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치는 신혼 초에

                 --- 자기가 해 준 김치가 제일 맛있어.


김치 얘기를 하려고 하니 잠시 망설여진다. 왠지 김치만큼은 함부로 나설 수 없게 하는 위엄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겁 없이 시도를 하고자 한다. 김치는 어려운 만큼 주부로서의 권위를 갖게 해주는 반찬이기도 하거든. ( 하긴 무슨 표 김치가 맛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도 요즘엔 살림 노하우다만 )

<논어>에서 서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했지. 서른을 넘기고 나도 독립을 하게 됐지. 김치 독립! (  세월의 격차를 이렇게 느끼는 구나. 이제는 김장 김치 백포기를 겁 없이 시작하는 베테랑이 됐단다. )

너도 알다시피 나의 오랜 자취경험은 내 또래의 다른 주부보다 음식에 관한 자신감을 갖게 했어. 그래서 신혼시절에도 반찬을 할 줄 몰라 쩔쩔 매는 일은 없었어. 저녁 시장을 보러 가기 전에 친정 엄마한테 전화 해서 뭘 사야할지 물어보고, 재료를 사와서는 또 친정 엄마한테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 지 물어보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어. 어떨 땐 이런 생각도 했어.

‘나도 친정 엄마한테 전화해서 콩나물국은 어떻게 끓여요, 간장을 넣어요, 아니면 소금을 넣어요, 고춧가루는 언제 넣어요? 그런 거 좀 물어볼까. 막상 해먹으려고 하니 하나도 모르겠다며 응석을 부리면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시겠지만 아직 엄마 손길을 기다리는 품안에 있는 자식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아하실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난 그런 응석을 부리지 않았단다. 왜냐면 저녁 메뉴에서부터 조리방법까지 친정 엄마가 아니면 못한다면 그건 응석이 아닌 무능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렇다고 내가 살림을 시작하는 여성을 뭐든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요리책을 들여다 보며 (인터넷이 더 다양하겠지.) 정해진 순서대로 양념을 넣고 긴장하며 맛을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 노력하는 것이 곧 능력이라고 생각해.

친구 집들이에 갔었는데, 맞벌이하느라고 바쁠 텐데도  음식을 직접 준비했더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즘 반찬 만들 때 꼭 실험하는 기분이야. 재미있어.”

하는 거야. 화학 실험하듯 마늘 넣고 조미료 넣고 고춧가루 넣는다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했어. 그리고 스스로 해 보려는 친구의 손끝이 느껴져서

“야, 너 집들이 한다기에 자장면에 탕수육 시켜놓고 먹자 그럴 줄 알았는데 너 언제 이런 것 배웠냐? 대단한데! ”

라며 새색시 기분 좀 띄워줬지. 그랬더니 색시보다 신랑 입이 더 벌어지는 것 있지?

친구야,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고하는 바는 뭐든 스스로 해 봐야 실력이 는다는 거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주부의 모습이 되려면 부딪혀 보는 게 최고라고. 겁 없이 말이야. ( 누군가 내게 된장 담는 법을 묻는 다면 메주 사고 소금 사서 소금물 만들어서- 비중계 없이 하는 법은 소금물에 날계란을 띄워서 물 위로 100원과 500원짜리 동전크기만큼 떠오르게 하면 돼 - 메주 풍덩 담그면 되지. 60일 후에 메주 건져 손으로 뭉개 항아리에 넣으면 그게 된장이고 나머지 국물을 한번 달여 놓으면 그게 간장이야. 지역에 따라선 간장을 달이지 않고 숯에 걸러서 쓰기도 한데. 까짓 짜면 물 섞고 싱거우면 푹 달이면 되지. 망치면 교육비 들여 배웠다 치면 되고 말이야.  고추장 그건 더 쉬워. 고춧가루 사고 메줏가루 사고 엿기름 사서 엿기름물 만들어! 끓인 물에 메줏가루 고춧가루 넣고  소금 넣어가며 짭짤하게 간 해서 항아리에 넣으면 끝이야. 여기에 보리고추장인지 찹쌀고추장이니 매실 고추장이니 하는 것들은 중간에 넣는 첨가제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하는 것만도 장한데, 조금 맛 없으면 어때?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해서 뭐든 겁내지 않고 한다.  맛으로 타박하면 큰소리 쳐. 간장 고추장 된장 다 사먹는 세상에 이만큼 할 줄 아는 게 어디냐고. 그게 베테랑이 되는 비결이지. 너무 뻔뻔하다고? 아니야. 육아에 교육에 가사에 경제적 책임까지 분담해야 하는 21세기 여성들은 이만한 큰소리는 칠 수 있다고 생각해. )

어렵다는 뭔가 ‘위엄’ 있어 보이는 김치를 제일 먼저 해보자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신혼 그 정신없는 시기에 겁 없이 김치를 담구어 보자고. 그러면 너는 곧 김치에서 자유로운 주부가 될 테니까.

김치를 신혼 초에 담궈야 하는 이유가 또 있지. 먹는 남편도 겁 없이 먹고 이런 감탄사를 할 거거든.

“자기가 해준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자 이제 나랑 김치 여행을 떠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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