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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농원에서 지윤이와 지승이 소마구간 가는 길...


방정환과 어린이 날
     -3월에 준 어린이날 선물

내 기억에 - 나는 70년대에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날이 좋았던 것은 시내버스가 무료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도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노래를 불렀고 어린이 날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아마 어린이 날 선물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아웅다웅 -이러면 맨날 싸우기만 하는 남매들 같지만 싫은 옹기종기 노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모여살던 상황이라 선물 같은 것을 주고 받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습니다. 아마 그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린이 날 선물이란 생소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구네 집 누구는 선물을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았다는 것 때문에 기가 죽거나 슬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기가 죽은 기억이 없는 걸로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어린이날 선물에 아이들을 휘둘리게 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기념일이든 명목을 만들어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팽배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면 지나치다는 말도 되겠지요. 오죽하면 스승의 날 선물이 말썽이 되어 휴교하는 학교가 생겼겠습니까. 선물이 아니라 뇌물 때문이겠지만요.

우리 집 행사의 선물은 꽃입니다. 아이들 그림책 <엄마의 생일 선물-교원>을 읽으며 앞으로 우리 집 선물을 꽃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께 선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 손을 잡고 꽃가게로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그리며 꽃을 고르는 기쁨을 아이들이 체화하게 하려고요.  어른들 생일날이면 아이들은 꽃집에 가서 꽃을 한 송이씩 사서 들고 오는 일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꽃으로 한정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크면서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무조건 막을 수가 없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면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사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날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만든 분위기가 아이들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어린이날을 선물 받는 날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성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1년 365일 내내 어린이 날이예요.’하는 나의 주장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올 3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트 안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아이들이 장난감 진열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그렇게 장난감에 집착하거나 떼를 쓴 적이 없는 아들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겁니다. 가면과 레이저 총이 함께 들어있는 장난감을 잡고 놓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총과 같은 장난감은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절대로 사람에게는 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모양이 총이라기 보단 손잡이가 열십자 모양으로 된 길쭉한 막대기라는 느낌이 총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누그러지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한다는 말에 나의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할 수도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지요. 그런데 하나 걸림돌이 ‘너희가 원한다고 다 사줄 수 없다’는 평소의 원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린이날 선물로 사 준다고 해라.’였습니다. 어린이 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고 알게 하려는 교육적 견지에서 불 때 그리 바람직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꺾으면 의욕상실이 오거나 성격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아이가 뭔가를 사 달라고 그렇게 떼를 쓰는 일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뭔가 적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법을 가르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을 가르치자’ 라는 생각에 가면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우선, 가면을 언제 사느냐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기다렸다가 어린이날 살 것인지 아니면 오늘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지요. 아이들이 당연히 오늘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날이 와도 선물을 사 달라고 조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마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그만 종이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린이날 선물로 가면을 사고 어린이날엔 아무것도 사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

그리고 그 밑에다 자필 서명을 하게 했습니다. 삐뚤삐뚤 쓰면서 이런 게 계약이구나 알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공표하였습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어린이날 선물은 없습니다.‘ 라고.

어린이날 선물로 진짜 바이올린을 갖고 싶다던 딸마저 -갖고 놀며 친숙해 지라고 중고 바이올린을 하나 구해주려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가면을 사고 말았지만 어쨌든 가면을 갖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맘도 좋긴 하더군요. 한동안 집에서 유치원 버스 타러 가는 길까지 쓰고 가기도 할 정도로 좋아하더니 정작 어린이날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자필 서명이 들어있는 종이 쪽지는 어린이날이 한참 지난 후까지 안방 거울에 딱 붙여놓았었지요.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문방구 진열대에 꼭 한번씩 들러서 눈요기 하는 아이들이 묻는 거예요.

“엄마, 우리 생일날은 얼만큼 남았어요?”
어떨 땐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엄마, 어린이날 얼만큼 남았어요?”
그래서 어린이날은 이미 지났다고 했더니
“아니, 이번 말고 그 다음 어린이날!”

하는 겁니다. 얼마나 크면 어린이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는 걸 납득 시킬 수 있을까요. 그때 쓰려고 <한국사 편지 5 - 웅진주니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어린이날의 참 의미에 대해 엄마와 함께 이야기 할 날을 준비하며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에게 주는 글을 적어 봅니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 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을 바로 가지기로 합시다.

아이가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위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의 속뜻은 무엇일까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활동이지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른들에게 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어린이 날의 약속

오늘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여기지도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아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항상 칭찬하며 기르십시오.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잣대로 위의 두 글을 새기면 좋겠다.

참, 어린이 날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적은 종이를 넣은 지갑을 분실했었는데, 다행히 어떤 할아버지께서  파출소에 맡기셔서 찾게 되었다. 파출소에 계시던 경찰 아저씨가 좀 황당해하며 그 쪽지에 대해 묻기에  사연을 이야기 해 드렸다. 지독한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서약서 덕에 이번 어린이날은 조용히 넘어갔다.

