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풀어봐~ (사회)

1. [ ] 안에 들어갈 말을 고르시오. .............( )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 중 사람이 만들지 않은것을 [      ] 라고 한다.

1.인문환경 2.기호 3.자연환경 4.고장

2.고장의 행사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을 1가지 쓰시오.

답:( )

3.옛날의 한복을 입기 편하게 만든 한복을 무슨 한복이라 하는지 쓰시오.

답:( )

4. 맷돌의 장점과 단점을 쓰시오.

장점:

단점:

5. 조각보의 장점과 단점을 쓰시오.

장점:

단점:

6. 고장의 행사가 다른 이유를 2가지 쓰시오.

(1)답:

(2)답:

7. 고장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을 고르시오.........( )

1.고장 사람들의 폭력적인 마음 2.고장 사람들의 생각

3.깨끗한 거리 4.고장 사람들의 편식

8. 인문환경과 관련된 행사를 쓰시오.

(답: )

9. 자연환경과 관련된 축제를 쓰시오.

(답: )

10. 우리 고장에서 열리는 축제를 쓰시오.

(답: )

          짝짝짝! 수고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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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단양의 수변무대 이야기

중심 글 - 아버지와 아들 -

1.월드컵의 차범근과 차두리

2.<로봇>의 로드니와 아빠

3. <해피피트>의 멈블과 아빠

4. <드레곤 길들이기>의 히캅과 아빠

5.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마무리 글 - 대화를 향하여

여는 글 -단양 수변무대 이야기

지난 6월 12일에 단양군 수변무대 대형 스크린으로 남한과 그리스의 월드컵 경기를 보았습니다. 강가에 무대가 있고 강둑에 계단식 관람석이 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야 지붕이 있는 관람석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자리에 앉을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앞서서 지붕이 있는지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겁니다. 의외로 사람이 적어서 여유롭게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대형 스크린 너머로 북한강 물줄기가 흐르고 물줄기 저편으론 양방산 검은 실루엣이 펼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참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은 멋진 무대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무대가 비어 있을 때 저 무대를 이용해 해 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무대 옆에 있는 빈 터에 X-게임장 하나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X-게임장이 단양에 생긴다면 단양에 있는 청소년들이 ‘풀 수 있는’ 놀이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중학교 때보다 전교 석차가 두 배로 떨어져 낙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들이 피아노를 친답니다. 너무 듣기도 좋고 아름답게 피아노 치는 아들이 정말 멋있어도 보인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 1. 엄마도 걱정이 되는 데 아들에게 말을 못하고 있다가 한마디 했답니다. 지금이 중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되는 때인데, 새 악보 구해서 피아노나 치고 그러면 어떡하니? 라고.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엄마, 그럼 저는 어디다 풀겠어요!”

친구의 아들이 하는 말도 이렇게 가슴이 뭉클한데 나중에 내 아들 딸이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고 아프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 힘들지 않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아이면 아이대로, 어른이면 어른대로, 힘들고 쌓이는 게 있겠지요. 그것을 풀지 못하면 병이 되는 것, 흔히 부글부글 속에서 치민다고 표현하는 울화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울화를 누가 다스릴 수 있을까요. 다스릴 수 없을 땐 풀어야 하는 데 청소년 시기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울화를 푸는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X-게임이 안전하기만 한 놀이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자제력과 도전력을 동시에 키워 주는 것 같습니다. 순발력과 판단력, 넘어졌을 때의 아픔을 참아내는 인내력까지 동시에 키워줄 수 있는 X-게임. 한강의 뚝섬 유원지가 아닌 단양의 충주호 수변공원에서도 즐길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런 바램. 단양 군수님께 전해야 하는지 단양군 공원 녹지과 담당자에게 전해야 하는 지, 단양군 의회 교육분과 위원께 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경로를 아시는 분 대신 좀 건의 해 주세요^^)

중심 글 - 아버지와 아들

1. 월드컵의 차범근과 차두리

단양 수변무대 대형 스크린은 sbs 방송을 보내주었습니다. 독점 중계권료 어쩌구저쩌구 시비가 많은 방송사라 곱지 않았는데, 이번엔 단양군민을 위해 중계권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는 자막이 경기 끝에 나와서 ‘그래야지.’ 라며 좀 고와졌습니다. ㅎ ㅎ

