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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5 집중과 집착, 그러나 유연한 뇌의 힘 (3)

확실히 우리 아들은 지식의 조합을 잘 합니다. 그리고 관찰력이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느립니다.

한 가지를 갖고 여러 곳에 대입해보고 변환시켜보고 매일 보는 물건이라도 조금 차이가 나게 해 놓으면 금방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늦습니다.

그리고 집중력도 좋습니다. 그 비슷한 집착력 또한 좋습니다. 특히 갖고 싶은 장난감에 대한 집착력이 대단합니다. 집에 비슷한 것이 있으면 안사는 거라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한 번 사고 싶으면 못 견뎌 합니다. 핸드폰 사진 인화하러 대형마트 갔다가 거기서 레고 로봇을 하나 봤는데 사달라고 얼마나 애원을 하는지 모릅니다. 조르는 게 얄미운 게 아니라 애처로워 보이게 조르는 게 또 하나의 기술입니다. 사고 싶은 욕구를 너무 억제해도 역효과가 있을 것 같아 가끔은 구실을 대어 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번엔 생일을 구실로 들어줄까 생각중입니다.

그랬더니 딸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사겠다는 겁니다. 뭐냐고 물으니 콩순이 인형이나 바비 인형을 갖고 싶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큰고모가 사주신 콩순이 인형도 있고 언니들한테서 물려 받은 바비 인형도 많이 있지 않냐고 했더니 그건 자기가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딱 원하는 것하고는 다르답니다. 결국 딸은 인형을 갖고 싶은 것보다 인형을 사보고 싶은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그 나이에도 선물을 고르라면 인형코너를 맴도는 걸 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로 한 번은 사 주고 넘어가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원하는 인형을 진열대에서 탁 꺼내 갖고 계산대로 가는 유아기의 통과의례를 못 거치면 그것이 딸의 인생에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들 생일 선물은 로봇과 바비 인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에궁, 그돈이면 ... ...

아들이 학교에서 기온에 대한 걸 배웁니다. 섭씨 21도를 21도C라고 읽는다고 했더니 갑자기 이러는 겁니다.

“엄마, 21도C는 21도도나 마찬가지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왜냐하면요 피아노에서 C는 도 거든요. 그러니까 21도C는 21도도예요.”

빨리 과학 풀고 다른 과목도 풀어야 하는데, 과학 하다가 피아노 건반까지 떠올리고 있으니 ‘빨리빨리’가 안 되는 겁니다. 대신 과학과 음악을 넘나드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판단과는 참 다른 면을 학교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이 그것입니다. 같은 학급 학부모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일인데,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맹랑하고 귀엽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해서 웃음만 나옵니다.

사건인 즉, 지승이가 여자 짝꿍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같은 반 친구 ***에게 너를 좋아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달라고. 그래서 짝이 편지를 써서 ***에게 주는 과정에서 시끌벅적 한 소동이 좀 일어나서 지승과 짝꿍 둘 다 벌을 섰답니다. 짝꿍은 짝꿍대로 연애편지 대필해주다 벌 섰으니 속상하고, 지승이는 지승이대로 원망이 많았습니다. 지승이 말로는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서 편지 보내지 말라고 말라고 수백 번 했는데 짝이 보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젠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이랑 다 절교를 하겠다는 겁니다. 말씀해 주시는 분 없었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은 참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였습니다.

처음엔 지승이가 자기가 써 달라고 했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순간에건 솔직한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말하는데, 자기가 처음엔 써달라고 한 것이 맞고,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쓰지 말라고 말라고 했는데 결국은 짝이 ***에게 보낸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말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거 봐. 평소에 글씨 연습을 많이 하면 짝한테 안 써 달라 하고 니가 직접 쓸 수 있잖아. 그래서 글씨 연습을 해야 되는 거야. 알겠어? 그리고 ***는 너 편지 보고 그냥 너를 쳐다고고 한 번 웃었다면서, 그러니까 너를 싫다고 한 게 아닌 데 왜 절교를 해. 담에 우리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또 짝이 너 때문에 혼났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해. 중간에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보낸 건 잘못했지만, 그래도 니 부탁을 들어 준 거니까 사이좋게 잘 지내.”

이렇게 지승이의 연애편지 대필사건은 끝났습니다. 녀석, 엄마한테 써 달랬으면 잘 써 줬을 텐데 하는 농담까지 넣어서 여기 저기 막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선생님께선 ‘녀석이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허 허 ...’ 하시더라구요. 근데 그 말씀도 참 달게 들리지 뭡니까. 그게 다 부모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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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10/07/06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en one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
    우리 아들 학교 번호가 11번입니다. 영어시간에 자기 번호를 영어로 말하는 거였는데, ten one 라고 했더니 외국인 선생님이 알아 들으시더랍니다.
    분명 일레븐 트웰브 어쩌구 저쩌구 라고 옛날에 말하고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생각이 안났나 봅니다.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것 보단 ten one 이라고 말했다는 게 너무 기특하고 대견한 겁니다. 그래서 아침에 많이 칭찬해 주었습니다. 너무 멋진 생각을 해냈다고. 그리고 그걸 찰떡처럼 알아 듣는 외국인 선생님도 너무 멋지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승아, 니가 자랑스러워!

  2. 나그네 2010/07/07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넘 귀엽고 깜찍하기도 하고.... 지승이 참 귀엽습니다.한참 웃었습니다.넘 웃어서 배가 다 아프네요.지승이 재치가 있습니다.

  3. 솔바람 2010/07/14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물 건은요. 사실 솔바람님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해서 먼저 얘기를 한 겁니다. 저는 선물이란 건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바람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것이 어른의 입장에서 보게 되니까 비싸고 싼 것이 보이는 거거든요. 진현이는 바비 인형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인형 하니까 수현이가 가지고 노는 작은 인형으로 알고 있죠. 건담은 조립하려고 가지고 있던 3개중 하나이구요. 솔직히 약간 비싸지요. 제가 예전부터 진현이에게 가르친 것이 '검소'입니다. 진현이는 아직도 용돈이 없습니다. 검소가 몸에 베일 때까지 용돈은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진현이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일에도 선물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진현이는 그냥 주고 싶은 겁니다. 상대방이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을 주고 싶은 거죠. 당연히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진현이의 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을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꺾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지금 ‘그거 너무 비싸니까 다른 것으로 하자’ 하면 다음부터 선물 할 때마다 금액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금액이 비싼 것을 무턱대로 선물하는 건 옳지가 않죠. 그러나 돈을 사용하는 방법과 돈의 개념은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금액 때문이라면 좀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하면 되는 거구요. 생일 때 엄마 아빠가 줄 선물 때문이라면 생일선물이 아니라 친구가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진현이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그냥 마음 그대로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내년에는 꽃을 선물하라고 하겠습니다. 꽃, 참 좋은 선물인 것 같은데요. 진현이도 꽃 좋아하거든요. 진현이가 주는 선물은 친구가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시구요. 부담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그네님이 주신 편지 중에서---

    결국 지승 지윤 소원은 이렇게 이루어지게 될 겁니다. 겸손히 받는 것을 알려 주신 나그네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