참, 어린이날 하리하우스를 방문했었는데 오가는 길에 아빠가 차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태워주셨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좋아했다. 딸아이 하는 말, ‘아빠가 준 선물이 제일 좋아요.’하는 거다. 뭔지 궁금하신 분은 따로 문의하시길. 왜냐하면 내공이 쌓인 사람만 줄 수 있는 선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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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드랜과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들



내가 처음으로 삼중당문고를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 심 훈 의 상록수를 읽으면서였다. 국어 선생님께서 --승명자 선생님! 어디 계세요? 인도로 교회 개척사업 가셨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그 후론 알 수가 없습니다. 제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사랑의 씨를 뿌려주신 분이랍니다. 혹시 소식을 알고 계신분은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을 만나면 그저 따뜻하게 꼭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가나 초콜릿을 유난히 좋아 하셨던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 독후감 숙제로 내 주셔서 읽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때 느꼈던 책읽는 기쁨이 가슴을 파고 든다. 상록수 이후 이광수의 책을 읽었다. 유정, 무정, 흙, 사랑. 이후 난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햄버거보다 책방에 꽂혀있는 삼중당문고를 더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한 삼중당문고에 대한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한 때 내 희망은 삼중당문고 전권을 내 책장에 꽂아놓는 거였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지 못했다. 삼중당 문고에 대한 꿈을 다 이루기 전에 다른 잡다한 책들에로 관심이 옳아갔기 때문이다.


지윤이 지승이 책 때문에 꽂을 자리가 없어져서 어른들 책은 박스에 싸 놓았는데, 이제 하리하우스가 완성되면 어떻게든 책꽂이를 마련해서 나의 삼중당문고도 꽂아놓고 싶다. 같은 시대의 추억을 지닌 벗이 오면 한 권 뽑아 주리라. 금수산 산자락 밑에서 읽으라고.


아마도 전집을 좋아하는 것이 내 성향인가 보다. 얼마 전에 시공주니어 베스트문고 50을 구했다. 그래서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물론 내가 먼저 읽어야 이야기가 통하므로 난 더 열심히 읽고 있다. 오늘로서 30권을 읽었다. 빨리 나머지 20권도 읽고 싶은 욕심에 -너무 재미있어서- 그 전에 읽던 반지의 제왕도 5권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나를 부르고 있지만 잠시 기다리라 하는 수밖에.



1.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오늘은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를 읽었다.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뒤죽박죽 별장에 살고 있는 삐삐의 원작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라스무스와 폰투스> 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유머감각에 반했는데, 역시 거칠 것 없는 삐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유머가 책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밥도 안 해도 되고, 빨래도 안 해도 되고, 청소도 안 해도 되고 애들도 안 챙겨도 되는 날이 한 일주일만 된다면 -그런 날이 주부들에게 주어지는 휴가일 텐데, 아무래도 너무 욕심이 크지?  - 나머지 20권을 후딱 읽어 치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이들 돌보고 틈틈이 읽는 재미가 더 감칠맛 나고 좋기도 하다. 이제 애들이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다. 마중 나가야지.


생각난 김에 마저 읽지 못한 삼중당문고 시리즈를 헌책방 세원북에서 찾아봐야겠다. 지금은 그 시절 삼중당 문고는 교보에도 없으므로...





2. <하늘을 나는 교실> <내가 어렸을 적에> -에리히 케스트너


얼마 전 한 일간신문에서 클래식 음악 평론가에게 인터뷰를 한 내용을 읽었다.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신 분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표제만 읽고 나는 ‘아 이분의 어머니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신 분이신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어머니께서 직접 음악을 연주해 주신 것이 아니고 세 번에 걸쳐 클래식 대전집을 사 주셨던 기억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집은 누나들이 결혼을 하면서 갖고 갔고 그래서 다시 세 번째로 클래식 대전집을 사서 자신에게 주셨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베푸셨던 건 클래식 대전집이 아니고 음악에 대한 영감이라고 했다. 물질을 받으며 정신을 읽을 주 아는 아들이었기에 같은 전집을 서 번씩 사 주셨던 어머니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한 인간의 내면이 성장하는 데 어머니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 중의 하나가 <하늘을 나는 교실>이다. 에리히 케스트너라는 독일 작가의 작품인데 학교사회 안에서 빚어지는 청소년들의 우정, 선생님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과 제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 그리고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갈등과 그 갈등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역시 세계적 작가의 작품답다는 감동과 함께 어른들도 못 읽어 본 사람이 있으면 꼭 읽어 보시라고 하고 싶다. 내 마음이 촉촉하게 젖음과 동시에 아들딸이 이렇게 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방학에 집으로 갈 차비를 보내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마르틴의 엄마가 마르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훌쩍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마르틴처럼 아들의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가슴 아팠던 것 같다.


글 속에는 작가의 경험이 여기 저기 녹아있게 마련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던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였기에 마르틴의 마음과 마르틴 엄마의 마음을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으리라.