해설을 차범근씨가 했는데, 경기 중에 보니 아들 차두리가 선수로 뛰고 있었습니다. 우리 딸은 박지성을 좋아하고 아들은 차두리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남편은 ‘역시 박지성’이라며 칭찬했습니다. 저는 딱히 더 좋아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선수가 있긴 했습니다. 바로 우리 아들이 ‘마빡~이 빡빡이’ 라고 리듬까지 넣어 부르는 차두리 선수입니다. 경기 중 차두리 선수의 모습이 비칠 때마다 아들은 손으로 가리키며 ‘마빡~이 빡빡이’ 라며 좋아했습니다. 아들은 차두리 선수의 외모가 눈에 띄어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데 관심 있게 보니 차두리 선수가 정말 잘 뛰는 겁니다. 드리블하며 전진하는데 마치 유럽선수들을 보는 것 같은 거침없는 힘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웃으며 하는 말,

“차두리는 힘밖에 없어. 하하하 ”

그런데 그 웃음 속에 들어 있는 의미가 굉장한 칭찬임이 느껴졌습니다. 유럽 선수와 같이 몸싸움을 해도 밀리지 않는 좋은 체격과 체력이 되는 선수가 차두리 선수라는 겁니다. 거기에 하나 덧붙여 말했습니다.

“차두리는 축구를 즐기는 스타일이야.”

결국 차두리라는 선수가 아버지의 후광에 밀리는 ‘차범근 2세’가 되지 않고 당당히 자기 색을 가진 ‘마빡이 차두리’가 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공 뒤엔 아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해 준 ‘아버지 차범근’ 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차범근씨의 축구 스타일을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차두리 선수와는 다를 거란 느낌이 듭니다. 서로 다른 색깔로 한 길을 걸어가는 차범근 차두리 부자가 참 부러운 하루였습니다.

2. <로봇>의 로드니와 아빠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면 둘은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만화영화 <로봇>을 보고 아들하고 아빠가 저런 사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는 접시닦이 로봇이고 아들은 조립과 발명에 재주가 많은 청소년 로봇이었습니다. 아들 로드니는 자신이 만든 로봇을 들고 도시로 떠나고 아버지는 작은 마을에서 계속 접시를 닦습니다. 도시로 간 로드니는 로봇 세상의 힘없는 민중로봇들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도시의 권력은 로드니의 꿈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로봇 도시 책임자가 된 라쳇은 고장나고 낡은 로봇을 고쳐주지 않고 용광로에 녹여 그것으로 번쩍이는 업그레이드 된 로봇을 만들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로드니는 세상이 자신이 꿈꾸는 것과 같지 않음에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차역에서 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그때 아빠는 좌절하고 돌아오려는 아들 로드니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너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일러줍니다. 아빠의 격려에 힘을 얻은 로드니는 고철 취급받는 민중로봇들과 힘을 합쳐 옳지 않은 권력자 라쳇을 몰아냅니다. 그 과정에서 ‘꿈이 있는 젊은이여 나에게 오라.’고 희망을 주었던 로봇도시 책임자인 빅웰도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빅웰과 로드니는 로드니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로드니의 고향 작은 마을의 광장. 접시를 닦다가 달려 온 아빠와 꿈을 이룬 로드니와의 만남. 거기에서 로드니는 아빠의 꿈은 음악가였다고 말하며 아빠께 트럼펫을 선물합니다. 온 마을은 로드니의 아빠가 부는 빠르고 경쾌한 트럼펫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아! 그런데 그 장면이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드는 겁니다. 아들에게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잃은 꿈을 찾아주는 아들. 넓게 해석해서 자식과 부모 사이가 저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려 할 때 로드니의 아빠가 한 이야기를 나도 해 줘야지 생각했습니다. 극장에서 <로봇>을 보고 뒤에 집에서 비디오로 여러 번 보았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가 주는 감동은 여전합니다.

지금 우리 아들이 비디오로 <로봇>을 보고 있습니다. <벅스 라이프>를 본대는 걸 엄마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하니 <로봇>을 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기에 기차역에서 로드니와 아빠가 통화하는 장면에서 아빠가 뭐라고 하는 지 정확히 알고 싶어 그런다 했더니 아들이 말합니다.

