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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6 딸 과의 대화 - 십오 소년 표류기

딸의 학교 일기 주제가 친구 사이의 우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뭐 특별히 쓸 게 없다고 고민을 하기에 옆에서 조언을 했습니다.

“지윤아. 그럼 이러면 되잖아, 수학 시간에 니가 발표한 답이 틀렸을 때 ‘에이 지윤아 그게 아니지~~.’하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건 기분 나쁘고 속상하니까 틀려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쓰면 되잖아. 작은 일에서 친구 기분을 생각해 주는 게 우정이라고”

그런데 결국 그 안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발표를 안하겠다는 딸이 간접적으로라도 불만을 이야기 할 기회를 가지면 속상한 게 좀 풀릴까 싶어 위로 겸 한 제안이었는데 딱 거절입니다. 우정에 대해서 쓸 말이 없다고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십오 소년 표류기> 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지 내가 먼저 말했는지 하루 지난 시점에서 막 헛갈립니다. 그러나 어쨌든 <십오 소년 표류기>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정에 관한 딸의 일기 숙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저녁에 아빠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십오 소년 표류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빠도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 동네 할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십오 소년 표류기>를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다고, 다음에 아빠도 다시 읽어 보겠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빠는 소년들이 두 패로 갈라졌다는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이 책을 다시 읽고 딸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길 바라며 그날이 오면 지승이도 읽고 요 아래 지윤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길 바랍니다. 책을 읽고 같이 대화하는 가족, 꿈꾸던 이상형의 가족입니다.

어제 일기를 쓰는 딸을 보며 일기나 독후감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 쓰고 싶어서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일기가 얼마나 쓰기 싫으면 어른들에게도 일정 분량을 정해주고 매일 일기를 쓰라고 해야 한다는 둥, ‘일기는 지겨워’ 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쓰는 둥 몸살을 하는 딸이 한 장 반이나 되는 분량의 일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일기나 독후감이 연습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연습을 지나쳐서 본 경기엔 출전도 못 할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것처럼 일기나 독후감도 적당히 연습시켜야 합니다. 학교생활에서 그 ‘적당히’를 정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지만, 교사의 몫이 바로 그 ‘적당히’를 잘 하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충’의 의미보단 ‘적절히’란 의미의 적당히.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그 ‘적당히 교육’의 바탕입니다. 내 아이들의 선생님들께 신뢰를 보내며 <십오 소년 표류기>를 시작합니다.

**** 살아남기 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일명 학습만화라는 미명하에(^^ ?) 살아남기 시리즈와 *** 보물찾기 시리즈로 아이들에게 친근한 책입니다. 외사촌 오빠들이 물려주어서 시리즈를 그야말로 시리즈로 구비하게 된 지윤지승이 방학 내내 그 책만 보려해서 결국 금서로 지정을 했습니다. 볼만큼 보아서인지 아님 만화책과 줄글책이 있을 땐 당연히 만화책으로 손이 가게 된다는 걸 인정해서인지 살아남기 시리즈를 싸서 치우는 데 동의 했습니다. 지승이 줄글을 줄줄 읽을 줄 알아 그 재미를 알게 된 연후에 금서에서 해지 시켜줄 생각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하리하우스 도서실을 ‘만화방’이라 부르기에 취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그 *** 살아남기의 원조 이야기가 쥘 베른의 <십오 소년 표류기>가 아닌가 합니다. 같은 계열로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이후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위기 상황을 이겨내는 인간의 지혜와 운명 공동체 안에서 협력과 분쟁을 내용으로 하는 책들입니다. 권력욕이 인간성에 감동되어 화해하는 내용이 <십오 소년 표류기>라면, 미지의 자연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화해할 수 없는 공황상태로 치닫는 것이 <파리 대왕>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나 <톰 소여의 모험>은 집단의 ‘살아남기’ 라기 보다는 개인의 끈기와 기지로서 고립 상황을 이겨내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로빈슨 크루소>나 <십오 소년 표류기>, <파리 대왕>의 상황설정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라면 <톰 소여의 모험>은 톰의 가출 소동 정도이니 비교 상황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톰 소여의 모험>은 같은 작가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에리히 캐스트너의 <라스무스와 폰투스> 정도의 책과 같이 이야기 되는 게 옳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십오 소년 표류기>를 떠올림에 줄줄이 <톰 소여의 모험>이 떠오르는 건 교육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학창시절 ‘<십오 소년 표류기>와 <톰 소여의 모험>은 모험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배웠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줄줄 떠오르게 된 겁니다. 여기서 나의 기준으로 굳이 구분을 하자면, <로빈슨 크루소>와 <파리 대왕>은 어른들을 위한 살아남기 모험담이고 <십오 소년 표류기>는 청소년을 위한 살아남기 모험담이고 <톰 소여의 모험>은 <라스무스와 폰투스>와 같이 어린이를 위한 가출 모험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십오 소년 표류기>는 아이들이 더 커서 읽기를 바랬는데, 2학년 때 딸이 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다며 해를 넘기고도 자주 꺼내보니 더 깊이 이해할 여지가 남아서 다행입니다. 아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볼 때까지 딸의 <십오 소년 표류기>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목이 <2년간의 휴가>랍니다. ‘휴가’ 라는 말만 들어도 책의 내용이 비극적이지 않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끝이 해피엔딩이라 아이들이 읽기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우정에 관한 지윤이의 일기

제목: 사랑

선생님께서 <친구사랑>을 주제로 일기를 써 오라고 하셨다. 이 일로 나는 지금 열심히 생각중이다. 무순 내용을 쓸 지 말이다. 아! 생각났다. 나는 이 내용을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3-3반 친구들아~

안녕! 나는 며칠 전에 <십오 소년 표류기>라는 책을 읽었어. 그곳에 나오는 15명의 소년들은 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들이야. 그렇지만 단 2명, 브리앙과 드니팬이라는 소년만이 사이가 나빴어... 하지만 결국엔 먼저 싸움을 브리앙에게 잘 걸던 드니팬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시 우정 깊은 15명의 소년들로 되었어.

그리고 한가지 웃긴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 15소년 중 서비스라는 아이가 있어. 하루는 3~4명의 소년들이 탐험을 하다가 함정을 하나 발견했어. 그 함정들 중 하나의 함정엔 뼈들이 있었어. 그것을 보고 윌콕스라는 아이가 뼈를 주우려 함정 속으로 내려갔어. 그러고는

“네 발 달린 짐승이야. 다리 뼈가 넷이나 있어.”

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서비스가

“다섯 발 달린 짐승은 아직 못 보았거든.”

하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 그 서비스만을 제외한 3명의 아이들이 하하하 하고 웃었어.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안 웃을 수가 없었어.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이 4 소년, 즉 15명의 소년들처럼 즐겁게 웃고 지내자는 이야기야~~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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