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서기엔 좀 늦은 시간이긴 했습니다. 겨울 오후 4시는 곧 해가 질 거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하루를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리하우스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게 하려면 내가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얼른 나서야 한다고 채근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옛길을 통해 저수지에 올랐다가 상리 바람개비 마을 마당에 가서 그네를 타고 놀다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네를 타면서 정면으로 일몰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날 해가 지는 걸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지윤이는 자신이 한국화 시간에 그림을 그린 헝겊가방을 챙겨들고 나섭니다. 전날부터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를 그네에 앉아서 계속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먼 길에 무겁고 또 겨울이라 그네 타며 책을 보는 게  추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할 수 없이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들고 간다는 약속을 받고서 허락했습니다. 결국 한권도 아니고 네 권이나 되는 책을 넣고 출발합니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후 집과 집을 연결했을 것이고 그 길이 단단해져서 마을길이 되었을 겁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마을길도 집과 집을 징검다리삼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옛길을 이용해 상리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아닌 들러 가는 길입니다. 대문과 대문을 이어주는 길.

그러나 거의 모든 집에 자가용이 있는 요즘에는 걸어 볼 기회가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리와 하리를 잇는 자동찻길이 옛길보다 높아서 하리를 갈 땐 항상 옛길을  내려다보며 다녔습니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 마을길을 걸어서 저수지까지가 보리라 마음먹곤 했습니다. 드디어 오는 그 계획을 실천해 보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하리 옛길을 통해 저수지를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한이가 왔을 때 옛길을 따라 저수지까지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제법 되었지만 길 양 옆으로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을 보면 그 위에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드러나 마음 뿐 나는 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걷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승이가 뒤쳐져있다 묻습니다. 인터넷 검색 할 때 ‘색’ 자가 ‘섹“인지 ’색‘인지를. ’아이 색‘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혼자 뒤쳐져오며 내내 눈에 뭐라고 적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하리하우스 검색‘이라고 쓰고 하리하우스 가는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는 겁니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한참 뒤쳐진 아들을 보고 빨리 오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쓰고 옵니다. 그런 지승이를 바라봅니다. 지승이는 눈 위에 글자를 쓰고 있지만, 내 눈에는 가슴에 하리하우스를 새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행복한 추억하나 새기면 살면서 부닥칠 시련을 이겨 낼 힘도 그만큼 많이 축적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아들을 기다리다 걷다 하였습니다.

시골집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집집마다 있는 ‘개’였습니다. 어떤 집이든 우리가 가까이 간다 싶어지면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줄에 매여 있어 그 길이가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개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개’ 였기 때문입니다. 때론 아이들이 개보다 더 요란하게 개를 놀려대며 짖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이 목청껏 뽑아내는 ‘멍멍’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한 50분을 걸어서 저수지 방죽에 올랐습니다. 저수지가 마을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아래서 방죽을 올려다보면 가파른 언덕 윗부분을 뚝 잘라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방죽의 가지런한 선 위로 겨울 하늘이 보입니다.

방죽 언덕을 오르는데 지윤이가 발이 시리다고 했습니다. 지윤이 털 부츠를 내가 신고 있어서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신었던 부츠를 한 짝 벗어주고 지윤이 벗어주는 운동화를 한 짝 신었습니다. 또 부츠 한 짝을 벗어주고 운동화로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렇게 신발을 바꿔 신으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여 감회가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지윤이 털 부츠는 내 발에 불편하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꼭 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이는 비슷해도 아이발과  어른발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지윤이가 불편하지 않냐고 몇 번 묻는 걸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바꿔 신을 때 지윤이 들고 있던 가방을 잠깐 들었는데 묵직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데 진작 엄마를 주기 그랬냐고 했더니 끝까지 들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윤이 기특하고  또 미안하고 안됐어서 가방을 내가 들었습니다. 속으로 딸이 평생을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길 빌었습니다.

방죽에 올라 바라본 저수지는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두세 군데 빙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빙어 낚시 하는 사람들 곁에 가서 눈인사도하고 빙어구경도 했을 텐데 해질녘이라 곧장 상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네에 앉아 빨리 해리포터를 읽고 싶어 하는 지윤이와 그네를 타고 싶은 지승이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설 때 보다 날이 추웠습니다. 춥거나 말거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마당을 떠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6시쯤 되었습니다. 오후 두 시간의 산책으로 하루가 뿌듯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우리 없는 사이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쌀국수입니다. 소정이네가 보내준 것입니다. 쌀국수 다 떨어지기 전에 놀러 와서 잔치국수 말아 먹자는 문자를 보내고 기쁘게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부지런함이 주는 개운함으로 작은 학교의 세 번째 날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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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두 번째 날


당연히 만날 줄 알았던 성희와 완이와 수현이 모두 학원을 다니느라 하리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지윤이와 지승이가 여간 실망하는 게 아닙니다. 심심하다는 아이들 투정을 듣다가 생각했습니다. ‘작은학교에 가장 중요한 학생 둘이 있는데 내가 게으르면 안 되지. 지윤 지승이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알찬 방학이 되게 해야겠다.’