“왜요? 나중에 엄마도 그렇게 얘기해 줄라구요?”

기특하게 여기며 그렇다고 대답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꿈을 이루도록 희망을 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아빠와 로드니가 통화 하는 장면에서 아들이 불렀습니다. 열심히 귀 기울여 듣기는 했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위에서 말한 대로 마지막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 같았습니다.

표현 방법, 내용 전개, 주제 전달 등 여러 면에서 애니메이션 <로봇>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 훌륭함을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아버지와 아들의 교감을 많은 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3. <해피피트>의 멈블과 아빠

암컷이 알을 낳아 주고 먹이를 구하러 떠나고 수컷 펭귄들은 눈보라 속에서 알을 품습니다. 멈블의 아빠 멤피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멤피스는 알을 그만 눈보라 속에 떨어뜨립니다. 얼른 다시 주워 품지만 자신의 소중한 알을 떨어뜨린 자책의 마음 때문에 괴롭습니다. 다른 알들이 다 깨어났지만 멤피스의 알은 깨어나지 않습니다. 멤피스가 알의 부화를 포기하려는 순간 요란한 몸짓으로 아기 펭귄 멈블이 태어납니다.

다른 펭귄들과는 달리 멈블은 아주 음치입니다. 소리로서 짝을 찾는 펭귄으로서는 아주 불리한 조건을 타고 난 겁니다. 게다가 하나 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데 바로 발로 춤을 잘 춘다는 겁니다. 다른 펭귄들은 노래로 사랑을 구하는 데 멈블은 노래 대신 저절로 발이 움직이며 탭댄스를 추게 되는 겁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멈블은 어느 날 바다 속에서 에어리언(인간)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멈블은 같은 무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자신 이외의 존재-에어리언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구세대에 의해 추방당하게 됩니다. 멈블의 아버지마저 멈블이 노래는 못하고 발춤만 추는 것은 멈블이 알 일 때 눈보라 속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아내에게 고백하면서 무리에 따르지 않으려면 떠나라고 아들에게 말합니다. 고지식하고 구태의연한 아버지가 호기심 많고 도전정신이 뛰어난 아들을 버리는 장면입니다.

다행히 멈블이 갖고 떠나는 것은 무리나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아니라 에어리언을 찾으려는 집념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에게 잡혀 동물원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던 멈블은 한 소녀가 동물원 유리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발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멈블의 발춤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결국 수신기를 등에 단 멈블은 펭귄의 무리 속으로 돌려보내집니다. 그가 찾은 에어리언과 함께.

헬리곱터를 타고 온 에어리언(사람)을 본 펭귄들은 멈블의 발장단을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발장단을 멈블의 아버지 멤피스도 멈블을 이단시한 지도자 펭귄들도 따라했습니다. 멈블이 옳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노래하지 않고 춤을 추는 펭귄들의 몸짓은 마구잡이식 어업으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자각하게 했고, 사람들은 펭귄과 식량을 나눠먹을 방안을 마련합니다. 자식이 남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 고통에 괴로워할 때 자식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그들 펭귄부자는 화해했습니다.

사회의 편견에 못 이겨 자식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해피피트>는 화면이 웅장하고 사실적이며 음악이 아름다운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든 ‘자식을 부모가 믿어주어야지 누가 믿어주나’ 하는 교훈을 짙게 남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4. <드레곤 길들이기> 의 히캅과 아빠

