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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7 자기주도학습 (2)
  2. 2010/06/05 혁신학교에 대한 희망을 말합니다. (4)
  3. 2010/06/01 최명희 <혼불> 이야기

지난 6월 3일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에서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주제로 학부모교육이 있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에서 부모의 역할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학습하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의지가 생기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이 자기 주도 학습이 올바른 방법이란 걸 몰라서 ‘부모 주도적 학습’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육현실이 아이들의 가치기준이 정해져서 학습에 뜻을 두고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까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놔 둘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모 주도적 학습’을 시키게 되는 겁니다. 현재와 같은 성적지향주의 교육 분위기에서 자기 주도적 학습은 공염불입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학생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깊이 있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와 같이 성적으로 전국 어린이를 줄 세우는 제도가 있는 한 ‘부모 주도적 학습’을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겁니다.

강사님의 개인적인 의견도 시험 없는 학교(초등을 의미하겠죠?)가 더 바람직한 것임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성적으로 학군을 학교를 선생님을 아이들을 줄세우는  일제고사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 서울 교육감이 바뀔 것이니 없어질까요. 아님 정권을 바꿔야 없어질까요. 느닷없이 생긴 일제고사니까 느닷없이 폐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고민하다 우리 애들은 훌쩍 커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좋으니 없앨 건 없애면 좋겠습니다.

없애는 참에 국제중도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도 슬쩍 없던 일로 되면 참 좋겠습니다. 혹시 내 아이들이 뒤늦게 머리가 틔어서 국제중 갈 실력이 되는 데 돈이 없어 못 보내면 어찌 하겠나 걱정이고, 중학교 가서 머리가 틔어서 특목고나 자사고 갈 실력 되는 데 돈이 없어 못 보내면 어찌 하겠나 하는 걱정 지금부터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 합리적인 것처럼 이루어지는 사회가 안 되려면 특목고까지도 무상 교육 되는 교육제도가 필요합니다.

‘논귀에 물 들어가는 것 보기 좋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보기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부모 되고 보니 참 와 닿습니다. 거기에 ‘자식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배우게 될 때 참 보기 좋다’는 내용을 넣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배우는 것도 보장할 정도의 힘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강의 내용 중 몇 가지 기억할 내용을 적었습니다.

* 크게 웃는 엄마의 아이가 잘 큰다.

* 묵시적 교육의 교사는 엄마(부모님)다.

* 사춘기의 특징은 갑자기 잠이 많아지고 수면 습관이 올빼미형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 성공하는 20세기형 인간은 개미형이었지만, 21세기는 네트웍을 구축하는 거미형인간이다.

* 메타지식은 잠의 후반부 뇌의 활동으로 정립된다.

마음에 새기어서 크게 웃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아이들이 갑자기 잠이 많아지면 혹시 사춘기가 아닌가 점검해보는 엄마가 될 것이고 잠을 충분히 자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는 엄마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메타지식이란 용어에 대해 알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 전문가 시스템 원리와 개발 - 법영사,

메타 지식 (Meta Knowledge) 은 일반적인 지식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지식에 관한 지식 (Knowledge about Knowledge) 으로서 지식베이스가 커지고 복잡해질 때 지식의 추론이나 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식이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여부를 자문해 주는 전문가시스템이 있을 경우, 경기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지식베이스의 일부를 운영되지 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관리를 메타 지식이 수행할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상충된 지식이 동시에 수행되는 상황이 발생될 때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이러한 메타 지식을 이용하여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독서가 만들어 주는 하루’라는 블로그의 <지식의 본질과 표현> 이라는 글에서 메타지식에 대한 설명을 읽었습니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게 아는 거다.’ 라는 말과 상통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학부모 강의를 들은 결과 메타지식의 개념을 더 확실히 정립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이런 자기주도적 학습 욕구를 갖게 되었으니 강의 들은 보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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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윤맘 2010/06/09 0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재의 3대 조건- 지능.과제 집착성.창의성

