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체험학습'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3/11 열이틀 째 이야기 -지혜와 지식 (1)
  2. 2011/02/11 닷새 째 이야기
  3. 2011/02/10 겨울 방학 셋째 날
 

지혜로운 사람

이것이 우리 집 가훈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인격의 체 없이 드러나는 것이고 지혜는 지식이 인격의 거름망을 통과하여 나오는 정화입니다. 지혜는 고품격 지식입니다.

우리 아들이 참 지혜롭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들이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어리니 인격이 완성됐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마도 가능성 때문일 겁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이끌 씨앗을 아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오랜만에 약수터를 갔습니다. 보통 물을 떠오는 것은 아이들 몫인데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는 때고 눈이 아직 많이 쌓인 길이라 같이 나섰습니다.

눈길을 걸어 약수터에 도착해서 준비해 간 코코아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아  내려가려는데 지승이는 물이 나오는 관 앞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엄마 먼저 간다고 소리쳐도, 너 혼자 있으라고 을러도 쭈그리고 앉아 뭘 열심히 합니다. 가서 보니 코코아 마셨던 컵에 물을 담아 약수터에 길게 자란 고드름을 녹이고 있는 겁니다. 같은 물인데 관에서 졸졸 나오는 물은 얼지 않았는데 주위는 온통 얼음입니다. 그게 신기했나 봅니다. 물을 받아 끼얹으면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손이 시릴 텐데 연신 물을 떠서 얼음 위에 뿌리고 있습니다. 얼음은 0도 이하고 물은 0도 이상일 터이니 가능한 발상이긴 합니다. 하지만 얼음 위에 덧뿌려지는 물이 얼음 위에 다시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 물로 얼음을 녹일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혼자 남겨 놓고 한 참을 내려와 기다린 후에야 아들은 따라 내려왔습니다. 어쨌든 궁금한 건 한 번 해 보는 실천력. 그런 실천력이 있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하리는 시골인지라 서울보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 안되는 편입니다. 재활용 할 수 있는 물건들도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다른 집 밭에 있던 비료포대 같은 것들이 날려 와 굴러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울에 있는 쓰레기를 한 번 치워야지 하면서 엄두가 나질 않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수터에 갔다 온 아들이 자신이 쓰레기를 줍겠답니다. 그래서 큰 봉투를 하나 주고 주우라고 했습니다. 숯불구이 할 때 숯을 뒤집는 용도로 쓰던 집게도 하나 들려 주었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때 휴지를 줍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배운 뒤 길에 있는 깡통을 주워 온 일이 있습니다. 재활용 하면 된다면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이 얼마나 더러울까를 생각하면 칭찬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맨손으로 더러운 쓰레기를 주우면 손이 얼마나 더러워지겠냐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몇 번 그러고 나서 더 이상 아이들은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진 않습니다. 대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길에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철저히 심어주고 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쓰레기 봉투를 어쨌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분리 하려고 쓰레기는 박스에 부어놓고 봉투는 박스 옆에 두었답니다 나는 그냥 봉투 째 폐기물 표를 사서 붙여 버리려고 했는데 아들은 주운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하려 한 것입니다. ‘아이 디러워라!’ 속으로 하면서 아들에겐 잘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는 것을 올곧게 실천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지혜라 하니 우리 아들은 분명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리에서의 열이틀 째는 쓰레기 주우며 지혜를 다시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11/03/30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아들이 어렸을때부터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왔지만 그 의미를 명쾌하게 답변을 해준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혜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부모의 한순간 말과 행동은 자식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승이가 지금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지승이,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꼭 엄마를 찾아 가야지 하고 별러서 하리 농협 앞에서 12시 33분 버스를 탔습니다.