아이들과 같이 본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최신 작품입니다. 처음엔 <드레곤 길들이기>라 해서 <쥐라기 공원>처럼 무서우면 어쩌나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는 아이들 정서를 배려하여 잘 고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나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공룡이 불을 뿜어 바이킹 마을을 불태운다는 가정 자체가 허구임을 10살 우리 아이들은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그 허구 안에서 발견한 것이 약자에 대한 사랑이나 아버지와 아들과의 이야기 방법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 영화는 제가 최초로 본 3D영화입니다. 물론 서울 국립 과학관에서 짧은 3D과학 만화영화를 본 것 빼고 말입니다. <반지의 제왕 2>와 <로봇> <해피피트> 그리고 이번에 본 <드레곤 길들이기>가 최근 10년 동안 극장에서 본 영화의 전부입니다. 물론 저는 영화를 무지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 둘 키우는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볼 영화도 많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아이들 보여준 <초초코코 대 작전>이나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질 때>는 다른 일이 더 하고 싶어서 저는 안보고 아이들과 아빠만 봤습니다. 속으로 ‘나는 나중에 성인 영화 한 편 볼 거다.’ 했는데, 그 영화 한편 볼 기회 정말 없네요. 그리고 실은 시간과 장소와 비용에 부담이 없는 책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이들 영어 듣기를 위해 집에서 영어로 비디오를 보는 데 처음 사온 날은 같이 봅니다. 너무 멋지고 좋은 비디오들이 많습니다. 근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너무 재밌다 해서 당연히 영어 더빙 있을 줄 알고 샀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영어 더빙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엉겁결에 일본어까지 듣게 됐지 뭡니까. 디즈니 영화들은 색이 선명해서 포스터 칼라로 그린 포스터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그림들은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하울과 소피가 들판을 산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을 연발하며 보았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우리도 그런 좋은 영화를 잘 만들어서 영어 더빙 없이 한국어로 당당하게 세계시장에 내다 팔면 한국어 보급에 참 좋은 영향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어가 세계 공통어라면 우리 아이들 공부할 거 하나 주는 건데 그러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좋아질까! 영어학원비가 일단 줄면 사교육비 3분의 1은 줄지 않을까 하는 쓸 데 없지만 행복한 공상도 해 봅니다.

딸을 잘 키우면 비행기를 탄다고 했던가요? 저도 딸 덕분에 <드레곤 길들이기>를 보았습니다. 딸의 남자친구 부모님께서 같이 보자며 마련해 주신 <드레곤 길들이기>여서 더 좋았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 상영하고 있는 영화이니 줄거리를 말하면 실례일 것 같아 생략 합니다. 다만 히캅이 두려움에 떠는 아기 공룡 투스리스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준 결과 너무도 많은 바이킹들과 많은 공룡들이 평화를 찾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전개 과정에서 아빠와 아들이 대화를 원치 않는 게 아니라 어떻게 대화 할 지를 잘 몰라 어색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선 아빠와 아들의 대화였지만, 그건 엄마와 딸의 대화일 수도 있고,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 대화 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서로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대화를 못 하고 서로 서먹해지거나 아님 일방적 훈화를 하거나, 아님 서로 삐지게 되거나 아님 서로 화를 내고 마는 경우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부모와 아이가 서로 원하는 건 ‘대화’라는 걸 인정한다면 양보할 수 있는 폭도 넓어 질 것 같습니다.

5.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아빠와 아들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을 생각하니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차범근과 아들 차두리의 이야기를 생각하다 떠오른 책입니다.

아버지 차범근도 아들 차두리도 축구선수로서 성공한 인생입니다. 월드컵에 나오게 된 것이 감격스러워 북한의 정대세라는 선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로 월드컵 출전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월드컵에 나란히 선수로서 출전 했고, 뒷날 아버지는 해설자로 아들은 선수로 한 경기장에 있게 된 것도 두 부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 두 부자의 이야기가 끝까지 해피엔딩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은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지방 의사였고, 아들도 대학에서 이학을 배운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론 아버지가 의사에 아들도 의과를 공부했다하니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까지 누리는 성공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르게네프가 고민하던 시대에는 의사가 그리 대접받는 사회적입지에 있지는 않았든가 봅니다. 왜냐하면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있던 신분제 시대의 막바지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의사는 그저 기술자였던 겁니다. 단 사람의 생명을 다루었기에 다른 기술자에 비해 대접을 받았을지는 모르나 귀족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을 뛰어넘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나 봅니다.

