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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4 이레 째 이야기
 피아노를 찾아서 ...노래를 찾아서...

반가운 손님이 오기로 한 날입니다. 한이 오빠와 이모가 오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나 올 손님인데 우린 수요일부터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낼 하루만 더 있으면 금요일엔 한이 오빠가 온다는 낙으로 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을 맞았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낼은 한이 오빠네가 온다  하며 목요일을 보냈습니다. 아마 ‘어린왕자는 하리에 있는 우리보다 덜 심심했나 봅니다. 어린왕자는 친구를 약속시간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며 행복했지만, 지윤 지승은 이틀 기다리기를 두 시간 기다리듯 했습니다.

한이는 특별히 청한 손님입니다. 와서 노래 한곡 들려달라고. 얼마 전 중학교 1학년인 한이가 성악으로 음악 영재학교에 지원했다가 선발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가능성을 찾아 키우려는 미술대회에서 여백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네로를 뽑지 않았던  심사위원들처럼, 아마도 성악에 영재 가능성을 지닌 아이가 아닌 이미 가꾸어진 영재를 뽑았나보다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시험 전 대 여섯 번의 개인지도만 받고 도전했던 한이의 가치를 몰라준 것이 내내 안타가웠습니다. 약간 위축돼 있을지도 모를 한이 기도 살려줄 겸 하리로 오라고 초대한 겁니다.

한 이태 전인가 한여름 밤 작은학교 마당에 울려 퍼지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기억하기에 한이의 노래를 꼭 듣고 싶었습니다. 지윤 지승에게 또래(?)가 부르는 성악곡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서울 집에서는 하루 30분의 피아노 치기 숙제를 지겨워하더니 피아노가 없는 하리에서는 피아노 치는 시늉을 잘 합니다. 손으로 허공을 두드리고 입으로 계이름을 외며...

하리에 온 지 이레 째 되는 날인데 아이들이 정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지윤 지승과  좀 낭만적인 길을 나섰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적성면사무소에서 한 때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는 가르치시는 봉사자가 계셨단 이야기를 들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면사무소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집을 나설 땐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 했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피아노를 찾아 가는 기분이 피아노를 듣는 것 만큼이나 즐거웠습니다. 너무나 피아노가 피고 싶어서 ‘저기 있는 피아노를 쳐봐도 될까요?’하고 말하는 순간도 참 동화적이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더 행복한 길.

피아노를 찾아서...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래 외롭던 피아노 뚜껑을 열고 한두 건반 두드려 보는 아이들.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바짝 끌어 앉아 연주를 하면 침침하고 적막하던 시골 면사무소의 놀이방에 ‘딩동댕동 댕댕동’ 하는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이런 상상을 하며 눈발 날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피아노를 찾아서...

그런데 아쉽게도 적성면사무소 놀이방으로 쓰였던 곳에 피아노는 없었습니다. 피아노가 없어서 아쉬워하며 돌아왔습니다. 피아노를 찾아 나섰던 그 길을. 하지만 아이들이 피아노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게 많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것임을 알기에 지윤 지승의 삶이 아름다울 거란 믿음이 자라는 날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중에 피아노를 사면 작은 학교 어디다 둘까 의논하며 걸었습니다.

성악은 지윤과 지승의 삶에 또 하나의 사랑입니다. 아직은 호흡도 제대로 못 끝낸 지승이지만 성악수업으로 ‘노래부르기’를 즐겨하게 되었으니 사랑의 첫 발은 뗀 셈입니다. 그런 지윤 지승에게 꿈의 대상이 생기면 더 분발하지 않을까 싶어 한이의 노래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파리나무십자가 합창단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맑고 고운 소리를 곁에서 직접 듣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지윤 지승 둘이서 난로에 불을 피워 본 경험이 있는데다 한이도 있으니 불을 피워보라고 맘 놓고 내려 보냈습니다. 난롯불에 고기 구워먹을 채비를 해서 내려갔습니다. 위판이 넓은 난로 위에 호일을 깔고 돼지고기를 얹어서 구워먹었습니다. 고기 옆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얹어서 구웠습니다.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레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지윤, 지승이 사운드 어브 뮤직에서 배운 도레미 송을 원어로 부르고, 한이를 시켰는데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불렀습니다. ‘탈 때로 다 타시오 타다 마진 부디 마오..’ 그리고 한이를  시켰는데 한참을 빼다가 뺀다고 엄마한테 혼나다가 그러다가 불렀습니다. ‘옴 브라 마이프....’

‘와~~~’

노래를 잘한다, 가수해도 되겠다, 뭐 그런 칭찬은 해 본 적이 있지만,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는 칭찬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이의 노랫소리는 소리 그 자체가 아름다웠습니다. 복덩이 하나를 타고난 한이입니다.

하리하우스 1층은 공명이 좋은 구조입니다. 나처럼 음을 잘 못 다스리는 사람의 노래도 그럴듯하게 울려주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부르는 한이의 노래는 너무 멋져보였습니다. 아름다워서 훗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분위기에서 한이의 노래를 또 청해 들었었는데, 듣고 나서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한아, 이모한테 하리하우스가 있어서 참 행복하단 생각을 했어. 여기가 아님 어떻게 이런 분위기에서 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겠니. 이모가 파리나무십자가 노래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어. 정말 잘했어.“

한이를 구슬려서 오랜만에 ‘보리수’도 들었습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래인지라 같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이가 음악시간에 배웠다는데 내가 학창시절 배울 때와 번역이 약간 달랐습니다. 나는 ‘가지엔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라고 알고 있는데, 한이는 ‘가지엔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라고 불렀습니다. ‘사랑’이든 ‘희망’이든 새기어 놀 만한 단어이니 무에 상관이겠습니까. 한이 덕에 잊었던 노래 하나 찾아서 기뻤습니다. 며칠을 기다려 온 손님은 1박2일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보리수 음율하나 떨구어 놓고서.

하리 작은 학교에 피아노가 생기면 꼭 한이를 초대해야겠습니다. 반주는 지윤이나 지승이나 하라 하고 노래는 한이한테 하라 하고, 그리고 우린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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