올거라 믿고  기다리시는 데 못 가면 안 될 것 같아 꼭 간다는 약속은 안 드리고 갈 수도 있다는 운만 띠워놓았습니다. 친정 엄마를 방문하는 건 늘 이렇습니다. '갈 수도 있어요' 오늘 꼭 간다고 하면 외할아버지께서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실 것이기 때문에 걸어서 가려는 계획도 어긋날 수 있어서 그냥 상황 봐서 가겠다고 말씀드려놓은 것입니다. 일부러 고생 좀 해보라고 돈 내고 해병대 교육도 보내는 데 시골길 한 시간 남짓 걷는 거야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걸어갈 계획을 하는 것인데 외할머니는 추운데 아이들 고생한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버스 차비를 내려고 잔돈을 준비하느라 농협에서 팥영양갱을 하나 샀습니다. 곧은터 쯤에서 기운 떨어질 때 먹으면 될 것입니다.

버스로 12분쯤 걸려 기동 정류소에 내렸습니다. 이년 전 여름 거기서부터 솔고개까지 걸어가는데 놀며 놀며 컵라면 끓여 먹으며 갈 때는  두 시간 정도 걸렸었습니다. 오늘은 추워서 걸음이 빠를 것이니 그것 보단 빨리 갈 수 있을 겁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이동형 구르마에 짐을 매었습니다. 그리고 구르마를  지승이가 끌었습니다. 밀고 끌고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뒤쳐져 오면서도 힘들다는 애길 안합니다. 처음엔  엄마가 끌고 간다고 달라고 하여도 싫다고 하더니 한 25분 쯤 가서는 엄마에게 달랬더니 짐을 넘겨줍니다. 힘들었나보구나 생각하고 짐을 끌고 가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지승이가 힘들었겠구나 했습니다.
한 10분 걷다가 지윤이에게 짐을 넘겼습니다. 무거운 건 나눠들 줄 알아야 해서 지윤이에겐 곧은터 서낭당까지 의무적으로 끌고 가야한다고 책임을 주었습니다. 곧은터까지 가면 영양갱을 먹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날이 좋을 땐 서낭당 당산나무 그늘아래서 컵라면을 먹기도 하지만 지금은 영양갱 하나만 나눠먹으며 곧장 외갓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컵라면을 먹는 게 낭만이라 하지만 안먹을 수록 좋기 때문에 일부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외갓집에 가서 눈썰매를 탈 생각에 빨리 가고 싶어했습니다.
곧은터에서 한 20분 걸어 앞저넘 언덕에  오르면 솔고개 마을이 한눈에 보입니다. 학강산 아래 외갓집이 따뜻하게 서있습니다. 거기서부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솔고개는 다 외갓집 같기 때문입니다. 두시가 거의 다 되어 외갓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바로 눈썰매를 타러 나갔습니다. 지난번에 눈썰매 타고 바지가 젖어서 내복바람으로 집에 갔던 걸 생각해서 스키바지에 여벌옷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 번 탔던 밭이 아니고 다른 밭에서 탔는데, 준비가 완벽한 만큼 오래 타라고 했는데 얼마 안타고 들어와 버립니다. 알고 보니 눈 속에 뭐 엉덩이를 찌를 만한 것들이 있는데다 지난번엔 아빠가 같이 있어줬는데 이번엔 저희끼리 타니 재미가 덜 했나 봅니다.

자고 가라는 걸 가야 한다고 했더니 갈 거면 날 밝을 때 가라고 재촉을 하십니다. 생수통에 물을 받아서 외삼촌 차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엔 기동에서 하리까지 과방재를 넘어 걸어볼 참입니다. 과방재라고도 하고 과거재라고도 하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를 골라 넘어보려 합니다. 차로 몇 분이면 될 거리를 몇 시간을  들여 걸어보는 경험이 아이들 삶에 어떤 의미로 살아날지 모르지만, 더 크면 국토횡단 같은 계획을 세울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산책을 나서기엔 좀 늦은 시간이긴 했습니다. 겨울 오후 4시는 곧 해가 질 거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하루를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리하우스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게 하려면 내가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얼른 나서야 한다고 채근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옛길을 통해 저수지에 올랐다가 상리 바람개비 마을 마당에 가서 그네를 타고 놀다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네를 타면서 정면으로 일몰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날 해가 지는 걸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지윤이는 자신이 한국화 시간에 그림을 그린 헝겊가방을 챙겨들고 나섭니다. 전날부터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를 그네에 앉아서 계속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먼 길에 무겁고 또 겨울이라 그네 타며 책을 보는 게  추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할 수 없이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들고 간다는 약속을 받고서 허락했습니다. 결국 한권도 아니고 네 권이나 되는 책을 넣고 출발합니다.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후 집과 집을 연결했을 것이고 그 길이 단단해져서 마을길이 되었을 겁니다.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마을길도 집과 집을 징검다리삼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옛길을 이용해 상리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아닌 들러 가는 길입니다. 대문과 대문을 이어주는 길.

