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07/01/20 지윤이와 지승이 2006년 4월 솔농원 (1)
  2. 2007/01/20 솔농원 동물 친구들... 2007
  3. 2007/01/19 하리 하우스 집수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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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9일 지윤이 지승이가 터밭에서 잡초인지 들꽃인지를 한 옴 큼 뽑아 들고 좋아한다. 이 사진은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가면서 소 마구간 앞에서 우리 식구랑 외할머니랑 잠시 기념 사진을 찍고 떠나기 직전에 찍은 지윤이 지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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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와 지승이가 들고 있는 들꽃이 없다면 시골은 더 이상 시골이 아닌 시골 같은 풍경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밭에 풀을 호미로 메는 풍경도 보기 힘든 시대가 요즘 농촌풍경이다. 하기는 요즘에도 호미 들고 농사 짓다가는 인건비도 안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제초제가 나와서 농부들은 수고를 많이 덜었다. 또 적당한 제초제의 사용은 우리 건강에 별 영향이 없다. 제초제뿐만 아니라 적당한 비료와 살충제는 인간이 영양제 먹고 해충구제 한다고 집안 구석구석에 돈 주고 벌레 잡는 위치와 별다를 게 없다. 요즘 툭하면 유기 농이다 어쩐다 그러면서 양심적으로 사용하는 농산물 영양제와 치료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뭐라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 농사꾼들이 생산하는 농산품들은 믿을 만 하다. 오직 비료 주고 살충제 치고 제초제 쳤다고 뭐라고 그러지만 상식으로 사용되는 농법이라면 우리 농산물 막 먹어도 괜찮다. 식품을 가공 처리하는 2차 생산업자들의 비 양심이 가끔씩 텔레비전에 나와서 억울하게 우리 농산물이나 농민들이 피해를 입는다. 농약 콩나물, 석회두부, 색소 고춧가루 등등 그 것과 농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솔직히 비싼 돈들이고 사서 폼 잡고 다니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라는 명품이라는 핸드백과 옷에도 유해한 물질이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 농산물은 그 가방과 옷들에서 나오는 화학적 유해성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안 될 것 이다. 내 말에 과학적인 데이타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댓 글로 이야기 해라. 얼마든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우리 농산물의 안정성과 명품의 유해성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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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농원에 있다가 서울 올라가 봐라. 그 매캐하고 탁한 공기......  거대한 빌딩 숲에서 뿜어내는 각종 건축 화학약품들과 순환되지 않고 도시공간을 떠도는 도시의 화학유령들을 생각해 보면 단지 비료라는 영양제 주고 벌레잡는 약쳤다고 뭐라고 그러면서 안 먹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치이거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 겠는가? 도시에 살면서 유기농산물 만 찾으면서 나 홀로 차를 아무 생각없이 마구 운전하면서 뿜어대는 자동차 매연이 도시건강을 해치는 주범이자 농산물에서 발생하는 유해성의 1000배 이상의 해악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역시 똘이 엄마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혼자 편하고자 자가용만 탄다. 다수를 위한 생활속에 절제는 단 한번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신 만을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을 먹는 다고 어디 좋은 세상속에 건강하게 살 수 있나? 유기농 식품 만으로 건강을 지키고 행복해 지겠다는 발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치와 별반 다르리 않을 것 이다.

소구리 하우스에서 지윤&지승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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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학교 선생님 2010/05/14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해맑은 웃음을 위해

    엄마로서는 사회적 정의보다 사회적 위치를 척도로 하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객관적 형평성보다 주관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쓰기 쉽습니다.
    엄마로서는 아이를 위해 옳은 것 보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모든 엄마가 그렇지는 않지만 제가 엄마일 땐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아 굳이 스스로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생각했습니다.
    '야, 큰일이다. 계속 이렇게 못하면 어떡하지!'
    시험 성적이 나쁜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생각합니다.
    '집중력이 부족했구나. 어떻게 집중력을 키워줄까?'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다음엔 잘 봐서 놀린 친구 코를 납작하게 해줘.'
    시험 성적으로 놀림 받은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서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말하는 건 옳지 않아, 사과 하라고 할게.'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더 좋아해.'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니가 뭘 몰랐는지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해.'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엄마로서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대에 사는 선생님으로 말합니다.
    '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게 공부란다.'