하리하우스라는 환경에서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자연 속에서 지구력을 키우고 육체 노동을 통한 성취감 느끼기’로 정했습니다. 하루를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되, 오전엔 수학과 영어 관련 학습을 하고 점심식사 후의 시간엔 야외활동을 주로 하기로 했습니다. 정오를 지나야 공기도 데워지고 햇볕도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기 때문에 야외활동은 점심 후에가 좋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뒷밭에 있는 나무를 1층 난롯가로 옮기기입니다. 나무를 다 나를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천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윤이가 ‘카자니아’인지 어딘지를 가서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한 것이 기억나서 ‘돈 내고 돈 벌기 경험’ 말고 일하고 진짜로 돈벌 기회를 주겠다 한 것입니다. 가끔 은행 한 바구니 주우면 오백 원 하는 식으로 일감을 주긴 했었는데 이번처럼 천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가며 나무를 나르게 하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맘 놓고 난롯불 피워보기를 시키기 위한 작전입니다. 맘껏 난롯불을 피우려면 땔감을 많이 장만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년 전 호두나무 벤 것이 뒷밭에 있는데 늘 필요한 만큼만 갖다 쓰다보니 넉넉히 피울 수 없었습니다. 또 눈에 젖으면 연기가 많이 나서 1층이 온통 너구리 잡는 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아이들이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나무를 몽땅 옮겨놓고 겨울을 나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없고 해가 좋아 점심 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바퀴가 하나인 구루마를 이용해 나무를 날랐고 지윤이와 지승이는 나무토막을 들고 1층 문으로 가서 끈이 달린 장난감 자동차에 나무를 옮겨 담고 장작더미까지 가서 나무를 내려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호두나무를 벤 지 한참 지난 터라 좀 굵은 가지엔 못 먹는 버섯이 많이 피어있습니다. 지윤이는 그게 독버섯이라며 더럽다고 버섯이 핀 나무는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의 경험이란 노동을 통한 놀이일 때 더 흥겹고 의욕도 생기는 지라 재미있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나를 때 보다 속도도 빠르고 일맛도 났습니다.

호두나무를 옮기다보니 아이들 2학년 여름에 털두꺼비 하늘소 잡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른 봄에 베어둔 호두나무 덕분이었습니다. 더듬이가 길고 몸이 방패모양처럼 생겼는데 보는 순간 이상하게 하늘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소 하면 장수하늘소가 생각나고 보호종이란 말까지 같이 떠올랐습니다. 보호종일 만큼 희귀한 것을 잡았다면 대단한 일이긴 한데, 보호종이면  다시 돌려보내줘야 하는 의무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앞서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바로 놓아주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는 중에 그 진귀한 곤충이 또 눈에 띄는 겁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아이들도 한두 마리씩 잡았습니다. 넓적한 머위 잎 사이를 들추어 호두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 곤충을 찾아 살살 가서 탁 잡는 손맛이 좋았습니다. 찾으면 더 있을 듯하여 지승에게 물었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여러 마리가 있는 걸 보니 천연기념물은 아닌 것 같아 잡는 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지승아, 더 잡을까?”

그랬더니 지승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이거면 충분해요.”


내가 참 욕심쟁이구나 생각하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 할 줄 아는 아이. 욕심쟁이 엄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더 잡을까 물어보는 엄마에게 만족하는 자세를 가르쳐 준 아들의 ‘충분해요,’가 지금도 엄마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맴돕니다. 만족을 아는 지승이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나중에 곤충도감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잡았던 곤충이 하늘소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보호종인 장수하늘소는 아니고 털두꺼비하늘소였습니다. 주로 갓 베어낸 호두나무에 알을 낳는다는 설명을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어미하늘소는 어떻게 우리가 호두나무 벤 것을  알고 와서 알을 낳았을까요. 아마도 털두꺼비하늘소는 느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은 모르는 호두나무 수액의 향기를. 그 해 여름에만 머위 밭에 뒹구는 호두나무도막에서 털두꺼비하늘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엔 호두나무 등걸에서 자라는 버섯이 보였습니다. 짙은 밤색 줄기에 자주색에 가까운 색을 띤 갓을 쓴 버섯을. 그리고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껍질이 삭아 훌렁 벗겨지는 뼈가 하얀 호두나무 등걸을 나르고 있습니다. 바짝 말려 땔감으로 쓰려고.

