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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6/28 2012 교내 통일 안보 글짓기 산문 (2)
  3. 2012/06/28 2012 교내 통일 안보 글짓기 운문. (1)

지윤이의 제주기행

2012년 1월 17일

제주도에 왔다.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러 갔다. 김포공항--제주도 행이다. 한 8시쯤 도착했는데 가는 도중 귀가 아파서 혼쭐이 났다.

내가 창가 쪽이었는데 동생 지승이가 쪼르는 바람에 중간에 자리를 바꿨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는데, 가면 갈수록 편해졌다. 참고로 우린 비행기에서 해 뜨는 걸 보았다. 정말 멋있고 눈이 부셨다.

타서부터 50분 뒤. 우린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걷다가, 마라도에 가는 배를 탔다. 아빠는 같이 못 왔지만, 우리가 2박 3일을 있을 때, 2째날 저녁 비행기로 오시기로 했다. 그래서 3째날은 렌트카를 하기로 했는데, 기대된다. 그건 그렇고, 우린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동생말론 아주 맛있다던데, 나는 영 맛없다. 하지만 나는 다 먹었다. 그리고 마라도를 구경하려고 나왔다. 좀 걷다가 다시 배 타러 가는데 이나연을 만났다. 나연이는 우리 콘도 바로 뒷집에 묵는다고 해서 저녁때 만나 놀기로 했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가는 배에서 또 만나 떠들며 갔다. 그 다음엔 정말로 헤어졌는데, 우린 애월한담 바닷가에 갔다. 가는 도중 버스에서 잤지만, 가보니 너무 예뻤다. 에메랄드빛이었는데, 나는 그 색이 갖고 싶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발을 담구다가 왔다. 으악! 차가워~~ 그리고 대명콘도에 갔는데 , (원랜 작은 방을 주문했다) 같은 가격으로 큰 방을 줘서 완전 굳! 513호. 콘도는 완전 굳! 온돌방 하나에다 침대방 하나. 깨끗한 화장실 + TV + 쇼파 + 부엌. 완전 좋다. ㅎ ㅎ

그리고 나연이랑 우리 방에서 놀았는데 11시까지 놀다 잤다.

보고서 (선택과제)

언제 : 2012년 1월 18일

어디서 : 제주도에서

무엇을 : 한라산 정상에 올라갔다.

어떻게 : 엄마의 강요로 올라갔다. (아이젠 없이)

내용 : 오늘은 안개가 끼지 않아 한라산 등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올라갔다.

한 해발 1800미터쯤 가자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힘을 내서 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생각하면서....

끝내 도착했을 땐 정말 좋았다. (비록 정상까진 못 갔지만) 내려갈 땐 너무 미끄러워서 썰매를 타고 왔다. ㅋ ㅋ

느낀 것 : 우리 나라에 이렇게 큰 산이 있을 줄은 몰랐다.

2012년 1월 19일

제주도 관광

일단 김녕 미로공원에 갔다.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5분 안에 미로를 통과할 확률 5%, 30분 안에 통과할 확률 80%, 1시간 안에 통과할 확률 95%이다. 이것은 정말로 써져있다. 아! 참. 얘기를 한한 것이 있는데, 1시간이 넘도록 헤맬 확률이 5%다. 우리 가족은 이 5%에 들기 일보 직전에 모두다 벨을 울렸다. 얘기하자면 짧다. ...ㅎ ㅎ

우리 가족은

“허허, 우리 1신간 안에 못 찾는 5%에 들겠는걸.”

라고 말하며 다녔다. 그렇게 말하며 발이 가는 데로 가는데... 바로 왼쪽에 종이 있었다. 나와 동생 지승이는 엄마 아빠를 나두고 냅다 뛰었다.

“무조건 왼쪽으로!”

라고 외치며 말이다. 그런데 가다보니 왼쪽으로 다리가 보였다. 나는 다 왔는 줄 알고 뒤로 뛰어서 반대쪽으로 가 계단을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 종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맞은 편 계단에 종이 있었다. 우리는 계단에서 내려와 냅다 뛰었다. 이번에도 발이 가는 곳으로 뛰어 가는데, 잠시 멈춰서 보니, 글쎄, 바로 벽 하나를 두고 종을 울리는 계단이 있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 막 뛰었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오자 벽 너머로 있던 그 길을 따라 뛰었다. 가슴이 요란하게 뛰고 나는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우리는 종을 울렸다. 아주 ~~ 크게 말이다. 미로 속에 있는 엄마, 아빠는 우리가 큰 소리로 설명하고, 지도를 봐서 간신히 찾아왔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내 혼자 힘으로 왔으니까 말이다!