    미 국립 영재연구소장 조지프 렌즐리 라는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의 내용입니다.
    그 중 지능이야 어쩌겠냐마는 과제 집착성과 창의성은 주변 환경에 의해 키워질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행히 여기서의 지능이란 평균 이상의 지능을 말하는 것이니 천재가 아닌 영재는 충분히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현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영재를 만들어 보겠다고 꿈꾸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과제 집착성' 또한 만들어 지는 게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제 집착성은 동기부여가 되면 모든 에너지를 한 특정 프로젝트에 장기간 쏟아 붓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습자가 어떤 일에 높은 관심을 보이게 되면 오랜 시간동안 열심히 할 수 있다. 또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평균 이상의 지능. 과제 집착성. 창의성. 이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 한 분야에서 탁월한 영재성을 발현하게 된다.--
    시켜서 하는 일은 오래 못 가지요. 그러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이면 일을 성취할 때 까지 하게 되고 성취율도 높게 됩니다. 거기에 창의성만 있으면 영재성을 발현하게 된다니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이와 같이 이야기 해서 관심분야를 찾는 것입니다. 아이를 생각해서 부모가 이것 저것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죽어라 해내는 집착성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라야 생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2. 나그네 2010/06/12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제가 학교 다닐때 보지 못했던 많은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많이 빼앗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관심이 게임이나 오락 같은 것에 많이 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하루에도 수십 가지씩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서 어른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그것이 공부인 경우는 정말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부모로써 가장 어려운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제를 풀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 후 제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한다 였습니다. 스스로 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일에 흥미를 잘 갖지만 잘 안되면 보통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어른이 억지로 시키려고 해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운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잘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실력도 쌓이고 어느 순간 자신이 자발적으로 목표까지 세우게 되는 경우를 발견하였습니다. 3~4년전 우연히 세계 큐빅 선수권 대회 우승자에 대한 수기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초등학교때부터 학습부진아에다 사회성 결여로 중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열등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집에 있던 큐빅을 가지고 놀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참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잘하기 위해,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하루에 수십시간 연습을 하여 결국 세계 선수권 챔피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인은 몇만년이 걸려도 맞추기 어려운 큐빅을 단 몇초만에, 그것도 컴퓨터를 이용해 가장 어렵다는 조합을 한 상태에서도 단 몇초만에 큐빅을 맞춰내는 아이를 보며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준다는 것, 재능을 찾아준다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생활하며 아이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어느 것을 잘할까? 어느 것에 재능이 있을까 많은 부모들이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선으로 찾은 방법은 잘하는 것을 만들어주자 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죠. 한가지를 잘하면 그것에 연관된 것은 자연스럽게 잘하게 됩니다. 수학을 잘하면 물리와 화학등을 잘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언가 잘하게 되면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그 방법을 다른 곳에 적용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잘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겠죠. 저는 결론을 반대로 생각해 봅니다. 잘함으로 인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어서 몇자 적어 봅니다.

곽노현 교육감에 거는 기대

노현 교육감 당선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선만큼의 의미가 있습니다.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엄마로서는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러기에 새 교육감에 거는 기대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걸었던 기대만큼이나 크고 희망찹니다.

이런 저런 말로 하기 구차한 자잘한 일들 때문에 - 그러나 내 아이들 인생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거리가 생길 때 혁신학교를 생각했습니다. 대안학교는 너무 나 큰 결심을 해야 하고, 교육 선진국으로의 유학은 꿈도 꿀 수 없고, 홈스쿨링을 하기엔 능력이 부족하고, 사립은 또 그대로의 장점은 있지만 역시 내가 꿈꾸는 참교육의 장은 아닐 것 같고. 이래저래 아이 둘을 공교육에 맡기고 있는 학부모로서 가장 귀가 쫑긋해지는 단어가 바로 ‘혁신학교’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전혀 보지 않고 산지가 오래되어 ‘남한산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말로 잠깐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비슷하게 운영되는 학교가 판교의 어느 초등학교와 북한산 어느 초등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남한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갈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뿐 여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마음 같으면 어느 부모가 ‘남한산초등학교’로 전학가지 않겠습니까.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것을 생각하면 요즘 부모들의 열정이야 삼십 번을 마다하겠나마는 현대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 그냥 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혁신학교를 서울에 만들겠다고 하니 큰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제가 거는 기대요? 크지 않습니다.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시험 성적으로 아이들이 평가 되지 않는 학교,

아이들끼리 점수로 친구를 놀리는 일이 없게 교육하는 학교,

아이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어떠한 체벌도 언어폭력도 없는 학교.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이런 학교가 제가 꿈꾸는 학교입니다.