호두나무 등걸이 타는 겨울 난로 앞에서 나는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충분조건을 생각하며 겸허한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점심 전에 시작한 나무 옮기기가 점심때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 끝에 먹는 간소한 반찬의 밥. 얼른 누룽지를 끓여서 집에서 먹을까 마당 평상에서 먹을까를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평상에서 먹겠다하여 둥근 쟁반에 누룽지 냄비와 반찬을 담아 내갔습니다. 아이들은 고추장에 박은 머위장아찌로 맛있게 먹었고 나는 삭혀서 된장에 무친 고추장아찌로 뚝딱 한그릇 먹었습니다.

그날 나른 넉넉한 땔감으로 밤마다 난로를 피우고 놀았습니다. 난로에 콩이며 땅콩을 구워가며 행복한 추억을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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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은학교 이야기 겨울방학 보고서


15박 16일의 이야기


2011. 1. 8 


좀 허전하고 쓸쓸한 하루였습니다.

아빠는 서울로 가시고 지윤, 지승과 셋이 남았습니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의 허전함이 컸습니다. 속담에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표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남은 사람들의 허전함을 표현한 말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허전함을 달래주려고 저녁엔 인스턴트 고기 만두국을 쏘았습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나온 만두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L-글루타민산나트륨의 그 자극적인 감칠맛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의 입맛이 언제가 되어야 화학조미료의 맛을 감칠맛이 아닌 느끼함이라고 깨닫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집에서 신나게 만두를 빚게 되겠지요. 얼큰하고 개운한 김치 만두를.

오후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으니 집 안에서 아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책읽기입니다. 눈가리고 잡기나 공기내기 같은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책을 읽습니다. 지윤인 <로테와 루이제>을 읽고 지승인 우리 몸의 기능에 대한 과학책을 읽었습니다. 지승이가 읽은 내용에 인체면역력에 대한 설명이 나왔습니다. 마이크로 파지와 T세포, 항체 등의 용어에 대해 나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어야 면역력을 높이는 세포들이 힘이 세지고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침 나의 만성중이염이 심하게 도져서 고생하던 참이라 몇 가지 약재를 넣고 끓여  마시고 있었는데, 그 맛을 보여주고 거기에 들어간 식물들이 면역력을 높이고 항체 형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약차 재료는 관동화, 대추, 진피, 삼백초입니다. 처음엔 압력밥솥에 넣고 끓였고 그것을 전기밥솥에 넣고 보온상태에서 우려내었습니다. 중이염이 단번에 가라앉으리라는 기대는 아니라도 도움은 되겠지 하는 맘으로 먹었습니다.

관동화는 머위꽃이 피기 전 꽃대를 캐서 말린 것입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귀한 약재라하여 아이들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안 먹어서 결국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관동화 달인 물은 보리차처럼 갈색이 나는데, 맛은 쓴맛과 아린 듯 한 느낌이 동시에 나서 아이들은 안 먹습니다. 집에 프로폴리스를 비상약으로 두고 있어서 굳이 먹기 힘들어하는 관동화 달인 물을 안 먹여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 봄에도 또 캐서 말리려 합니다. 관동화 말린 것을 두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올해는 신이도 만들어 보려합니다. 하리 마당에 백목련이 한그루 있는데, 꽃이 피기 전의 복슬복슬한 꽃봉오리를 말리면 그것을 신이라 하여 그 또한 비염과 면역력 강화에 좋은 약재가 된다합니다. 관동화나 신이 둘 다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동화든 신이든 아픈 이의 몸속에서 꽃보다 귀하게 피어나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않겠나 하는 맘으로 꽃대를 꺾는 미안함을 달랩니다.

지루해진 지윤이가 공기를 해 달래서 한 판 붙었습니다. 말하자면 공기대련입니다. 그런데 지윤이 공기가 말썽을 부립니다. 그러니까 그 공기알을 잡고 지윤이가 ‘너 서울 가서 혼난다.’ 하고 말합니다. 왜 서울 가서 혼나냐고 했더니 말 안 듣는 공기를 혼내주는 장소가 서울에 있다는 겁니다. 가만 생각하니 서울 안방에 있는 삼단 서랍장 꼭대기가 말 안 듣는 공기알을 혼내주는 장소인 겁니다. 서랍장 꼭대기에 말 안 듣는 공기알을 올려놓고 손으로 밀어서 떨어뜨리는 게 공기를 벌주는 방법입니다. 공기알이야 허구한 날 허공으로 올라갔다 땅바닥으로 내려갔다 하는 게 일인데 그깟 삼단 서랍장 꼭대기에서 밀려 떨어지는 게 뭐 그리 큰 벌일까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응징’이란 단어가 떠올라 놀랐습니다.  어쨌거나 ‘한 번 더 봐준다’는 관용의 말보다 ‘혼난다’는 응징의 말을 더 많이 한 엄마의 불찰이거니 생각했습니다. 앞으론 ‘한번 더 봐준다. 더 잘 해’ 라는 말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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