽑으면 풀이 금방 후루룩 없어진다.’ 고 쓴 겁니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웃을 내용이지만, 어쨌든 딸의 눈엔 엄마가 농사를 잘 짓고 풀도 후루룩 잘 뽑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엄마가 농사를 잘 짓고 풀을 잘 뽑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지 아님 그냥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엄마가 무어든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인식된 것은 뿌듯합니다.
지윤이가 일곱 살 되던 해부터 엄마가 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지윤이 밭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습니다. 가끔 자기 맘대로 밭을 가꾸어도 되냐고 묻습니다. 특히 겨울이 막 가는 시절에 밭에다 뭘 심어 보겠다고 호미를 들고 나서기도 합니다. 땅 몇 번 파다말고 호미를 밭 가운데 던져두고 돌아오기 일쑤지만, 어쨌든 흙을 친근하게 느끼는 아이로 큰 건 하리하우스 덕분입니다.
 여름엔 풀 뽑는 엄마를 보고 가을엔 추수하는 엄마를 보고, 또 호두나무에서 장대로 호두를 떠는 아빠를 보고 아이들은 자연의 순환을 배우는 겁니다.  장대로 호두 떠는 일은 아빠 다음으로 지승이 잘 합니다. 엄마보다  지승이 장대를 잘 다루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아빠가 안 계실 땐 지승이 호두나무에 올라가야 하니 호두를 떨 땐 지승이 스스로 느끼는 존재감이 더 당당하지 않을까 하며 호두나무에 올라간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번은 지윤이 숙제에 어려운 수학문제 풀기와 어렵지만 끝까지 해낸 일을 비교해서 쓰는 내용이 있었는데, 은행 줍기는 어려운 수학문제 푸는 것만큼이나 하기 싫은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겉 물렁한 껍질이 터지면 고약한 똥냄새가 나는데다, 은행껍질의 진물엔 독성이 있어서 피부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니 당연 은행 줍기는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해 보는 것도 교육이라 여기는지라 한 바구니에 500원이라는 교육비를 지불하며 시킵니다, 아이들이 500원을 벌기위해 한참을 꼬박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것을 보면, 지구력도 있고 참을성도 있구나 싶어 대견한 생각이 듭니다.

새 학년이 되어 지윤이 담임선생님께서 보낸 가정통신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혹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저 사람도 성장하는 중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지윤이가 참 행복한 4학년을 보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부족함을 성장의 과정에서 보아주고 이끌어 주실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성장의 과정’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서의 15박 16일을 마무리하며 ‘성장의 과정’이란 말을 떠올립니다. 작은학교 이야기는 늘 성장합니다. 부족함이 알기에 성장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작은학교에 와서 놀다 간 아이들의 인생과 함께 성장하고, 꿈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풀이 썩어 거름이 되는 밭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고, 까마득한 키의 은행나무와 함께 성장하고, 하리하우스 작은학교 이야기를 응원해 주는 모든 이들의 기원과 함께 성장합니다.

계획보다 일정이 짧아져서 아쉽게 돌아간 진슬이는 여름방학을 기다릴 겁니다. 형, 오빠, 친구들과 놀던 추억을 간직한 아이들은 그리움이란 걸 배웁니다. 더불어 하는 감사함도 알 것이니 다가오는 사람 소중함도 알 겁니다.

마음이 성장하는 곳, 마음이 성장한 시간.  사색의 시간이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용기 있는 실천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서 보낸 겨울방학 15박 16일은 성장의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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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3/29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리하우스의 여름철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연을 벗삼고 자연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마음의 재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윤이와 지승이가 부럽습니다.
    하리하우스의 작은 학교는 부족함보다는 그 부족함을 채워가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학교입니다. 그렇기에 기쁨과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학교라 생각됩니다. 올해도 재미있는 과학실험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