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걸으면서 보고 느끼고 익숙해지고 건강해지고...
평소에도 올레길이니 트래킹이니 하는 이름표 없이 나와 우리 아이들은 많이 걸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유모차에 아이 둘을 태우고 놀이터며 운동장을 찾아 이, 삼십 분 씩 걸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유모차를 타고 가던 그 길을 셋이 걸어서 다녔다. 동네 골목길을 여기저기 방랑하기도 하고 퀵보드를 타고 안 가본 길을 골라 골목골목을 탐험도 했다. 때로 숲이 아름다운 계절엔 동네 뒷산을 걸었다.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놀이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때론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놀이터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상암동 난지공원 놀이터까지 가기도 했다. 버스로 50분 가까이 되는 거리라서 돌아오는 길에는 잠든 아이들을 깨워 버스에서 내리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놀이터를 다니다 보니 자연히 우리끼리 통하는 놀이터 이름이 생기기도 했다. 농구장 있는 학교 놀이터, 장곡 초등학교 놀이터, 아파트 놀이터, 동방 놀이터, 이모네 집 놀이터, 그네 있는 놀이터, 탐험놀이터, 그리고 밧줄 놀이터. 헌데 그 밧줄 놀이터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밧줄을 붙들고 올라가는 기구가 있어서 밧줄놀이터였는데, 후에는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미끄럼틀이 없어지고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는 플라스틱 미끄럼틀로 바뀌는 통에 이름도 바뀌었다. 재미도 적고 아이들도 거의 없는 놀이터란 의미로 좀 큰 아이들은 ‘썰렁 놀이터’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썰렁’이란 유행어를 모르는 딸은 ‘살랑 놀이터’라고 불렀다. 왜 ‘살랑 놀이터’냐고 묻자, 나무에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살랑 놀이터’라고 하는 것 같단다. 그 표현이 하도 예뻐서 내 마음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더 자라서는 좀 색다른 목적을 향해 걸었다. 집에서 출발해서 동방고개를 넘어 창문여고 옆에 있는 수예점에 들러 수틀과 수놓을 실을 사고 거기서 다시 월곡동 갑을문고까지 걸어가서 책을 보고 거기서 다시 길을 걸어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제법 긴 코스를 걷기도 했다. 한참 수놓기에 관심이 있던 때라 개인 수틀을 갖고 싶은 생각에 길을 나선 김에 서점까지 가게된 것이다.
걸으며 보는 길은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길과는 다르다. 좀 느리지만, 힘들지만,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재산이 있으니, 바로 ‘걸어서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가끔은 아이들을 꾀어서 걷기도 한다.
한번은 아리랑 고개에 있던 이상익 선생님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집에까지 걸어왔다. 목적은 유기농 과자를 한 봉지씩 사기위해였다. 각자의 버스비를 아끼고 걸어가면 대신 유기농 과자를 한 봉지씩 먹을 수 있다는 얘길 했더니 아이들은 과자를 먹으며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선택을 했다. 아리랑 고개에서 돈암 사거리를 지나, 점술가 집이 밀집한 골목을 지나, 미아리 고개를 지나, 길음동과 미아사거리를 지나, 동방고개를 넘어 하산하듯 집으로 왔다. 수틀을 사러 나선 길도, 유기농 과자를 얻기 위해 걸어 나선 길도 만만찮은 거리였다. 그 길을 걸어 온 것을 생각하면 어른인 나도 뿌듯한데, 아이들이야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지 않았을까.
때로 아이들은 좀 색다른 목표인 ‘컵라면’을 위해서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 낭만을 위해, 추억을 위해, 체력단련을 위해,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 ‘컵라면’을 우승컵처럼 내걸고 걷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아홉 살 때쯤이던가? 적성대교가 완공된 덕에 단성면에서 적성면 하리까지 걸어 갈만한 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단성면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부터 인라인을 타고 적성면 하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컵라면을 먹는다는 즐거운 희망을 갖고.
맑은 공기를 타고 내리는 봄 햇살은 따갑기까지 하다. 그렇게 따가운 봄볕이 내리쬐는 한 낮에 헬멧을 쓰고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인라인을 신고 기운차게 단성을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난코스다. 출발지인 인라인경기장은 강가 낮은 지형이지만, 적성대교는 위풍도 당당하게 강을 가로질러 우뚝 버티고 서서 낮은 강 이편과 강 저편의 높은 땅을 이어주고 있으니 인라인경기장을 나서자마자 오르막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450미터를 넘는 적성대교 자체도 적성면을 향하여 오르막 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바퀴달린 신발을 신고 걷기에는 난코스 중 난코스인 셈이다.
딸이 앞서가다 뒤를 돌아보고 기다리고 그 뒤를 아들이 올라갔다. 그 뒤를 수레를 끌고 내가 걸었다. 수레에는 ‘과자와 설탕’ 같은 냄비와 물통, 휴대용 버너와 컵라면을 싣고서..
그 긴 적성대교를 걷다 쉬다 걷다 쉬다 하던 딸이 벌집이 있다고 소리친다. 적성대교 난간을 따라 펭귄처럼 생긴 조형물이 늘어서 있다. 알고 보니 펭귄이 아니라 까치라고 하는데, 그 까치의 품에 해당하는 곳에 말벌집이 자라고 있었다. 걸어서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쏘일 수도 있는 일이어서 어딘가 적성대교를 관리하는 곳에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우리들 말고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적성대교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후로 몇 년을 적성대교를 지나다녔지만 걸어서 적성대교를 건너는 사람을 아무도 못 봤다. 덕분에 말벌들은 행복하겠지.
