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0/11/30 피아노 콩쿠르를 다녀와서 (1)
  2. 2010/07/16 쓰지않는 가전제품 코드 빼놓기! (1)
  3. 2010/06/19 거위의 꿈
나그네님께

보내주신 초콜릿 온 가족이 나눠먹고 힘 내서 피아노 잘 치고 왔습니다.
콩쿠르 결과가 어제 오후 나왔는데요, 지윤인 아까운 우수상, 지승인 다행인 우수상입니다.  지윤인 중간에 한 번 틀렸다 하구요 지승인 중간에 일부를 아예 건너 뛰고 쳤답니다.  대회전에 선생님이 가장 강조한 내용이 틀려도 당황하지 말고 다음 걸 계속 쳐라 였는데, 충실히 따른 편이지요^^

둘 다 대회는 처음이라 얼마나 긴장들을 했는지, 피아노를 치고 나왔는데 둘 다 얼굴이 발갛게 달았더라구요. 지승이는 속이 상해서 살짝 또 눈물이 났구요, 지윤인 아쉬워하긴 하는데, 다음에 한 번 더 나가면 안떨리고 잘 할 수 있겠다고 한 번 더 해보겠다고  하더라구요. 지승이도 다시 도전해 볼 마음이 있냐고 했더니 다시 해 볼 마음 있다고 하네요. 대회가 끝나면 다시는 안한다는 아이와 다시 하겠다는 아이가 있는데 둘 다 다시 해보겠다고 하니 피아노가 지겹지는 않은가 보다 하여 그 점이 기쁩니다.

이번엔 준비기간이 짧은데 비해 아이들이 집중해서 외우고 연습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리고 평소에 하리에 피아노가 한 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승이도 그 생각이 든답니다. 하리에 가면 연습을 못하니까요. 그러면서 피아노가 얼마나 하냐고 묻더라구요. 몇 만원 이상 넘어 가는 건 실감할 수도 없으면서  묻기에 그냥 비싸다고 했지요. 

하리 데크에 서면 영화 '피아노'가 생각납니다. 아마 지금 보면 스무살 시절에 본 것 보다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바닷가에 피아노를 내려놓고 치던 장면. 다른 건 기억이 안나는 데 그 장면은 영화의 대명사처럼 떠오르네요. 텔레비전 광고에도 야외에 피아노를 놓고 치는 장면이 연출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하리 데크에 서면 특히 하늘이 말할 수 없이 파란 날은,  데크에서 피아노를 치면 너무나 멋지겠단 생각을 합니다.  바래가는 나무 데크위에 윤나는 까만 피아노.  여긴 그랜드 피아노가 어울리겠죠?  파란 하늘과 피아노 소리.  이런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멋진 음악을 듣는 것 만큼이나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 피아노를 누가 치는가가 문제인데, 만약 정말로 그럴 기회가 된다면 지윤 지승의 피아노 선생님께 연주의 영광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지윤 지승도 자연과 하나되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구요.  친구 딸내미가 바이올린을 한다니 협연도 좋겠네요. 상상 속의 음악회가 이 순간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이만하면 제 삶도 꽤나 화려하고 사치스런 삶이네요.