아들은 고민을 합니다. 귀족 친구를 두고, 젊고 아름답고 재산도 많은 미망인 귀족 여인네를 두고 갈등 합니다. 그러다 아들은 아버지 곁에 남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환자를 보며 자신의 길을 가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도전했던 시체 부검 - 장티프스 감염으로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일에 참여했다가 그만 아들은 감염이 되어 죽고 맙니다. 감염 상처를 안고 돌아온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제가 이 작품을 부모가 되기 전에 보았더라면 아마도 아들이 딛고 넘어 설 수 없었던 계급사회의 부조리라는 말을 먼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 되고 나서 보았기에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는 아비의 기막힌 마음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 아들이 넘어 설 수 없었던 계급의 문제가 갈등의 핵심이었음이 보입니다. 투르게네프의 작품들이 훌륭한 이유는 생활이 먼저 보이게 하고 계급이 뒤에 보이게 하는 삶에의 밀착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초등 3학년 사회 교과서에 옛날의 생활모습을 배우는 단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반이니 상민이니 귀족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는 데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누가 양반이 되고 누가 평민이 되느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의 사고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분세습사회. 그 상상할 수도 없는 신분세습사회의 벽을 넘느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는지 모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진리를 위해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다 꿈 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계급사회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반이나 평민이라는 구분은 없지만,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 뭘 많이 할 줄 아는 사람과 할 줄 아는 게 조금밖에 없는 사람의 구분은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이왕이면 돈을 많이 벌길 원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이왕이면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덜 힘든 일로 돈을 많이 벌길 원해. 그런데 그렇게 덜 힘들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해. 자격증은 공부를 잘 해야 딸 수 있어. 엄마는 니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왕이면 덜 힘들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도 좋아.”

아이들은 그런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일이 뭐냐고 묻기에 몇몇 직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참 한심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자본이란 넘을 수 없는 벽을 인정하고 그 벽을 넘는 도구로 자격증 운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분도 자본도 벽이 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선 모든 아버지들과 모든 아들들의 대화가, 모든 어머니들과 모든 딸들의 대화가 더 행복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런 사회, 돈 걱정 안하고 병을 치료받을 권리, 예체능도 평등하게 배울 권리, 늙고 병들어도 귀한 생명으로 대접받을 권리, 이런 모든 권리들이 자본의 벽을 넘어서는 사회. 사회보장제도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마무리 글 - 대화를 향하여

요즘 월드컵 덕분에 우리 가족 대화의 폭이 더 넓어졌습니다. 평소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지라 왜 이렇게 유독 월드컵에 열광하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의 설명으론 축구는 별다른 장비 없이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부격차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참가하는 나라가 많다는 겁니다. 세상을 평등하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놀이라니 더 좋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브라질과 1차전을 한다는 말을 들으니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하면 더 막강한 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림픽에는 단일팀으로 출전 한 일이 있는 걸로 기억되는 데, 월드컵도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하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모여서 공놀이 하고 왔다갔다 연습하고 하다보면 대화의 기회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서로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핑퐁’을 칭하여 대화를 했듯, 우리도 월드컵을 핑계하여 말꼬를 더 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면 크게는 남북대화니, 작게는 아들과의 대화니, 양보니, 이해니 하는 단어가 잘 생각나는 데 막상 현실에서 아이들이랑 부딪히면 다 까먹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기 일쑤입니다. 어제는 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이 끝나고 빨리빨리 씻고 일기 쓰고 해야 하는 데, 딸이 씻으라고 세 번을 말하도록 안 씻는 겁니다. 더구나 월드컵 보고는 늦어서 일기 쓰기 힘드니까 미리 쓰라 했건만, 월드컵 보고 후딱 쓸 거라 해놓고는 약속을 안 지키니 화가 나서 “대~한 민국!‘ 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면 엄마의 글들을 보여주고 때때로 엄마가 했던 좋은 문구를 상기시켜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 하리하우스가 비록 우리 집, 우리 아이들 크는 얘기를 하는 홈페이지긴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접근금지입니다.

하리하우스의 홈페이지 내용이 비교육적이어서가 아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에 차라리 나가 놀아라’와 ‘텔레비전 볼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잠이나 자라’가 제 교육관이기 때문입니다.