여름엔 조금 더워도 되고 겨울엔 좀 썰렁한 교실이어도 좋습니다. 지금의 공교육 안에 있는 학교보다 좀 불편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교육의 목적을 인성교육에 두고 있길 바랍니다.

공동체 교육과 자연친화 교육에 두고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학습 결과물이 아닌 학습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교육에 두고 있길 바랍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배우고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는 것의 기쁨을 느끼기 전에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사랑해서 해야 행복하고 그래야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고 자신의 발전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 하나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쳐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까지 공부하란 말을 안 하고 키울 수 있는 학교. 아직 못 깨우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그 아이의 부모도 행복한 학교가 바로 혁신학교이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런 혁신학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국의 어린이, 학부모, 학교, 선생님들까지 성적 지향주의가 되게 만드는 일제고사 폐지 등의 교육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의 말대로 기초학력 부진 학생은 일제고사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한 달 안에 파악 하실 수 있는 실력을 갖고 계신 선생님들이라고 믿습니다.

교육제도 개선의 밑받침 위에 참교육을 위한 선생님들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학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내 아이만 돋보이는 교육, 내 아이가 시험 일등인 교육이 아닌,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교육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는 부모님들이 있을 때 서울의 모든 학교, 아니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꿈이 이루어져서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행복한 서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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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0/06/06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곽 교육감께 거는 기대가 큼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번에, 단시간내에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랜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곧 시작입니다.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바위를 깨트리는 것처럼 저는 앞으로 태어나고 자라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곽 교육감께 한표를 던졌습니다. 지금 당장 뭔가 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서서히, 한발한발 그 꿈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2. 솔바람 2010/09/09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편지를 가정통신문으로 받아 왔습니다. 하나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하나는 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읽어보게 하였습니다. 다 읽고 난 딸이 '근데 시험을 줄인다는 말은 왜 없어!' 하는 겁니다. 교육감 선거 당시 이 분이 교육감이 되면 아마 시험을 덜 보게 될거라고 설명을 해서 아이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중인데, <체벌 전면 금지>라는 내용만 있고 시험 횟수를 줄인다는 설명이 없으니 실망했나 봅니다.
    그러나 부모인 입장에선 너무나 반가운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말하기 민망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체벌하는 경우가 종종 회자되는 교육환경에서 <학교체벌 전면 금지>를 결정하였다는 것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입니다. 새학기가 되어 부모들 사이에서 오가는 선생님들에 대한 정보 중 '아이들을 때린다더라'하는 내용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기쁩니다.
    교욱감의 편지 내용 중 '학교 체벌은 학생들에게 억압과 폭력을 내면화시키는 악습입니다. 체벌 금지는 이미 109개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거역할 수 없는 문명세계의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보편적 상식이 지켜지는 교육이 현장에서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교육수준은 한 단계 올라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무력으로 통제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율의 힘을 배운 아이들이 사회로 나아갈 때 우리 사회도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학부모인 나에게가 아니라 부모인 나에게 '선생님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무한한 신뢰와 지원, 따뜻한 격려가 선생님들에게서 더 큰 사랑과 헌신을 끌어낼 수 있음을 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교사와 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노력하여 이루어야 할 <체벌없는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며할 것을 약속하며, 서울 특별시 교육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3. 나그네 2010/09/17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영국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매를 때리자는 측면보다는 매 속에 들어 있는 가르침의 사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제가 틀릴수도 있지만... 이제는 선생님의 매를 사랑의 매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 좀 아쉽습니다. 당연히 매를 들지 않고 교육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교육의 현실이 그럴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곽 교육감의 의견에는 동감을 합니다. 체벌을 안하는 것이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교육에서 나오는 선생님의 사랑과 애정이길 바랍니다.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합니다.

  4. 최병옥 2011/09/02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가 알아줄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고 사람들은 후회와 반성으로 가슴아파했습니다.
    언론이 몰라줘도 역사가 알아줄 것인데.

    곽노현 교육감님!
    학부모로서 이땅의 교육 발전을 위해 응원합니다.
    언론은 보도할 뿐 판단은 훗날 역사가 합니다.
    절대 사퇴하지 마시고 더욱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교육에 전념해 주세요.


혼불 일기


1999년 12월말이었나 봅니다. 남편의 월급통장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통장에 돈이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이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거라고, 그렇게 신나서 말했습니다.