적성대교를 지나자 아이들은 더워 죽겠다고 난리다. 길은 이제 시작인데... 적성면을 향해 가는 길은 강물을 따라 굽이굽이 휘어진 왕복 2차선 도로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으므로 인도가 없고 흰 줄로 구분 해 논 노견이 있을 뿐이다. 좀 위험하긴 하다. 내리막길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인라인을 타는 것이 더 힘들다며 인라인을 벗고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무거운 인라인 스케이트와 헬멧까지 합세를 하니 수레는 더 무거워졌다.
시골 공기가 맑은 탓에 햇볕은 강렬했다. 아들 머리는 땀에 젖었다. 겉옷을 벗고 속 셔츠만 입어도 된다고 여러 번 말했다. 한참을 더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겉옷을 벗어던지고 걷는다. 우리가 걷는 길 왼쪽으론 남한강 줄기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이어졌다. 하진과 하리의 갈림길 근처까지 강줄기는 우리를 따라 흐를 것이다. 그 멋진 강줄기를 감상하라고 마련된 작은 공원에 다다랐다. 우린 그 공원의 정자에서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그늘진 정자에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길을 서둘러 떠났다. 인적이 거의 없는 전망대 정자는 말벌들 차지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얼마를 더 걸었다. 늦봄의 찜통더위에 아이들을 걷게 하는 힘은 ‘컵라면’이다.
“조금 더 가서 적당한 곳이 있으면 컵라면을 먹자.”
그렇게 위로하며 걷다가 차바퀴에 깔리고 다져지고 햇볕에 건조 되서 납작한 가죽이 된 뱀껍질을 봤다. 빨갛고 검은 얼룩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뱀의 껍질을 보고 ‘뱀가죽으론 지갑을 안 만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징그럽다거나 불쌍하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저 뱀 껍질을 보았다는 사실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두더지 주검을 보았다. 털의 윤기가 가시지 않은 까만 새끼 두더지. 납작해지지 않고 입체를 그대로 간직한 두더지의 주검은 안됐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그 두더지의 주검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떠났다. 묻어 주자거나 어쩌 자거나 하기엔 아이들은 지쳐있었다.
얼마를 더 걷다가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일단 그 작은 다리는 기울기가 없었고, 다리 난간에 기댈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양쪽에서 오는 차들이 우릴 멀리서부터 발견하기 쉬운 위치여서 안전했다. 명승고적도 아닌 평범한 산골의 지방도 다리 위에서 휴대용 버너를 펼쳐놓고 밥을 먹는 모습은 자칫 운전자의 관심을 지나치게 끌 수도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우리를 발견하고 오면 운전자나 우리나 더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다.
라면을 먹는 동안 정말로 신기하게 생긴 애벌레를 보았다. 옅고 투명한 초록색의 몸은 흡사 몸 전체가 야광일 것 같은 인상을 주었고, 그 형광의 초록을 더 현란하게 보이게 하는 얼룩무니가 점점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벌레의 생김새는 너무도 신기했다. 그러나 곤충학자가 꿈인 아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들의 손엔 컵라면이 있기 때문이다.
짐을 정리하여 다시 걷기 시작했다. 컵라면을 먹어치운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건 집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리를 지나 하진과 하리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오르막을 한번만 오르면 마을이 보이는 편편한 길이기에 기운이 난다. 그러나 평지 저 끝에 보이는 하리 마을은 눈에 보일 뿐 걸으려니 한참이다. 평지에선 눈앞에 빤히 보이는 곳도 빨리 빨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빨리 줄어들지 않는 한참인 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우린 지쳤다. 그러나 우린 걸었다. 그리고 우린 집에 돌아왔고 이후로 “그때 말이야, 인라인장서 걸어올 때 말이야...‘하고 말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후로 아이들은 컵라면을 준다면, 아님 핫초코를 보온병에 담아준다면 눈 덮힌 시골길도 마다 않고 걷는다. 주로 겨울에 걷는다. 왜냐하면 걸으면서 추위는 이길 수 있지만, 걸으면서 더위와 싸우는 건 아이들에게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끔 여름 한더위가 꺾인 저녁 무렵엔 걷기도 한다. 걸으며 놀며, 나무딸기도 따먹고 도롱이 벌레집도 따보며 걷는다. 초봄엔 눈이 녹지 않은 음달에선 맨손으로 눈싸움도 해보고, 여름엔 모기 물린 자리를 긁다 긁다 질경이 잎을 따서 찧어 붙이기도 하며 걷는다. 걷다가 누군가 신발 끈이 떨어져 신을 수 없게 되면 다 같이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서 집에 돌아오기도 한다. 그 맨발이 재미있는지 이후로 아이들은 일부러 신발을 벗어들기도 한다. 차가 없는 농로에서는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걷기도 하고 풀피리도 불며 걷기도 한다.
언젠가 봄방학 때였다. 적성면 상리와 기동리 사이에 있는 과거이재를 걸어서 넘었다. 초콜릿 몇 개와 시리얼바 몇 개를 챙겨 40분을 걸어 재 하나를 넘었다. 이제 아이들은 걷는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에너지로 길을 나서기도 한다. 걸으며 대장놀이도 하고 걷다가 목줄 없는 동네 개를 보고 줄행랑도 쳐보고 걷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맛도 알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로 단정 지어 표현하지 않아도 함께 걷는 아이들은 안다. 오르막은 힘들고 내리막은 쉽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오르막의 저편엔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안다. 걸어서 배우는 진리다. 언제쯤이면 컵라면이 아니더라도 걷고 싶어 걸을 날이 올까 싶지만, 걷는 사람의 행복을 이미 체득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엄마의 마음은 설렌다. 그리고 걷는 일의 가치를 공감했던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들도 소로처럼 행복한 자유인이길...
그것이 걷기를 부추기는 엄마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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