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 딸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1건

  1. 2010/06/04 통일안보 글짓기 (3)
  2. 2010/06/01 곱디 고운 우리 딸 (2)
  3. 2010/05/27 초등 학급 회장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돌아봄 (1)

통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과 남한이 통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너무나 오랜 동안 3.8선을 세우고 쉬었습니다.

이젠 더 쉬어도 안 되고 전쟁이 일어나도 안 되고 남한과 북한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면,

첫째, 더 큰 나라가 됩니다.

둘째, 더 강한 나라가 됩니다.

셋째,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 더욱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등 좋은 일 즐거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 북한 남한이 따로따로 다치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남한과 북한이 합쳐서 하나가 되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이겨내고 그 기쁨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있는 3.8선이 없다면 우리 어린이들은 더 밝고 힘차게 미래를 향해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남한은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식량 옷 등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을 도와주는 방법은 구호재단 등을 통해 주는 것 보다 통일을 하여 직접 만나서 옷 식량 등을 나눠주고 함께 반가워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북한과 남한이 통일이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솔바람 2010/06/21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일안보관련 글짓기 대회에 지윤이 낸 글입니다.
    토씨 조금 바꾸고 단어 하나 집어 넣어주려다 혼났습니다.
    자기는 자기 스스로 한 걸로 점수를 따고 싶고, 여태까지 쓴 글 중에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도 고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도 식량을 '싱냥'이라고 쓴 건 고치라 했더니 고치더군요.
    한 반에 상을 세 명 주는 데 글쓰기 한 친구가 여섯명 쯤 되니 자기가 상을 탈 가능성이 아주 많다며 즐거운 상상을 하며 갔는데 어찌 되었을까 저도 궁금합니다.
    그래도 세상 참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초등 학교때 웅변 원고는 이랬습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쉽게 생각하는 북한 공산군은...'
    지윤이 소망대로 구호단체를 통해 주지 않고 직접 만나서 도와주고 기쁨을 같이 나누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2. 솔바람 2010/06/21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일 글짓기에서 자기 스스로 해서 1점 1점을 얻고 싶다고 하더니 오늘 최우수상을 받았답니다. (여섯 중에 셋 타는 상이예요^^) 환경 관련 그리기에서도 우수상인가를 탔답니다. 그리기도 자기 맘대로 그린다더니 우수상을 탔습니다. 스스로 해서 탄 상이니 더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엄마 말대로 해서 상을 탔으면 다음에 또 제가 머리 써야 할 지 몰랐는데 한 부담 덜었습니다. ^^
    어쩌죠? 보나마나 막 자랑하면서 녹차아이스크림 사 달라 할 텐데, 지승이는 1학년 과학 만들기 때 받은 상 말고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아들 기 안 죽고 딸 칭찬하는 방법. 뭐 없을까요?

  3. 김현희 2011/05/31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짱이다.


곱디고운 우리 딸

아이들 키우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모든 면에서 미안한 감정이 안 생길만큼 완벽하게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중간고사 이후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일종의 명예회복(?)을 위해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몇 글자 안 되는 데 문제집에는 왜 이렇게 내용이 많은 것인지 그 내용을 한 번 씩 읽고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학교 갔다 와서 한 1시간 정도 쉬고 그때부터 공부를 합니다. 한 과목을 보는 데 20분에서 30분 정도 소요되고 쉬는 시간이 10분인데 (길어져서 20분씩 쉬기도 합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네 과목을 다 하려면 밤 9시가 훌쩍 넘어 못 끝내고 자는 날이 많습니다. 이런 날이 반복되다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앉으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제는 가만히 딸 아들 얼굴을 보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 어렸을 때는 학교 숙제만 하면 땡이었고, 그나마 모든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용했었는데, 지금 나의 아이들은 ‘20분 읽기 10분 쉬기’ 하는 식으로 보내야 하는 게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디에 몰입할 수도 없고 감질만 나는 쉬는 시간 10분. 이렇게 10분 단위로 통제 받던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얼마나 자기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걱정도 되는 겁니다. 그래도 기말고사는 좀 잘 봐서 자신감을 얻게 하는 게 좋겠다 싶어 공부를 시키긴 시키는 데, 하면서 자꾸 화를 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딸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있잖아, 엄만 화가 나는 일이 많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화를 낼 수는 없잖아. 그런데 지윤이 지승이 한테는 자꾸 소리 지르고 화를 내게 돼. 미안해.”

그랬더니 딸이 이러는 겁니다.