하리하우스에 없는 것이 있는 데 바로 컴퓨터와 텔레비전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한글 타수는 전교 꼴지 수준입니다. 그래도 하나도 걱정 안 됩니다. 나중에 연애편지 쓰고 싶어지면 한글타자 실력이 일취월장 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할 때 되면 다 해’하고 컴퓨터도 영어학원도 안 보내는 강적 엄마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제는 한글 타자 우리 반 꼴찌야, 재는 아직 영어로 사과도 못써.’ 하고 놀리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긴 합니다. 누구든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입니다. 누가 무엇을 못하는 것이 놀림감이 되어선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등 교육에서는 잘하고 못하는 것을 줄 세워서 보여주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줄의 가장 앞에 선 아이가 갖는 우월감은 자신감과는 다릅니다. 우월감은 경쟁력이 없지만 자신감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누가 일등이고 누가 꼴찌인지 알게 하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잘하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인지 우월감을 심어주는 교육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줄 때 점수가 안보이게 접어서 나눠주신답니다. 백 점 맞은 아이가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갖는다면 그 아이를 위해 좋지 않고, 잘 못 본 아이가 기가 죽거나 놀림감이 되면 안 되니까 시험지를 접어서 준답니다. 잘하든 못하든 점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니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초등 교육현장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신념을 갖고 계시면 참 행복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딸 사기를 높여 주느라고 가끔 해주는 말이 있는데, ‘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입니다. 이거 자신감을 심어주는 대화 맞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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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구리^^ 2010/06/19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형 스크린 너머로 북한강 물줄기가 흐르고 ... 초장에 나타난 수변무대 주변 풍경에 대한 설명에서 "북한강"이 아니고 남한강이 맞지 않나요? ㅋㅋㅋ 자기가 태어난 고향땅 강줄기가 이글을 보면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이 들어 정답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북한강과 남한강은 팔당댐이 있는 양수리에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동쪽에서 내려오는 남한강이 모여 한강이 됩니다. 더 자세하게는 소양강댐에서 내려오는 강줄기가 북한강이고, 충주댐에서 내려오는 강줄기를 남한강으로 통칭합니다.

    팁으로... 수변무대 북쪽으로 2.3Km정도 올라가면 단양팔경 중에 제 1경으로 치는 도담삼봉이 있고, 남쪽으로 7Km정도 내려오면 구담봉과 옥순봉이 나타납니다. 그 곳 남한강 줄기 일대를 충주댐 덕분에 충주호라 부르지만 단양과 제천지역 사람들 한테는 충주호가 낮설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천호 또는 청풍호로 호수명을 바꾸자는 지역민들도 많이 있기도 합니다. ㅋㅋㅋ 나는 단양호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충주에서 가까운 곳은 충주호, 제천에서 가까운 곳은 제천호, 단양땅에 있는 남한강 물은 단양호로 부르면 공평의 법칙에서는 타당한 호수명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2. 지윤맘 2010/06/19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님 북한강을 남한강으로 정정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보통 단양에 하리하우스가 있다고 하면 낚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거기 충주호가 있지요?'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관리자님 의견대로 '단양에 단양호가 있지요?'하고 묻는 말을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 표 던집니다!

잭클린 윌슨의 동화들

곱디고운 우리 딸은 동화책을 아주 좋아 합니다. 학교에서 권장도서목록을 주어 그 중 최소 50권에 대한 독후활동을 해야 하는데, 주로 문학 관련 서적만 보려하고 과학 사회 방면의 책을 읽지 않으려 해서 걱정이긴 하지만, 틈만 나면 책을 읽으니 그 점은 참 다행입니다.

어른인 내가 틈틈이 어린이 동화를 읽은 이유 중 하나가 재미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와 공통의 대화거리를 갖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커서 어른들의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토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뿐더러, 이미 엄마와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 너무 시시하고 어색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면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잭클린 윌슨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랜과 에리히 케스트너와 로알드 달의 작품들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기록하려 합니다.

딸이 잭클린 윌슨의 책밖에 안 읽었는데, 그 이유가 딸의 취향에 맞는 내용인데다 나머지 네 작가들의 책에 비해 분량이 적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딸과 제가 공통으로 읽은 책입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