그리곤 동네 책 할인점에 가서 책을 샀습니다. 책표지의 정가에 억매이지 않고 책을 고를 수 있으니 이것저것 뒤적여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기분 얼마 만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책 한 권에 몇 만원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맘먹고 사려면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이지만,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안되었습니다. 더구나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한번 읽고 잊어버리는 책 말고 두고두고 보며 가슴 설레고 싶은 책. 장식장에 모셔두는 어떤 값나가는 물건보다 더 자랑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 욕심을 내게 하는 책이 있는데 바로 ‘혼불’이었습니다.

처음엔 책제목이 너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싶어서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붉은 색 직사각형 안에 희게 새겨진 ‘혼불’이란 글씨도 너무 강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한 글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나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 작품에는 ‘혼불’이란 제목을 붙여도 될 법하다는 느낌. 그것이 제목이 주는 샤머니즘적 인상을 휴머니즘의 느낌으로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내가 ‘혼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책을 집에 갖다 놓고도 두 달이 넘은 2월 11일부터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내가 그날부터 ‘혼불 일기’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0년 나의 일기도 2월 11일이 시작입니다. 그 전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었는데, 아마 ‘혼불’을 읽으면서 읽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대하소설은 읽을 당시에는 주인공과 사건의 흐름, 느낌이 서로 얽어져서 가슴에 들어오지만, 읽고 나면 복잡하게 얽힌 구조는 다 잊혀지고 낱낱의  단순한 감상의 조각만이 남게 됩니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혼불 일기’를 쓰고자 했습니다. 훗날도 잘 되새겨 지라고.

또 하나의 이유는 ‘혼불’이 민속사 책보다 더 정확하게 민속사를 고증하고 있다는 광고문구 때문이었습니다. 옛 풍속을 더듬어 보고 싶은 내게 중요한 정보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혼불 일기’의 첫 장에 

사주 보는 법--1권 P14

라고 메모가 돼 있는 걸 보니 ‘혼불’은 나의 기대를 첫날부터 충족시켜 준 셈입니다.

‘혼불’을 다 읽고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옛 일기를 뒤적이며 ‘혼불’이 주는 감동을 쫓아가려 합니다.


2000년 2월 11일

지금은 12일 밤 11시를 넘었습니다. 어제의 일기를 스는 셈이지요.

나에겐 지난 일기를 쓰더라도 거짓일기라 느껴지지 않게 쓰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나의 어머니지요. 내 어머니의 여름 일기는 날을 바꿔 다음날 새벽에야 쓰여집니다. 한밤중까지 일을 하고 지쳐 잠드시면, 몇 시간 지난 새벽에야 깨어나 어제 일을 더듬으며 일기를 쓰십니다.

비록 내가 일기를 밀려서 쓰는 것은 게으름의 소치이지만, 밀린 일기라도 꼭 쓰고 넘어가는 어머니를 본받기 위함입니다. 내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어머니의 몸짓이 살아나듯 ‘혼불 일기’를 통해 ‘혼불’이 살아나게 하고 싶습니다.


‘혼불’의 장면 묘사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영화의 장면 장면을 설명하듯  자세하고 회화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대로만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 영상만으로도 멋진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막내오빠 생각도 하고 ‘춘향뎐’생각도 했습니다. 우리 오빠가 ‘춘향뎐’처럼 화면이 아름다운 작품을 찍을 날이 어서 오면 좋겠습니다.


그랬습니다.

‘혼불’의 문장은 그림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초례청의 모습이나 혼례를 치르는 효원의 모습을 묘사한 문장을 보고 회화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보여준 색채와 형태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절로 일었습니다.


‘진주, 산호, 비취, 청옥, 백옥, 밀화의 구슬 등은 일룽거리는 촛불빛을 받아 오색의 빛을 찬연하게 뿜는다.

금방이라도 좌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질 것처럼 소담한 구슬무더기가 꽃밭이라도 되는가, 실날같이 가냘픈 가지 끝에서 청강석 나비가 날개를 하염없이 떨고 있다.‘

‘쏙독 쏙독 쏙독. 칼로 무를 저미는 것 같은 소똑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어지러이 칼 맞은 자리마다 언 산의 생살이 무참히 벌어지고, 어둠은 그 틈바구니 속으로 소금같이 저며들었다.’

‘생김새 자그마하나 다부져 보여 물에 잘 씻긴 돌멩이 같았다.’