너무 재미있었고, 또 가고 싶다.

그 다음엔 시흥 해녀의 집에 가서 정말 맛있는 전복죽을 먹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조가비 박물관에 갔다. 글쎄 우리가 입장권 할인 티켓을 가지고 ( 엄마 아빤 쉬고 드시고- 다 먹었고 커피 먹으러) 갔다. 근데 여기가 아닌 서귀포 조가비 박물관 할인 티켓이라고 했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그리고 말하려는데 전화가 끊기고 나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엄마 아빠에게 어떻게 일이 꼬였는지 말씀드렸다. 그런데 엄마가 들어가 보더니, 얘들아, 여기 싸다! 여기도 가소, 서귀포 조가비 박물관 둘 다 가자! 라고 말했다. 우린 들어가서 즐겁게 구경했다. 대왕조개가 인상 깊었다. 나는 5000원짜리 핸드폰 고리를 샀다. 양식 진주가 2개 달려 있는데 너무 예뻤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진주 박힌 팔찌를 사주셨는데, 중간에 그냥 할머니, 고모 드리기로 했다. 그 다음엔 아차! 미로 공원 다음에 만장굴을 갔는데, 너무 시시했다. 기억나는 것도 없는 나머지 일기 쓸 때 빠뜨릴 뻔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며, 오며, 아빠랑 이야기 하는 건 좋았다. 정말로.

그 다음엔 제주 민속촌 박물관에 갔다. 진짜 소, 돼지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말을 탔다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2만원으로 말을 2번씩 탔다. 처음에는 살살 뛰었지만, 2번째 지승이와 갈 때는 많이 뛰었다. 끝내줬고, 또 타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때 할인권을 콘도에서 끊었던 (미로공원 할인 티켓도 끊었다.) 서귀포 조가비 박물관에 갔다. 볼것도 없고, 기념품도 비싸고, 입장료도 비싼 이상한 곳이었다. ‘괜히 왔다’하며 갔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리고 마지막은 공항에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아빠랑 5분 차이로 비행기를 탔다. 원랜 10분 차인데, 아빠차가 늦게 오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4-7세 놀이터에 가서 놀고, 도넛도 사먹었다. 와서는 귀가 멍~~해서 그랬으나,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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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3/04/12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의 문체

    지윤이가 제주여행을 다녀와서 쓴 일기다. 확실히 우리 딸은 생기기가 넘친다. 쓰는 단어에도 생기가 넘친다. 표현력이 좋다. 문장의 흐름이 매끄럽다. 아마 지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 저절로 그렇게 써지는 것이리라. 그건 지윤이 좋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늘 읽고 또 읽다보니 자연스레 글쓰기의 기본이 길러진 것이다.

    '에메랄드빛이었는데 나는 그 색이 갖고 싶다.'

    딸은 보석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색을 갖고 싶은 것이다. 마음 그대로를 꾸밈없이 쓰는 자체가 좋은 표현이 되는 예이다.

    '하지만 우리 맞은편 계단에 종이 있었다. 우리는 계단에서 내려와 냅다 뛰었다.'

    냅다 뛰었다. 글을 거침없이 쓸 때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거침없음. 그 것 또한 딸의 재산이다.

    “얘들아, 여기 싸다! 여기도 가고 서귀포 박물관 둘 다 가자!”

    그래, 난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다. 입장료가 얼만가 물어보고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이란 말에 그렇게 말했을 거다. “ 얘들아, 여기 싸다!...” 순간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힘. 그래서 성산포 조가비 박물관은 입장료가 싸고도 좋았던 인상이 더 강렬하게 전달되는 거다. 내가 딸에게서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딸이 스승이다. 있는 그대로... 강렬하게....

    딸의 일기장은 재밌다. 형식도 참 여러 가지다. 한라산은 보고서 형식이다. 단촐 하고도 진지하다. 바람이 몹시 불던 곳이 해발 1800미터일 걸 어떻게 기억했을까 아님 추측일까. 어쨌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런 마음인 것도 맞다.

    한라산에 다녀온 후 아들과 딸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네팔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는 가면 안 된다고. 엄마가 히말라야나 알프스 눈밭을 트래킹 하자고 할 거라서 안 된단다. 하긴 일본엘 가면 후지산을 오르자 하고 싶다. 후지산을 걷다보면 ‘일본’이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는지 안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맞이하고 얼마 안 돼 미국과 소련이 서로 대한민국을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남쪽 땅, 소련은 북쪽 땅을 가졌다. 그리고 경계선을 표시한다며 지금의 3.8선을 세웠다. 우리나라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미국이 우릴 도와주는 것에 허락했을까? 따지고 보면 그 당시 미국은 <원숭이 꽃신>에 나오는 오소리 영감 같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끝에는 부려먹기 까지 하지 않았을까?

