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일단 궁금한 건 못 배기는 성질인 지승이.
호기심이 많은 만큼 아는 것을 반복 하는 건 너무나 싫어하기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싫은 지승이. 시험시간에 계산기를 맘대로 쓰려면 적어도 대학 이상은 돼야 하는데, 초등학생인 지금 공책 가득 써야하는 사칙연산의 혼합계산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이 갑니다. 그래도 나머지 공부는 하기 싫은지 혼합연산을 연습하고 갔습니다. 그것도 분수와 소수가 섞여있는 혼합연산이니 오죽 귀찮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과정도 다 무난할 만큼은 거쳐야 하는 것이니 해야지요.
5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지승이가 왜 피아노하고 바이올린을 배워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중 피아노는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아마 많이 싫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너무 진지하게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 거짓도 아닌 말로 얼럴뚱땅 넘기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 지승아, 니가 커서 피아노로 멋진 곡을 차악 치고, 바이올린을 멋지게 켜면 얼마나 멋있겠니. 그럼 너 여자들한테 인기 짱이다! 피아노 치는 남자. 얼마나 멋진데!”
여기까지 하고 아들을 보니 안되겠다 싶어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 중에는 취미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많데.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을 켰다나? 피아노를 쳤다나.......”
“겨우 그거야?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나한테 피아노를 배우라는 거야?”
아들은 엄마의 대답을 기막혀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난 위인이 안될거라구!”
매일매일 20분씩 피아노를 쳐야 한다면 아들은 위인이 되는 것도 싫은 겁니다.
당황하고 미안했습니다. 악기는 어느 정도 기능을 갖추어야 즐길 수 있다는 믿음에 기능을 익히라고 시킨 것인데, 아들은 너무도 지겨웠던 겁니다. ‘피아노 20분’ 이란 말 자체가.
그런 아들을 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 역사의 위인들은 얼마나 큰 고초를 겪으며 살았는가. 그래 아들아, 넌 큰 고초를 겪는 위인이 되지 말고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
그 이후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피아노 20분’이란 숙제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씩 하는 피아노 교습은 계속 했습니다. 학교 방과 후 바이올린도 두 시간 연속 수업 받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해서 한 시간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아노도 그리 지겨워하지 않고 바이올린도 두 시간을 다 채우고 오는 겁니다. 바이올린 끝나면 나눠주시라고 선생님께 매주 간식을 보냈습니다. 모닝빵으로 미니 햄버거도 만들어 보내고, 김밥도 보내고 겨울엔 찐빵도 따끈따끈하게 쪄서 보내고, 특식으로 막 구워낸 꿀호떡도 바이올린 끝나는 시간에 맞춰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식 먹는 재미에 수업을 다 하고 오는 겁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간식 먹는 재미를 톡톡히 보았구요. 그렇게 5학년 2학기를 보내더니 6학년이 되어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싫다는 말 안하고 잘 다닙니다. 요즘엔 피아노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재미가 붙어 스스로 곡을 외우고 반복 연습도 합니다. 바이올린은 강사선생님께서 직접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십니다. 그 간식 받는 재미에 또 열심히 다닙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엄마와의 갈등을 끝내고 지금은 스스로 연주의 재미를 아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한 고비를 넘긴거지요. 그렇다고 연주가 객관적으로 훌륭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앞으로 또 비슷비슷한 고비를 넘기며 지승의 인생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친구가 되고 희망이 되고 여유가 되고 나아가 예술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고비!
그건 넘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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