    지윤이와 지승이는 들꽃 같은 아이들입니다. 들꽃처럼 자생력 있고 들꽃처럼 흐드러지며 들꽃처럼 주변에 어울리며 살아가라고 들꽃처럼 키우려 했습니다. 수천 수만년을 피고 지는 역사를 가진 들꽃처럼 키우려는 꿈을 꾸었건만,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를 두고 고민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과학 9개 틀렸다고 우리 아이를 놀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에 정의는 하나일 터인데, 그 정의라는 것도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을 통하여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지윤 지승이 들고 있는 꽃은 냉이꽃입니다. 지윤 지승이 여섯 살 때 외갓집 텃밭에 난만한 냉이꽃을 뿌리째 캐서 꽃다발을 만들고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냉이가 꽃이 필 만큼 자라면 줄기가 질겨서 꺽이지 않으니 뿌리째 캔 것입니다. 물론 손엔 흙 묻고 저 꽃다발을 갖고 탔으니 차안에도 흙이 떨어졌겠지요. 아마 그 손 씻지 않고 간식도 먹었을 거고 차에 오는 동안 졸리다고 눈도 비볐겠지요.
    다음에 외갓집 갔을 때는 그 냉이 밭을 갈아 엎고 다른 씨았을 뿌려놓았을 겁니다. 지윤 지승은 자기네 꽃밭이 없어졌다고 속상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맘 속에 있는 아름다운 냉이 꽃밭은 살아가면서 외갓집이 그리울 때마다 하얗게 피어나겠지요.

    내 아이들이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겨울 눈 속에서 싹을 준비하는 꿋꿋한 들꽃 씨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엄마로서 때론 선생님 마음을 스스로 일깨우면서 아이들을 돌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백 명의 스승과 같고
    어머니는 백 명의 아버지와 같다-

    지윤 지승아 엄마로서 나의 짐이 무거우나 그 짐을 지고 가는 길은 행복하단다. 사랑해~~~ 그리고 마음 맑은 너희가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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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삽살개와 토종 장닭

솔농원 에는 두 마리의 한우와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토종 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두 부모님이 먹이를 주지만 아버지는 무게가 나가는 소를 중점적으로 키우고 어머니께서는 삽사리와 시베리아허스키 계통의 잡종개의 먹이를 주신답니다. 그런데 솔 농원에서 키우는 동물 중에서 삽사리와 장닭은 앙숙이랍니다. 닭 쫓던 개라는 소리도 있는데 이상하게 삽사리는 토종 장닭에게 꼼짝 못 한답니다. 먹이를 닭이 뺏어 먹어도 멀뚱멀뚱 거리고, 또 닭이 개를 못 살게 굴어도 별 저항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삽사리가 좀 불쌍하기도 합니다.

근데 요 위에 장닭은 질투심도 많은 녀석 입니다. 어머님이 삽사리 밥 주면 질투가나서 어머님께 부리와 발로 공격을 하기도 한답니다. 닭장에 들어가래도 안 들어가고 아무튼, 어머님에게 모이를 얻어 먹으면서 어머니 한 테 반항하는 장닭의 심보를 알다 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이 요 녀석들을 키우는 이유를 알면 이 세상의 외할머니들이 외손자와 손자를 생각하는 깊은 사랑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어머이 힘든데 닭하고 개하고 키우지 말아! 그러면 어머님은 말씀 하신답니다. 농사 짓는 집에서 짐승은 키워야 한데이...... 왜냐하면...... 음식 남은 거로 키우면 되고...... 소 안 키우면 구정물 처리하는 것도 힘들어...... 이런저런 이유들은 진정한 농사꾼의 가슴이라면 모두 맞는 말씀 이십니다. 그래도 힘드시니깐 안키우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씀을 하시면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지윤이 지승이가 시골 외갓집이라고 오는데 소나 닭도 보고 그래야지 ......짐승이 없으면 애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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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솔직히 농사짓는 외갓집 시골이라고 왔는데 소도 닭도 개도 없이 농사 짓는 시골에 대하여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 하겠지요. 어쩌면 지윤이 외할머니는 우리 시대에 마지막으로 살아계신 농사 짓는 외갓집 할머니들의 사랑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랑을 앞으로는 대한민국 어느 시골마을 에서도 느낄 수 없는 날들이 빨리 찾아 올까 봐 솔직히 두렵습니다. 농촌에서 도시에서 앞으로 수 없이 나타날 신식 외할머니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하긴 신식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에 그 나름의 방식대로 신식 손자들이나 외손자들은 또 나름의 생존철학과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그러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자연 속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아주 오래오래 지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외할머니가 그랬고 지윤이 지승이 외할머니가 그렇게 살아 왔듯이 앞으로 나타날 신식 외할머니들도 구식 외할머니가 전수해준 농촌의 서정이 담긴 그 사랑의 가슴만은 대대로 전승해서 그 옛날 지윤이 지승이 외할머니의 손자손녀 사랑을 이 땅에서 오래오래 듣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쿠~ 어제는 음력으로 12월 1일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어머님이 그랬습니다. 그 날도 오늘처럼 화창하고 맑은 하늘이었다고...... 그 날 처럼 맑은 날 솔농원을 바라보며 먼 훗날 지윤이 지승이 한 테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어떤 추억의 영상으로 기억 될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포근하고 따뜻한 외할머니와 외삼촌 같은 막내 외삼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구리 하우스에서 지윤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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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본채 뒷면 전경