사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머리말 하나-는 약간 엉뚱하게 시작된다. 동화 작가인 내게 어머니께서 ‘올해에도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못 쓰면 선물을 안 줄 테다.’  하고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나는  8월에도 눈이 보이는 츄크슈피체 산기슭으로 글을 쓰러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머리말 하나-의 내용이다. 참 이해가 안 되었다. 다 큰 아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동화 한 편을 못 쓰면 선물을 주지 않겠다고 선전포고 하는 어머니는 뭐며, 어머니의 선전포고가 무서워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중 인물은 도데체 뭘 의미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말하는 마마보이에 대한 언급일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하늘을 나는 교실>을 덮었는데, 아무튼 어머니 등쌀에 못 이겨 쓴 작품이 너무 아름답다는 거다. 결국 어머니 등쌀이 아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의 몫을 단단히 해 낸 것이다.


항상 머리말을 재미있게 쓰는 에리히 케스트너가 그의 가장 빼어난 작품의 머리말에 등장시킨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었음을 <내가 어렸을 적에>를 읽고 알았다. 에리히 케스트너에게 있어서 어머니란 존재는 바로 문학적 영감의 보고였던 것이다. 케스트너가 작가로서 가지는 상상력과 감수성, 직관력과 판단의 근거는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얻게 된 선물이었다. 그런 선물을 받은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의 책 <에밀과 탐정들> <에밀과 세 쌍둥이>에서도 보여준다. 아들의 글 속에서 아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 어머니의 모습.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에>를 읽은 후엔 아이들에게 인생을 아름답게 해 줄 영감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워간다. 말투와 자잘한  습관, 먹는 것에 대한 기호까지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때론 생존의 차원이 아닌 영혼의 경지에 대한 모범을 어머니를 통해 보기도 한다. 

도덕적 신념이나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어머니를 품고 사는 자식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운 자식으로서 살아가기를 나는 원한다. 나는 내 어머니를 진정 사랑하고 존경하므로.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쯤 어머니께서 환갑기념으로 동남아를 다녀오신 적이 있다. 그 때 방문한 나라 중 싱가포르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표현 하셨다.


“ 그 나라는 담배꽁초 버려도 벌금이 많데. 얼마나 깨끗하게 잘 해놨는지 몰라. 그 나라를 보니 ‘아하, 솔고개도 잘 가꿔서 사람들이 오도록 만들어야겠다.’ 이런 맘이 들데.”


 그 후로 어머님은 해외여행이라는 걸 한 번도 더 다녀오신 적이 없다. 대신 솔고개 자투리 땅엔 두릅을 심고 산에서 취나물을 한 포기 한 포기 캐다 심어 취나물 밭을 만드셨다. 사람 오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찾아 손이 오시면 어머닌 두릅을 따 주시고 취나물을 데쳐 나물을 무쳐 주신다. 그리고 그 두릅과 취나물을 팔아 어린이 날 선물로 손주들을 위해 절편을 뽑아다 주신다. 그런 어머니의 손길 자체가 나에겐 영감의 보고이다.


나 또한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간 것 말고는 그 흔한 동남아 한 번을 못 가봤다. 그래도 해외 여행 하는 걸 낙으로 삼는 사람과 비교하여 나의 삶이 짜증스럽지 않은 것은 내 어머니의 신념을 내가 존경하기 때문이다. 내 고장을 아름답게 가꿔서 사람들이 오게 만들어야지 하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마음속엔 가 보시지 못한 미지의 세상마저도 품을 수 있는 기개가 있음을 자랑스러워 하는 딸이기에 나는 해외여행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교육적 공간 하나를 잘 가꿔 사람들이 오게 만들어야지 하는 희망 하나를 품게 되었고 이제 그 희망을 ‘작은 학교 이야기’를 통해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희망을 심어 주신 나의 어머니께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 아이들에게 희망을 품게 해 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라고...


어머니를 도와 두릅을 따 본 적이 있다. 그 때 ‘언젠가 두릅에 대한 시를 써야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떠오른 시 행 하나를 두릅을 먹을 때 마다 생각한다.


-봄 하늘을 똑똑 분질러 따듯

두릅을 딴다. -


봄에 두릅나무는 길쭉한 가시 막대기처럼 일자로 서있고 두릅 순은 그 꼭대기에서 피어난다. 키 크고 메마른 줄기 끝에 피어나는 두릅 새순을 딸 땐 까치발을 하고  서야 할 때도 있는데, 아래서 올려다 본 두릅의 배경은 푸른 하늘이었다. 서정주의 시처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기에 좋은 눈부신 봄 하늘. 두릅 몇 송이 따며 바라본 솔고개 봄 하늘에 대한 추억이 가슴 저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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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단성면 하방리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바라본 적성면 남한강과 하진리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는 200M트랙의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있다. 면소재지에 있는 전용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고, 주차장과 화장실, 스탠드가 있다. 요즘 면 단위 마다 다양한 레크레이션 시설과 운동시설들이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노인들을 위한 실내 게이트볼장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단성면 하방리에 있는 인라인스케이트 장을 애용하면 건강고 지키고 공기좋은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며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 2009년 완공예정인 적성대교가 개통되면 적성면에서 접근이 쉬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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