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교실 여행

 

처음 발도르프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은 발도르프인형을 통해서였다. 8등신의 바비인형이 아닌 두루뭉실한 헝겊인형이 주는 편안함이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이려니 생각했다. 과장되지 않은 인체, 고착화 되어 있지 않은 표정, 그리고 손으로 만든다는 친밀감. 그런 발도르프인형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발도르프에 대한 자료를 대하고 있다. <8년간의 교실여행> 또한 나에게 과장되지 않은 교육, 고착화 되지 않은 교육, 친밀한 교육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읽었고, 그 내용은 나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핀서 선생님의 고백을 통해 같은 아이들을 8년 내내 맡아 보는 것이 자칫 안일함에 젖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기우임을 알게 되어 기쁘다. 나날이 변화하는 아이들. 방학을 마치고 새 학년이 되었을 때 완전히 다른 아이들처럼 느껴진다는 핀서 선생님의 고백은 나에겐 일종의 안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변화하는 것처럼 선생님도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교육임을 믿게 된 것은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해서 기쁘다.

 

8년간의 교실여행을 읽으며 한편 엄마로서 자랑스러움도 느꼈다. 어떤 이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들을 키움에 자연 속에서 키우려했고, 대화로서 키우려 했고, 배움의 실마리를 찾아 스스로 고민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안도와 자부를 느꼈다. 무엇보다 그런 엄마로서의 노력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돌아볼 수 있는 잣대를 갖게 되었다. 그 잣대를 세워놓고 이제 동림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고자 한다.

 

책 내용을 보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아이들이 시를 쓴다는 것이다. 핀서 선생님 반 아이들의 시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단어들을 몸 안에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적이고 규정화된 단어가 아니고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단어를 끌어내어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시를 쓰는 사람의 내부에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사고화 경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이 발도르프 교육을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들로 컸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그런 기대는 <8년간의 교실 여행>이 준 새로운 과제고 희망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바깥쪽 탐험과 안쪽 탐험을 함께 하고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를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하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쁘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8년간의 교실 여행>에 소개되는 신화와 역사를 중심으로 공부하는가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관점이 제도권교육과 다르게 서양의 신화와 역사를 가르친다고 해도, 그 소재 자체가 서양역사에 편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 우리 발도르프 교육에선 어떻게 신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우리 아이들은 영혼이 있는 아이들이다.

-영혼은 죽지 않고 거듭 태어나면서 이승과 저승의 모든 일을 보아 왔으므로, 영혼이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는 없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어떤 경험을 더 축적해 나가게 될까? 아이들의 영혼이 심화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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