이런 구절들은 읽을수록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특히 4권과 5권에 나와있는 어둠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땐 ‘참 끈질긴 작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이 저무는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 어둠에 푹 잠겨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들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4권의 ‘박모’에서는 날이 저무는 풍경을 차분히 설명하는데, 직유와 은유의 힘을 적절히 빌어온다면 우리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3월 23일

최명희의 문장을 생각함에

가슴이 뛴다.

그의 글은 서사시 같다.

그는 서사시인 같다.


‘토지’가 알밤까먹듯 참으로 재미졌다고 한다면

‘혼불’은 알밤나무가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특히 ‘박모’와 ‘자시의 하늘’에서 보여주는 묘사는

가슴 넓은 사람만이 차분히 풀어 낼 수 있는 서사시의 압도를 갖고 있다.


‘혼불 일기’의 여기 저기에서 문장에 대한 찬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불을 읽을수록 놀랍게 다가온 것은 회화적인 묘사의 화려함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또는 사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 밑바닥까지 함께 가라앉아 보고서야 알아낼 수 있는 진실한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혼불’이 서정(抒情)이 없고  서경(敍景)만 나타난 문장이라면 건조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건조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심리묘사가 곳곳의 배경묘사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역시 ‘박모’의 끝 부분에 나타난 강실의 심리 묘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담백한 토로였습니다. 슬픔의 원인을 과장하지 않은 담백함. 솔직함. 그래서 강실의 슬픔에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 하는 시리게 푸른 빙천(氷天)으로 상여가 덩실 떠오를 때, 강실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복받쳐, 떨리는 소리로 곡을 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청암 할머님이 저 상여를 타고 떠나신다는 슬픔이 가슴을 저미어, 살에 묻은 체온이 저만큼 떠나가는 것 같은 애절함에 목이 메이면서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밀려 올라와 강실이를 흥건하게 적신 심정은,

참으로 고운 색깔들이 떠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 휘황하고 아름다운 색색 가지 색깔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저렇게 가는구나.

이승을 떠난 저승의 언덕 어느 먼 곳으로 가고 가면서, 서럽게 서럽게 소리도 없이 나부낄 그 색깔들이 그렇게 애잔하고 목메이게 가슴을 후비어, 강실이는 사립문간에 서서 오래 울었다.


지금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왜 강실이에 대한 심리묘사 부분이 내 눈에 띄었는가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이 ‘혼불’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정적인 인물이면서도 심리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 인물이 강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내 ‘혼불 일기’는 자꾸만 ‘토지’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토지’를 읽었을 때의 감동과 비교되는 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에 대한 비교였습니다.


2000년 2월 14일

낮에 몇 자 읽다 잠들었다.

지금은 자정을 한 이십 분쯤 넘긴 시간이다. 이제부터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

토지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속도 있게 진행 되어서 빨리 읽혀졌는데, 혼불은 그에 비해 좀 느리게 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대상을 설명하는데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니 좀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혼불을 통해 문학이 한 시대의 풍속을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면에서 그 가치를 높일 들 수 있다.

어떤 자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은 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2000년 2월 27일

토지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막힘 없이 흐르는 도도한 강물같은 것이었다면

혼불의 흐름은 끼여드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토지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죽죽 흘러가는 형식이라면, 혼불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물로 유입되는 작은 지류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에 과거의 모습을 자꾸 끼워넣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한참을 읽다가

‘이 이야기의 서두는 무엇으로 시작되었던가?’

하고 책장을 앞으로 넘겨야 한다. 문득 그렇게 책장을 역으로 넘겨가며 훝어야 하는 것이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내 기억력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혼불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우리 풍속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효원의 혼례나 청암부인의 장례절차를 통해서 우리 조상들이 지켰던 의례의 저변에 깔린 의식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2000년 3월 3일


‘돌아오라 혼백이여’부터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을 읽는 동안 내내 할머니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청암부인의 장례절차에 자꾸만 할머니 장례절차가 겹쳐서 떠올랐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 금방 가슴에 슬픔이 고여 눈으로  흘렀다. 연세  많으신 외할머니나 할아버지, 그분들의 미래에 닥칠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렇게 눈물이 날 때마다 이상하게 ‘대부분 사람들은 죽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설움으로 운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서 내 마음을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

강실이도 청암부인의 상여 앞에서 흐느껴 울지 않았던가. 자기 설움 때문에...