“그럼 우리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화를 안 낼 거 아니예요!”

~~~ 아! 명쾌하고 발랄한 우리 딸~~~

지난 중간고사에서 과학을 9개 틀렸다고 놀린 아이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자는 말에 기말고사를 잘 봐도 코를 납작하게 하지는 말자고 하던 딸 지윤이!

천성이 밝고 아름다운 우리 딸 지윤아, 사랑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10/06/02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을 읽고 있으니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납니다. 회사에서 가끔 아들 생각하면 불쌍하고 눈물이 날때가 있습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공부하느라 책상에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면 괜실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책과 씨름을 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빠는 아들을 믿어. 너의 잠재력과 실력을 믿는다'. 아들은 오늘도 저와 대화를 하며 히~ 웃습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아들. 그 도화지에 앞으로 무슨 그림을 그려 나갈지 저는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글을 보며 지난 중간고사에 과학 시험지 보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1등만을 고집하는 못난 아빠의 욕심이 아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습니다.내일은 아들에게 아빠의 잘못을 사과해야 겠습니다.
    아이들은 현재의 모습보다 그 잠재성을 봐야함을 요즘 절실히 깨닫습니다. 지윤이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아가씨죠.그 잠재력이 아름답게 꽃피울날을 기다립니다.

  2. 솔바람 2010/06/02 0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그네님, 안녕하세요.
    요즘 지승이가 성악을 배우고 있습니다. 군대를 막 갔다 온 대학생 선생님입니다. 지승이 발음 교정이 첫째 목적이었고 둘째는 발표력 향상, 셋째 목표는 노래로서 인생이 더 풍요로와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약관의 나이 막 벗어난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것 하나를 덤으로 얻고 있습니다. 바로 '내 아들이 저렇게 크면 참 좋겠다.'하는 모델을 보는 것입니다.
    성실하고 점잖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갖고 사는 긍정적인 젊은이.
    대화 중에 성악 선생님이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바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규칙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존대어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엄마 아빠 이외의 어른들께는 존대어를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엄마 아빠와 대화할 때는 존대어를 하지 않아도 그냥 둡니다. 사랑이나 존경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악선생님은 말 배울 때부터 존대어를 썼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매일 영어단어를 외워 저녁에 아버지께 테스트를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못 외우면 매를 맞기도 하셨답니다. 어찌보면 그렇게 어렵고 무서운 아버지지만 성악선생님은 지금도 아버지와 굉장히 친하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고 합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놀이나 대화가 막히기 쉬운 부자관계가 저렇게 잘 유지 될 수 있는 건 무엇때문일까 궁금했습니다. 성악 선생님과의 대화를 되집어 보며 제가 나름대로 답을 찾았습니다.
    진실한 사과.
    어른들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위나 위신을 앞세워 본인의 잘못을 덮어두고 지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악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는 어린 아들에게 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영어 단어를 못 외웠다고 때린 게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 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성악선생님은 반듯한 젊은이로 자랐고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그네님의 글을 보며 성악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엄한 교육을 하시면서도 진심어린 사과를 하리라 생각하시는 나그네님이 계시기 때문에 아드님도 반듯한 젊은이로 자라게 될 겁니다.

    반듯한 젊은이로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삽시다!

지윤이 외할머니 수국 2010년 5월 27

           


초등 학급 회장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돌아봄


아들 학교는 2학년 때부터 학급 회장을 선출했고 딸 학교는 3학년 때부터 학급 회장을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2학년 때는 학급 회장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생각을 해 볼 계기가 없었습니다. 아들이 워낙 과묵하여 학급에서 있었던 일을 일일이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급 회장이 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장이 된 아이를 부를 땐 친구끼리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회장’이란 칭호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를 들었습니다. 때로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딸 학교에서 학급임원을 선출 한 뒤로는 회장 부회장이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소식보다는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내용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입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부득이하게 선생님께서 교실을 비우시게 되는 경우 떠드는 아이 이름을 회장(옛날엔 반장이라고 불렀습니다.)이 칠판에 적었습니다. 선생님이 안 계신 동안에 일어날지도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친구가 친구를 통제하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비교육적인 일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까지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친구 이름을 적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습니다.

요즘 그린 스티커와 옐로 스티커로 상벌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아마도 복도에서 뛴다고 이름이 적힌 아이는 옐로 스티커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니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로 인해 회장이 된 친구와 갈등을 빚게 되기도 하고 회장눈치를 보는 일도 생길 겁니다.

반면 회장이 되어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 역할을 하게 되면 회장의 역할이란 ‘감시와 통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감시와 통제자로서의 역할 인식이 권한과 권력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되어 지도자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원은, 회장은, 대표는, 자신을 지지해 준 한 사람 한 사람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일반 학생들은 임원이, 회장이, 대표가 하는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시키는 대로 조용히 해야 한다는 복종을 배우게 된다면 그 또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초등시절을 보낸 분께 물어보았습니다. 미국에도 초등학교에 반장이나 회장이 있냐고.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없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잠깐 자리를 비우시는 시간엔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과 같이 계시기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통제해야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가 자유롭게 놀기도 한답니다. 쉬는 시간마저 ‘조용히’라는 말로 통제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안전사고 예방과 학습 분위기 유지를 위해 통제가 필요하다면 그 역할을 선생님들이 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습시간에 코가 나와서 코 풀러 갔다 오니 칠판에 이름이 적혔다고 이야기 하는 아들은 대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상황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단순히 자리를 떴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적는 회장은 결과만 보는 마음이 은연중에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부당한 일에 복종해야하고, 현상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태도를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끄는 미래는 행복하지 못할 겁니다. 민주적이지도 못할 겁니다.

참다운 교육은, 참교육은 작은 것도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에 비민주적 비교육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더 행복하고 민주적으로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10/06/02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기초 아들이 회장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때 하지 말라고 말렸던 것이 기억 납니다. 사실 제가 학교 다닐때 반장의 역할은 단순히 선생님의 보조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반장의 임무중 하나는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고 가끔은 무력을 동원하여 교실의 질서를 잡았던 반장이 기억납니다. 이것이 70~80년도 군사정부의 잔재였음을 안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당시 학교는 학교라기 보다 군대(?)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요즘도 학교에서 회장은 70~80년대 반장이 하는 역할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했기에 아들의 회장 출마를 결사(?) 반대했습니다.이런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피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죠. 힘들고 욕먹는 회장의 위치에 아들을 세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다운 교육은 작은 것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이 갑니다. 이제까지 할수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려 생각을 다시금 고쳐보게 됩니다. 다음에 선생님을 만나면 이 얘기는 꼭 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