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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7 열닷새 째 이야기- 불놀이 (3)

열닷새와 열엿새이야기 - 불놀이


진슬이와 함께 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지윤 지승은 열닷새를 하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하리 작은학교를 떠나 서울 집으로 가야 합니다. 진슬인 내일까지 3박 4일이 아쉬운 판이고 지윤, 지승은 단조롭지만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또다른 설레임이 있는 날입니다. 어쨌거나 오늘까진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학교에 캠프 온 보람이 있는 거니까요. 

일어나면 책 읽고 공기하고 그림 그리고 블루마블 보드게임하고  짬짬이 데크에 나가 축구하고, 한 시간씩은 수학 문제집 풀고 영어 듣기 하고 ...

그렇게 점심때를 보낸 후엔 지윤 지승은 아빠 오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엄마 몰래 아빠 귓속에 녹차아이스크림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치킨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엄마 몰래 아빠와 작당(ㅎ?ㅎ)을 해서 먹는 녹차아이스크림이나 후라이드 치킨이 아빠와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기에 슬쩍 눈감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로 정했습니다. 돼지고기 목살 구이. 그렇게 메뉴가 정해지자 지승이는 굳이 숯불구이로 먹고 싶답니다. 난롯불에 호일 깔고 구워 먹는 것 보다 숯불구이가 먹고 싶다고 끝내 우깁니다. 실은 난로에 고기 구워먹기를 아빠는 안 해봐서 아빠를 위해 난롯불에 구우려 했는데 결국 아빠가 아들의 말을 들어줍니다.  아빠와 아이들은 난로와 숯불을 피우고 나는 난로에 구울 김장김치와 들기름 비빔밥 할 준비를 챙겼습니다. 외할머니께서 해다 주신 가래떡도 꼬치에 꿰어놓았습니다. 고기 굽고 그 불에 구워먹는 가래떡. 맛도 맛이지만 재미가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숯불구이를 특히 좋아하는 건 아마도 점토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벽난로에다 소시지구이를 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패트와 매트>를 좋아했던 지윤 지승은 꼬치에 꿴 소시지를 돌려가며 구워먹는 낭만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번엔 가래떡으로 그 낭만을 즐겨보려 합니다.

구워주기 바쁘게 홀딱홀딱 없어지는 고기. 그 재미에 아빤 열심히 굽습니다. 압력솥에서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밥을 들기름과 소금을 넣고 비비는 것이 들기름 비빔밥입니다. 그게 뭐 별 맛이 있을까 싶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펴서 내밉니다. 최고라구요. 우리 아이들에게 밥의 소중함을 얘기 할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금방 한 밥은 밥만 먹어도 맛있어.’ 그런데 금방 한 밥인데다 외할머니께서 농사지은 들깨로 직접 짠 들기름을 넣고 비빈 밥이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화려하게 차려진 인스턴트 밥상보다 들기름으로 비빈 밥 한 그릇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리하우스에서 숯불구이를 먹은 후엔 들기름 비빔밥으로 마무리를 한답니다.

비빔밥과 가래떡까지 다 먹었는데도 숯불이 아직 남았습니다. 아이들이 거기에 나무젓가락이며 잔가지며 넣고 태우고 싶어 하기에 숯불구이 통을 마당으로 들어다 주었습니다. 난롯불은 뜨끈뜨끈하고 코펠에 구운 땅콩은 고소하고 아이들은 난롯가 나무를 연신 날라다 저희들끼리 불을 피우며 놀고.  연신 나무를 들고 가는 지윤에게 일부러 나무 아깝다는 잔소리를 한 번씩 했습니다. 땔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하니까요. 건성으로 하는 잔소리를 신경써 듣는 척 하며 지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를 번번이 하며 땔감을 갖고 갔습니다. 지윤이 나무 보급 담당이고 진슬과 지승은 불 피우는 담당인가 봅니다. 처음 나무젓가락 태우는 일로 시작한 것이 제법 커져서 멋진 캠프파이어가 됐습니다. 그러자 지윤이 달려와서 굳이 구경하러 오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 정말 멋지죠. 소원 빌어도 되겠어요!”

추위도 아랑곳 않고 노는 아이들을 두고 다시 난롯가로 돌아와 놀이가 시들해질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소원을 비는 아이들을 보고 왜 사람들은 큰 불을 보면 소원이 빌고 싶어지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마다 마음속에 치솟는 불 한 덩이씩 품고 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추위를 이기고 주위를 밝게 하려고 불을 피웠을 겁니다. 그리고 모여 먹고 노는 것에 흥겨워지면  그 주위를 돌며 춤추고 놀았겠지요. 그러다 보면 각자 마음에 품은 불덩이가 생각나고 그래서 그것을 말로 풀던 것이 시가 되고, 노래로 부르던 것이 음악이 되고, 불 주위를 빙빙 돌던 행위는 춤이라는 예술 형태로 발전한 것일지 모릅니다. 문득 원시종합예술이란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불장난하며 노는 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결국은 아이들이 시들해 하기 전에 들어가자고 말했습니다. 네 시간을 넘게 불과 놀아도 지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불놀이는 재미있나 봅니다.

말갛게 씻은 아이들을 자리에 재웠습니다. 진슬과 지승은 학교방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진슬이 책을 읽겠다고 마루로 나옵니다. 읽다가 말은 <몽실 언니>를 다 읽고 자겠다 합니다. 결국 옆에서 거들며 읽었습니다. 가난했던 시대를 산 너무나도 불쌍한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진슬이가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진슬인 재미있다며 결국 다 읽고 자러 갔습니다. 진슬이 목소리로 읽어주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듣는 재미는 없었지만, 진슬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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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1/04/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하리에 갔다오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일상을 떠나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기쁨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였고, 무엇보다도 아쉬움이 컷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몇일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리에 대한 향수로 몇일간 만만찮은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진슬이의 아쉬운 마음을 넘 잘 알것 같습니다.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체험, 생각한 것을 실제 해 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다는 것들은 하리의 커다란 매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2. 솔바람 2011/04/05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그네의 귀환! <왕의 귀환> 만큼이나 기쁩니다. 하리하우스에 나그네님도 계시고 겨울나그네님도 계시니 든든합니다. 행복한 나그네들 되시길...

  3. 나그네 2011/04/12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감사합니다.한동안 방문하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은 같이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