<미라가 된 고양이>

<잠옷 파티>

<천사가 된 비키>

<고민의 방>

<난 작가가 될 거야>

<고민의 방>과 <난 작가가 될 거야>는 딸이 안 읽었다고 하지만, 같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우선 딸에게 제목을 하나하나 말해주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딸이 너무 좋아하며 재잘재잘 말하는 것을 제가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간추려 올립니다. 그런데 직접 쓰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한글타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딸의 속도로 글을 올리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메모를 했다가 제가 올리는 형식으로 딸과의 독서토론을 진행하려 합니다. 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이 오랫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시력이 0.7과 0.8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시력 보호에 관심을 더 많이 관심을 쏟아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천사가 된 비키>처럼 잭클린 윌슨 작품들의 공통점은 문체가 간결하고 분위기가 밝다는 것입니다. 그 간결하고 발랄한 분위기 때문에 쉽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시공주니어 베스트 문고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에리히 케스트너나 로알드 달의 작품들만큼 되는 데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내용처럼 삽화도 간결하고 재미있습니다. <천사가 된 비키>는 교통사고로 어이 없이 목숨을 잃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무거운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 표지에는 천사날개를 단 비키가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에 대해 지윤이는 비키가 좋아하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감동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친구를 잃고 힘들어하는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내용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위로 받는 걸 되게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앞으로 지윤이에게 위로를 많이 해 주어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위로란 곧 관심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지윤이 학교 친구가 양쪽 손목을 다쳐서 양팔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학교에 다녔는데, 깁스한 친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의 대상인 것이 은근 부러운 눈치기도 했습니다. 위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니 그러니 아이들이지요.

<리지 입은 지퍼 입>을 보고 딸과 제가 공통적으로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 바로 ‘인형수집’을 해보고 싶다는 지윤이의 생각과, 무엇이든 수집가가 되어 보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저의 생각이 공통된 것입니다. 물론 지윤이는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인형을 수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대신 저는 돌멩이나 풀,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을 수집해 보면 좋겠다고 한 것이 각각 달랐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이가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나오는 데 지윤이와 제가 공통으로 그 부분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윤이는 리지가 할머니를 좋아하게 된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또 엄마가 피자와 스파게티 둘 다 사줄 때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했던 메모를 보니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 P.81~86 (노인과 어린이 간에) 서로를 돌보는 것의 자연스러움--강요나 의무 아닌 이해와 사랑--

아마 지윤이가 할머니와 친해진 게 신기하다고 한 부분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책이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에 있어서 글을 올리는 지금 정확한 내용을 확인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의 토론은 작은학교 도서방이나 도서실에서 책을 찾아 들고 해야겠습니다.

평소에 지윤이가 워낙 책을 빨리 읽어서 책을 항상 대충 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수준 낮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 이 책 내용 다 알아? 말해 봐!”

너무 후딱 읽어치우는 것 같아 책 줄거리만 아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이었는데, 이야기 해 보니 핵심도 느끼면서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론 내용이 뭔지 말해보라는 유치한 질문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

<리지 입은 지퍼 입>은 새 가족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엄마 새아빠처럼 새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지퍼를 잠그듯 입을 닫았던 리지가 입을 열고 마음도 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도 새가정을 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는 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잭클린 윌슨의 책들의 장점은 밝고 간결한 문체와 소재의 기발함에 있습니다. 또 하나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이유는 그림이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다는 걸 꼽을 수 있습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의 표지그림엔 여자아이 얼굴에 입 대신 잠긴 지퍼가 달려 있습니다. 다가가서 지퍼 손잡이를 잡고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짓궂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광고용 벽보나 잡지 표지모델의 예쁜 얼굴에 드라큘라 이빨을 그려 넣거나 눈알을 빨갛게 칠해놓고 피를 칠칠 흘리는 처녀귀신으로 만들어 놓은 낙서를 볼 때면 그런 장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참 궁금했습니다. 주로 예쁜 여자 모델들 얼굴에 장난을 치는 것 보면 낙서를 하는 감정이 질투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낙서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리지 입은 지퍼 입>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과 낙서하기를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초상권을 유린하는 낙서 말고 기품 있는(?) 낙서를 해 보는 것은 아이들 창의력에도 좋습니다. 이야기 나온 김에 기품 있는 낙서가 가능한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천둥치는 밤>입니다. 채색 없이 간결한 선으로만 표현 된 고차원 그림책인데 그냥 보라고 할 때보다 그리고 싶은 대로 책에 덧그려도 좋다고 했더니 우리 딸은 훨씬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덧그림들이 실제 그림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천둥치는 밤>이 미셀 르미유의 책이 아니라 우지윤만의 책으로 거듭난 겁니다. 지금 작가 이름을 보려고 책을 찾았는데 책이 책장에 있지 않고 딸의 서랍에 있습니다. 자신의 공주그림 수첩들 사이에 같이 놔둔 걸 보니 <천둥치는 밤>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나 봅니다.