1975년... 새마을 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수출 100억불을 외치던 시절에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 양조장 건물이 신축 되었습니다. 그 시절 고향 떠난 누나와 형아들이 서울 구로공단과 울산공단에서 티셔츠도 만들고 유조선도 만들면서 오로지 고향땅 부모님과 조국 근대화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두가 열심히 일하던 시대 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의 장기집권 시도가 진행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절대 자유와 인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앞 세운 유신헌법이라는 정치적 틀속에서 독재에 짖눌리고 살았던 암울한 시대가 1970년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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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축물이 2007년에 비교적 온전히 하리마을에 흘러간 세월만큼의 연륜과 멋을 뽐내며 실개천이 옆으로 다정 다감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마을의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텃밭 끝자락에 남쪽을 향해 직사각형 2층 건축물은 언듯 봐도 1970년대 건축물이 보여주는 낯익은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일대에도 산비탈을 따라 벽돌로 쌓고 미장으로 마감한 주택들이 들려주는 서민들의 주거건축 양식을 볼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재개발의 광풍에 정감어린 달동네의 붉은색 기와지붕과 스레이트 지붕으로 연결된 지붕 마루들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안으로 이리저리 연결된 비탈길 골목길의 정경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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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970년대 후반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느꼈던 집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깃든 가슴과 집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건축관을 간직한 그 시대의 건축물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 경제적 상황과 건축기술과 건축자재의 낙후성으로 벽돌과 철근콘크리트로 조합된 단순한 외양과 내부 구조로된 평범한 건축이지만 정말 튼튼하기 그지 없는 토치카처럼 단단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1층에서 2층 지붕면을 떠받치는 벽체는 눈 짐작으로 재어봐도 30CM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와~! 요새구나! 프랑스가 독일 침공에 대비해서 구축 했다던 그 벙커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벽체보다는 단단하지 않겠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면 말 다했지요? 그래서인지 30년이 넘은 단순한 조석식 벽돌 건축물에 균열(crack)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건물 외관만 잘 관리해 주면 앞으로도 100년 아니 그 이후의 또 한 세기를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것 같은 집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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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층은 막걸리 만드는 작업장이고 2층은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즘 건축물로 말하자면 1970년대 봉재산업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자리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공장형 오피스 빌딩과 맥을 같이하는 스타일 입니다. 다른 특별한 설명으로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의 건축적 발견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2층 살림집 후면에 있는 창문 만으로 이야기 합니다. 2층에는 용도에 따라 구획된 공간에 하나의 창문이 달려 있습니다. 모두 5개의 창문이 있는데 그 크기가 모두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 작은 창문이 있는 공간은 화장실과 욕실 입니다. 당연히 누가 볼까봐 창문을 작게 만들었고 두번째 제일 큰 창문은 안방 창문 입니다. 사람이 주로 거주하는 메인 공간의 창문을 크게 만들어 놓아 햋살과 창밖 전망을 고려한 크기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세번재는 주방 창문 입니다. 네번째 건너방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의 창문이고 마지막이 요즘으로 치자면 다용도실 용도의 공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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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에 대한 생각으로 각 창호의 크기가 용도별로 정해지고, 열 손실을 최소화 하기위한 생각으로 전체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작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것이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건축을 바라보는 생할 건축이고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건축물로  현실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역사성을 간직한 건축물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지금 처럼 돈 많이 들여서 건축설계를 맡겨서 집을 짓는 일명 스타 건축가들이 만들어 내는 관념적 건축과는 구별되는 우리 시대의 건축물이라 이야기 해도 누가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아니 하겠지요.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창문이 있는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수리해서 살기로 했답니다. 참으로 그 집 주인은 역사와 미래에 대한 현명한 미적 감각과 건축적 안목을 가진 멋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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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에 대한 자가보수 이야기를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홈페이지 집수로 카테고리에 올릴 생각 입니다. 오늘은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가 갖는 건축적 의미와 하리하우스의 역사적 상징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집수리 이야기를 끝내야 겠습니다. 한 마디 더하고 끝내야 겠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수리하며 가꾸는 재미가 있어야 제대로 된 집입니다. 그 집을 수리 하면서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가족간에 사랑과 신뢰와 믿음이 쌓일때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진짜 좋은 집으로 자자손손 보존되며 이야기 될 수 있겠지요. 할아버지의 손길과 추억이 깃든 집, 아버지의 땀과 사랑이 깃든집, 엄마의 정성스런 손길이 깃든 집, 그런 집과 몇년 후에 오를 집값을 바라보고 사는 집... 어떤 집이 사랑스럽고 정감있는 좋은 집이란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집에 대하여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 듯 합니다.

소구리 하우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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