처음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을 만났을 때 한 말이 '선생님, 저는 피아노를 몰라요. 제가 어렸을 때는 피아노는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우리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목적은 그저 자기가 치고 싶은 곡이 있으면 연습해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하는 것이구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피아노가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였습니다. 지윤 지승이 피아노를 대하는 걸 보면 그 정도 기대는 충족되고 있는 듯 하여 기쁩니다.
그런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대회 이후 지윤 지승이 피아노 대회하는 놀이를 하고 놉니다. 사회도 보고 둘이 점수도 멕이고 상도 주고 합니다.  저한테 '땡!' 하고 종치는 임무를 맡기니 귀찮은 일 하나 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의 경험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게 됩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까닭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 대목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하리하우스의 작은학교이야기가 이 아침 힘이 되어 나에게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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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0/12/1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윤이와 지승이가 좋은 경험을 통해 뭔가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네요.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럴때 도전하는 기쁨과 노력을 통해 맛보게 될 결과의 달콤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의 마음을 끝까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 없이 하는 권고는 효력이 없습니다. 그건 아이나 어른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매번 공익광고에서 쓰지 않는 플러그는 빼 놓아야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만 말해줬지 왜? 그런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뭐 설마 전기제품 자체를 작동시키지 않는데 전기가 소모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 놓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그네님께서 그 왜? 에 대한 답을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전기제품은 코드를 꽂아 두면 언제라도 작동 가능하게 워밍업을 하고 있는 상태에 있답니다. 그러니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두면 그 워밍업을 하는 데 필요한 전력이 소모된답니다. 그러나 전기제품 코드를 빼 놓으면 워밍업을 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력소모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소모량이 생각보다 크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가전제품을 코드를 늘 꽂아 둔 상태에서 6만원의 전기세를 낸다면 그 중의 한 6천원 정도는 늘 코드를 꽂아둔 것에서 오는 낭비전력요금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전기제품 종류와 생산연도,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이나 내장부품의 수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쓰지 않는 전기제품의 코드를 빼놓는 것만으로도 한 10%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냥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빼 놓으라고 공익광고에서 그리 떠들어도 실천하지 않았던 내가 바로 실천하게 된 것은 ‘왜?’에 대한 이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두 군데가 아닌 코드를 일일이 뺐다 끼웠다 하기가 번거롭지만, 이 번거로움을 통해 전기 소모량을 줄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이리 한다면 원자력 발전소 줄이고, 지구 온난화 막고, 전기세 줄이고 알게 모르게 있을 전자파의 피해도 줄이고.... 일석 사조쯤 되나요? 참 그리고 벼락으로 인해 가전제품이 망가질 위험도 줄이니 일석 오조라 해도 되겠습니다. (일석 삼조 일석 사조 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잘 쓰는 말인데, 표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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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0/07/17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러그를 꽂아 놓아서 소모되는 전기를 대기전력이라 하는데요.보통 가전제품마다 2~10W 정도 됩니다. 가전제품 5개를 하루종일 꽂아 놓는다고 하면 5 X 10(W) X 24(시간)=1200W 소모됩니다. 이것을 한달로 계산하면 30을 곱하니까 약 36000W가 됩니다. 1000W당 150원 정도의 전기세를 내야 하니 한달이면 5400원이 되고 1년이면 약 6만 5천원의 전기를 사용도 안하고 소비하게 됩니다. 결코 적은 양은 아닌 것 같습니다.ㅎ.

거위의 꿈 ---인순이 노랫말

난, 난 꿈이 있어요.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 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는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인순이란 가수의 노래입니다. 아직 다문화 가정이 자연스럽지 않을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인순이란 가수를 보면 항상 가슴 한쪽이 짠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에는 항상 힘이 있었습니다. 깊고 무거운 내면의 소리라고 느꼈습니다. 그녀의 풍부한 음량은 그녀가 흑인의 피를 갖은 데서 오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으로 그녀가 노래하며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내 속에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가수 몇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인순이 그녀입니다.

그녀의 노래 중 ‘아버지’란 곡을 들었는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늘 ‘우리 엄마’로 대신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우리 아빠’를 생각나게 했던 겁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늘 엄마 곁에서 허허 웃으며 서 계신 우리 아빠. 아· 버· 지. 충북 단양의 첩첩산중 솔고개에서 자식을 서울로 보낼 수 있으셨던 건, ‘등록금은 우뚜케 됐든 댈 테니 인문계를 가라.’ 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건 어머니 옆에 든든한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늘 엄마, 엄마, 하며 자각하지 못했던 이름 ‘우리 아빠’ . 우리 아빠께 아버지란 이름을 찾아준 인순이의 ‘아버지’.  

난, 난 꿈이 있어요.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가끔 딸이 물어 봅니다. 엄마는 꿈이 뭐였냐고. 그런데 참 대답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꿈과는 너무나 멀어진 나를 말하기엔 어린 딸 앞이지만 부끄럽고, 그렇다고 꿈이 없었다 하기도 어렵고. 아직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 하기엔 현실이 좀 남루하고......

아, 그런 마음을 어쩌면 ‘거위의 꿈’이 그렇게 잘 표현해 주는지, 거위의 꿈을 가사를 음미하며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도 들려주었습니다. 딸은 얼마간 듣더니 제 엠피쓰리에 있는 소녀시대의 노래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는 그 벽을 넘고서 ........

나처럼 평범한 사람 누구에게나 꿈이 있었죠. 나의 꿈이 무엇이었다고 말하기 쑥스럽고 부끄러운 꿈이. 그러나 난 그 꿈을 잊지는 않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려 노력은 했었다고, 그리고 아직 그 꿈이 남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수줍게 말할 거예요. 지금처럼 평범하게 나이 먹어 가더라도 자기 삶을 놓는 그 순간까지 꿈꾸라고 있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 줄 거예요. 언젠가가 되어도 그 벽을 넘어 날지 못할 가능성이 많을지라도, 하루하루 지내는 성실함으로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서자고. 엄마도 너희도 그리 살자고 말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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