<미라가 된 고양이>는 아이들 세계에서만 상상 가능한 일을 썼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칭찬 해 줄 만 합니다. 그렇다고 미라가 된 고양이가 걸어 다니며 밤마다 쥐 대신 염소를 잡아먹으며 다닌다는 투의 기괴한 공포를 유발하는 동화로 치닫지 않은 것도 참 다행한 일입니다.

지윤이는 <미라가 된 고양이>에 대해 세 가지 느낌을 이야기 했습니다.

- 미라를 만들려고 향수비누를 함부로 쓴 것이 잘못했다.

- 궁금증은 왜 늙은 고양이가 좋을까 하는 거다.

- 고양이를 미라로 만든 점이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다.

향수비누 운운은 물건을 함부로 쓰는 건 잘못이라는 평소 가르침의 투영일 터이고, 늙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신기한 건 늙어죽도록 정을 주며 키워본 동물이 없으니 그럴 터이고,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라 함은 죽었다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애틋해 함을 칭찬하는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저의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P 18 -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 원초적 그리움

P 49 - 지난 후에 후회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P 119 - 메이블을 무척 사랑한다고 해서 영영 다른 고양이를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란다. - 다시 사랑하고 다시 결혼하는 사라들의 마음?

<고민의 방>은 학교에서 운영되는 고민 들어주기 방인데, 지윤이는 읽지 않았답니다. <난 작가가 될 거야>도 읽지 않았답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다른 제목들에 비해 고루하기 때문에 읽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사가 되었다는 둥 입이 지퍼라는 둥 미라가 됐다는 둥 지윤공주가 좋아하는 ‘파티’ 라는 둥의 톡톡 튀는 제목에 손이 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고민의 방>에 대한 메모 중 지윤이가 지윤이 반에서 ‘홀리’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로 크면 좋겠다는 것과, 맞춤법 시험에 대한 얘기 부분에서는 지승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는 것과, 아이들 속의 에너지나 미움은 분출시켜야 하는 데 그 방법으로 ‘한 길 땅파기’를 시켜봐야겠다고 쓴 것이 눈에 띱니다.

<난 작가가 될 거야>는 고아원에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데, <라스무스와 방랑자>에 나오는 고아원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고, 실제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윤이가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잠옷 파티>입니다. 에이미, 벨라, 클로에, 데이지, 에밀리 이렇게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각자의 생일에 나머지 네 친구를 초대해서 잠옷파티를 여는 내용입니다. 옮긴이 주석으로 잠옷파티란 친구 집에 모여 하룻밤을 지내는 파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 또한 재미있습니다. 커다란 이불 하나를 다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덮고 있습니다. 모두 얼굴만 내놓고 있는데 순하게 아래로 쳐진 눈썹에 웃는 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노오란 뽀글 머리를 한 아이만 위로 올라간 눈썹에 베개도 혼자서만 베고 있습니다. 그린이가 닉 샤렛인데 꽤나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그림입니다.

우리 딸 표현에 ‘클로에 읽는 데 짜증이 나!’ 했는데 바로 그 짜증나는 클로에입니다. 글의 화자가 데이지이고 친구들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축에 속합니다. 그러니 클로에가 여러모로 데이지를 힘들게 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이 데이지 편을 들어주어 다행입니다. 데이지에겐 ‘그저 남달리 특수한 교육을 받아야하는 특별한 사람일 뿐’인 릴리 언니가 있습니다. 데이지생일 잠옷파티는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게 되었습니다. 텐트에서 뜨거운 코코아에 팝콘을 먹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텐트에서 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창피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가수나 좋아하는 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옷이나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유령이야기도 했다면 참 재미있을 겁니다. 도전게임이라는 밝힐 수 없는 놀이도 했다고 하는 데 언젠가는 우리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잠옷파티를 열어주어고 싶습니다. 하리 꿈의 데크에 텐트를 쳐 주고 평소에 안 주는 뜨거운 코코아에 팝콘을 준다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지윤아, 지승아. 마음이 넓고 생각이 아름다운 친구들을 데리고 오렴. 멋진 잠옷파티를 열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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