새롭게 알게된 여러 풍속들 중 나를 가장 선뜩하게 했던 것은 혼서지의 쓰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00년 2월 29일

거실의 3단 서랍장 위에 함이 놓여있다. 그 함에는 혼서지라 불리는 종이가 청홍의 갑사로 만든 주머니에 들어 있다. 내용은 남편의 사주를 적은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과거의 한 기념물로 생각하며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그 함에 든 혼서지는 나중에 내가 죽어 저 세상으로 갈 때 내 발에 신겨지는 종이 신발이 된다 한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이상한 섬뜩함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여인을 한 가문에 철저히 묶어 죽을 때까지도 그 징표를  남기려 했다는 생각을 하자 옛 여인들의 운명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가 떠오른다. 끝없는 예속이며, 한편으로는 권리의 부여인 듯도 하다. 본처만이 누릴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또한 혼불은 아랫몰과 거멍굴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중 ‘백단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전통 무속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2000년 3월 4일


요즘은 점쟁이와 무당을 거의 동일시하는데, 그 시절엔 명백한 구분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무당의 굿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것이되, 점쟁이의 일은 타고난 신기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 그랬는가. 어쨌든 그 구분되어짐이 이채롭다.

무당이 하는 굿이 반복되는 연습으로 습득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은 굿이 그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  그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야 할 수 있는 절차의 까다로움 때문에 타고난 신기가 없이도 신성성이 담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구도자가 끊임없는 수행으로 도를 얻을 수 있듯이, 세습 무당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귀신을  감동시키는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도 ‘혼불’의 여기저기에서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부인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2권에 나오는 ‘돌상차림’에 대한 것과 6권에 나오는 ‘장 담그기’에 대한 것, 그리고 9권에 나오는 ‘무쇠 솥 길들이기’  10권에 나오는 ‘잿물 받아 빨래하기’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돌상을 차릴 일이 있거나 장을 담그는 일이 있을 때는 한 번 더 읽어보려고 따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신접살림을 나서 무쇠 솥을 길들이는 오류골댁의 모습에서는 살림살이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여겼던  여인들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몇 년 전 삼겹살을 구워먹겠다고 솥뚜껑을 샀는데, 자꾸 녹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집 부뚜막에서 보았던 가마솥의 윤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녹스는 것을 막기 위해 내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식용유를 살짝 발라서 보관했었는데, 원래는 아궁이의 그을음을 자꾸 덧발라 문질러서 검은  빛과 광택을 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아아. 그런 거구나.’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매안의 빨래담당 소례가 잿물을 받아서 빨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잿물은 마시면 죽는 거니까 독성이 있을 텐데 장갑도 없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첫째였고, 둘째는 요즘 가정에서 많이 쓰는 염소계 표백제와 양잿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물을 오염시킬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부 순물까지 빨래에 이용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의 신기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혼불’이 지닌 정말 큰 힘은 작가의 역사관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한번 ‘토지’와 비교가 되는데, 먼저 두 소설 모두 남자 보다 강한 여인들에 의해 가문이 지탱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의 배경에서부터 ‘혼불’과 ‘토지’는 많이 다릅니다.

‘토지’의 주요 무대가 경상도 하동 땅에서 출발하여 중국대륙 쪽으로 펼쳐지는 반면, ‘혼불’은 전라도 남원에서 출발하여  중국대륙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의 경우 경상도 사투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면 ‘혼불’은 전라도 사투리를 너무나 찰지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과 언어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백제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경순왕신 이야기를 통해 참으로 백성의 지지를 받았던 나라는 백제였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참 역사의 뿌리를 백제로 이동시켜 봄으로써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인식에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백제의 멸망과 삼천궁녀’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나도 그렇게 배운 듯 합니다. 백제의 의자왕은 국정은 뒤로하고 여색에만 빠져서 결국은 백제를 잃고, 의자왕이 거느리던 삼천궁녀는 낙화암에서 모두 떨어져 죽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인식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한 마당에 삼천궁녀는 무엇 때문에 자결을 했겠습니까? 열녀비를 세워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등을 떼밀어 떨어뜨리지도 않았을 텐데 왜 삼천궁녀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을까요? ’

작가는 그 대답으로 백제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져버린 나라일지라도 그 나라의 임금을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게끔 하는 힘이 백제에 있지 않았겠냐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꽃심을 지닌 땅’에서 백제와 후백제의 견훤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후손으로서 백제를 바로 알게 하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6월 26일


꽃심을 지닌 땅은

백제를 노래하는 부분이다.