북한은 지금 우리나라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는 3학년 때부터 굿네이버스를 통해 북한에게 매달 1만원씩 주고 있다. 나는 북한에게 1만원씩 주는 게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북한은 우리의 한민족이었다. 누구나 북한을 먼저 도와주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민족이 서로 불쌍하다며 도와주는 게 더 어이없는 것 같다. 이거는 아빠가 아들이나 딸한테 불쌍하다며 돈을 주는 거나 같다.

나는 통일하면 가장 먼저 이산가족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는 2박 3일동안 수련회에서 덜어져 있다고 울었는데, 이산가족은 2일 3일이 아닌 2년, 3년, 어쩌면 평생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이산가족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소식도 모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엄마와 잠깐 연락이 안 돼도 울고불고 하는데... 이산가족은 얼마나 슬플까?

나는 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는지 안다.

나는 북한이 우리보다 못산다는 걸 안다.

나는 이산가족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안다.

하지만 나는 왜 내가 3.8선 때문에 북한에 가지 못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21세기는 분단과 전쟁의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지...

나는 이런 대한민국을 나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나는 내 후손들에게 전쟁 없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물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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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3/06/12 1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같은 친구

    적어도 내 또래 장애인 친구들은 그냥 평범한 친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이해교육의 날>에 오신 장애인은 어른이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내가 그런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무서웠다. 그분도 장애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무섭고 걱정되었을까?
    우리 학교에는 작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함께 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놀릴 때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오히려 그런 친구가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것이, 아는 척 해 주는 것이 즐겁다. 어떤 면으로 봐서는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장점도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외의 색다른 걸 생각해 내곤 한다.
    장애인들은 웃음이 밝은 것 같다. 어려울 때 짓는 웃음은 정말이지 보는 사람도 웃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 있는 장애를 가진 친구와 마주치면 내가 먼저 웃음이 나온다. 그냥 더 많은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휠체어를 탄 사람이 내가 타고 있는 버스 뒷문으로 다가왔다. 기사 아저씨께서는 문을 열고 무언가를 누르셨다. 붕 떠있는 발판 밑에서 기다란 판이 나오더니 금세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들었다 .휠체어는 그 오르막을 쉽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 사람의 휠체어가 자리에 고정되자 버스는 출발하였다. 그 오르막은 사라졌지만, 내 머릿속에는 깊이 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르막이네 뭐’ 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 거다. 우리 학교에 있는 램프계단을 올라가면 나는 귀찮고 힘들어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깐 그러면 휠체어를 탄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런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려면 계단보다는 램프계단, 이런 거 보다는 그 친구를 같은 친구로 생각했으면 좋을 거 같다.
    나는 기참해서 친구들이 의외의 눈길로 쳐다보는 것도 부끄러운데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그 많은 눈들을 어떻게 다 외면할까? 그렇다고 무관심이 좋진 않을 것이다.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다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장애인을 보면 겁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잘 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밝은 미소와 순수한 말에는 기쁨과 웃음으로만 답해주고 싶다. 웃으면 우린 모두가 같은 친구라는 걸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친구를 놀리던 친구들도 넓은 마음으로 그 친구들에게 웃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친구를 그런 거 가지고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무리는 다를 거 없는 친구니깐 말이다.

  2. 솔바람 2013/06/12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윤이가 장애인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적은 글입니다. 이글을 <장애인 먼지 실천운동본부> 주최 백일장 대회에 응모했습니다. 물론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지윤이 원한다면 이번 백일장 낙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분위기로 계속 도전해보길 기대합니다. 글을 쓸 때는 누구의 조언도 받이들이지 않는 고집으로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멋진 작가가 되는 꿈을 이루길 바랍니다.

통일 1호

유일하게 3.8선을 지나가는 희망,

통일 1호

백두산을 지나 3.8선을 넘어오는

통일 1호

슬픈 이산가족들에게 선물을 배달해 주는

통일 1호

뛰뛰 ~~ 빵빵~~ 통일 1호의 경적 소리는

이산가족이 가장 그리워하는 소리.

서울 사는 지승이는 엄마 그립고,

지승이 누나 지윤이는 통일이 그립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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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3/04/17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별 외식으로 매운 라면을 먹다 지윤이 하는 말,

    "엄마, 내가 용이라면 불을 뿜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참 적절한 표현이라 놀랐다.
    그래 불을 뿜을 수 있을 만큼 매웠다.
    매운 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