그러나 거의 모든 집에 자가용이 있는 요즘에는 걸어 볼 기회가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리와 하리를 잇는 자동찻길이 옛길보다 높아서 하리를 갈 땐 항상 옛길을  내려다보며 다녔습니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 마을길을 걸어서 저수지까지가 보리라 마음먹곤 했습니다. 드디어 오는 그 계획을 실천해 보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하리 옛길을 통해 저수지를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한이가 왔을 때 옛길을 따라 저수지까지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제법 되었지만 길 양 옆으로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을 보면 그 위에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드러나 마음 뿐 나는 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걷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승이가 뒤쳐져있다 묻습니다. 인터넷 검색 할 때 ‘색’ 자가 ‘섹“인지 ’색‘인지를. ’아이 색‘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혼자 뒤쳐져오며 내내 눈에 뭐라고 적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하리하우스 검색‘이라고 쓰고 하리하우스 가는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는 겁니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한참 뒤쳐진 아들을 보고 빨리 오라고 채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쓰고 옵니다. 그런 지승이를 바라봅니다. 지승이는 눈 위에 글자를 쓰고 있지만, 내 눈에는 가슴에 하리하우스를 새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행복한 추억하나 새기면 살면서 부닥칠 시련을 이겨 낼 힘도 그만큼 많이 축적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아들을 기다리다 걷다 하였습니다.

시골집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집집마다 있는 ‘개’였습니다. 어떤 집이든 우리가 가까이 간다 싶어지면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줄에 매여 있어 그 길이가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개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개’ 였기 때문입니다. 때론 아이들이 개보다 더 요란하게 개를 놀려대며 짖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이 목청껏 뽑아내는 ‘멍멍’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한 50분을 걸어서 저수지 방죽에 올랐습니다. 저수지가 마을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아래서 방죽을 올려다보면 가파른 언덕 윗부분을 뚝 잘라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방죽의 가지런한 선 위로 겨울 하늘이 보입니다.

방죽 언덕을 오르는데 지윤이가 발이 시리다고 했습니다. 지윤이 털 부츠를 내가 신고 있어서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신었던 부츠를 한 짝 벗어주고 지윤이 벗어주는 운동화를 한 짝 신었습니다. 또 부츠 한 짝을 벗어주고 운동화로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렇게 신발을 바꿔 신으면서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여 감회가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지윤이 털 부츠는 내 발에 불편하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꼭 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이는 비슷해도 아이발과  어른발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지윤이가 불편하지 않냐고 몇 번 묻는 걸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바꿔 신을 때 지윤이 들고 있던 가방을 잠깐 들었는데 묵직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데 진작 엄마를 주기 그랬냐고 했더니 끝까지 들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윤이 기특하고  또 미안하고 안됐어서 가방을 내가 들었습니다. 속으로 딸이 평생을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길 빌었습니다.

방죽에 올라 바라본 저수지는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두세 군데 빙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빙어 낚시 하는 사람들 곁에 가서 눈인사도하고 빙어구경도 했을 텐데 해질녘이라 곧장 상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네에 앉아 빨리 해리포터를 읽고 싶어 하는 지윤이와 그네를 타고 싶은 지승이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집을 나설 때 보다 날이 추웠습니다. 춥거나 말거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마당을 떠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6시쯤 되었습니다. 오후 두 시간의 산책으로 하루가 뿌듯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우리 없는 사이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쌀국수입니다. 소정이네가 보내준 것입니다. 쌀국수 다 떨어지기 전에 놀러 와서 잔치국수 말아 먹자는 문자를 보내고 기쁘게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부지런함이 주는 개운함으로 작은 학교의 세 번째 날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