그 침착성과

  자부심과

  애잔한( 아니고)

  애끓는 ( 맞고)

  마음에

  내 가슴이

  저린다.


그래서 나는 백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백제에서 찾아내고 그 가지를 조선으로 닿게 하는 작가의 역사인식에 감탄했습니다. 

나는 몇 년 전 우연히 전주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이 있어서 전주 박물관엘 갔었는데 느낌이 참 독특했습니다. 전주역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전주역의 느낌 또한 독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건 백제 고도로서의 전주가 가진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 해 봅니다.

특히 북방으로 떠나는 강모의 눈을 빌어 전주역을 설명하는 부분은 ‘나도 전주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이상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단청 물린 주칠 기둥에 아롱아롱 휘황한 천장 무늬가 흡사 어느 궁궐이나 사찰 같은 느낌을 주는 전주역의 고풍창연한 역사(驛舍)는 장엄하리만큼 육중한 골기와 지붕 때문에 더더욱 웅장해 보였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어디선가 돌아오는 보따리와 가방을 이고 지고 든 나그네들의 바람 섞인 경박성을, 지그시 재워 누르는 품성이 전주역 정거장에는 깊이 배어 있었다.

떠나거든 돌아오너라.

골기와 정거장은 소리 없이,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뭇 아들의 뒷등에 묻어, 낮은 소리로 스며들며 말했던 것일까.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발길이 머뭇머뭇 남루하게 고향의 문간에서 주춤거릴 때나, 분망한 원로(遠路)에 보란 듯이 일하고 올 때나, 정거장은 이만큼 마중 나온 어머니처럼 낡아서 깊은 품을 벌리어

어서 오라.

안으며 맞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주역이 유독 이처럼 사람을 품어 들이는 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철도와 기차라는 신식 개화물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조선식 건축물, 전주역.

마한에서부터 백제 넘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연한 빛을 자랑해 오던 고래(古來)의 고도(古都)여서 그러했을까.‘


그런데 나는 9권과 10권을 읽는 동안은 거의 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일이 바쁘기도 했을 뿐더러 제5부 ‘거기 서는 사람들이’의 전반부를 이루는 9권의 내용은 모두다 메모를 하고 싶을 만큼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권엔 여기 저기 책 모퉁이를 조금씩 접어놓은 자국이 많습니다.

일본 유학생이며 진취적 역사관을 가진 강호와 호성암 스님 도환은 대화를 통해 불교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불교는 민족종교임과 동시에 구국정신을 담은 역사철학이기도 했습니다.

사천왕 주위를 날아다니는 오후의 ‘나나니벌’ 한 마리에 대한 서술도 잊지 않는 작가의 세심함이, 글 속에 나타난 불교를 종교로서가 아닌 문학 안에서의 철학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간단한 서술 방법임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 역시 글을 살아있게 하는 묘사 문장의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방위를 말할 때 ‘동서남북’이 아닌 ‘동남서북’이라고 한답니다. 그런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는 인연과 순환의 관계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불교를, 사찰을, 그리고 사천왕과 삼십 삼천을 이렇듯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재주가 놀라웠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문학과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혼불’ 안에서 하나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피어난 꽃을 보는 기쁨으로 가슴 설레며 9권을 읽었습니다. 그 느낌이 새롭게 다가와 입가에 웃음 한 번 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혼불’을 읽고 가장 마음에 새긴 것은 청암 부인의 말씀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든 새롭게 알게된 풍속이든 그런 것은 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그러한 내용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내 가슴속에 새기고자 하는 것은 청암 부인의 한 마디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신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

오직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숨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자신을 건사하고, 이   재를 하듯이 정신을 관리해야만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질 것이다.“


일기장을 넘기다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읽어보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지만 내 정신의 토양은 아직 척박하여 때때로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되새기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갈 거름으로 삼고자 합니다.

나는 일기장 한 구석에 물음표를 붙여놓고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

매안, 득량 역이 있나?

대실도 있나?

범련사도 있나?

직지사, 보림사, 범련사 - 사천왕 있는 곳 ?

봉천역, 서탑거리도 진짜 있나?

가보고 싶다!


?에 대한 답을 알아나가는 동안 나의 ‘혼불 일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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