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60년 대 말 70년대 초. 내가 태어나서 국민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의 그 세월에 이미 내 정서의 70%이상을 차지하는 경험들을 다 맛보았던 것 같아. 무섭다. 기쁘다. 좋다. 사랑한다. 부럽다. 자랑스럽다 등의 감정들. 그 이후 지금까지 어린 날 느꼈던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환하면서도 온화한 햇살을 보면, 마루 끝에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일어 난 예닐곱 살 아이를 어루만져 주던 그 햇살이 내 피부위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그럴 때면 세상 근심 다 잊고 햇살 아래서 꼬박꼬박 졸고 싶어지지.
비가 오면, 그래 오늘처럼 겨울비가 오면 엄마 생각이 나지. 이제는 수식어를 붙여서 부르는 이름, 친정엄마. 엄마는 부침게를 잘 부치셨어. 프라이팬이 없던 시절 산골 마을에선 무쇠솥뚜껑을 뒤집어 삼발이 위에 절어 놓고 그 밑에 불을 때면서 부칭게를 부쳤단다. 불이 너무 세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되지. 비가 오는 날이면 공기가 눅눅해서 그런지 불이 잘 꺼졌었던 것 같아. 어떨 땐 꺼져가는 불을 살리기 위해 ‘후우욱’ 입으로 불기도 하며 부칭게를 부치셨지.
시장도 가깝지 않은 산골에서 사위 왔다고 부지런히 서둘러 정성으로 만들어 주시는 건 배추 부침게. 그런데 어쩌나. 시댁 입맛이 친정 입맛하고 많이 달라서 남편은 잘 안 먹거든. 그래도 “예, 맛있는데요.” 하는 남편을 보면 좀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고.
오늘처럼 이렇게 날이 궂은 날이면 더 생각나지. 무릎에 신경통 앓고 계시는 친정 엄마가. 그리고 또 생각나지. 엄마가 부쳐놓기가 무섭게 우르를 달라붙어 먹던 배추 부칭게. 고급스런 빈대떡 하고는 뭔가 다른 느낌이 나는 부침게 말이야.
부침게 하고 빈대떡의 차이가 뭘까? 부침게는 얇게 부치는 거고 빈대떡은 두껍게 부치는 거 아닌가.
* 부침게 : 저냐, 누름적 따위의 총칭. 부침이(X)
* 저냐 : 쇠간, 생선 따위의 고기붙이를 얇게 저민 뒤에, 가루나 달걀을 씌워 기름에 지닌 음식. 전유어 (동)
* 누름적: 달걀을 씌어 지닌 누르미. 황적(동)
* 누르미 : 화양누르미
* 화양누르미: 삶은 도라지를 짤막하게 자르고 쇠고기와 버섯을 같이 썰어서 양념하여 볶아서 꼬챙이에 꿰고 , 끝에 삼색사지를 감은 음식. 화양적(동) 황적(X)
* 빈대떡 : 녹두를 갈아서 부쳐 만든 떡. a green-been pizza
<어문각 판 국어사전 중에서>
왜, 영영 사전을 찾을 때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라고 하잖아. 모르는 단어의 꼬리를 물고 찾기.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유어를 포함한 전의 총칭이 부침게고 빈대떡은 재료를 녹두로 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네. 그리고 부침게가 ‘전’ 하고도 차이가 있나봐. ‘해물전’ ‘감자전’ ‘김치전’ 이런 것들은 누름적도 아니고 저냐도 아니잖아. 아, 이런 구분은 어떤가. ‘부침게’ ‘빈대떡’ ‘전’ . 그러니까 ‘감자 빈대떡’이나 ‘파 부침’ 식의 말은 틀린 것이 되겠다. 이와 사전 들추어 가며 찾은 거니까 앞으론 확실히 구분해서 써야겠다.
“비 오는데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김치전이나 부쳐서 같이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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